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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인사 02

작성자강버들|작성시간26.06.18|조회수113 목록 댓글 0

 

이제야 그것이 승리라는 것을

 

  그때, 그 6월의 전쟁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언어는 포탄처럼 터질 수 없다는 것을. 무쇠는 언제나 육체보다 강했으며, 탱크의 무한궤도, 그릴 박격포의 검은 포구(砲口)는 시인들의 말보다 수천 배나 위력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말, ‘젊음’이라는 말, 그리고 ‘내일’이라는 그 모든 말들이 총탄에 찢긴 깃발처럼 사라져가는 것을 보았다.

 

  그때, 그 6월의 전쟁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시인의 언어란 위생병의 붕대보다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무수한 파편에 찢겨 흐르고 또 흐르는 그 많은 피를 어떻게 지혈할 수 있었겠는가. 장미라는 말, 바다와 하얀 모래와 구름이라는 말……

아, 어떻게 그런 말들로 우리의 그 상처를 씻을 수 있겠는가?

 

  그때, 그 6월의 전쟁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언어는 감자 껍질만도 못하다는 것을. 피난민 막사의 그 봇짐 속에는 남루한 담요와 몇 벌의 수저, 시레이션 깡통 속에 몰래 숨겨둔 우유 가루는 있어도 시집은 없었다.

 

  그때, 그 6월의 전쟁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짐승처럼 살아가는 법을. 유탄에 맞지 않기 위해 한 마리 구렁이처럼 뱃가죽을 흙에 대고 기어가는 포복의 기법을. 울부짖고 할퀴어지고 물어뜯고 더러는 헐떡거리다 눈치 빠르게 도망치는 짐승들의 뜨거운 숨결.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어금니와 발톱이었다.

 

  그때, 그 6월의 전쟁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구름이 아니라 포연(砲煙)이고, 그것은 바람 소리가 아니라 비행기의 폭음이고, 그것은 여름 소낙비의 천둥소리가 아니라 폭탄이 작열하는 소리이고, 그것은 길가에 피어 있는 붉은 코스모스가 아니라 전사자들의 흘린 핏자국이라는 것을. 그러나 서른 해가 지난 지금 그때 그 6월의 전쟁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결국은 언어라는 것을. 전쟁의 피를 지혈하고 전쟁의 기아를 채우고, 전사자들에게 하나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당신들이 선택하고 기록하는 그 언어들이라는 것을.

 

  이제 부서진 탱크는 녹이 슬고 뇌관이 부서진 지뢰는 잡초 속에서 돌이 되어가고 있지만, 시인들의 언어는 활화산처럼 폭발한다. 위로하고 또 고발한다. 수류탄처럼 당신들이 던지는 그 한줌의 언어들은 원폭으로도 부술 수 없는 그 증오의 음모를 부숴버린다.

 

  그때 그날은 그렇게도 무력했지만 서른 해가 지난 이제야 그것이 참된 승리라는 것을 6월의 전쟁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지은이: 이어령

출 처 :『문학사상』.1980.6

 

 

 

 

<부를 수 없었던 노래>

 

여고 시절 국어시간에 짤막한 시 한 편을 소개 받았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으로 /포옥 가릴 수 있지만 //

       보고픈 마음/ 호수 만 하니 / 눈 감을 수밖에

 

여자대학을 갓 졸업한, 볼살이 도독했던 국어선생님은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포옥 가리며 감당하기 힘든 그리움에 대해서, 그럴 때엔 차라리 눈 감고 마음속에 그리운 이를 떠올려보는 것이 훨씬 슬기로운 방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목소리에 감정을 담아 시 한 구절씩 읊으며, 따라 해보라고 했다.

흑판에 판서도 없이, 그냥 한 구절 씩 따라서 외웠다. 감은 눈 속으로 잔잔한 호수가, 반짝이는 윤슬이, 호수에 비치는 구름이 보였다. 그리운 이름 떠올리며 가슴이 아릿해왔다. 프랑스 시인 장 콕토의 시 <호수>라고 했다. 워낙 짧고, 쉬운 시어라서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삼켜버렸다. 누군가 그리울 때면, 혹은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게 될 때면, 손바닥을 내려다보다가,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 보다가, 눈을 질끈 감아 보기도 했다.

대학생 시절, 한국현대시문학 강의실에서 담당교수님께서는 잊혀진, 아니 그 시인의 이름과 작품에 대한 언급 자체가 금지된 시작품 한 편을 소개해주셨다. 한 때는 곡조를 붙여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의 노랫말이었다고 하셨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이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뻐꾹이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전하지 않고/ 머언 산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힌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정지용, <고향> 전문, 원문 그대로 표기, 동방평론 2호, 1932.7-

 

   시인의 이름 자 가운데 한 곳에는 반드시 o 혹은 x 가 들어가야 하던 시기였다. 공식적으로 1988년 납북 혹은 월북 예술가들에 대한 해금조처가 취해지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이름자를 가질 수 없었던 시인의 작품이었다. 강의실에서 흘낏 스쳐 들은 이름,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되는 그 이름은 정지용이었다. 당시 순진했던 접경지역 출신 학생들은 어떻게 강의실에서 빨갱이 문학 이야기를 하느냐고 분개, 담당교수의 사상을 의심했다.

 

   1930년대 한국 시문단을 대표하고 있었던 정지용이 한국전쟁 때에 월북이 아니라 납북되어 가던 중에 경기도 포천 소요산에서 기총소사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그로부터 오십 년이 지난 2003년 4월 29일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서였다.( 동아일보 2003 4. 29. '정지용, 1950년 9월 소요산서 사망' )

  80년대 말 정지용시집을 보게 되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 익혔던 <호수>가 정지용의 작품이었다는 것에 놀랐다. 뿐만 아니라 그 <호수>가 1930년 시문학 3호에 실린 원시와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에도 놀랐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호수 만 하니 눈 감을 밖에//

 

      - 정지용, <호수 1> 전문, 원문 그대로 표기.『시문학』 3호 1930-

 

  ​ 며칠 전 '생활수필 쓰기반‘에서 회원들의 수필 발표가 있었다. 그 전에 과제로 '자신이 좋아하는 시 작품 하나를 골라서 시인과 시작품을 소개하는 글쓰기'를 하고 그에 대해 발표해달라고 했다. 부부가 회원으로 나오고 있는 김선생이 정지용의 <고향>을 제재로 수필을 써와서 발표했다.

 

  그가 시작품을 읽어내려 가는 순간 눈에 거스르는 부분이 보였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힌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인데, 김선생이 프린트 해온 원고에는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로 되어 있었다. '흰점 꽃'과 ' 흰 점꽃'에는 하늘 땅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의미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획 하나, 받침 하나로 '님/ 남'의 차이가 있듯이 말이다. 김선생은 책에 나온 그대로 인용했다고 했다. 회원들은 휴대폰을 열어서 정지용의 <고향>에 인용된 '흰점 꽃'과 '흰 점꽃'을 확인하면서 '점꽃'표기가 우세하다고 했다. 한 회원은 말냉이 꽃이 토속어로 '점꽃'이라 불린다는 자료를 들이대기도 했다.

 

  1988년 1월 민음사 간행 정지용 전집에서 <고향>을 찾아보았다. 1931년 7월 발간된 『동방평론』 2호의 것을 원본으로 하여 '힌점 꽃'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1987년 11월에 발간된, 정지용 연구자 김학동 교수의 『정지용연구 』 20쪽 에서도 '흰점 꽃'으로 표기 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지금도 그렇지만 대개 잡지사나 출판사에서 1차 교정은 반드시 저자가 직접 할 것을 요구한다. 1930년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동방평론』 2호의 <고향> 원고는 정지용 자신이 직접 교정을 본 것이다. 어디에 신빙성을 둘 것인가. 그것은 저자의 육필원고, 저자 자신이 직접 교정 본 것에 마땅히 손을 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문득 생각이 난다. 프랑스 ‘에세이’의 비조, 몽테뉴는 사회생활에서 은퇴하면서 영지인 보르도로 돌아와 몽테뉴관 옆에 있는 오래된 탑을 수리, 서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서재의 들보에는 ‘내 무엇을 알리’라는 구절을 적어놓고 이를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내 무엇을 알리’…, 진정 내가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오염되지 않은 순수 그대로 온전한 것일까. 판단 보류, 그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기로 한다.

 

 

 

 

 

     <그 해 초여름>

 

                                                              신 경림

 

머리칼에 나부끼는 장미 꽃잎만 보면서

어깨 위를 떠날 줄 모르는 꾀꼬리 소리만 들으면서

사람들 사이에 오직 너만이 보이면서

치맛자락에 맴도는 싱그런 바람 소리만 들리면서

 

종일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마을을 덮은 들꽃들도 보지 못하고

자맥질하는 오리떼도 보지 못하고

멀리 산절의 종소리도 듣지 못하고

 

초여름 별밤이 네 하얀 손으로만 가득해

네 해맑은 숨결 네 웃음만으로 가득해

걷고 또 걸으면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서쪽 하늘을 물들인 저녁놀도 보지 못하고

 

그해 초여름, 내 그해 초여름

 

 

 

     < 풍경 달다>

 

                                              정호승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정호승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중에서, 1998 간행

 

 

 

    이른 새벽에 강변길을 걸으면, 꿩의 껑껑대는 소리, 뻐꾸기는 뻐꾹 뻐꾹, 메비둘기는 구구 구구 ……물은 가끔 여울을 지나는지 쏴아 하고 흐르고, 문득 향기가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면 밤나무의 밤꽃이 조붓하게 웃고 있습니다.

  첫여름의 강변길에는 망초들이 조밀한 군락지를 만들고, 공중에 꽃을 피워 흰점들이 보이지 않는 강물을 타고 흘러가는 형상을 보여줍니다.

 

  어제 오늘 30℃를 넘는 더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여름은 달력보다도 먼저 달려온 듯 합니다.

  유월의 마지막 목요일 오후 2시(2026.06.25.), 춘천 실레마을 (구)김유정역사 앞에 있는 김유정문학열차에서 유정독서모임 진행됩니다.

   김유정의 비평적수필 < 병상의 생각>과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함께 읽습니다.

목요일 오후 2시에 김유정문학열차에서 뵙겠습니다.

 

2026. 06. 18 강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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