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론, 우연론, 숙명론의 삼종외도설과 연기론
중아함경 3권 13경 도경(度經)
(출처 동국역경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3도처(度處)가 있으니, 성(姓)이 다르고 이름이 다르며, 종지[宗]도 다르고 교설[說]도 다르다. 이른바 지혜 있는 자가 잘 받아 꼭 지니고 남을 위해서 설법하지만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어떤 사문 범지는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전생[宿命]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는 견해를 내어 이와 같이 말한다. 또 어떤 사문 범지는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존우(尊祐: 造物主)의 지음을 원인으로 한다'는 견해를 내어 이와 같이 말한다. 또 어떤 사문 범지는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는 견해를 내어 이와 같이 말한다.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전생[宿命]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하다면 나는 곧 그에게 가서 '여러분, 진실로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전생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고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라고 물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나는 다시 그들에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다 살생자가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일체는 다 전생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여러분은 다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일체는 다 전생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만일 일체는 다 전생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고 진정 그렇게 본다면 내인(內因) 안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 전혀 욕망도 없고 노력할 것도 없을 것이다. 여러분이 만일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서 진실되게 알지 못하면 곧 바른 생각을 잃고 바른 지혜도 없으리니, 그러면 가르칠 수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만일 사문의 법대로 그와 같이 말한다면 곧 이치로써 그 사문 범지들을 항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존우(尊祐 : 조물주)의 지음을 원인으로 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곧 그에게 가서 '여러분, 진실로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존우의 지음을 원인으로 한다고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라고 물을 것이다.그래서 그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나는 다시 그들에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모두 살생자가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일체는 다 존우의 지음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여러분은 다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일체는 다 존우의 지음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만일 일체는 다 존우의 지음을 원인으로 한다고 진정 그렇게 본다면 내인(內因) 안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 전혀 욕망도 없고 노력할 것도 없을 것이다. 여러분이 만일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 해서 진실되게 알지 못하면 곧 바른 생각을 잃고, 바른 지혜도 없으리니, 그러면 가르칠 수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만일 사문의 법대로 그와 같이 말한다면 곧 이치로써 그 사문 범지들을 항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곧 그에게 가서 '여러분, 진실로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고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하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나는 다시 그들에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모두 살생자가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일체는 다 인도 없고 연도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여러분은 다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일체는 다 인도 없고 연도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만일 일체는 다 인도 없고 연도 없다고 진정 그렇게 본다면 내인(內因) 안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 전혀 욕망도 없고 노력할 것도 없을 것이다. 여러분이 만일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서 진실 되게 알지 못하면 곧 바른 생각을 잃고 바른 지혜도 없으리니, 그러면 가르칠 수도 없을 것이다. 만일 사문의 법대로 그렇게 말한다면 곧 이치로써 그 사문 범지들을 항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법을 너를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沙門) 범지(梵志)나 혹은 하늘[天] 악마[魔] 범(梵), 그리고 그 밖의 세간은 아무도 항복받지 못하고, 아무도 더럽히지 못하며, 아무도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법을 너를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 범지나 혹은 하늘 악마 범, 그리고 그 밖의 세간은 아무도 능히 항복받거나, 능히 더럽히거나, 능히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른바 6처법(處法)이 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것으로서 너를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 범지나 혹은 하늘 악마 범과 그 밖의 세간은 아무도 능히 항복받거나 더럽히거나 능히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또 6계법(界法)이 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것으로서 너를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 범지나 혹은 하늘 악마 범과 그 밖의 세간은 아무도 능히 항복받거나 능히 더럽히거나 능히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것이 6처법으로서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너를 위해 설명하는 것인가? 이른바 안처(眼處) 이처(耳處) 비처(鼻處) 설처(舌處) 신처(身處) 의처(意處)가 그것이다. 이것을 6처법으로서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너를 위해 설명하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이 6계법(界法)으로서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너를 위해 설명하는 것인가? 이른바 지계(地界) 수계(水界) 화계(火界) 풍계(風界) 공계(空界) 식계(識界)가 그것이다. 이것을 6계법으로서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너를 위해 설명하는 것이라 한다.
6계(界)가 합함으로써 곧 어머니의 태에 나고, 6계로 인하여 곧 6처(處)가 있으며, 6처로 인하여 곧 갱락(更樂 : 觸)이 있고, 갱락으로 인하여 문득 감각[覺]이 있다. 비구들아, 만일 감각이 있으면 문득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習]을 알며, 괴로움의 소멸[滅]을 알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어떤 것이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이른바 태어남의 괴로움 늙음의 괴로움 병듦의 괴로움 죽음의 괴로움 원수를 만나는 괴로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며, 생략하여 5음(陰)이 왕성해서 생기는 괴로움이다. 이것을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발생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이른바 이 애(愛)의 감수작용과 미래 세계의 존재에 대한 낙욕(樂欲)이 함께 어우러져 여기저기에 태어나기를 구한다. 이것을 괴로움의 발생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이른바 이 애(愛)의 감수작용과 미래 세계의 존재에 대한 낙욕이 함께 어우러져 여기저기에 태어나기를 구하는 것을 남김 없이 끊어 버리고 토하여 다하고 욕심이 없으며 멸하여 그치고 다 없어지기를 구한다.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이른바 8정도[支聖道]로서, 바른 견해[正見]에서부터 바른 선정[正定]에 이르기까지를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여덟 가지이다.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고 한다.
비구는 마땅히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아야 하고, 마땅히 괴로움의 발생을 끊어야 하며,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여야 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아야 한다. 만일 비구가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을 끊으며,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으면, 이것이 비구가 일체의 번뇌[漏]가 다하고 모든 결(結 : 번뇌의 일종)이 이미 풀려, 능히 바른 지혜로써 괴로움의 끝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외도의 주장 경(A3:61)
Tittha-sutta
1. “비구들이여, 세 가지 외도의 주장이 있다. 현자들이 그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집요하게 이유를 묻고 반복해서 질문하면 그것은 [스승 등의] 계보에는 이르겠지만 결국에는 [업]지음 없음에 도달하고 만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2. “비구들이여, 나는 이 가운데서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대 존자들이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것이 사실인가?’
비구들이여, 내가 이와 같이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 존자들이 생명을 죽이더라도 그것은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삿된 음행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이간질하는 말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욕설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꾸며낸 말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탐욕스럽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마음이 성냄으로 가득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삿된 견해를 가지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다.’라고 진심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하려는 열의와 노력과 하지 않으려는 열의와 노력이 없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함과 확고함을 얻지 못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머물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스스로 정당하게 사문이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정당한 논박이다.”
註)숙작인론(宿作因論) :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라는 주장을 한역에서는 숙작인론이라고 한다. 붓다는 원인과 결과를 설하신 분이고 인과를 설하신 분이고 업을 설하신 분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겪는 모든 즐거움과 괴로움은 원인이 있다는 말과 지금 겪는 모든 즐거움과 괴로움은 전생의 업보이다라는 말은 다릅니다. 붓다는 숙작인론을 잘못된 극단적인 원인결과론으로 비판하고 계신 것입니다.
붓다는 지금 겪는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의 원임으로 업을 포함하여 8가지를 설하신 경이 상윳따니까야 느낌상응편의 시와까경 입니다. 외도의 주장과 시와까경을 함께 비교하여 보시면 공부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비구들이여, 나는 그 가운데서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대 존자들은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것이 사실인가?’ 내가 이와 같이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 존자들이 생명을 죽이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삿된 음행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이간질하는 말을 꾸며낸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탐욕스럽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마음이 성냄으로 가득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삿된 견해를 가지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라고 진심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하려는 열의와 노력과 하지 않으려는 열의와 노력이 없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함과 확고함을 얻지 못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머물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스스로 정당하게 사문이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두 번째 정당한 논박이다.”
註)존우론(尊祐論) : 모든 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한역에서는 존우론이라고 한다. 붓다 당시 이러한 존우론을 주장한 것은 바라문들의 창조주 브라흐마론과 불을 섬기던 배화교도(조로아스터교)의 유일신론이 있다. 바라문들의 창조주 브라흐마론에 대해서는 불교논문및 평론 48번글 '창조주 브라흐마(Brahma)에 신에 대한 비판 - 안양규 동국대 교수의 글을 참조 바랍니다. 그리고 배화교도로서 불교로 귀의한 분은 우루벨라 가섭삼형제가 유명하다.
4. “비구들이여, 나는 그 가운데서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대 존자들은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것이 사실인가?’
내가 이와 같이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 존자들이 생명을 죽이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삿된 음행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이간질하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욕설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꾸며낸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탐욕스럽더라도 그것은 원이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마음이 성냄으로 가득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삿된 견해를 가지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에도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고 진심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하려는 열의와 노력과 하지 않으려는 열의와 노력이 없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함과 확고함을 얻지 못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머물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 정당하게 사문이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세 번째 정당한 논박이다.
註) 우연론(遇然論): 모두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는 것을 한역으로는 우연론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외도의 주장이 있다. 현자들이 그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집요하게 이유를 묻고 반복해서 질문하면 그것은 [스승들의] 계보에는 이르겠지만 결국에는 [업]지음 없음에 도달하고 만다.”
5. “비구들이여, 내가 설한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당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당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 내가 설한 법은 어떤 것인가?
(1)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2)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觸處]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3)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여덟 가지 마음의 지속적인 고찰이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6.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하여 설했는가?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요소가 있다.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 허공의 요소[虛空界], 의식의 요소[識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이것을 조건하여 설했다.”
7.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觸處]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하여 설했는가?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가 있다. 눈의 감각접촉의 장소, 귀의 감각접촉의 장소, 코의 감각접촉의 장소, 혀의 감각접촉의 장소, 몸의 감각접촉의 장소, 마노(마음)의 감각접촉의 장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이것을 조건하여 설했다.
8.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여덟 가지 마음의 지속적 고찰이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하여 설했는가?
(1) 눈으로 형상을 볼 때 정신적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형상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정신적 괴로움의 기반이 되는 형상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평정의 기반이 되는 형상을 지속적으로 고찰한다.
(2) 귀로 소리를 들을 때 정신적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소리를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정신적 괴로움의 기반이 되는 소리를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평정의 기반이 되는 소리를 지속적으로 고찰한다.
(3) 코로 냄새를 맡을 때 정신적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냄새를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정신적 괴로움의 기반이 되는 냄새를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평정의 기반이 되는 냄새를 지속적으로 고찰한다.
(4) 혀로 맛을 볼 때 정신적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맛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정신적 괴로움의 기반이 되는 맛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평정의 기반이 되는 맛을 지속적으로 고찰한다.
(5) 몸으로 감촉을 느낄 때 정신적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감촉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정신적 괴로움의 기반이 되는 감촉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평정의 기반이 되는 감촉을 지속적으로 고찰한다.
(6) 마노로 법을 알 때 정신적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법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정신적 괴로움의 기반이 되는 법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평정의 기반이 되는 법을 지속적으로 고찰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여덟 가지 마음의 지속적인 고찰이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이것을 조건하여 설했다.
註) 한역에서는 18가지 마음의 지속적인 고찰을 18의행(意行)이라고 한다. 18계와 같은 의미이다.
9.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기자 성스러운 진리[四聖諦]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하여 설했는가?
여섯 가지 요소에 의지하여 모태에 들어감이 있다.
듦이 있을 때 정신∙물질[名色]이 있다.
정신∙물질을 조건하여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入]가 있다.
여섯 가지 감각장소를 조건하여 감각접촉[觸]이 있고, 감각접촉을 조건하여 느낌[受]이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느낌을 느끼는 자에게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천명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천명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천명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이다.’라고 천명한다.”
10.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인가?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들 자체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11.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인가?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의도적 행위.行)이,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있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12.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인가?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기 때문에 형성이[行]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명색)이 소멸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13.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바른 길[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설했다.”
(대림스님 번역 앙굿다라니까야에서 전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