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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32) 요녕 객좌 고씨 왕생기

작성자문문|작성시간26.06.09|조회수27 목록 댓글 0

132) 요녕 객좌 고씨 왕생기

 

  1993년, 어머니는 예순 살이었다. 어머니는 20여 년 전 심한 기관지염을 앓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눕지도 못한 채 무려 10년을 베개 위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자세로 잠을 자야 했다. 눈은 하루 종일 부어 있었고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어떤 약을 먹어도 효험이 없었다.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염불하면 죽은 뒤에 극락세계라는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데 어떻게 염불을 하겠느냐?”

  내가 말했다.

  “마음속으로 묵묵히 염불하시면 됩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셨다.

 

  그렇게 염불을 하다 말다 하며 지내다가, 1993년 음력 11월 23일 오후 어머니는 세 시간 동안 의식을 잃고 계셨다. 우리는 곧바로 달려와 염불하였다. 30분이 안 되어 어머니는 다시 의식을 회복하셨다.

  내가 말했다.

  “어머니, 입으로 염불할 수 없으시면 마음속으로 따라 염불하세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셨다.

  밤 10시가 넘도록 염불하던 중, 어머니의 안색이 훨씬 좋아졌고,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는 얼른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어머니! 무슨 좋은 광경을 보셨어요?”

  내가 이쪽에서 묻자 어머니는 얼굴을 저쪽으로 돌린 채 웃기만 하셨다.

  연우들이 세 번이나 물어보았지만, 어머니는 그저 웃기만 하셨는데 여러 해 앓아 온 병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듯하였다.

  내가 말했다.

  “이제 묻지 맙시다. 분명 좋은 곳을 보신 게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런 웃음이 나오겠습니까?”

 

  사람들은 계속 번갈아 가며 염불하였고, 밤 11시가 되자 어머니는 편안하게 숨을 거두셨다.

  나는 가족들에게 울지 말라고 당부하고 24일 밤 9시까지 염불한 뒤, 집에서 60리 떨어진 현성(縣城)의 화장장으로 모셨다.

  한겨울 섣달의 밤은 몹시 추웠다. 나는 양가죽 외투를 입고 있었지만 뼛속까지 시릴 정도였다. 그런데 어머니를 들어 옮기려 할 때 뜻밖에도 시신이 살아 계신 분처럼 매우 부드러워 여섯 사람이 함께 들어 옮겨야 했다.

  화장장 직원도 놀라며 말했다.

  “오뉴월이라 해도 60리나 되는 길을 이곳까지 운구하면 시신이 굳기 마련입니다. 이런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의 왕생은 나로 하여금 염불에 대한 신심을 더욱 굳게 해 주었다.

 

  (요녕성 객좌현 고정초(高靖超) 구술 · 이옥휘(李玉輝) 기록,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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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정토종 (홍원염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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