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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구(2)

작성자윤선장|작성시간26.06.12|조회수25 목록 댓글 0

​#12. 쇠창살 너머의 평화로운 감금 생활 (둘째 날의 기록)
​선장 아저씨가 차를 몰고 나가버린 텅 빈 마리나. 나와 주남 총각은 파이프 난간에 턱을 괴고 멍하니 마당을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1톤 트럭에서 심장이 터질 것처럼 무서웠고, 내리자마자 마당을 미친 듯이 질주하며 염소들을 기절시켰던 터라 온몸이 뻐근했다. 파이프 세 개에 갇힌 게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용히 숨을 고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당 저편에서 지천에 깔린 풀을 뜯는 염소 녀석들과 꼼지락거리는 토끼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울산 동물원에 있을 때는 매일 철창 너머로 소리를 지르는 꼬마들을 상대하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여기 동물 친구들은 참 평화로워 보였다. 조용히 흐르는 바다 소리와 싱그러운 풀 냄새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그때, 옆에서 같이 목을 빼고 있던 주남 총각 녀석이 슬그머니 내 눈치를 보며 몸을 밀착해왔다.
​‘뭐야, 이 듬직한 덩치는?’
​옆에 서 있으니 녀석의 덩치가 정말 엄청나게 크다는 게 다시 한번 실감 났다. 내 몸집의 거의 두 배는 되는 우람한 녀석인데, 신기하게도 무섭기보다는 묘하게 든든한 구석이 있었다. 주남저수지 대가족 틈에서 만년 꼴찌로 눈치만 보며 자랐다더니, 덩치 값도 못 하고 쭈뼛거리는 모습이 보면 볼수록 순진하고 귀여웠다.
​“야, 주남이. 너도 저 바깥세상이 되게 넓어 보이지?”
​내가 슬쩍 말을 건네듯 귀를 쫑긋거리자, 녀석도 알아들었는지 커다란 귀를 내 쪽으로 쫑긋하며 콧김을 씽 뿜었다. 비록 철없는 선장 아저씨가 쳐놓은 파이프 장벽 뒤에 갇힌 신세였지만, 든든하고 잘생긴 연하남이 곁에 동반자로 서 있으니 이 고요한 감금 생활도 제법 견딜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좁은 창고 입구에서 우리 두 연하남녀가 살을 맞대고 지내야 할 앞으로의 열흘. 선장 아저씨가 없는 조용한 마리나에서, 우리 둘만의 기묘하고도 은밀한 탐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11. 파이프 장벽과 쇠창살 너머의 신세계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선장 아저씨는 창고 입구에서 무언가를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뚝딱거리는 소리에 밥을 먹다 말고 귀를 쫑긋 세워 지켜보았다. 그런데 아저씨가 커다란 파이프 세 개를 가지고 오더니, 우리가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던 창고 입구를 튼튼하게 가로막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런, 세상에! 이제 막 도심 동물원의 감옥을 탈출해 진짜 자유를 찾았나 싶었는데, 다시 갇히는 신세라니!’
​자유의 단맛을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쇠창살 같은 파이프 뒤에 갇히게 되자, 덜컥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저씨는 파이프 장벽을 완성하고 나더니 우리 둘을 한참 동안 빤히 쳐다보았다. 우리가 또 날뛰어 마당을 엉망으로 만들까 봐 단단히 단속을 하겠다는, 아주 결연하고 굳은 결심이 선 눈빛이었다. 그러고는 안심했다는 듯 털레털레 걸어가 차를 몰고 마리나 밖으로 휭하니 나가버렸다.
​마당에 주인도 없겠다, 나와 주남 총각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방금 아저씨가 만들어놓은 난간대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파이프 사이에 길쭉한 목을 나란히 기대고 서서, 울타리 밖 푸른 세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야속하게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드넓은 마당에는 초록빛 싱그러운 풀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고, 그 마당 끝너머로는 반짝이는 한산도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시선을 조금 돌려보니, 마당 한편에서는 어제 우리 기세에 눌려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던 그 염소 녀석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지천에 널린 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풀 사이로 조그마한 토끼들도 여기저기 쏙쏙 나타나더니, 하얀 입을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염소에 토끼라니, 묘하게 내가 살던 울산 동물원 친구들이 생각나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여긴 사방이 꽉 막힌 콘크리트 벽도 없고,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꼬마들도 없었다.
​파이프 세 개에 가로막혀 당장 저 풀밭으로 뛰어 나갈 수는 없었지만, 코끝으로 전해지는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싱그러운 풀 냄새를 맡고 있으니 묘한 설렘이 다시 피어올랐다. 내 옆에 나란히 목을 빼고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이 순진한 거구 연하남과 함께, 이 아름다운 섬에서 보낼 앞으로의 열흘간이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창살 너머의 풍경을 보며 긴 한숨과 함께 깊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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