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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외전 [세 원수와 아기바구니] (2)

작성자카페 바텐더|작성시간03.04.27|조회수439 목록 댓글 0
은하영웅전설 외전 [세 원수와 아기바구니] (2)



그를 비난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가 하는 일을 아무도 대신할 수
는 없다.

온화함과 사려깊음을 겸비하고, 아울러 팔방미인으로 고도의 예술적
비평에서 시작하여 길거리 사주점이나 궁합에 이르기까지 이것저것 주
물러대는 것으로 유명한 문인장군 메크링거는, 일찌기 '만인의 적' 오벨
슈타인에 대하여 이렇게 평한 바 있다.

이 발언에 대해 파렌화이트는 눈썹을 치켜떴고 비텐펠트는 한참 뜯고
있던 닭갈비를 벽에 던졌으며 '침묵장군' 아이제나흐는 변함없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반론은 제기되지 않았다는 것만은 필히
밝혀두고 싶다.

오벨슈타인의 독(毒)으로서의 약효는 충분하다. 하지만 인공 의안(義
眼)의 묘한 광채를 외딴섬 등대처럼 휑하니 밝히고서, 입만 벌리면 토
해내는 악랄한 계책들을 귀에 접하고 보면 그에 대한 혐오감은 끝간데
를 모르고 상승하고 마는 것이다.

때문에 그에 대한 악의에 찬 (그러나 왜인지 모르게 진실미가 담뿍
담겨진) 소문들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실은 그가 호모에 금발 매니
어여서 억지로 라인하르트의 휘하로 들어왔다는둥, 메카 페치에 변태여
서 빨강, 노랑, 파랑 등등 색색깔로 틀린 인공의 의안(義眼)들을 리본으
로 장식해서 지하실에 수집해놓고 있다는 둥......

하지만 여기에서 참된 진실을 밝히자면, 그는 실로 마음 약한 소년,
아니 중년이었던 것이다.

파울 폰 오벨슈타인의 어린 시절은 핑크빛 표지의 순정만화로 가득찬
벽장으로 채색된 것이었다. 바람 부는 언덕위에서 백파이프를 연주하
는 왕자님과 주근깨 투성이 고아 소녀의 첫만남에 가슴을 두근거리고,
어딘지 그늘진 우수의 표정을 짓곤 하는 의문의 전학생과 약간 말괄량
이지만 건강한 단발머리 소녀가 뜬금없이 복도에서 부딛히는 이벤트에
꿈꾸는 눈동자가 되는 그런 소년이었던...것...이다.

............여하튼! 그런 그가 어째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 아니
드라이아이스를 혈관에 채우고 있는 괴물로 불리게 되었는가. 그 답은
간단했다. 그는......센티멘탈한 캐릭터가 되기에는 외모가 받쳐주질
않았던 것이다!

현실은 냉정한 법. 인공으로 된 기계 의안으로 바꾼 후부터 확실히
편리한 점은 많아졌다. 바람 불어 날리는 여학생의 치마속을 초점 조
절만으로 실밥까지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고, 급작스레 정전이
되어도 의안의 서치 라이트를 가동시켜서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찾는
것도 식은죽 먹기. 봄철에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측은한 시선을 던지게 되었고, 때때로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흑백화면으로 전환하여 '흰 눈으로' 백안시하는 것은 그만의 특
기라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타고난 빈약한 체구와 성마른 인상, 음침해보이는 얼굴에 번
쩍거리는 의안이 덧붙여지고 게다가 묘한 장발!이 가세하면 그것만큼
기분나쁜 황금의 조합도 없다. 오벨슈타인은 결국 따돌림을 받기 시작
했고, 자신의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로이엔탈이라면 '방탄유리겠지'라
고 빈정댈 터이지만) 섬세한 감정을 상처받지 않기 위해 무감정과 잔혹
함의 두가지 무기로서 가장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악독한 계책을 폭우처럼 쏟아붇고, 동료와 라인하르트를 칼날
돋은 혓바닥으로 몰아세우고 자기 방으로 돌아온 날이면, 그는 책상에
올린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수정같은 눈물을 떨구며 자기 혐오와 가책에
울먹이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우리들?-의 마음약한 오벨슈타인군이 이른 새
벽의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일찍이도 자택을 나와 출근하려던 무
렵, 무척이나 얄굳게도 그의 시야에는바구니 속 강보의 어린아기를 얼
르고 있는 경비병의 모습이 비추어졌던 것이다.

미심쩍은 손길로 의안의 초점을 다시 조절하여 목표물의 재확인을 거
친 그는 경비병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 뭔가 그건? ]

-> 실은 이 시점에서 이미 오벨슈타인의 가슴은 콩당콩당.


[ 아! 각... 각하. 갓난아기입니다만. ]

-> 냉정한 말투에 무지 쫄았음.


[ 그런 건 보면 알수있네. 어째서 갓난아기가 여기에 있는건가
묻고 있는 거다. ]

-> 한번 안아보고 얼러주고 싶은 것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다.


[ 저... 국방장...관 각...하의 아기라고 생, 생각했습니다만. ]



!!!!!!......................................................


그렇다. 더 이상 무엇을 감추랴. 일찌기 이 경비병은 한마디 말실수
때문에 국방장관 각하에게 애견(?)을 빼앗긴 경험이 있는 예의 그 경비
병이었는데, 그 멍청함은 여전히 변함없었던 것이다.

하도 황당한 대답을 들어 입이 굳어 버렸던 오벨슈타인은 있는 기력
을 다 짜내어 혀를 놀렸는데, 안네로제 누님을 대상으로 하는 음담패설
을 우연히 화장실 낙서에서 발견하고 미친 듯이 격분한 라인하르트 앞
에서, 전방장병의 위문을 위해 누드 잡지를 배포하자는 의견을 꺼내려
했을 때보다 더 힘이 들었다.


[ ..........................그런가. 내 아기라고 생각했단 말이지..
...........성별은? ]

[ 여자입니다. ]


시선을 돌려 아기를 바라보며 그는 생각을 고속도로 회전시켰다.

누군가 버린 아기겠지. 저 아기를 내가 키운다?! 생각지도 않았던
멋진 일이 아닌가! 내 손으로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내 손
으로 씻...기고(->여기서 미미하게 얼굴이 붉어짐) 금이야 옥이야 키워
서 가방을 등에 매고 '아빠 다녀오겠습니다'를 기운차게 외치며 학교에
가고 이윽고 부끄러움을 아는 나이가 되어서는 아빠랑 목욕도 같이 안
해주고(결국 로리콘인가 네놈;) 꽃잎만 날려도 눈물짓는 가련한 어린
처녀가 되어서 첫사랑에 빠지고 아 물론 첫사랑 상대는 흰 가운이 어울
리는 젊은 의사나 총각 선생님이겠지 그리고 그리고 언젠가는 내 손을
떠나서 다른 남자의 품으로 가게 되고 아니야 그런 것은 용서할 수 없
어!

아직 젖도 안떨어진 눈앞의 아기가 결혼하여 세 번째 아이를 출산하
는 데에까지 망상을 확대시키고 있던 오벨슈타인은 핫!하는 혼의 외침
을 마음속으로 발하였다.

이 귀여운 어린 갓난아기(女)는, 만일 자기 손에서 자라게 된다면 어
떻게 될 것인가.

자기 자신은 어떤 소리를 들어도 상관없었다. 이왕 버린 몸, 비텐펠
트에게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치는 은하제국의 국방장관께서, 오밤중에
편의점을 들락거리신다던데 알고 보니 일회용 기저귀를 사러 오신다면
서?'라는 빈정거림을 받는다고 해도 상관 없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이 아이는... '저 오벨슈타인의 딸'이라는 박해와
수난의 역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럴순 없었다. 이렇게나 웃음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듯한 귀여운 아기는, 제대로된 부모
아래에서 자라지 않으면 안되었다.

가만, 제대로...된 부모?

오벨슈타인의 머릿속에, 은하제국군 수뇌부 중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부부상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로 아직 아이가 없는 모 가정이 떠올랐다.


[ 볼프강...... 미터마이어...... ]


- 아직 아직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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