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인품과 예술-구상
중섭은 눌변이었지만 독특한 화법을 지니고 있었다
중섭은 항상 자기 작품을 가짜라고 말했다
이거, 아직 공부가 덜 된 것입니다
앞으로 진짜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 선생님이 지금 가지신것과 꼭 바꿔 드리렵니다
그렇듯 자기의 현재 작품에 대한 불만과 함께 장래 할 대성에 대해서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중섭에게 있어 그림은 그의 생존과 생활과 생애의 전부였다
아니 그의 죽음까지도 그림에 대한 순도였다
중섭은 참으로 놀랍게도 그 참혹 속에서 그림을 그려서 남겼다
판잣집 골방에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짐을 부리다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풋집 목로판에서도 그렸고,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맨종이, 담배갑, 은종이에다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고
잘 곳과 먹을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부산 제주도 통영 진주 대구 서울 등을 표랑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그가 당시 대구에 있는 나에게 와서 발병하고 난 시초, 그의 심신의 증상은 이렇게 나타났다
“나는 세상을 속였어! 그림을 그린답시고 공밥을 얻어먹고 놀고 다니며 훗날 무엇이 될 것처럼 말이야
남들은 세상과 자기를 위하여 저렇듯 열심히 봉사하고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는 그림만 신주 단지처럼 모시고 다니며 이게 무슨 짓이냐?“
“내가 동경에 그림 그리러 간다는 건 거짓말이었어! 남덕이와 애들이 보고 싶어서 그랬지.”
중섭은 그날부터 일체 음식을 거절하고 병원에 드러누웠다
한주일도 거르지 않던 가족과의 교신을 단절할 뿐 아니라 그 후도 연달아온 부인의 서한을 아무리 전해주어도 개봉을 않고 나에게 돌려주며 반송해달라는 것이었다
중섭은 쾌쾌히 말해 전재로서 시적인 미와 황소같은 화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용출하는 사랑의 소유자였다
그는 그와 접한 모든 인간에게 무구하고 훈훈한 애정을 분배해주었을뿐 아니라 그 맑고도 뜨거운 애정을 금수나 어개나 초목에 이르기까지 쏟아서 그들 존재들의 생동하고 어울리는 모습을 그의 불령할이만큼 힘찬 화력으로 재현시켜 놓았던 것이다
언제인가 내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그는 아이들 도화지에 다 큰 복숭아속에 한 동자가 청개구리와 노니는 것을 그린 그림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 왜 무슨 병이든지 먹으면 낫는다는 천도복숭아 있잖아! 그걸 상이 먹구 얼른 나으라고.요 말씀이지.” 하였다
그 덕택인지 나는 그 후 세 번이나 고질로 쓰러졌다가도 일어나서 남루인생을 살고 있다
중섭의 시심은 저렇듯 청징하였다
그야 말고 시와 진실이 일치하였다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2000년10월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