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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윤회를 불신하는 원인을 설하시다

작성자문문|작성시간26.06.07|조회수122 목록 댓글 0

인과윤회를

불신하는 원인을 설하시다

 

불설견정경(佛說見正經) 일명 생사변식경(生死變識經)

 

동진(東晋) 축담무란(竺曇無蘭) 한역. 고려대장경본

둥국역경원 송성수 번역

송찬문 부분 개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城) 기국정사(祇國精舍)에 계셨다. 걸식할 시간이 되자 5백의 비구와 1천 명의 보살과 우바새를 거느리고서 모두 공양 도구를 가지고 라열기성(羅閱祇城: 왕사성) 밖으로 나가셨다.

큰 나무가 있었는데 이름은 감향(甘香)이었다. 뿌리는 깊었고 줄기는 컸으며, 가지와 잎은 무성하고 꽃과 열매가 모두 붉으며 그 맛은 달고 맛있었다. 나무 아래는 넓고 평탄하였으며 돌을 모아 만든 앉을 자리가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여기서 쉬고자 하시자 여러 우바새들이 곧 자리를 펴서 깔아드렸다. 부처님께서 곧 쉬러 앉으시자 제자와 보살들도 모두 자리 잡고 앉았다.

 

聞如是一時佛在羅閱祇國精舍正以食時將諸比丘五百人菩薩及優婆塞千人皆持供飬具出羅閱祇城外有大樹名曰甘香根深幹大枝葉茂盛華實紅赤其味甜美樹下廣平集石爲座佛意欲止此諸優婆塞卽敷布坐席佛便止坐弟子菩薩亦皆就坐

 

이때 견정(見正)이라는 한 비구가 있었는데 새로 출가한 자였다. 그는 마음에 의심을 품고 혼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내생후세가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사람이 죽고 나서는 돌아와 알려주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어떻게 알 수 있나? 이것을 부처님께 여쭈어 보아야겠다.’

 

時有一比丘名曰見正新入法服其心有疑獨念言佛說有後世生至於人死皆無還相報告者何以知乎當以此問佛

 

그러나 그가 아직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부처님께서 이미 미리 아시고 먼저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이 나무는 본래 하나의 씨앗으로부터 땅ㆍ물ㆍ온도ㆍ공기의 4대의 인연 작용으로 길러져 이렇게 크고 무성하게 자라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덮고 있다. 본래 씨앗으로 있을 때는 뿌리ㆍ줄기ㆍ잎ㆍ열매는 있지도 않았고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4대를 얻게 되면서 그 인연 작용이 서로 연결되어 곧 싹ㆍ잎ㆍ줄기ㆍ마디ㆍ꽃ㆍ열매가 생겨났고, 뿌리가 더욱 자라 스스로 나무를 이루게 되어 넓고 멀리 가지를 드리우게 된 것이다. 처음 이름은 씨앗이었고, 씨앗에서 다시 싹이 생겨나고, 싹에서 다시 줄기가 생겨났다. 줄기에서 다시 잎이 생겨나고, 잎에서 다시 꽃이 생겨났으며, 꽃에서 다시 열매가 생겨났다. 이렇게 저렇게 변화하여서, 원래 모양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원래의 모양에서 벗어나지도 않고, 그 이름도 일정한 이름이 아니면서 마침내 큰 나무를 이루었다. 나무에서 다시 열매가 생겨나고 열매에서 다시 나무를 이루는, 이와 같은 변화는 오랜 세월이 흘러가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다.”

 

未卽發言佛已豫知佛因先言諸弟子此樹本以一核種四大胞毓自致巨盛覆爾所人本爲核時根幹葉實未有未見至得四大因緣相連便生芽葉莖節華實轉增於本自致成樹施布廣遠初名爲核核復生芽芽復生莖莖復生葉葉復生華華復生實展轉變易非故不離故而名非常名遂成大樹樹復生果果復成樹歲月增益如是無數

 

부처님께서 이어 여러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꽃과 열매와 줄기와 마디와 뿌리를 한데 모아서 다시 원래의 씨앗으로 되돌아가게 하고 한다면 가능하겠는가?”

제자들이 모두 말하였다.

그럴 수 없습니다. 원래의 씨앗은 이미 변화하였기에 그것으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나무는 나날이 썩고 무너지면서 씨앗이 다시 생겨납니다. 이렇게 끝없이 생겨나고 바뀌어, 마침내는 모두 썩어 없어지므로, 다시 되돌려 원래의 씨앗이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佛告諸弟子欲踧集華實莖節根幹更使還作核可得乎諸弟子皆言不可得也彼已變轉不可還復日就朽敗核轉復生如是無極轉生轉易終皆歸朽不可復還使成本核也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생사윤회 하는 것도 그와 같다. 식신(識神:  아뢰야식의 다른 이름/역주 )은 연기하는 법[緣起法]이니, 연기는 무명(:無明) 때문이며, 무명은 탐애(貪愛)로 나아간다. 무명은 저 나무의 씨앗과 같다. 씨앗은 작지만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하나의 무명이지만 갖가지 인연을 생겨나게 하니, 갖가지 인연은 본래 무명으로 말미암아 생겨나온다. 무명()으로 말미암아 행()이 생겨나고, 행으로 말미암아 식()이 생겨나며, 식으로 말미암아 명색(字色: 名色)이 생겨나며, 명색으로 말미암아 6()이 생겨나며, 6입으로 말미암아 촉(更樂: )이 생겨나며, 촉으로 말미암아 수(: )가 생겨나며, 수로 말미암아 애()가 생겨나며, 애로 말미암아 취(: )가 생겨나며, 취로 말미암아 유()가 생겨나고, 유로 말미암아 생()에 이르며, 생으로 말미암아 노사(老死)에 이르니, 12인연이 합하여져 몸이 이루어진다.

 

佛告諸弟子生死亦如此識神爲起法起法爲癡癡爲就貪愛癡如彼樹核核小而長成大樹一癡而致多所因緣多所因緣本由癡出癡生行行生識識生字色字色生六入六入生更樂更樂生痛痛生愛愛生受受生有有致生生致老死合十二因緣成爲身已

 

그리하여 몸이 있게 되면 당연히 늙음과 죽음이 있기 때문에 식신은 윤회하여 바뀌며 생전의 선악의 행()에 따라 환생하게 되어, 새로운 부모가 있게 되고, 새로운 형체를 받게 되며, 새로운 6(: 안이비설신의), 새로운 습기의 물들임, 다른 고통과 즐거움, 새로운 풍속관습이어서 모두 이전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다시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 다시는 과거세를 기억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 보고 듣는 것을 향하여 실체로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금의 사물에 집착해 진실한 것으로 보고 전세 후세가 없다고 말한다.

식신이 윤회하며 옮겨가는 것은 선악의 행을 따라 변화가 있는 것이다. 식신이 이미 옮기고 나면 다른 부모가 있게 되고, 다시 새로운 몸을 받게 되며, 다른 6(), 다른 습기의 물들임, 다른 고통과 즐거움, 다른 풍속관습이어서 다시는 과거세를 기억하여 알지 못하고, 또한 전세의 몸ㆍ전세의 습관ㆍ전세의 환경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이는 마치 나무가 다시 되돌아가 원래의 씨앗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보라.”

 

有身當就老死識神轉易隨行而往更有父母更受形體更六情更所習更苦樂更風俗都非故便不得復還不復識故向所新見謂爲有謂可常著所猗呼爲諦謂無前世後世識神轉徙隨行而有也識神已徙更有父母更受新身更六情更所習更苦樂更風俗便不復識故亦不得復還故身故習故所見如樹不復還作核也

 

이에 견정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오랫동안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마음에서 아직 의혹을 없애지 못했으며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바로 지금 어리석은 질문을 올리고자 하니, 원하옵건대 저희들을 가엾이 여겨 부처님께서 그것을 분명히 이해시켜 주십시오. 저는 태어나서부터 이후로 사람이 죽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부자ㆍ형제ㆍ부부 내외나 혹은 서로 사랑하던 벗, 혹은 서로 미워하던 원수도 있었는데 죽은 뒤에 돌아와 얼굴을 마주하고 좋은지 나쁜지를 알려주는 식신은 끝내 없었습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식신이 무언가에 막혀서 면전에 돌아와 사람에게 알려줄 수 없는 것입니까? 원컨대 저희들을 위해 분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들로 하여금 맺힌 의혹이 풀어져 진실을 빨리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於是比丘見正承佛言起坐長跪白佛言我意未除未解正要今欲發愚癡之問願佛哀我等爲解了之我從生已來見人死者不少或父子兄弟夫妻內外或朋友相憐愛或有怨讎相憎死後識神了無還面相答善惡者何以乎識神爲何所隔礙而不得還面報人也願爲分別說之令我等結除疾得見諦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야, 그 식신은 형상이 없으며, 식신이 윤회하여 옮겨감은 선악의 행을 따라서 변화가 있게 된다. 만약 생전에 몸이 복을 지었다면 복의 과보에 따라 환생하더라도 면전에 돌아와 사람에게 알려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예컨대 대장간에서 광석을 녹여 쇠를 만들고, 쇠가 되고 나면 다시 그릇을 주조하는데, 이미 그릇이 되고 난 뒤 다시 광석으로 복원되게 할 수 있겠느냐?”

견정은 말하였다

확실히 그럴 수 없습니다. 광석은 이미 쇠가 되었으므로 마침내 다시 되돌려 광석이 될 수는 없습니다.”

 

佛言比丘彼識無形至於轉徙隨行而有若身作福福識轉生亦不得還面報人也何以故譬如冶家洋石作鐵已成鐵便鑄以爲器已成器可復還使作石乎見正言實不可石已成鐵終不得復還作石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식신(識神)이 몸을 떠나 윤회하여 옮겨 중음신(中陰)에 머무는 것은, 마치 광석이 이미 녹아 쇠가 되는 것과 같다. 중음신으로부터 변화하여 새로운 몸을 받음은 쇠가 이미 그릇으로 주조되는 것과 같다. 원래의 형체가 소멸되고 바뀌면 과거의 식신으로 되돌릴 수 없다. 왜냐하면 행의 선악의 원인으로 식신이 가서 선악의 과보를 받아 변화해 바뀜은, 마치 광석이 쇠가 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佛言識之轉徙住在中陰如石已洋成鐵從中陰轉受他體如鐵已鑄成器形消體易不得復還故識何以故行之善惡識往受之轉化變改如石成鐵

 

5(: 살도음망주 5)을 닦고 행하여 내세에 사람 몸을 받으면, 다시 부모가 있게 된다. 이미 새로운 부모가 있으면 식신은 곧 여섯 가지 얽매임과 막힘이 있게 되니, 첫째는 중음신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전의 몸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며, 둘째는 받은 몸에 따라 모태 안에 들어가 있는 미혹이며, 셋째는 모태에서 나올 때 겪는 압박 고통으로 이전의 의식기억{識念}을 잊어버리는 것이며, 넷째는 막 태어난 뒤 이전의 의식기억은 소멸되고 다시 새로이 견문과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며, 다섯째는 태어난 뒤에 음식물에 집착하고 탐하는 생각으로 이전의 의식기억이 끓어져 소멸하는 것이며, 여섯째는 태어난 뒤 나날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사물과 환경의 훈습을 받아 숙세의 의식이 잃어지고 다시는 복원하지 못하는 것이다.

 

修行五善稟受人身則更有父母已有父母便有六繫閉一者住在中陰不得復還二者隨所受身胞內三者初生迫痛忘故識想四者墮地故所識念滅更起新見想五者已生便著食貪念故識念斷六者從生日長大習所新見識滅無復宿識

 

제자들아, 마치 상인이 사방의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온갖 괴로움과 즐거움을 겪은 것과 같다. 곧 의식에서 동쪽의 한 지방이나 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면, 이 기억을 떠올리자마자 서쪽ㆍ남쪽ㆍ북쪽에서 겪은 기억은 곧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 이과 같이 생사 또한 그와 같아서 이 세상에서 지은 행이 후세로 옮겨가 몸을 받고 나면 받는 즉시 곧 새로운 생각과 기억을 일으키게 되고 이전의 의식기억은 곧 소멸하게 된다. 마치 상인이 오직 한 방위에서 있었던 일만을 기억할 때 나머지 세 방위에 대한 생각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이런 여섯 가지 일 때문에 얽매이고 덮이고 막히고 걸려 다시는 옛 식신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씨앗이 나무가 되고 광석이 쇠가 되는 것처럼 본래 것이 변화하고 이름이 바뀌므로 다시는 돌아와 면전에서 대답해줄 수 없는 것이다.”

 

諸弟子譬如賈客周遊四方國具見苦樂便意思念東方一郡國所有已起是念便三方念滅生死亦如是從是世作行往後世受已受卽生新想念故識想便滅如賈客惟念一方三方想滅也用是六事繫蔽隔礙不復還故識如核之成樹石之成鐵變本易名不復還面相答報也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다시 비유하자면 마치 옹기장이가 흙에 물을 부어 반죽하여 그릇을 만들어 불로 구우면 변화하여 질그릇이 되는 것과 같다. 과연 질그릇을 다시 되돌려 흙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

제자들은 모두 말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흙이 이미 구워지고 달구어져 형상이 변해 질그릇이 되었으니, 다시 되돌려 흙이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佛言復譬如陶家埏土爲器以火燒之則轉成瓦寧可使瓦還作土乎諸弟子皆言實不可土已燒煉變形成瓦不可復使還作土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식신이 변화하여 옮겨져 선악 행의 인과응보에 따라 몸을 받는 것은, 마치 흙으로 질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 사람이 도의 수행 공부가 없으면 다시는 과거를 기억하여 알 수 없으므로 다시 돌아와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비구들아, 다시 비유컨대 나무가 자라 수십 아름이나 된 것을 솜씨 좋은 장인이 규격에 맞추어 잘라서 기묘하고 공교롭게 온갖 것을 새기는 것과 같다. 만약 사람이 쪼갠 나무와 새긴 것들을 다시 합친다면 좋은 솜씨로써 되돌려 나무가 될 수 있겠는가?”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나무는 이미 잘려져 쪼개지고 조각조각 깎였으며 가지와 잎이 말라 죽었으므로 다시 모은다고 나무가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佛言諸弟子識神轉徙隨行受身如土成瓦人無道行不復識故不得復還相報答也比丘復譬如樹大數十圍巧匠便規斲刻鏤奇巧百種若人欲復集聚斲柹及所刻巧還使成樹可得乎諸弟子言實不可樹已斷破段段刻盡枝葉槁朽不復可集使成樹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식신(識神)은 이 세상에서 선과 악을 짓고 행하다가 죽음에 이르면 그 식신은 옮겨가 업력을 따라 새로운 몸을 받게 되어 견문과 습관이 다시는 옛 몸이 아니므로 되돌릴 수도 없으며, 다시는 옛것을 알 수 없으므로 면전에서 서로 대답해 줄 수 없다. 이는 나무가 쪼개지고 나면 다시 모아 살아나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다시 비유컨대 마치 장인이 모래를 구워 붉은 색을 만들고, 다시 흰 모양으로 바꾸며 물처럼 변화시키는 것과 같다. 제자들아, 붉게 된 것을 되돌려 다시 모래로 만들려고 하면 그럴 수 있겠는가?”

 

佛言諸弟子識神於是世作行善惡臨死識徙隨行受體所見所習非復故身不可得還不復識故面相答報也如樹已斷不可復集使生佛言復譬如工師燒砂作紅色更轉白形化如水諸弟子欲令紅還復作砂可得成乎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모래를 구워 한번 변하고 나면 도로 회복시킬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생사윤회 하는 것도 그와 같다. 사람이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 없거나 깨끗한 법안이 없으면 몸이 죽을 때 식신이 떠나 행의 선악에 따라 과보로 변화하여 바뀌어 새로운 몸을 받게 되며, 다른 세상에서 지내다가 다시 포태(胞胎)를 받아 견문과 습기의 물들임이 모두 달라지므로 다시는 과거의 것을 기억하여 알지 못하게 된다. 이는 마치 모래가 붉게 된 것을 다시 환원시킬 수 없는 것과 같다.”

 

諸弟子言實不可也燒砂一變不可還復佛言生死亦如是人未有道意無有淨眼身死識去隨行變化轉受他體所歷異世更受胞胎見習皆異不復識故如砂成紅不可復還也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비유컨대 마치 물을 둥근 병에 담으면 그 형체도 따라 동래지고 모난 그릇에 옮겨 담으면 형체도 따라 다시 각이 지며, 크고 작고 굽고 곧은 것이 물이 처하는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과 같다. 제자들아, 생사윤회 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식신은 본래 공하여[本無] 고정 불변하는 형상이 없어서 지은 행의 선악에 따라 가서 몸을 받는다. 희고 검고 길고 짧음과 괴로움과 즐거움이 행의 선악 인과에 따라 바뀌어 받는 것이, 마치 물이 갖가지 그릇 형태에 따르는 것과 같다. 혹은 사람일 때 지은 일이 법답지 않았다면 죽어서 축생에 떨어져 추악한 몸을 받았을 것이므로 다시는 과거세를 알아 면전에서 서로 대답하지 못하게 된다.

제자들아, 예컨대 굼벵이가 흙 속에 살고 있을 때는 소리도 없고 날개도 없던 것이 시절의 기운을 얻으면 변화하여 매미가 되어 날아서 나무에 붙어 쉬지 않고 소리 내어 우는 것과 같다.”

 

佛言諸弟子復譬如水處於圓甁則體隨圓徙著方器則體復方大小曲直隨所墮處諸弟子生死亦如此識神本無無有常形隨行善惡輒往受身白黑長短苦樂善惡變受隨行如水從器或從人中所作非法死墮畜生合受惡體不復識故面相答報也諸弟子譬如蝮蜟生在土中無聲無翼得時節氣轉化成蟬飛行著樹鳴聲不休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과연 매미가 다시 땅에 들어가 굼벵이가 될 수 있느냐?”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굼벵이는 이미 변해 어두운 곳을 버리고 밝은 곳에 있습니다. 몸의 형체가 변화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죽거나 혹은 뭇 새들의 먹이가 될지언정 다시 굼벵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생사윤회 하는 것도 이와 같다. 목숨이 끓어지고 몸이 죽어 식신이 변화화고 옮겨 다시 새 몸을 받으면 5(색수상행식)이 덮고 막으며 견문과 습기의 물들임이 달라 각각 달라 그곳에서 또한 늙어 죽어야 하니, 다시 돌아올 수 없으며 다시 옛것을 알아 면전에서 서로 대답해 줄 수도 없다. 이는 나무에 있는 매미가 다시 되돌아가 굼벵이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佛問諸弟子寧可還蟬使入土成蝮蜟乎諸弟子言實不可也蝮蜟已變去陰在陽身形化異日當死亡或爲衆鳥所噉不得還作蝮蜟也佛言諸弟子生死亦如此命訖身死識神轉徙更受新身五陰覆障見習各異於彼亦當老死不得復還不復識故面相答報也如蟬在樹不可復還作蝮蜟也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또 예컨대 날고기를 잘라서 여러 날이 지나도록 먹지 않으면 곧 썩어서 구더기가 나오는 것과 같으니, 다시 싱싱한 고기가 되게 할 수 있는가?”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고기가 썩었으면 다시 싱싱하고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佛告諸弟子復譬如段生肉過時不食則臭茹生虫欲使還成鮮肉可得乎諸弟子言實不可肉已臭敗不能得使復成鮮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생사윤회 하는 것도 이와 같다. 사람이 세간에 있으면서 마음으로 악을 생각하고, 입으로 악을 말하며, 몸으로 악을 행하다가 죽었다면 곧 식신이 변화하여 옮겨져 지옥의 몸이나 혹은 축생의 몸이나 혹은 고기나 벌레의 몸에 떨어진다. 그곳에서 견문이 달라서 과거와 같지 않으며 죄업의 그물이 뒤덮고 있어 다시는 과거세를 알지 못하니, 다시 돌아와 면전에서 대답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저 썩은 고기를 다시 싱싱하고 깨끗하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또 비유컨대 마치 달이 없는 어두운 밤에 오색의 물건을 어둠 속에 가져다 놓고 천 명 만 명에게 밤에 그 오색의 물건을 관찰하게 하는 것과 같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그 청ㆍ황ㆍ적ㆍ백의 색깔을 구별할 자가 있겠느냐?”

 

佛言生死亦如此人在世閒心念惡口言惡身行惡死則識神轉徙墮地獄身或畜生身或魚虫身所在異見不與前同罪網所蔽不復識故不得復還面相答報也如彼臭肉不可使更成鮮潔佛告諸弟子復譬如月晦夜陰以五色物著冥中令千人萬人令夜視色物寧有一人而別其靑白者乎

 

여러 제자들은 모두 말하였다.

설령 몇 억 만 명 아니 헤아릴 수 없는 사람에게 밤에 그것을 관찰하게 한다고 해도 끝내 볼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어떻게 그 오색을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 횃불을 가지고 비추면서 사람에게 관찰하게 한다면 볼 수가 있겠느냐?”

 

諸弟子皆言正使巨億萬人復無央數人令夜觀視終無見者何能別其五色佛言若有人把炬照之令人觀視可得見不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사람이 든 횃불의 광명을 의지해 그것을 관찰한다면 모두 다섯 까지 색깔을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횃불을 등지고 캄캄한 곳으로 아주 깊숙이 들어가 오색을 보려고 한다면 볼 수 있겠는가?”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이 광명을 등지고 어둠을 향한다면 나아갈수록 더욱 어두울 것이니 색깔을 보는 날은 끝내 없을 것입니다.”

 

諸弟子言人依炬明視之皆可別五色佛言若愚人背炬火進入幽冥乃進極遠而望欲見五色可得見乎諸弟子言愚人背明向冥愈進闇終無見色時也

 

부처님께서 여러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생사윤회 하고 있는 것도 그와 같다. 일체의 인민이나 기어 다니는 것, 날아다니는 것, 꿈틀거리는 곤충들은 이미 몸의 형상을 받아 어리석음의 어둠에 가려 도의 수행이 없다. 몸을 수행하는 일, 마음을 수행하는 일을 배우지 않아 지혜의 눈을 얻지 못했으면서도 오히려 생사윤회 하여 가는 곳, 식신이 오가는 것, 면전에서 알려주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마치 달이 없는 어두운 밤에 오색을 보려고 하는 것과 같아 끝내 볼 수가 없다. 만약 경전의 가르침대로 행하고 계율을 굳게 지키며 37조도품()을 수행하여 정념을 유지하고 청정한 범행으로 나아간다면, 마치 횃불을 든 사람을 따라 오색을 구별해 보는 것과 같다.

 

佛告諸弟子人在生死亦如此一切人民蚑行蜎飛蠕動之類已受身形癡冥闇蔽無有道行不學身事意事未得慧眼而欲知生死所趣識神往來面相答報如月晦夜陰欲視五色終不得見也若修行經戒三十七品守攝其意就淸淨行如隨持炬火人見別五色

 

사람이 불법의 가르침을 따르면, 생사윤회를 분명히 구별하여 알 수 있고 6[五趣] 세계에 식신이 오가며 떨어진 선힌 곳이나 악한 곳을 자세히 볼 수 있음은, 마치 횃불이 색깔을 비추어 죄다 분명히 보는 것과 같다. 사람이 몸을 수행하는 일, 마음을 수행하는 일을 배운 적이 없으며, 경전의 가르침과 계율을 어기고 세속의 3(: )를 따라 제멋대로 함부로 행동하고 정법을 끓어버리며, 믿지도 않고 즐거이 따르려하지도 않고 기꺼이 받들어 행하지도 않는다면, 이는 마치 횃불을 등지고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의심의 결사(結使)가 나날이 심해지고, 생사윤회의 진상을 보고 알아 분명히 깨닫는 날은 마침내 없을 것이다.”

人隨佛法教則能了別死生具見五道識神往來所墮善惡處如炬火之照色皆悉了見人初不學身事意事背於經戒隨俗三流快意自從斷割眞法不信不樂不肯奉行如背炬入冥疑結日甚終無見知有解了時也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어리석고 꽉 막힌 마음을 따르고, 청정하고 바르고 참된 도를 믿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스스로 지옥에 떨어져 몸이 고통을 받게 되는 일을 하지 말라. 나는 그 때문에 비유를 이끌어 너희들이 분명히 알도록 하는 것이다. 항상 부지런히 힘써 경전의 가르침과 계율을 받들어 행하고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몸의 형상을 받고 육안으로 보는 현재의 일과, 부모 친척은 훤히 보아 잘 알고 있지만, 전생에 어디서 왔는지를 보거나 알 수가 없다. 금생에 늙어 죽어 후세에 태어나 다시 몸을 받으면 금생의 일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한번 태어났다가 한번 죽으면 식신이 변화하고 바뀌어 12인연을 거치는데, 그 중에 무명()이 그 주요한 것으로, 멍청하고 어둡고 우둔하여 환생하면 과거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佛告諸弟子莫順汝愚癡閉結之意而不信淸淨正眞之道自墮地獄爲身受痛我故引譬以解了汝等常當勤力奉行經戒以著心中佛告諸弟子人生是世稟受身形肉眼所見現在之事父母親屬察察了了然不能復見知前世所從來處於是當老死往生後世更受身形則亦不能復識知今世之事也所以者何一生一死識神轉易十二因緣癡爲其主懵懵冥闇轉不識故

 

제자들아, 예컨대 흰 실을 삶고 두드려 청ㆍ황ㆍ적ㆍ흑의 다른 색깔로 물들이면 본래의 색깔이 바뀌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것과 같다. 생사윤회의 변화도 흰 실이 색깔에 물들어지는 것과 같다. 식신은 고정 불변하는 본체가 없어서 선악 행의 변화에 따라 물들기 때문에 청정한 법안이 없다면 과거세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의식의 법칙은 생각을 움직이면 곧 원인이 있게 되는데, 사람이 한 생애 중에 심념이 갖가지가 있으니 선념과 악념은 다른 과보를 받으며 새로운 과보를 받기 때문에 지난 과보는 소멸해버린다. 생사윤회의 법칙은 당연히 무명이 형성한 정상적인 상태이다. 만약 일체의 생사윤회의 인과 유래를 철저히 알고 싶다면, 응당 심신 방면의 도덕적 품행을 수학하고 청정 속으로 깊이 들어가 일체의 본래 면목과 지엽을 사유하고, 그리하여 깨달음에 도달하면 깊은 잠에서 깨어남과 같으니라.”

 

諸弟子譬如煮練白絲染作異色靑黃赤黑變本易故不可復轉還也生死轉易如絲受色識無常體隨行染著未有淨眼不識其故心意爲法所念卽成人在一世心念萬端善惡報受受新故滅生死之法癡闇之常然也其欲知見生死往來當廣學行身意之事深入淸淨思惟本末爾乃開寤如臥寤也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식신은 우치 무명한 것으로, 살았을 때 선악의 행을 짓고 죽으면 환생해 가서 그 과보를 받으며, 선과 악의 행의 인과에 따라 형상과 징조가 있게 된다. 마치 불이 섶나무를 얻게 되면 그 모습이 나타나다가 섶나무가 다하면 소멸하는 것처럼 의식이 선악의 행을 짓지 않으면 행위 자취도 소멸되어 나타나는 것이 없다. 도를 얻지 못한 이가 생사윤회 중에 빠져서 환생하여도 과거의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치 더러운 거울이 때가 묻어 흐려지고 오물에 가려 자기 얼굴을 비추어도 아예 보이는 게 없는 것과 같다. 의식이 흐리고 가려져 생사윤회 속에서 이리저리 환생하여 비통과 두려움이 충만하고 화복(禍福)의 영향에 끌려서 다시는 과거의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치 그 더러운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佛告諸弟子識神爲癡冥法生作善惡行死轉往受隨善惡行而有形兆如火得薪而見薪索則滅意識不作善惡行則亦滅無所見未得道者沈淪生死轉不識故譬如穢鏡垢濁蔽污擧以向面了無所見意識濁蔽生死轉徙慘懼蔽盈牽著殃福不復識故如闚穢鏡

 

또 비유컨대 마치 깊고 흐린 물에는 비록 고기와 벌레가 있다 하더라도 전혀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생사윤회에 얽히고설키어 어지럽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망상잡념은 지혜를 가로막아서, 환생하면 과거세를 잊어버리는 것도 흐린 물과 같다. 또 비유컨대 어두운 밤에 눈을 감고 걸어가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생사의 어둠은 화복을 따라 흘러 돌면서 혹은 기뻐하거나 혹은 고뇌하며 받은 몸에 얽매여 다시 과거세를 알지 못하는 것도 밤에 눈을 감고 있는 것과 같다.”

復譬如深濁之水雖有魚虫了不得見生死錯亂憂思蔽塞轉生忘故亦如濁水譬如冥夜閉眼而行都無所見生死闇昧流隨殃福或喜或惱綴制所受不復識故如夜閉眼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나는 부처가 되어 지혜의 눈이 청정해졌으니 일체 중생의 생사윤회와 3계 속에 식신이 왕래하는 일을 부처는 모두 알고 본다. 마치 수정 유리의 보배 구슬을 여러 가지 고운 색깔의 실로 꿰면 푸르고 노란 것이 다 나타나는 것처럼, 부처가 중생의 생사윤회를 보는 것도 실로 꿰어 있는 구슬을 보는 것과 같다. 또 비유컨대 깨끗한 물이 맑고 고요하면 밑바닥이 보이고 그 속의 고기와 벌레가 모두 환히 보이는 것과 같다. 부처가 중생의 생사윤회를 보는 것도 맑은 물속의 고기를 보는 것과 같다.

또 비유컨대 다리 위로 온갖 행인들이 끊임없이 왕래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부처가 중생이 생사윤회 하면서 6도에 왕래하는 것을 보는 것도 다리 위의 행인을 보는 것과 같다. 또 비유컨대 높은 산에서 멀리 바라보면 빠짐없이 보이는 것처럼, 부처의 마음과 의식은[心意]는 높고 멀어서 일체 중생의 생사를 빠짐없이 알고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佛告諸弟子今我爲佛慧眼淸淨一切生死往來三界佛悉知見譬如水精琉璃寶珠綵絲貫之靑黃皆見佛視生死如觀貫珠譬如淨水淸澄見底其中魚虫皆悉裸見佛視生死如淸水魚譬如大橋一切行人往來無絕佛視生死往來五道如觀橋人譬如高山遠望具見佛意高遠具知生死無不分別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응당 나의 가르침을 따라서 천억 겁에 걸쳐 생사윤회 하는 일을 빠짐없이 알아야 한다. 응당 37조도품의 중요한 수행인, 4념처(意止)4정근(意斷)4신족(神足)5()5()7각지(覺意)8정도(正道)를 행하여 의식상의 오염을 없애고 탐진치 3()을 없애고 의혹결사(疑惑結使)가 풀려서 흩어지면, 곧 청정을 보고 부처와 같은 지혜로운 마음을 얻어서 과거와 미래의 일을 마치 밝은 거울을 보듯 모두 다 볼 것이다.”

 

佛告諸弟子汝等當隨我教可具知生死千億劫事當行三十七品要行四意止四意斷四神足五根五力七覺意八正道以除意垢消滅三毒疑結解散便見淸淨得佛慧意便知去來之事如視明鏡一切悉見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들이 지은 선악의 업은 죽은 뒤의 다음 생애에도 모두 서로 응보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청정한 법안(法眼)ㆍ혜안(慧眼)ㆍ불안(佛眼)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이다. 식신이 앞서 말했던 여섯 가지 얽매임과 가림에 붙어 있어 육안에 의해서만 행하기 때문에 응보의 근본을 보지도 못하고 삼세의 인과응보가 없다라고 멋대로 말하는 것이다.

아직 도를 얻지 못한 자들은 모두 항상 흐리고 더러운 행을 짓고, 게다가 어리석음에 빠져있는 가운데, 생사윤회 하면서 환생하여 새로운 형체를 받으면 육안에 미혹되어 이전의 형체를 떠나 새로운 형체에 얽매여 생로병사의 4()에 교란되고 마침내 식신이 선악의 행에 따라 과보를 받는 것을 알 길이 없다.

 

佛告諸弟子世人所作善惡死之後世亦皆相答報但人未得三淨眼是以不見不知不復識其本著在六繫蔽爲肉眼行故而不見相答報之本謂之無有也其未得道者皆作濁穢之行況沒愚癡生死轉化更受身形肉眼眩惑離故繫新四痛擾亂終不得知識隨行相答報也

 

현세의 사람이 혹은 복을 받거나 혹은 재앙을 당하거나 혹은 서로 어여삐 여기거나 혹은 서로 미워하는 것은, 곧 과거세의 선악의 행에 대한 응보의 증험이다. 청정한 법안ㆍ혜안ㆍ불안이 없기 때문에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더욱 우치하고 미혹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서, 본래 어리석은데다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과 청정한 수행도 없으면서 전세의 일을 알기 바라고, 식신이 돌아와 알려주는 효험을 바라는 것은, 마치 손이 없으면서 글을 쓰려고 하며 눈이 없으면서 보려고 하는 것과 같으니 끝내 그럴 수가 없다. 그러므로 부처가 세간에 출현하여 경전의 도리를 설하여 펴고 나타내는 목적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르쳐 이끌고 열어주려는 것이다.

 

今現世人或受福或受殃或相憐或相憎此則宿行答報之驗爲無有三淨眼故不見不知便結在疑一切人已來生是世本與癡俱無有道意淸淨之行而欲望知前世之事識反報之效譬如無手欲書無目欲視終不能也故佛出世敷現經道以解人意

그 식신의 왕래 방향과 생사윤회의 과보를 받는 곳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응당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37조도품과 지혜바라밀[智度無極]을 수행하여 의념을 단속하고 의념을 경계하며, 의념을 조정하고 의념을 바르게 하여 선정삼매의 오묘한 경지에 들어야 비로소 식신이 과보를 받아 떨어지는 곳과 가고 오는 일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너희 제자들아, 몸으로 하는 일 마음으로 하는 일을 응당 부지런히 배우고 알아, 모든 대상 경계들을 빠짐없이 인식하여, 경계가 닥치면 곧 그것을 없애서 어지럽거나 잘못되지 말고 정법에 견고해야 한다. 이와 같이 쉬지 않고 정진하면 너희들의 의문점은 곧 해결될 것이다.”

 

其欲知見識神往來生死所受者當隨佛教行三十七品智度無極撿意勅意調意正意入禪三昧之妙乃可具知識神所墮去來之事耳汝諸弟子當勤學知身事意事具了諸對至則滅除之不爲亂誤堅固於正法如此莫休汝所疑問卽可解了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식신은 이름은 있지만 형상이 없으며 선악의 행에 따라 변화하여 지수화풍 4대의 인연화합에 의지하여 몸이 된다. 처음 태어났을 때는 몸도 작고 모든 감관의 기능도 원만하지 못하며 식견도 적고 사물에 대한 인지(認知)도 아직 완비되지 못하다가, 나이가 늘어 자라면서 6()의 기능이 점점 완비되고 식신도 신체의 변화에 따라 갖가지 탐욕의 훈습오염이 나날이 치성해지며 갖추어지게 된다. 쇠약하고 늙어지면 4대 화합으로 이루어진 신체가 점점 파리해지고 식신도 어두워지며 6근의 기능도 점점 쇠퇴한다. 이처럼 현재 한 세상을 살면서도 변화가 무상하여 예전 같지 않으며, 일생에 익히고 본 것을 늙어서는 잊어버리게 되는데, 하물며 다시 다른 세상에서 중음신과 포태[陰胎]에 얽매이고 덮일 때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도를 닦지 않고 어리석은 행으로 미혹되고 더럽혀졌으면서도, 식신이 왕래하고 돌아와 면전에서 알려주기를 보고자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佛告諸弟子識神有名無形隨善惡行依四大爲體初生身小諸根未具識見復小所知未備及其長大六情具足識亦隨體愛欲諸習日生盛具至於衰老四大羸臞識亦不明六情減少現居一世變易無常不如其故生所習見老如忘之況更異世陰胎繫蔽未得道意癡行惑穢欲見意識往來面相反報不可得也

 

사람이 도의 수행이 없으면서 숙명(宿命) 중의 일을 보고 알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어두운 밤에 바늘에 실을 꿰고 물속에서 불을 구하려는 것과 같아 끝내 볼 수 없다.

너희 제자들아, 부지런히 경전과 계율을 수행하며 생사가 본래 어디에서 왔고, 결국 어디로 돌아가며, 무슨 인에 의해 왕래하고 무슨 연에 의해 끌려가는 지를 깊이 사유해야 한다. 공의 도리[空無之法]를 자세히 사유하여 청정한 눈을 얻고 결사를 끊어 없애면 의혹은 저절로 풀릴 것이다.”

 

人無道行而望見知宿命之事譬如闇夜貫鍼水中求火終無見得汝諸弟子當勤行經戒深思生死本從何來終歸何所何因往來所緣何等諦如思惟空無之法得淨結除所疑自解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견정 등 5백 명과 모든 우바새가 모두 수다원(須陀洹) 과위를 얻었으며, 모든 보살은 다 불경회삼매(不傾迴三昧)를 얻었다. 그들은 각자 일어나 부처님을 세 번 돌고 땅에 엎드려 예배한 뒤 모두 부처님을 따라 함께 정사로 돌아갔다.

 

佛說經竟見正等五百人及諸優婆塞悉得須陁洹諸菩薩皆得不傾迴三昧各起遶佛三帀頭面著地作禮畢竟悉從佛俱還精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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