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윤회를
불신하는 원인을 설하시다
불설견정경(佛說見正經) 일명 생사변식경(生死變識經)
동진(東晋) 축담무란(竺曇無蘭) 한역. 고려대장경본
둥국역경원 송성수 번역
송찬문 부분 개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城) 기국정사(祇國精舍)에 계셨다. 걸식할 시간이 되자 5백의 비구와 1천 명의 보살과 우바새를 거느리고서 모두 공양 도구를 가지고 라열기성(羅閱祇城: 왕사성) 밖으로 나가셨다.
큰 나무가 있었는데 이름은 감향(甘香)이었다. 뿌리는 깊었고 줄기는 컸으며, 가지와 잎은 무성하고 꽃과 열매가 모두 붉으며 그 맛은 달고 맛있었다. 나무 아래는 넓고 평탄하였으며 돌을 모아 만든 앉을 자리가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여기서 쉬고자 하시자 여러 우바새들이 곧 자리를 펴서 깔아드렸다. 부처님께서 곧 쉬러 앉으시자 제자와 보살들도 모두 자리 잡고 앉았다.
聞如是:一時,佛在羅閱,祇國精舍。正以食時,將諸比丘五百人,菩薩及優婆塞千人,皆持供飬具出羅閱祇城外。有大樹,名曰甘香,根深幹大,枝葉茂盛,華實紅赤,其味甜美,樹下廣平,集石爲座。佛意欲止此,諸優婆塞卽敷布坐席,佛便止坐;弟子菩薩,亦皆就坐。
이때 견정(見正)이라는 한 비구가 있었는데 새로 출가한 자였다. 그는 마음에 의심을 품고 혼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내생후세가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사람이 죽고 나서는 돌아와 알려주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어떻게 알 수 있나? 이것을 부처님께 여쭈어 보아야겠다.’
時有一比丘,名曰見正,新入法服,其心有疑,獨念言:‘佛說有後世生,至於人死,皆無還相報告者,何以知乎?當以此問佛。’
그러나 그가 아직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부처님께서 이미 미리 아시고 먼저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이 나무는 본래 하나의 씨앗으로부터 땅ㆍ물ㆍ온도ㆍ공기의 4대의 인연 작용으로 길러져 이렇게 크고 무성하게 자라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덮고 있다. 본래 씨앗으로 있을 때는 뿌리ㆍ줄기ㆍ잎ㆍ열매는 있지도 않았고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4대를 얻게 되면서 그 인연 작용이 서로 연결되어 곧 싹ㆍ잎ㆍ줄기ㆍ마디ㆍ꽃ㆍ열매가 생겨났고, 뿌리가 더욱 자라 스스로 나무를 이루게 되어 넓고 멀리 가지를 드리우게 된 것이다. 처음 이름은 씨앗이었고, 씨앗에서 다시 싹이 생겨나고, 싹에서 다시 줄기가 생겨났다. 줄기에서 다시 잎이 생겨나고, 잎에서 다시 꽃이 생겨났으며, 꽃에서 다시 열매가 생겨났다. 이렇게 저렇게 변화하여서, 원래 모양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원래의 모양에서 벗어나지도 않고, 그 이름도 일정한 이름이 아니면서 마침내 큰 나무를 이루었다. 나무에서 다시 열매가 생겨나고 열매에서 다시 나무를 이루는, 이와 같은 변화는 오랜 세월이 흘러가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다.”
未卽發言,佛已豫知。佛因先言:“諸弟子!此樹本以一核種,四大胞毓,自致巨盛,覆爾所人。本爲核時,根幹葉實未有未見,至得四大因緣相連,便生芽葉莖節華實,轉增於本,自致成樹,施布廣遠。初名爲核,核復生芽,芽復生莖,莖復生葉,葉復生華,華復生實,展轉變易,非故不離故,而名非常名,遂成大樹;樹復生果,果復成樹,歲月增益,如是無數。”
부처님께서 이어 여러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꽃과 열매와 줄기와 마디와 뿌리를 한데 모아서 다시 원래의 씨앗으로 되돌아가게 하고 한다면 가능하겠는가?”
제자들이 모두 말하였다.
“그럴 수 없습니다. 원래의 씨앗은 이미 변화하였기에 그것으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나무는 나날이 썩고 무너지면서 씨앗이 다시 생겨납니다. 이렇게 끝없이 생겨나고 바뀌어, 마침내는 모두 썩어 없어지므로, 다시 되돌려 원래의 씨앗이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佛告諸弟子:“欲踧集華實莖節根幹,更使還作核可得乎?”諸弟子皆言:“不可得也。彼已變轉,不可還復,日就朽敗,核轉復生,如是無極,轉生轉易,終皆歸朽,不可復還使成本核也。”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생사윤회 하는 것도 그와 같다. 식신(識神: 아뢰야식의 다른 이름/역주 )은 연기하는 법[緣起法]이니, 연기는 무명(癡:無明) 때문이며, 무명은 탐애(貪愛)로 나아간다. 무명은 저 나무의 씨앗과 같다. 씨앗은 작지만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하나의 무명이지만 갖가지 인연을 생겨나게 하니, 갖가지 인연은 본래 무명으로 말미암아 생겨나온다. 무명(癡)으로 말미암아 행(行)이 생겨나고, 행으로 말미암아 식(識)이 생겨나며, 식으로 말미암아 명색(字色: 名色)이 생겨나며, 명색으로 말미암아 6입(入)이 생겨나며, 6입으로 말미암아 촉(更樂: 觸)이 생겨나며, 촉으로 말미암아 수(痛: 受)가 생겨나며, 수로 말미암아 애(愛)가 생겨나며, 애로 말미암아 취(受: 取)가 생겨나며, 취로 말미암아 유(有)가 생겨나고, 유로 말미암아 생(生)에 이르며, 생으로 말미암아 노사(老死)에 이르니, 이 12인연이 합하여져 몸이 이루어진다.
佛告諸弟子:“生死亦如此。識神爲起法,起法爲癡,癡爲就貪愛,癡如彼樹核,核小而長成大樹。一癡而致多所因緣,多所因緣本由癡出,癡生行,行生識,識生字色,字色生六入,六入生更樂,更樂生痛,痛生愛,愛生受,受生有,有致生,生致老死,合十二因緣,成爲身已。
그리하여 몸이 있게 되면 당연히 늙음과 죽음이 있기 때문에 식신은 윤회하여 바뀌며 생전의 선악의 행(行)에 따라 환생하게 되어, 새로운 부모가 있게 되고, 새로운 형체를 받게 되며, 새로운 6근(情: 안이비설신의), 새로운 습기의 물들임, 다른 고통과 즐거움, 새로운 풍속관습이어서 모두 이전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다시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 다시는 과거세를 기억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 보고 듣는 것을 향하여 ‘실체로서 있는 것[有]’이라고 생각하고 ‘변화하지 않는 것[常]’이라고 생각하며, 지금의 사물에 집착해 진실한 것으로 보고 전세 후세가 없다고 말한다.
식신이 윤회하며 옮겨가는 것은 선악의 행을 따라 변화가 있는 것이다. 식신이 이미 옮기고 나면 다른 부모가 있게 되고, 다시 새로운 몸을 받게 되며, 다른 6근(情), 다른 습기의 물들임, 다른 고통과 즐거움, 다른 풍속관습이어서 다시는 과거세를 기억하여 알지 못하고, 또한 전세의 몸ㆍ전세의 습관ㆍ전세의 환경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이는 마치 나무가 다시 되돌아가 원래의 씨앗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보라.”
有身當就老死,識神轉易,隨行而往。更有父母,更受形體,更六情,更所習,更苦樂,更風俗,都非故,便不得復還。不復識故,向所新見,謂爲有、謂可常,著所猗呼爲諦,謂無前世後世。識神轉徙,隨行而有也。識神已徙,更有父母,更受新身,更六情,更所習,更苦樂,更風俗,便不復識故,亦不得復還故身故習故所,見如樹不復還作核也。”
이에 견정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오랫동안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마음에서 아직 의혹을 없애지 못했으며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바로 지금 어리석은 질문을 올리고자 하니, 원하옵건대 저희들을 가엾이 여겨 부처님께서 그것을 분명히 이해시켜 주십시오. 저는 태어나서부터 이후로 사람이 죽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부자ㆍ형제ㆍ부부 내외나 혹은 서로 사랑하던 벗, 혹은 서로 미워하던 원수도 있었는데 죽은 뒤에 돌아와 얼굴을 마주하고 좋은지 나쁜지를 알려주는 식신은 끝내 없었습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식신이 무언가에 막혀서 면전에 돌아와 사람에게 알려줄 수 없는 것입니까? 원컨대 저희들을 위해 분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들로 하여금 맺힌 의혹이 풀어져 진실을 빨리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於是,比丘見正承佛言,起坐長跪,白佛言:“我意未除、未解正要,今欲發愚癡之問,願佛哀我等,爲解了之。我從生已來,見人死者不少,或父子、兄弟、夫妻、內外,或朋友相憐愛,或有怨讎相憎,死後識神,了無還面相答善惡者。何以乎?識神爲何所隔礙,而不得還面報人也?願爲分別說之,令我等結除疾得見諦。”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야, 그 식신은 형상이 없으며, 식신이 윤회하여 옮겨감은 선악의 행을 따라서 변화가 있게 된다. 만약 생전에 몸이 복을 지었다면 복의 과보에 따라 환생하더라도 면전에 돌아와 사람에게 알려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예컨대 대장간에서 광석을 녹여 쇠를 만들고, 쇠가 되고 나면 다시 그릇을 주조하는데, 이미 그릇이 되고 난 뒤 다시 광석으로 복원되게 할 수 있겠느냐?”
견정은 말하였다
“확실히 그럴 수 없습니다. 광석은 이미 쇠가 되었으므로 마침내 다시 되돌려 광석이 될 수는 없습니다.”
佛言比丘:“彼識無形,至於轉徙,隨行而有。若身作福,福識轉生,亦不得還面報人也。何以故?譬如冶家洋石作鐵,已成鐵便鑄以爲器,已成器可復還使作石乎?”見正言:“實不可。石已成鐵,終不得復還作石。”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식신(識神)이 몸을 떠나 윤회하여 옮겨 중음신(中陰)에 머무는 것은, 마치 광석이 이미 녹아 쇠가 되는 것과 같다. 중음신으로부터 변화하여 새로운 몸을 받음은 쇠가 이미 그릇으로 주조되는 것과 같다. 원래의 형체가 소멸되고 바뀌면 과거의 식신으로 되돌릴 수 없다. 왜냐하면 행의 선악의 원인으로 식신이 가서 선악의 과보를 받아 변화해 바뀜은, 마치 광석이 쇠가 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佛言:“識之轉徙,住在中陰,如石已洋成鐵;從中陰轉受他體;如鐵已鑄成器。形消體易,不得復還故識。何以故?行之善惡,識往受之,轉化變改,如石成鐵。
5선(善: 살도음망주 5계)을 닦고 행하여 내세에 사람 몸을 받으면, 다시 부모가 있게 된다. 이미 새로운 부모가 있으면 식신은 곧 여섯 가지 얽매임과 막힘이 있게 되니, 첫째는 중음신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전의 몸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며, 둘째는 받은 몸에 따라 모태 안에 들어가 있는 미혹이며, 셋째는 모태에서 나올 때 겪는 압박 고통으로 이전의 의식기억{識念}을 잊어버리는 것이며, 넷째는 막 태어난 뒤 이전의 의식기억은 소멸되고 다시 새로이 견문과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며, 다섯째는 태어난 뒤에 음식물에 집착하고 탐하는 생각으로 이전의 의식기억이 끓어져 소멸하는 것이며, 여섯째는 태어난 뒤 나날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사물과 환경의 훈습을 받아 숙세의 의식이 잃어지고 다시는 복원하지 못하는 것이다.
修行五善,稟受人身,則更有父母。已有父母,便有六繫閉:一者、住在中陰,不得復還;二者、隨所受身胞內;三者、初生迫痛,忘故識想;四者、墮地故所識念滅,更起新見想;五者、已生便著食,貪念故識念斷;六者、從生日長大,習所新見,識滅無復宿識。
제자들아, 마치 상인이 사방의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온갖 괴로움과 즐거움을 겪은 것과 같다. 곧 의식에서 동쪽의 한 지방이나 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면, 이 기억을 떠올리자마자 서쪽ㆍ남쪽ㆍ북쪽에서 겪은 기억은 곧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 이과 같이 생사 또한 그와 같아서 이 세상에서 지은 행이 후세로 옮겨가 몸을 받고 나면 받는 즉시 곧 새로운 생각과 기억을 일으키게 되고 이전의 의식기억은 곧 소멸하게 된다. 마치 상인이 오직 한 방위에서 있었던 일만을 기억할 때 나머지 세 방위에 대한 생각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이런 여섯 가지 일 때문에 얽매이고 덮이고 막히고 걸려 다시는 옛 식신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씨앗이 나무가 되고 광석이 쇠가 되는 것처럼 본래 것이 변화하고 이름이 바뀌므로 다시는 돌아와 면전에서 대답해줄 수 없는 것이다.”
諸弟子!譬如賈客周遊四方國,具見苦樂,便意思念東方一郡國所有。已起是念,便三方念滅。生死亦如是,從是世作行,往後世受已,受卽生新想念,故識想便滅。如賈客惟念一方,三方想滅也。用是六事,繫蔽隔礙,不復還故識,如核之成樹,石之成鐵,變本易名,不復還面相答報也。”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다시 비유하자면 마치 옹기장이가 흙에 물을 부어 반죽하여 그릇을 만들어 불로 구우면 변화하여 질그릇이 되는 것과 같다. 과연 질그릇을 다시 되돌려 흙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
제자들은 모두 말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흙이 이미 구워지고 달구어져 형상이 변해 질그릇이 되었으니, 다시 되돌려 흙이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佛言:“復譬如陶家埏土爲器,以火燒之,則轉成瓦,寧可使瓦還作土乎?”諸弟子皆言:“實不可。土已燒煉,變形成瓦,不可復使還作土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식신이 변화하여 옮겨져 선악 행의 인과응보에 따라 몸을 받는 것은, 마치 흙으로 질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 사람이 도의 수행 공부가 없으면 다시는 과거를 기억하여 알 수 없으므로 다시 돌아와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비구들아, 다시 비유컨대 나무가 자라 수십 아름이나 된 것을 솜씨 좋은 장인이 규격에 맞추어 잘라서 기묘하고 공교롭게 온갖 것을 새기는 것과 같다. 만약 사람이 쪼갠 나무와 새긴 것들을 다시 합친다면 좋은 솜씨로써 되돌려 나무가 될 수 있겠는가?”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나무는 이미 잘려져 쪼개지고 조각조각 깎였으며 가지와 잎이 말라 죽었으므로 다시 모은다고 나무가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佛言:“諸弟子!識神轉徙,隨行受身,如土成瓦。人無道行,不復識故,不得復還相報答也。比丘!復譬如樹大數十圍,巧匠便規斲刻鏤奇巧百種。若人欲復集聚斲柹及所刻巧,還使成樹,可得乎?”諸弟子言:“實不可。樹已斷破,段段刻盡,枝葉槁朽,不復可集使成樹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식신(識神)은 이 세상에서 선과 악을 짓고 행하다가 죽음에 이르면 그 식신은 옮겨가 업력을 따라 새로운 몸을 받게 되어 견문과 습관이 다시는 옛 몸이 아니므로 되돌릴 수도 없으며, 다시는 옛것을 알 수 없으므로 면전에서 서로 대답해 줄 수 없다. 이는 나무가 쪼개지고 나면 다시 모아 살아나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다시 비유컨대 마치 장인이 모래를 구워 붉은 색을 만들고, 다시 흰 모양으로 바꾸며 물처럼 변화시키는 것과 같다. 제자들아, 붉게 된 것을 되돌려 다시 모래로 만들려고 하면 그럴 수 있겠는가?”
佛言諸弟子:“識神於是世作行善惡,臨死識徙,隨行受體,所見所習,非復故身,不可得還,不復識故面相答報也。如樹已斷,不可復集使生。”佛言:“復譬如工師,燒砂作紅色,更轉白形,化如水。諸弟子欲令紅還復作砂,可得成乎?”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모래를 구워 한번 변하고 나면 도로 회복시킬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생사윤회 하는 것도 그와 같다. 사람이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 없거나 깨끗한 법안이 없으면 몸이 죽을 때 식신이 떠나 행의 선악에 따라 과보로 변화하여 바뀌어 새로운 몸을 받게 되며, 다른 세상에서 지내다가 다시 포태(胞胎)를 받아 견문과 습기의 물들임이 모두 달라지므로 다시는 과거의 것을 기억하여 알지 못하게 된다. 이는 마치 모래가 붉게 된 것을 다시 환원시킬 수 없는 것과 같다.”
諸弟子言:“實不可也。燒砂一變,不可還復。”佛言:“生死亦如是,人未有道意,無有淨眼,身死識去,隨行變化。轉受他體,所歷異世,更受胞胎,見習皆異,不復識故,如砂成紅不可復還也。”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비유컨대 마치 물을 둥근 병에 담으면 그 형체도 따라 동래지고 모난 그릇에 옮겨 담으면 형체도 따라 다시 각이 지며, 크고 작고 굽고 곧은 것이 물이 처하는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과 같다. 제자들아, 생사윤회 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식신은 본래 공하여[本無] 고정 불변하는 형상이 없어서 지은 행의 선악에 따라 가서 몸을 받는다. 희고 검고 길고 짧음과 괴로움과 즐거움이 행의 선악 인과에 따라 바뀌어 받는 것이, 마치 물이 갖가지 그릇 형태에 따르는 것과 같다. 혹은 사람일 때 지은 일이 법답지 않았다면 죽어서 축생에 떨어져 추악한 몸을 받았을 것이므로 다시는 과거세를 알아 면전에서 서로 대답하지 못하게 된다.
제자들아, 예컨대 굼벵이가 흙 속에 살고 있을 때는 소리도 없고 날개도 없던 것이 시절의 기운을 얻으면 변화하여 매미가 되어 날아서 나무에 붙어 쉬지 않고 소리 내어 우는 것과 같다.”
佛言:“諸弟子!復譬如水,處於圓甁則體隨圓,徙著方器則體復方,大小曲直隨所墮處。諸弟子!生死亦如此,識神本無,無有常形,隨行善惡,輒往受身。白黑長短,苦樂善惡,變受隨行,如水從器。或從人中所作非法,死墮畜生,合受惡體,不復識故面相答報也。諸弟子!譬如蝮蜟生在土中,無聲無翼,得時節氣,轉化成蟬,飛行著樹,鳴聲不休。”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과연 매미가 다시 땅에 들어가 굼벵이가 될 수 있느냐?”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굼벵이는 이미 변해 어두운 곳을 버리고 밝은 곳에 있습니다. 몸의 형체가 변화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죽거나 혹은 뭇 새들의 먹이가 될지언정 다시 굼벵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생사윤회 하는 것도 이와 같다. 목숨이 끓어지고 몸이 죽어 식신이 변화화고 옮겨 다시 새 몸을 받으면 5음(색수상행식)이 덮고 막으며 견문과 습기의 물들임이 달라 각각 달라 그곳에서 또한 늙어 죽어야 하니, 다시 돌아올 수 없으며 다시 옛것을 알아 면전에서 서로 대답해 줄 수도 없다. 이는 나무에 있는 매미가 다시 되돌아가 굼벵이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佛問諸弟子:“寧可還蟬使入土成蝮蜟乎?”諸弟子言:“實不可也。蝮蜟已變,去陰在陽,身形化異日當死亡,或爲衆鳥所噉,不得還作蝮蜟也。”佛言:“諸弟子!生死亦如此,命訖身死,識神轉徙,更受新身,五陰覆障,見習各異,於彼亦當老死,不得復還,不復識故面相答報也。如蟬在樹,不可復還作蝮蜟也。”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또 예컨대 날고기를 잘라서 여러 날이 지나도록 먹지 않으면 곧 썩어서 구더기가 나오는 것과 같으니, 다시 싱싱한 고기가 되게 할 수 있는가?”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고기가 썩었으면 다시 싱싱하고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佛告諸弟子:“復譬如段生肉,過時不食,則臭茹生虫,欲使還成鮮肉可得乎?”諸弟子言:“實不可。肉已臭敗,不能得使復成鮮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생사윤회 하는 것도 이와 같다. 사람이 세간에 있으면서 마음으로 악을 생각하고, 입으로 악을 말하며, 몸으로 악을 행하다가 죽었다면 곧 식신이 변화하여 옮겨져 지옥의 몸이나 혹은 축생의 몸이나 혹은 고기나 벌레의 몸에 떨어진다. 그곳에서 견문이 달라서 과거와 같지 않으며 죄업의 그물이 뒤덮고 있어 다시는 과거세를 알지 못하니, 다시 돌아와 면전에서 대답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저 썩은 고기를 다시 싱싱하고 깨끗하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또 비유컨대 마치 달이 없는 어두운 밤에 오색의 물건을 어둠 속에 가져다 놓고 천 명 만 명에게 밤에 그 오색의 물건을 관찰하게 하는 것과 같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그 청ㆍ황ㆍ적ㆍ백의 색깔을 구별할 자가 있겠느냐?”
佛言:“生死亦如此。人在世閒,心念惡、口言惡、身行惡,死則識神轉徙,墮地獄身、或畜生身、或魚虫身,所在異見,不與前同,罪網所蔽,不復識故,不得復還面相答報也,如彼臭肉不可使更成鮮潔。”佛告諸弟子:“復譬如月晦夜陰,以五色物著冥中,令千人、萬人,令夜視色物,寧有一人,而別其靑、黃、赤、白者乎?”
여러 제자들은 모두 말하였다.
“설령 몇 억 만 명 아니 헤아릴 수 없는 사람에게 밤에 그것을 관찰하게 한다고 해도 끝내 볼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어떻게 그 오색을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 횃불을 가지고 비추면서 사람에게 관찰하게 한다면 볼 수가 있겠느냐?”
諸弟子皆言:“正使巨億萬人,復無央數人,令夜觀視,終無見者,何能別其五色?”佛言:“若有人,把炬照之,令人觀視,可得見不?”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사람이 든 횃불의 광명을 의지해 그것을 관찰한다면 모두 다섯 까지 색깔을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횃불을 등지고 캄캄한 곳으로 아주 깊숙이 들어가 오색을 보려고 한다면 볼 수 있겠는가?”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이 광명을 등지고 어둠을 향한다면 나아갈수록 더욱 어두울 것이니 색깔을 보는 날은 끝내 없을 것입니다.”
諸弟子言:“人依炬明視之,皆可別五色。”佛言:“若愚人背炬火,進入幽冥,乃進極遠,而望欲見五色,可得見乎?”諸弟子言:“愚人背明向冥,愈進闇,終無見色時也。”
부처님께서 여러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생사윤회 하고 있는 것도 그와 같다. 일체의 인민이나 기어 다니는 것, 날아다니는 것, 꿈틀거리는 곤충들은 이미 몸의 형상을 받아 어리석음의 어둠에 가려 도의 수행이 없다. 몸을 수행하는 일, 마음을 수행하는 일을 배우지 않아 지혜의 눈을 얻지 못했으면서도 오히려 생사윤회 하여 가는 곳, 식신이 오가는 것, 면전에서 알려주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마치 달이 없는 어두운 밤에 오색을 보려고 하는 것과 같아 끝내 볼 수가 없다. 만약 경전의 가르침대로 행하고 계율을 굳게 지키며 37조도품(品)을 수행하여 정념을 유지하고 청정한 범행으로 나아간다면, 마치 횃불을 든 사람을 따라 오색을 구별해 보는 것과 같다.
佛告諸弟子:“人在生死,亦如此。一切人民,蚑行蜎飛蠕動之類,已受身形,癡冥闇蔽,無有道行,不學身事意事,未得慧眼,而欲知生死所趣、識神往來、面相答報,如月晦夜陰欲視五色,終不得見也。若修行經戒三十七品,守攝其意,就淸淨行,如隨持炬火人見別五色。
사람이 불법의 가르침을 따르면, 생사윤회를 분명히 구별하여 알 수 있고 6도[五趣] 세계에 식신이 오가며 떨어진 선힌 곳이나 악한 곳을 자세히 볼 수 있음은, 마치 횃불이 색깔을 비추어 죄다 분명히 보는 것과 같다. 사람이 몸을 수행하는 일, 마음을 수행하는 일을 배운 적이 없으며, 경전의 가르침과 계율을 어기고 세속의 3류(流: 漏)를 따라 제멋대로 함부로 행동하고 정법을 끓어버리며, 믿지도 않고 즐거이 따르려하지도 않고 기꺼이 받들어 행하지도 않는다면, 이는 마치 횃불을 등지고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의심의 결사(結使)가 나날이 심해지고, 생사윤회의 진상을 보고 알아 분명히 깨닫는 날은 마침내 없을 것이다.”
人隨佛法教,則能了別死生,具見五道識神往來所墮善惡處,如炬火之照色,皆悉了見。人初不學身事意事,背於經戒,隨俗三流,快意自從,斷割眞法,不信不樂、不肯奉行,如背炬入冥,疑結日甚,終無見知有解了時也。”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어리석고 꽉 막힌 마음을 따르고, 청정하고 바르고 참된 도를 믿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스스로 지옥에 떨어져 몸이 고통을 받게 되는 일을 하지 말라. 나는 그 때문에 비유를 이끌어 너희들이 분명히 알도록 하는 것이다. 항상 부지런히 힘써 경전의 가르침과 계율을 받들어 행하고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몸의 형상을 받고 육안으로 보는 현재의 일과, 부모 친척은 훤히 보아 잘 알고 있지만, 전생에 어디서 왔는지를 보거나 알 수가 없다. 금생에 늙어 죽어 후세에 태어나 다시 몸을 받으면 금생의 일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한번 태어났다가 한번 죽으면 식신이 변화하고 바뀌어 12인연을 거치는데, 그 중에 무명(痴)이 그 주요한 것으로, 멍청하고 어둡고 우둔하여 환생하면 과거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佛告諸弟子:“莫順汝愚癡閉結之意,而不信淸淨正眞之道,自墮地獄,爲身受痛。我故引譬以解了。汝等常當勤力奉行經戒,以著心中。”佛告諸弟子:“人生是世稟受身形,肉眼所見現在之事,父母親屬,察察了了,然不能復見知前世所從來處。於是當老死,往生後世更受身形,則亦不能復識知今世之事也。所以者何?一生一死,識神轉易,十二因緣,癡爲其主,懵懵冥闇,轉不識故。
제자들아, 예컨대 흰 실을 삶고 두드려 청ㆍ황ㆍ적ㆍ흑의 다른 색깔로 물들이면 본래의 색깔이 바뀌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것과 같다. 생사윤회의 변화도 흰 실이 색깔에 물들어지는 것과 같다. 식신은 고정 불변하는 본체가 없어서 선악 행의 변화에 따라 물들기 때문에 청정한 법안이 없다면 과거세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의식의 법칙은 생각을 움직이면 곧 원인이 있게 되는데, 사람이 한 생애 중에 심념이 갖가지가 있으니 선념과 악념은 다른 과보를 받으며 새로운 과보를 받기 때문에 지난 과보는 소멸해버린다. 생사윤회의 법칙은 당연히 무명이 형성한 정상적인 상태이다. 만약 일체의 생사윤회의 인과 유래를 철저히 알고 싶다면, 응당 심신 방면의 도덕적 품행을 수학하고 청정 속으로 깊이 들어가 일체의 본래 면목과 지엽을 사유하고, 그리하여 깨달음에 도달하면 깊은 잠에서 깨어남과 같으니라.”
諸弟子!譬如煮練白絲,染作異色靑黃赤黑,變本易故,不可復轉還也。生死轉易,如絲受色,識無常體隨行染著,未有淨眼,不識其故心意爲法所念卽成。人在一世,心念萬端,善惡報受,受新故滅,生死之法,癡闇之常然也。其欲知見生死往來,當廣學行身意之事,深入淸淨,思惟本末,爾乃開寤,如臥寤也。”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식신은 우치 무명한 것으로, 살았을 때 선악의 행을 짓고 죽으면 환생해 가서 그 과보를 받으며, 선과 악의 행의 인과에 따라 형상과 징조가 있게 된다. 마치 불이 섶나무를 얻게 되면 그 모습이 나타나다가 섶나무가 다하면 소멸하는 것처럼 의식이 선악의 행을 짓지 않으면 행위 자취도 소멸되어 나타나는 것이 없다. 도를 얻지 못한 이가 생사윤회 중에 빠져서 환생하여도 과거의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치 더러운 거울이 때가 묻어 흐려지고 오물에 가려 자기 얼굴을 비추어도 아예 보이는 게 없는 것과 같다. 의식이 흐리고 가려져 생사윤회 속에서 이리저리 환생하여 비통과 두려움이 충만하고 화복(禍福)의 영향에 끌려서 다시는 과거의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치 그 더러운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佛告諸弟子:“識神爲癡冥法,生作善惡行,死轉往受,隨善惡行而有形兆,如火得薪而見薪索則滅。意識不作善惡行,則亦滅無所見。未得道者,沈淪生死,轉不識故。譬如穢鏡,垢濁蔽污,擧以向面,了無所見。意識濁蔽,生死轉徙,慘懼蔽盈,牽著殃福,不復識故,如闚穢鏡。
또 비유컨대 마치 깊고 흐린 물에는 비록 고기와 벌레가 있다 하더라도 전혀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생사윤회에 얽히고설키어 어지럽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망상잡념은 지혜를 가로막아서, 환생하면 과거세를 잊어버리는 것도 흐린 물과 같다. 또 비유컨대 어두운 밤에 눈을 감고 걸어가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생사의 어둠은 화복을 따라 흘러 돌면서 혹은 기뻐하거나 혹은 고뇌하며 받은 몸에 얽매여 다시 과거세를 알지 못하는 것도 밤에 눈을 감고 있는 것과 같다.”
復譬如深濁之水,雖有魚虫,了不得見。生死錯亂,憂思蔽塞,轉生忘故,亦如濁水。譬如冥夜閉眼而行,都無所見。生死闇昧,流隨殃福,或喜或惱,綴制所受,不復識故,如夜閉眼。”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나는 부처가 되어 지혜의 눈이 청정해졌으니 일체 중생의 생사윤회와 3계 속에 식신이 왕래하는 일을 부처는 모두 알고 본다. 마치 수정 유리의 보배 구슬을 여러 가지 고운 색깔의 실로 꿰면 푸르고 노란 것이 다 나타나는 것처럼, 부처가 중생의 생사윤회를 보는 것도 실로 꿰어 있는 구슬을 보는 것과 같다. 또 비유컨대 깨끗한 물이 맑고 고요하면 밑바닥이 보이고 그 속의 고기와 벌레가 모두 환히 보이는 것과 같다. 부처가 중생의 생사윤회를 보는 것도 맑은 물속의 고기를 보는 것과 같다.
또 비유컨대 다리 위로 온갖 행인들이 끊임없이 왕래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부처가 중생이 생사윤회 하면서 6도에 왕래하는 것을 보는 것도 다리 위의 행인을 보는 것과 같다. 또 비유컨대 높은 산에서 멀리 바라보면 빠짐없이 보이는 것처럼, 부처의 마음과 의식은[心意]는 높고 멀어서 일체 중생의 생사를 빠짐없이 알고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佛告諸弟子:“今我爲佛,慧眼淸淨,一切生死,往來三界,佛悉知見。譬如水精、琉璃、寶珠,綵絲貫之,靑黃皆見;佛視生死,如觀貫珠。譬如淨水,淸澄見底,其中魚虫,皆悉裸見;佛視生死,如淸水魚。譬如大橋,一切行人,往來無絕;佛視生死,往來五道,如觀橋人。譬如高山遠望具見;佛意高遠,具知生死,無不分別。”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응당 나의 가르침을 따라서 천억 겁에 걸쳐 생사윤회 하는 일을 빠짐없이 알아야 한다. 응당 37조도품의 중요한 수행인, 4념처(意止)ㆍ4정근(意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意)ㆍ8정도(正道)를 행하여 의식상의 오염을 없애고 탐진치 3독(毒)을 없애고 의혹결사(疑惑結使)가 풀려서 흩어지면, 곧 청정을 보고 부처와 같은 지혜로운 마음을 얻어서 과거와 미래의 일을 마치 밝은 거울을 보듯 모두 다 볼 것이다.”
佛告諸弟子:“汝等當隨我教,可具知生死千億劫事,當行三十七品要行:四意止、四意斷、四神足、五根、五力、七覺意、八正道。以除意垢,消滅三毒,疑結解散,便見淸淨,得佛慧意,便知去來之事,如視明鏡,一切悉見。”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들이 지은 선악의 업은 죽은 뒤의 다음 생애에도 모두 서로 응보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청정한 법안(法眼)ㆍ혜안(慧眼)ㆍ불안(佛眼)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이다. 식신이 앞서 말했던 여섯 가지 얽매임과 가림에 붙어 있어 육안에 의해서만 행하기 때문에 응보의 근본을 보지도 못하고 ‘삼세의 인과응보가 없다’ 라고 멋대로 말하는 것이다.
아직 도를 얻지 못한 자들은 모두 항상 흐리고 더러운 행을 짓고, 게다가 어리석음에 빠져있는 가운데, 생사윤회 하면서 환생하여 새로운 형체를 받으면 육안에 미혹되어 이전의 형체를 떠나 새로운 형체에 얽매여 생로병사의 4통(痛)에 교란되고 마침내 식신이 선악의 행에 따라 과보를 받는 것을 알 길이 없다.
佛告諸弟子:“世人所作善惡,死之後世,亦皆相答報。但人未得三淨眼,是以不見不知,不復識其本,著在六繫蔽,爲肉眼行故,而不見相答報之本,謂之無有也。其未得道者,皆作濁穢之行,況沒愚癡,生死轉化,更受身形,肉眼眩惑,離故繫新,四痛擾亂,終不得知識隨行相答報也。
현세의 사람이 혹은 복을 받거나 혹은 재앙을 당하거나 혹은 서로 어여삐 여기거나 혹은 서로 미워하는 것은, 곧 과거세의 선악의 행에 대한 응보의 증험이다. 청정한 법안ㆍ혜안ㆍ불안이 없기 때문에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더욱 우치하고 미혹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서, 본래 어리석은데다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과 청정한 수행도 없으면서 전세의 일을 알기 바라고, 식신이 돌아와 알려주는 효험을 바라는 것은, 마치 손이 없으면서 글을 쓰려고 하며 눈이 없으면서 보려고 하는 것과 같으니 끝내 그럴 수가 없다. 그러므로 부처가 세간에 출현하여 경전의 도리를 설하여 펴고 나타내는 목적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르쳐 이끌고 열어주려는 것이다.
今現世人,或受福、或受殃,或相憐、或相憎,此則宿行答報之驗。爲無有三淨眼故,不見不知,便結在疑,一切人已來生是世,本與癡俱,無有道意淸淨之行,而欲望知前世之事,識反報之效,譬如無手欲書、無目欲視,終不能也。故佛出世,敷現經道,以解人意。
그 식신의 왕래 방향과 생사윤회의 과보를 받는 곳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응당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37조도품과 지혜바라밀[智度無極]을 수행하여 의념을 단속하고 의념을 경계하며, 의념을 조정하고 의념을 바르게 하여 선정삼매의 오묘한 경지에 들어야 비로소 식신이 과보를 받아 떨어지는 곳과 가고 오는 일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너희 제자들아, 몸으로 하는 일 마음으로 하는 일을 응당 부지런히 배우고 알아, 모든 대상 경계들을 빠짐없이 인식하여, 경계가 닥치면 곧 그것을 없애서 어지럽거나 잘못되지 말고 정법에 견고해야 한다. 이와 같이 쉬지 않고 정진하면 너희들의 의문점은 곧 해결될 것이다.”
其欲知見,識神往來生死所受者,當隨佛教行三十七品,智度無極,撿意勅意,調意正意,入禪三昧之妙,乃可具知,識神所墮,去來之事耳。汝諸弟子!當勤學知身事意事,具了諸對,至則滅除之,不爲亂誤,堅固於正法,如此莫休。汝所疑問,卽可解了。”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식신은 이름은 있지만 형상이 없으며 선악의 행에 따라 변화하여 지수화풍 4대의 인연화합에 의지하여 몸이 된다. 처음 태어났을 때는 몸도 작고 모든 감관의 기능도 원만하지 못하며 식견도 적고 사물에 대한 인지(認知)도 아직 완비되지 못하다가, 나이가 늘어 자라면서 6근(情)의 기능이 점점 완비되고 식신도 신체의 변화에 따라 갖가지 탐욕의 훈습오염이 나날이 치성해지며 갖추어지게 된다. 쇠약하고 늙어지면 4대 화합으로 이루어진 신체가 점점 파리해지고 식신도 어두워지며 6근의 기능도 점점 쇠퇴한다. 이처럼 현재 한 세상을 살면서도 변화가 무상하여 예전 같지 않으며, 일생에 익히고 본 것을 늙어서는 잊어버리게 되는데, 하물며 다시 다른 세상에서 중음신과 포태[陰胎]에 얽매이고 덮일 때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도를 닦지 않고 어리석은 행으로 미혹되고 더럽혀졌으면서도, 식신이 왕래하고 돌아와 면전에서 알려주기를 보고자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佛告諸弟子:“識神有名無形,隨善惡行,依四大爲體,初生身小,諸根未具,識見復小,所知未備。及其長大,六情具足,識亦隨體,愛欲諸習,日生盛具。至於衰老,四大羸臞,識亦不明,六情減少。現居一世,變易無常,不如其故;生所習見,老如忘之;況更異世,陰胎繫蔽。未得道意,癡行惑穢,欲見意識往來,面相反報,不可得也。
사람이 도의 수행이 없으면서 숙명(宿命) 중의 일을 보고 알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어두운 밤에 바늘에 실을 꿰고 물속에서 불을 구하려는 것과 같아 끝내 볼 수 없다.
너희 제자들아, 부지런히 경전과 계율을 수행하며 생사가 본래 어디에서 왔고, 결국 어디로 돌아가며, 무슨 인에 의해 왕래하고 무슨 연에 의해 끌려가는 지를 깊이 사유해야 한다. 공의 도리[空無之法]를 자세히 사유하여 청정한 눈을 얻고 결사를 끊어 없애면 의혹은 저절로 풀릴 것이다.”
人無道行,而望見知宿命之事,譬如闇夜貫鍼、水中求火,終無見得。汝諸弟子!當勤行經戒,深思生死,本從何來?終歸何所?何因往來?所緣何等?諦如思惟空無之法,得淨結除,所疑自解。”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견정 등 5백 명과 모든 우바새가 모두 수다원(須陀洹) 과위를 얻었으며, 모든 보살은 다 불경회삼매(不傾迴三昧)를 얻었다. 그들은 각자 일어나 부처님을 세 번 돌고 땅에 엎드려 예배한 뒤 모두 부처님을 따라 함께 정사로 돌아갔다.
佛說經竟,見正等五百人,及諸優婆塞,悉得須陁洹;諸菩薩皆得不傾迴三昧。各起遶佛三帀,頭面著地,作禮畢竟,悉從佛俱還精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