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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잃은 중학교 교사... 작심하고 25년 동안 쓴 소설의 정체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2026. 6. 1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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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른] 근현대사의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작가 박경리
[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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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1월 2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팔순잔치에 참석한 박경리 선생.
ⓒ 연합뉴스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의 문학은 한국전쟁과도 관련이 있다. <여성문학연구> 2020년 제50호에 실린 김양선 한림대 교수의 논문 '박경리 초기 장편소설의 여성/문학사적 위치'는 "<토지> 이전 작품세계에서 작가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내상을 여성-젠더의 시각으로 시종일관 형상화했다"라며 이렇게 설명한다.
"<시장과 전장>, <파시>처럼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부터, <표류도>처럼 전후를 배경으로 한 작품까지, 단편 <불신시대>부터 <쌍두아>까지 작가 박경리는 근대 전환기, 한국전쟁 등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때로는 생존을 위해, 또 때로는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과 자기정체성 탐색을 위해 기존 질서에 저항하고 파멸조차 서슴지 않는 강렬한 여성들을 그려왔다."
전쟁 발발 당시, 박경리는 24세였다. 그 역시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입었다. 그가 겪거나 관찰한 개인적·사회적 내적 손상은 그의 문학에 스며들었다.
박경리가 겪은 상처 중 하나는 남편으로 인한 것이다. 남편 김행도(金幸道)는 납북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부 문건에 따르면 한국전쟁 초반인 1950년 12월 25일 스물일곱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박경리는 작고 3년 전에 나온 2005년 1월호 <신동아> 인터뷰에서 남편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박정희 시대도 무서웠지만, 난 자유당 시절이 더 무서웠어요"라며 이렇게 회고했다.
"파출소의 빨간 등만 봐도 겁이 났습니다. 입 꽉 다물고 살았어요. 내 스스로 벽을 쌓고 또 쌓고,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거예요."
박경리는 남편을 떠올리며 자유당과 파출소의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연상했다. 김행도는 이승만 정권하에서 편히 살기 힘든 인물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국가보훈부가 발행한 <독립유공자공훈록> 제26권 김행도 편애서 확인할 수 있다.
김행도는 경남 통영군 사등면(지금의 거제시 사등면) 출신이다. 위 공훈록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다카오카공예학교에 재학하던 김행도는 1942년 3월경 일본인 교사와 학생의 조선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대우로 인해 민족의식을 자각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라고 기술한다.
박경리보다 세 살 많은 김행도(1923년생)는 열아홉 살 때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한국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벌였다. 이는 그의 삶이 험난해지는 계기가 됐다. "김행도는 1944년 11월 20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라고 공훈록은 알려준다.
일제강점기판 국가보안법인 치안유지법 위반자로 낙인찍힌 인물들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하에서도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이승만 정권이 한국전쟁 발발 당일에 발포한 긴급명령 제1호는 치안유지법 위반자들을 포함한 이승만 반대세력을 친북 부역자로 엮어 처벌하기 위한 법령이었다. 이승만 정권이 반대세력을 그처럼 경계하는 속에서 김행도는 전쟁 중에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그 일로 인한 상처를 갖게 된 박경리는 5년 뒤인 1955년에 스물아홉 살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전쟁과 전후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을 썼다. 자신뿐 아니라 당대의 한국인들이 겪은 상처를 돌아보고 진단하는 작품들이 그에게서 나왔다.
25년간 쓴 역작, <토지>
통영에서 태어나고 본명이 박금이인 그는 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한 1945년에 열아홉 살 나이로 결혼했다. 당시 박경리는 남편의 전력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위 <신동아> 인터뷰에서 그는 "결혼한 후에야 일본에서 형무소살이 한 것을 알려주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전력이 다소 불확실한 남자와의 결혼은 그의 인생 방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결혼 5년 만인 1950년에 수도여자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가 된 박경리는 전쟁의 발발과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창작 활동에 뛰어들었다. 위 인터뷰에서 박경리는 "딸이 미국 가려고 할 때도 연좌제 때문에 못 갔어요"라고 말했다. 김행도로 인해 이 집안에 적용된 연좌제는 중학교 교사가 된 박경리가 창작에 명운을 건 배경 중 하나를 시사한다.
1955년에 단편 <계산>과 <흑흑백백>을 발표한 박경리는 1962년에는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3년 뒤에는 <시장과 전장> 및 <파시>를 내놓았다. <토지> 집필을 시작한 것은 1969년이다. 그리고 25년 만인 1994년이 되어서야 전체 5부 16권의 역작이 완성됐다. 그동안에 <토지>는 <현대문학> <문학사상> <주부생활> <월간경향> <정경문화> <마당> <문화일보> 등에 연재됐다.
<토지>는 1897년부터 해방기까지를 다룬다. 일본군이 동학혁명 진압을 빌미로 조선에 상륙해 경복궁을 점령(1894.7.23)하고 청일전쟁을 일으킨(7.25) 이후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한국인들이 국권을 빼앗기고 착취를 당하다가 일제 멸망을 목격하는 시기가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다.
<토지>에서는 그 기간에 한민족이 겪은 시련과 극복의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경상남도 하동 평사리의 대지주인 최참판집 최치수와 그 외동딸인 최서희가 겪은 고난은 당시의 한민족이 겪은 고난을 연상케 한다.
최치수가 비명횡사한 뒤에 이 가문의 재산은 그의 육촌형인 친일파 조준구의 수중에 들어간다. 고아가 된 최서희는 조준구에게 맞서보지만, 러일전쟁(1904)과 을사늑약(1905)을 계기로 조준구는 더 강해진다. 그런 조준구에게 불만을 품은 마을 사람들이 의병을 일으켜 최참판집에 쳐들어가지만, 조준구를 찾아내지는 못한다.
의병운동의 실패는 최서희가 간도로 떠나는 계기가 된다. 가문의 광복을 일생의 목표로 삼은 최서희는 그곳에서 열심히 일해 거부의 지위에 오른다. 결국 그는 광산사업에 실패한 조준구로부터 재산 문서를 되찾고 귀향을 하게 된다. 그런 다음, 일제강점기의 나머지 시간을 보낸다.
<토지>는 최참판집의 몰락과 최서희의 재기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한국인들이 최근 역사 속의 아픔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작품이다. <토지>에 힘입어 한국 사회는 그 같은 집단적 성찰을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를 어루만진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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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11월 4일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고향인 경남 통영을 방문했던 당시의 모습.
ⓒ 연합뉴스
한국이 19세기 후반부터 겪은 시련은 한일 두 민족의 관계로만 설명하기 힘들다. 이는 유럽과 미국의 상공인계급이 국가권력을 앞세워 지구 곳곳에서 제국주의적 착취를 벌이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다. 한국이 일본의 침략을 당한 일은 역사상 최악인 그 같은 착취 시스템이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던 때의 일이다.
이전 역사에 없었던 새로운 현상에 기인하는 것이기에 그로 인한 상처는 종래의 해법으로는 치유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상처로 인한 갈등은 남북한·중국과 일본 사이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유럽 사이 등에서도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한다.
일례로, 식민지배 역사 때문에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이 점점 축소되는 프랑스에서는 지난달 21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식민지 노예제도를 인정한 왕실 칙령을 뒤늦게나마 폐지하자고 제안하는 일이 있었다. 하나마나한 제안이지만, 아프리카의 환심을 사야 할 유럽의 처지를 반영하는 장면이다. 제국주의 침략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가슴에 품고 문인의 길에 들어선 박경리는 <토지>를 통해 한국인들이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한 상처를 돌아보고 이를 통찰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보듬은 문인이다.
1995년에 토지문화재단을 창립하고 4년 뒤 토지문화관을 연 박경리는 2008년 5월 5일 향년 82세로 타계하고 토지로 돌아갔다. 고향인 통영시가 그의 안장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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