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타인의 손에서 물건을 얻을 때, 이미 얻은 것과 아직 얻지 못한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수승한가? 법연은 이미 얻었다는 마음으로 염불을 한다. 42. 만약 자력에 머물러 있는 자라면 일성십성一聲十聲도 여전히 자력이고, 만약 타력에 머물러 있는 자라면 성성념념聲聲念念이 모두 타력이다. 43. 사람들은 모두 임종 시에 정념正念이 있는 까닭에 (아미타불께서) 내영을 하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법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임종 시의 정념은 부처님의 내영에 의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칭찬정토경》에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가호를 해주셔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본원을 믿고 염불하는 사람은 임종 시의 정념에 대해 의심을 해서는 안 된다. 부처님께서 내영을 하시는 이유가 바로 임종 시의 정념을 위해서다. 그런 까닭에 마땅히 늘 부지런히 염불을 해야 할 것이다. 44. 염불행자는 아미타여래와 관음·세지 등 보살들이 항상 오셔서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이 수호를 해주시며, 잠시도 버리고 떠나지 않으신다. 그러나 다른 수행은 그렇지가 못하다. 또한, 염불행자는 목숨을 버린 뒤에 반드시 극락세계에 왕생하지만, 다른 수행은 확실치가 않다. 휘장 속에서 마음만 움직이면 반드시 진찰塵刹 밖(십만억 불국토 밖의 극락세계)을 증득하니, (다른 수행은) 염불만 못하다. 45. 염불하는 암자가 비록 좁으나 갠지스강의 모래수와 같은 성중들이 운집함이 암라원菴羅園의 연화좌와 같고, 삼매의 도량이 비록 협소하나 무수한 현성들로 가득함이 영축산의 태연苔筵 과도 같다. 십만억의 불국토가 마치 지척에 있는 듯하고, 무릎을 넣을 자리 밖에 없는 장실丈室은 거의 태허공과 같다. 만약 사람이 염불을 하지 않는다면 갠지스강의 모래수와 같은 성중들이 한 사람도 영접하지 않으시고, 무수한 화불化佛 또한 한 부처님도 오시지 않는다. 염불을 하고 안 하고의 득실은 하늘과 땅의 차이이니, 행자는 마땅히 알지어다.
주: 암라원은 인도중부의 바이샬리에있던정원(庭園). 여기서 석가모니불이 유마경(維摩經) 등을강설(講說)하였다. 망고(mango)가 많은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태연은 멍석을 깐 듯이 자란 이끼라는 뜻이다. 46. 신공信空이 물기를, “옛날의 선덕先德들은 모두 유적이 남아있다. 그런데 (상인께서는) 정사精舍 한 채 짓지 않았으니, 입적하고 나면 어느 곳을 유적으로 삼아야 하는가? ”하니,
상인께서 답하시길, “만약 절 하나를 점을 쳐서 유적지로 정한다면, 유적지가 널리 펴지지 못하게 된다. 나의 유적은 여러 주에 편만遍滿해 있다. 무슨 까닭인가? 염불을 흥행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노인(법연) 일생의 교화이다. 따라서 귀천에 상관없이 산에 사는 사내와 마을에 사는 아낙들의 사립문과 바닷가 어부들의 초가집도 염불하는 곳이라면 전부 나의 유적이다. 내가 왕생하고 난 뒤에는 묘탑墓塔을 짓지 않을 것이다. 나의 유적이란 염불하는 곳이면 전부 나의 유적이다. 또한 명복을 빌기 위해 묘탑을 만드는 것은 윤회를 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고 말씀하셨다. 47. 살아서는 염불의 공을 쌓고, 죽어서는 정토왕생을 할 것이다. 아무튼, 이 몸에 근심걱정이 없으면, 죽어서도 살아서도 모두 근심걱정이 없을 것이다. 48. 날이 밝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상객은 닭의 울음소리에 놀라 (꿈에서) 깨었으나 오히려 기뻐하고, 정토를 그리워하는 행자는 병에 걸리면 더욱 기뻐한다.
염불법어2 (1~10)
염불법어 (1) 1. 여러 경전에서 말하는 극락세계의 장엄 등은 모두 사십팔원의 성취문이고, 염불을 권장하는 부분은 제18원의 성취문이다. 《관경》의 「삼심三心」과 《아미타경》의 「일심불란一心不亂」과 《무량수경》 원성취문의 「신심환희信心歡喜」와 유통문의 「환희용약歡喜踊躍」은 모두 「지심신요至心信樂」의 마음이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염불의 삼심을 해석하신 것이다. 2. 사십팔원의 하나하나 원에 모두 염불왕생의 뜻이 있는 까닭에 선도화상께서 「하나하나의 원에서 말씀하시길 一一願言」이라 해석하신 것이다. 예컨대 「무삼악도원無三惡道願」은 삼악도의 극심한 괴로움을 두려워하는 중생들이 이 원을 듣고 흠모하는 마음을 내어, 염불을 (왕생의) 정인正因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그 외의 원들은 이에 준한다. 따라서 사십칠원은 흠모원(欣慕願)이고, 제18원만이 생인원(生因願)이 된다. 3. 왕생의 업의 성취가 임종과 평소에 통하는 것은, 본원문에서 (별도로) 간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 선도화상은 「깊은 마음深心」을 해석하기 위하여 나머지 두 마음을 해석하신 것이다. 「삼심」에 관한 경문을 보면 일체의 행을 언급하지 않다가 「심심」에 대한 해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염불의 행을 밝혔다. 5. 제19원은 제행을 닦는 사람을 염불로 이끌어 들이기 위한 원이다. 6. 내가 안치해놓은 일체 경율론은 《관경》에서 섭수하는 법이다. 지장 등의 여러 보살들을 경시해서는 안 되니, 왕생한 뒤에 도반이 되는 까닭이다. 7. 《아미타경》등은 정토문의 출세본회이고, 《법화경》은 성도문의 출세본회이다. 8. 타 종파의 사람들이 정토종에 뜻이 있다면 반드시 본종의 가르침을 버려야 하니, 성도와 정토의 종의宗義가 각자 다른 까닭이다. 9. 요즘과 같은 말법시대의 중생은 자신이 삼학(계·정·혜)을 닦을 근기가 아님을 안다면 모름지기 성도를 버리고 정토로 돌아가야 한다. 10. 구전口傳없이 정토법문을 보는 자는 봄으로 인해 왕생의 공덕을 잃게 된다. 그 이유는 극락왕생의 가르침이 위로는 용수와 천친, 아래로는 말세의 범부와 십악 · 오역의 죄인들에게 극락왕생을 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최하의 죄인인 까닭에 선인을 권장하는 글을 보면 스스로 비하하는 마음이 생겨 왕생이 확실치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순차(順次:금생에 염불하여 숨이 끊어질 때 바로 극락왕생함)의 왕생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런 까닭에 선인을 권장하는 글을 볼 때는 선인의 몫을 보고, 악인을 권유하는 글을 보면 자신의 몫을 봐야 한다. 이와 같이 지견이 결정된 자는 반드시 왕생한다는 신심이 견고하여 (부처님의) 본원을 타고 순차로 왕생하게 된다.
염불법어 (2) 11. 정토에 대한 가르침의 글에는, 위로는 용수와 천친, 아래로는 오역과 정법비방을 한 자들로 포함되어 있다. 범부와 성인, 선인과 악인을 두루 권장하는 까닭에 모순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글들이 많다. 상근기들을 권장하는 글을 보면서 (자신을) 비하하지 말 것이며, 하근기들을 권유하는 글을 보고서 방일하지 말지어다. 12. 근대의 수행자들은 관행觀行을 감당할 수 없다. 만약 불상 등을 관하고자 한다면 운경과 운강(법명)이 조성한 불상에 지나지 않고, 보배나무寶樹등을 관하고자 한다면 앵두나무 · 매화나무 · 복숭아나무 · 오얏나무 등의 꽃과 열매 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마땅히 “저 부처님은 현재 극락세계에서 성불을 하셨으니, 마땅히 본래 서원이 헛되지 않아 중생이 칭념하면 반드시 왕생함을 알라”라는 해석을 믿고 한결같이 명호를 불러야 할 것이다. 오로지 명호만을 부르면 삼심은 저절로 갖춰지게 된다. 13. 칭명을 하는 행자는 평소에 염불을 할 때에, 청정하지 못한 것을 기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끊이지 않음을 귀중히 여기는 까닭이다. 여의륜의 법에서 부정한 것을 기탄하지 않는 것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선도화상의 별시행법別時行法에서 말하는 「청정결재淸淨潔齋」은 평소의 행법과 다른 것이다. 원신源信의 “시간과 장소와 모든 인연에 상관없다”는 해석과 영관永觀의 “몸의 청정하고 청정하지 않음을 논하지 않는다”는 해석에는 틀림없이 근거가 있을 것이다. 14. 타력본원을 타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고, 타지 못하는 데에도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본원을 타지 못하는 두 가지 모습이란, 첫째는 죄를 지을 때 타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이러한 죄를 지으면 비록 염불을 하더라도 왕생이 결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본원을) 타지 못한 것이다.
둘째는 도심道心을 발할 때 타지 못한다. 그 이유는 “비록 똑같이 염불을 하지만, 이 도심이 있는 까닭에 왕생을 하는 것이고, 만약에 도심이 없다면 설사 염불을 하더라도 왕생할 수 없을 것이다. 도심이 먼저고 본원은 그 다름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각한다면 타지 않는 것이다. 다음, 본원을 타는 두 가지 모습이란; 첫째는 죄를 지을 때 탐이라. 그 이유는 “이처럼 죄를 지으면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본원명호를 칭념하는 까닭에 반드시 왕생할 것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생각할 때, (본원을) 타는 것이다.
둘째는 도심이 일어날 때 탐이라. 그 이유는 “이 도심으로 왕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도심을 시작 없는 옛적부터 비록 일으킨 적이 있으나, 지금까지 생사를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도심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지은 죄업의 경중을 말하지 않으며, 오직 본원명호를 염념상속念念相續하여 부르는 힘에 의해 드디어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타력본원을 타는 것이다. 15. 「삼심」은 쉽게 구족할 수 있다. 삼심이 구족한 모습은 다음과 같다. 반드시 왕생한다고 생각하며 염불하는 자에게는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지극정성의 마음인 『지성심至誠心』도 이 마음속으로 거두어들이고, 가르쳐주신 아미타불의 본원을 의심 않고 반드시 왕생한다고 생각하는 『심심深心』 역시 그 속으로 거두어들이며, 세 번째 『회향발원심』도 역시 한결같이 염불하면 반드시 왕생한다는 원력의 마음속으로 거두어들이게 된다. 따라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왕생한다고 간절하게 생각하며 염불하는 자에게는 삼심이 모두 내포되어 있는 까닭에 비록 배우지 않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처럼 간절하게 왕생이 결정되었다고 생각하며 염불을 한다면 삼심을 쉽게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16. 비록 『삼심』을 말하지만 결론적으로 오직 하나의 『원생심願生心』만 있을 뿐이다. 왕생을 원하는 이 마음이 거짓이 아니고 가식이 아닌 것을 『지성심』이라 부르고, 진실한 원생심으로 염불하는 자는 임종 시에 반드시 (부처님의) 내영을 받게 되는 것에 대해 추호의 의심이 없으므로 『심심』이라 부르며, 이 몸이 이미 극락왕생을 생각하고 있는 이상, 지은 행업은 모두 왕생을 위한 것이므로 『회향심』이라 부른다. 그런 까닭에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거짓이 아니고, 진정으로 왕생을 하고자 한다면 저절로 삼심이 갖춰지는 것이다. 17. 염불행자는 여타의 선근이 설사 티끌만큼도 갖춰지지 않았어도 반드시 왕생한다. 그러나 “발보리심을 하지 않고서 어떻게 왕생할 수 있단 말인가? 계율을 지키지 않고서 어떻게 왕생할 수 있단 말인가? 지혜가 없는데 어떻게 왕생할 수 있단 말인가? 망념이 그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왕생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이 경(아미타경)을 모르는 것이다. 18. 《무량수경》에서는 “한결같이 오로지 무량수불을 부른다”고 말씀하셨고, 《관경소》에서는 “한결같이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른다”고 말씀하셨다. 『일향一向』이란 “다른 것을 겸하지 않는다”는 말씀이고, 또한 “다른 것을 버린다”는 말씀이다. 만약 염불 외에 다른 행을 겸하여 닦는다면 『일향』이라 할 수 없다. 19. 달빛이 비록 비추지 않는 곳 없으나, 오직 우러러 보는 자의 마음속에만 머문다네. 20. 단지 아미타불만 부르면 기쁜 마음으로 정토의 장엄을 보게 된다네. 21. 몸은 이슬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나, 마음은 꽃잎과 같아 꽃받침에 붙어있네. 22. 주야로 사립문을 둘러싸고 있는 흰 구름은 언제 자줏빛으로 바뀌려나. 23. 아미타불 바라보는 내 마음, 해를 향한 해바라기 같아 아미타불 칭념함에 날마다 끊이질 않네.
삼심에 대한 요간 및 법어 三心料簡及法語 법연상인 삼심 요간 三心料簡 먼저, 《관경소》의 네 번째 <산선의散善義>에서 말하기를, “악한 잡선(惡之雜善)으로는 저 정토에 왕생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으니, 그런 까닭에 <현의분玄義分>에서 “정定이란 곧 생각을 쉬어서 마음을 집중시키는 것이고, 산散은 곧 악을 끊고 선을 닦는 것으로, 이 두 행을 회향하여 왕생을 구한다”고 말한 것이다. 또한, <산선의>에서 말하기를, “상배상행상근인은 정토왕생을 구하기 위해 탐욕과 성냄을 끊는다輩上行上根人,求生淨土斷貪瞋" 고 하였다. 그렇다면 지금 이 『지성심』중에서 허망하고 거짓된 행(虛假之行)을 꺼려한다는 것은 여타의 선인 잡행을 말하는 것이다. 삼업으로 비록 부지런히 정진하나, 마음속에 탐욕과 성냄, 사악함 등의 독성이 섞여있는 까닭에 독이 『섞인 선』이라 부르는 것이고, 『독이 섞인 행』이라 부르는 것이며, 『왕생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왕생예찬》의 『전잡이행의 득실專雜二行得失』중, 『잡수의 실』에서 말하기를, “탐욕과 성냄과 같은 많은 사견邪見번뇌들이 일어나 틈새가 생기는 까닭이다”고 한 것이니, 이러한 잡행을 회향하여 곧바로 보불報佛의 정토에 왕생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구 이업을 바깥外으로 보고, 의업 하나만을 안內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오해이다. 이미 “비록 삼업을 일으켜”라고 말한 이상, 어찌 의업을 제외한단 말인가! 또한 허망하고 거짓되며, 남을 속이고 미혹한다는 것도 역시 잘못된 오해이다. 이미 “몸과 마음으로 부지런히 힘쓴다”고 말하고, 또 “주야 12시에 급히 걷고 급히 짓기를 머리에 불이 붙은 것처럼 한다”고 말한 이상, 어떻게 가명인(假名人:가명인이란 겉으로는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 마음속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말함) 이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잡행을 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다음, 선택하여 취하신 진실이란, 본원의 공덕인 정행염불이니라. 그런 까닭에 <현의분>에서 말씀하기를, “弘願이란 말은 저《대경》에서 말씀하셨듯이「모든 선악범부가 왕생을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아미타불의 大願業力을 타는 것을 증상연으로 삼지 않은 이가 없다는 것이니라」는 것이다”고 하신 것이고, 그런 까닭에 지금 이 글에서 “바로 저 아미타불께서 인중因中에서 보살행을 닦으실 때에, 내지 일념 일찰나 까지도 삼업으로 닦는 바가 모두 진실한 마음으로 지으셨기 때문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미타불께서 인중因中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지으신 행에는 독과 악이 들어있는 선이 섞여있지 않으므로, 『진실』하다고 말한 것이다. 어떻게 그 뜻을 알 수 있는가? 그 다음의 해석에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베푸는 행위施爲와 나아가 구하는趣求 바도 역시 모두 진실하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진실하게 베푼다는 것은, 누구에게 베푸는 것인가? 『심심석深心釋』 중의 첫 번째 해석(機深信)에서 『죄악생사범부』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런 중생에게 베푸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악업을 지은 범부들이 바로 이 진실함을 의지하는 근기이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두 번째 해석(法深信)에서 “아미타불께서 사십팔원으로 중생을 섭수한다”고 말씀하신 글에서 알 수 있다. 다섯 가지 정행중의 『관찰문』은 십삼관의 정선定善이 아니라, 산란한 마음으로 염불하는 행자가 극락의 장엄에 대해 상상하고 흠모하는 마음이다. 『회향발원심』을 해석하는 첫 대목에서 『진실하게 깊이 믿는 마음으로 회향함』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삼심가운데 회향하는 마음이다. 『과거·금생의 모든 선』이란 삼심을 일으키기 전의 공덕을 극락에 회향하는 것으로 바꾼다는 것이지 삼심을 일으킨 후에 닦은 모든 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백도』에 관한 일 『잡행중의 원생심(雜行中之願生心)』이란, 비록 백도이기는 하나 탐욕의 물과 성냄의 불로부터 손해를 입게 된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해석하기를, “모든 행업을 되돌려 곧장 서방을 향한다”고 하셨으니, 제행왕생의 원생심의 백도임을 알 수 있다. 다음, 『전수정행의 원생심(專修正行之願生心)』을 『원력의 길』이라 이름한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러러 석존釋尊으로부터 서방정토로 가도록 지시를 받았고, 또 아미타불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정토에 오라고 불러 주셨기 때문에 이 두 분의 뜻을 믿고 따라 물의 강(水河)과 불의 강(火河)의 위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정토에 왕생할 것을 한시도 잊지 않고서 아미타불의 원력의 길을 걷는다면, 수명이 다한 뒤에 정토에 왕생하게 된다』는 이 글에서 알 수 있다. 『정행』을 하는 자는 원력의 길을 걷는 까닭에 전혀 탐욕의 물과 성냄의 불로부터 손해를 입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비유 중에 말씀하시기를, “서안西岸에서 어떤 사람이 부르기를, 『그대는 일심정념으로 곧장 오너라. 내가 너를 지켜줄 것이니, 물과 불의 강에 빠질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고, 이 비유와 관련해서 “서안에서 어떤 사람이 불렀다는 말은, 곧 아미타불의 원력의 뜻을 비유한 것이니라”고 하신 것이다. 전수정행專修正行을 하는 사람은 탐욕과 성냄과 같은 번뇌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미 본원력의 백도를 걷고 있는 이상, 어찌 불길과 파도로부터 손해를 입도록 내버려 두겠는가! 법어 1.『근기의 판정』에 관한 일 대원담론大原談論에서 정토종을 펼 때, 법문을 가지고 비교를 하면 서로 다투어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었는데, 근기를 가지고 비교를 하자 법연이 이겼다. “성도문이 비록 심오하기는 하나 요즘 사람들의 근기에 부합하지 않고, 정토문은 천박한 것 같으나, 요즘 사람들의 근기에 쉽게 계합한다”고 말하니, 사람들이 모두 신복信伏을 하였다. 2. 『정선의定善義 중, “기타의 모든 행들은 비록 선이라 부르기는 하나, 만약 염불과 비교한다면 전혀 비교되지 않는다”』에 관한 일 제행과 염불을 비교할 때, 만약에 “염불이 수승하고, 다른 행은 하열하다”고 말한다면 더욱 더 논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염불은 본원의 행이고 제선諸善은 본원의 행이 아니다”고 말했을 때, 진언·법화 등의 매우 심오하고 미묘한 행들도 역시 전혀 비교되지 않는다. 만약에 이 뜻을 안다면 비교의 뜻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3.『한 법으로 모든 근기를 섭수함』 에 관한 일 제18원에서 말하는 『시방중생』은 시방의 중생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나의 발원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법조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저 부처님 인중에서 세우신 크신 서원 이름 듣고 나를 부르면 전부 마중 나온다네. 빈부귀천을 가리지 아니하고 어리석음과 지혜를 가리지 않으며, 많이 듣고 청정한 계율 지키는 자 가리지 아니하고 파계하여 죄 깊은 이 가리지 않으시니 다만 마음 돌려 염불 많이 하면 깨어진 기와 조각도 금덩이로 변한다네. 이 글의 뜻은 비록 내 몸이 가난하여 공덕을 짓지 못하고, 지혜가 없어서 법문을 알지 못하며, 파계를 하여 죄장罪障을 범했을지라도 마음 돌려 염불을 많이 하라는 것이다. 4.『선인도 오히려 왕생하거늘, 하물며 악인인가』 에 관한 일 아미타불의 본원은 자력으로 생사를 벗어날 수 있고, 방편이 있는 선인을 위해 세우신 게 아니라, 극중한 악인과 별도의 방편이 없는 무리들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에서 세우신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보살성현들도 또한 (원력에) 붙어서 왕생을 구하고자 하시고, 범부선인들도 역시 여기에 귀의하여 왕생을 원한다. 하물며 죄악범부인데, 더욱 마땅히 이 타력을 의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잘못 이해하여 삿된 견해에 머물지 말지어다. 아미타불의 본원은 『본래 범부를 위한 것이나, 아울러 성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마땅히 잘 이해해서 이 이치를 자세히 알아야 할 것이다. 5.『악한 근기의 왕생』에 관한 일 “악한 근기가 있는데, 이러한 근기들을 왕생하게 하는 것이 본원의 뜻이다” 배워서 이러한 이치를 알게 되었을 때, 정토종을 잘 배운 것이라 말한다. 정토종은 악인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아울러 선인을 거두어들이고, 성도문은 선인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아울러 악인을 거두어들인다. 6.『선악의 근기』에 관한 일 염불하는 사람은 오로지 천생의 근성으로, 선인은 곧 선인으로 악인은 곧 악인으로서의 본래 타고난 성품으로 염불을 한다. 이는 염불로 들어간 까닭에 시종 지계와 파계를 말하지 않고 오직 본래의 성품으로 염불을 하는 것이다. 7.『악을 지은 근기의 염불』에 관한 일 악을 지은 몸인 까닭에 염불을 하라는 것이지, 악을 지을 것을 생각하며 염불하라는 것은 아니다. 마땅히 알라. 8.『계·정·혜가 없는 자는 마땅히 염불을 해야 함』에 관한 일 설사 계·정·혜 삼학을 전부 갖추었을지라도 본원염불을 닦지 않는 이는 왕생할 수 없으며, 비록 계·정·혜가 없을지라도 한결같이 염불하면 반드시 왕생한다. 9.『지혜가 없는 자를 위주로 함』에 관한 일 “무릇 성도문의 수행자는 지극한 지혜로써 생사를 벗어나고, 정토문의 수행자는 아무리 어리석어도 극락왕생할 수 있다. 따라서 성도문으로 나아갈 때는, 지혜를 밝히고 금계를 지키며, 심성을 맑히는 것을 종지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토문으로 들어오는 날에는, 지혜와 계행, 심성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스스로 무익하고 무지한 사람이라 여기면서 본원에 기대어 왕생을 발원해야 할 것이다” 또 말씀하시기를, “법연이 비록 염불을 하고 있으나, 한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 남녀와 똑같아서 오랜 세월동안 수학하여 얻은 지혜를 조금도 의지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10.『지혜가 없는 사람도 삼심을 갖춤』에 관한 일 한결같은 마음으로 염불하며, 왕생을 생각하며 의심치 않는다면, 곧 삼심이 구족한 것이다. 한결같은 마음이란 『지성심』이고, 의심이 없다는 것은 『깊은 믿음』이며, 왕생을 생각하는 마음이란 『회향발원심』이다. 11.『내 몸이 삼심을 갖췄음을 앎』에 관한 일 《대경》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미 『환희용약』하는 마음을 일으켰으니, 삼심을 구족하였다는 징표임을 알 수 있다. 『환희』란 왕생이 결정되었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기뻐하는 마음이다. 왕생이 확실하지 않다고 탄식하는 사람은 아직 삼심을 일으키지 않은 사람이다. 삼심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기뻐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 그렇다면 의심을 품은 까닭에 탄식을 하는 것이다. 12.『본원을 성취함』에 관한 일 염불을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왕생은 부처님께서 해주시는 일이다. 왕생은 불력의 은혜를 말미암은 것인데, 도리어 마음속으로 온갖 계획을 세우고 헤아리려 한다면, 이는 자력인 것이다. 오직 모름지기 칭명을 하며 부처님의 내영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13.『있는 듯 없는 듯若存若亡』에 관한 일 본원의 배를 타면 『있다存』라고 말하고, 본원의 배에서 내리면 『없다亡』라고 말한다. 타력본원을 『탐乘』에는 두 가지 뜻이 있고, 본원에서 『내림下』에도 역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이를테면 악업을 지었을 때와 도심을 일으킬 때이다. 죄업을 지었을 때 본원의 배에서 내리는 것이란, “이와 같이 죄를 짓는 몸으로는 설사 염불을 한다 하더라도 왕생은 결정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갖는다면 곧 배에서 내리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없다亡』라고 부른다. 도심을 일으킬 때 내리는 것이란, “이렇게 도심을 일으켜서 염불하면 틀림없이 왕생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도심이 없다면, 설사 염불을 하더라도 왕생은 결정되지 않는다. 도심이 먼저고 본원은 그 다음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곧 원력의 배에서 내리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없다』라고 부른다. 죄를 지었을 때 탐이란, “이와 같은 죄를 지으면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본원의 배를 타는 까닭에 비록 죄를 지은 몸이지만 결정코 왕생한다”라고 생각한다면 곧 배를 타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있다存』라고 부른다. 도심을 일으킬 때 탐이란, “이러한 도심은 오늘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과거에 세세생생동안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생사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 마음은 나를 구제해줄 수 없고, 오로지 부처님의 원력만이 나를 구제할 수 있음을 안 것이다. 따라서 도심이 있든 도심이 없든 아랑곳하지 말고 오직 모름지기 명호를 부르면서 정토왕생을 할 것이다”고 생각한다면 곧 타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있다』라고 부른다. 주석: 담란조사의 《왕생론주》에서 “신심이 순박하지 않아서 있는 듯 없는 듯하다信心不淳,若存若亡故。”고 말씀하셨다. 14.『잡다한 외연이 없어 정념을 얻은 까닭』에 관한 일 타인에게 큰 선이 있는 것을 보고 내 마음이 위축되지 않는다. 가령 법승사의 구층탑을 보았을 때, 내가 비록 한 치의 탑도 세우지 못했어도 스스로 불안한 마음이 없다. 또한 동대사의 대불을 참배할 때, 내가 비록 반치의 불상도 조성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비하하는 마음은 없다. “칭명을 하는 일념으로 위없는 공덕은 얻고 반드시 왕생한다” 이와 같이 결정된 생각을 갖는 것을 “잡다한 외연이 없어 정념을 얻은 까닭”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 염불하면 아미타불의 본원과 상응하고,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으며, 제불의 증성(證誠: 석가여래의 말씀이 진실임을 증명함)에 수순하는 것이다. 잡행의 열세 가지 손실도 이러한 뜻으로써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석: 선도대사의 《왕생예찬》에서“만약 위와 같이 염념마다 끊이지 않고 목숨을 마칠 때 까지를 기한으로 한다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왕생할 수 있다. 무슨 까닭인가? 잡다한 외연이 없어 정념(正念)을 얻은 까닭이요, 아미타불의 본원과 상응한 까닭이요,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은 까닭이요, 육방제불의 말씀을 따른 까닭이다”고 말씀하셨다. 15.『전수와 잡수』에 관한 일 (염불을 제외한) 여타의 행을 닦을 수 있지만 닦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수심專修心』이고, 여타의 행이 수승하나, 나의 근기로는 닦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비록 닦지 않더라도 『잡수심雜修心』이다. 16.『행자가 태어나는 곳은 심행心行을 따름』에 관한 일 전수염불만 하는 자는 극락국에 태어나고, 여타의 행만 닦는 이는 해만국懈慢國에 태어난다. 그러나 염불과 여타의 선을 동시에 닦는 자 역시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염불을 하는 쪽의 마음이 무거우나, 여타의 행을 섞은 자는 극락에 태어나고, 여타의 행 쪽의 마음이 무거우면, 비록 염불의 조력을 받더라도 해만국에 태어나게 된다. 17.『전념前念에 목숨이 끊어지면 후념後念에 바로 왕생함』에 관한 일 전념후념이란 목숨이 다한 뒤, 몸을 받을 때의 시간이지 수행의 념을 말하는 게 아니다. 왕생을 하는 자가 칭명을 하는 것은 칭명이 정정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칭명을 하며 목숨을 마친 사람은 정정업 가운데서 마친 사람이다. 18.『평소와 임종』에 관한 일 평소에 염불을 하면서 왕생이 결정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임종의 염불에서도 역시 결정되지 않는다. 평소에 염불을 하면서 왕생이 결정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임종시에도 역시 결정된다. 19.『일념의 신심』에 관한 일 믿음으로는 일념의 왕생을 취하고 수행은 일생을 다해야 한다. 일념의 왕생을 의심하는 자는 설사 다념을 하더라도 모두 의심을 품은 염불이다. 일생의 목숨을 마칠 때 한 번 염불을 한 사람도 왕생하거늘, 하물며 일생동안 다념의 공덕을 쌓았는데 어찌 한 번의 왕생을 성취하지 못하겠는가? 일념일념마다 한 사람이 왕생할 수 있는 공덕이 있거늘, 하물며 다념을 했음에도 한 사람도 왕생할 수 없단 말인가? 20.『내지 일념으로도 왕생함』에 관한 일 우리들은 『일념』의 근기가 아니라 『내지』의 근기이다. 또한 『내지 십념』도 이와 같다. 우리들은 『십념』의 근기가 아니라 『내지』의 근기이다. 선도대사께서 해석하시기를, “위로는 일생을 다하고 아래로는 열 번 한 번등의 염불로도 반드시 왕생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래로 열 번』의 근기가 아니라, 『위로 일생을 다하는』 근기이다. 주석: 제18원에서 “내지 십념”을 말씀하셨고, 원성취문에서는 “내지 일념”이라 말씀하셨다. 21.『아미타경의 일심불란』에 관한 일 『일심』이란 마음이 어떤 일에 하나가 되는가? 한결같이 염불하는 자는 아미타불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일체가 되고 만다. 예컨대 천태의 《십의론》에서 말하기를, “마치 세간에서 사람을 모집할 때, 모집하는 사람과 모집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맞으면, 필히 그 일을 이루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하셨는데, 모집을 하는 사람은 아미타불이고, 모집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우리들이다. 이미 한결같이 아미타불을 칭념할 마음을 낸 이상, 벌써 부처님의 마음과 하나 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일심불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위의 『적은 선근복덕인연』에다 생각을 둬서는 안 될 것이다. 22.『아미타경의 선남자와 선여인』에 관한 일 이는 『명호를 집지』하는 몸이 된 까닭에 『선남자·선여인』이라 부르는 것이다. 예컨대 하품상생의 사람은 일생동안 십악을 지은 범부이지만, 맨 마지막에 한 번 염불을 했을 때, 부처님으로부터 『선남자』라는 칭찬을 받았다. 사실 이 사람의 본래 근기는 오탁악세악시五濁惡世惡時의 중생이다. 그런 까닭에 《관념법문》에서 《아미타경》 중의 이글을 해석하기를,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든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든, 모든 죄업을 짓는 범부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23.『아미타경의 믿기 어려운 법』에 관한 일 이 죄악범부가 『칭명만을 의지해 왕생한다』는 것에 대해 중생들이 믿지 않는 까닭에 석가와 제불이 간절히 증성(證誠: 진실한 말씀임을 증명함)을 하는 것이다. 24.『다섯 가지 결정코 왕생함』에 관한 일 1. 아미타불의 본원이 결정됨이라. 2. 석가의 말씀이 결정됨이라. 3. 제불의 증성이 결정됨이라. 4. 선도의 교석敎釋이 결정됨이라. 5. 우리들이 믿음이 결정됨이라. 이러한 뜻이 있는 까닭에 결정코 왕생함이니라. 25.『초청받아 염불함』에 관한 일 타인의 청을 받고 가서 염불을 하는 데에는 세 가지 이익이 있다. 첫째: 자신의 수행이 용맹스럽다. 둘째: 단월(시주)을 도와 염불을 하려는 마음을 내게 한다. 셋째: 대중의 이익을 성취해준다. 공덕에는 체體와 용用 두 가지가 있다. 체는 본인에게 남고, 용은 타인에게 베풀 수 있다. 묘락대사(주:妙樂=荊溪湛然)께서 말씀하기를, “선법의 체를 타인에게 줄 수 없기 때문이다”고 하셨다. 이는 『원컨대 이 공덕으로써』를 해석하는 글이다.
삼부경 대의 1. 『무량수경』 대의 『무량수경』·『관무량수경』·『아미타경』을 『정토삼부경』이라 부른다. 『무량수경』에서는 먼저 아미타불의 사십팔원을 소개하고, 그 뒤에 사십팔원의 성취에 대해 밝혔다. 사십팔원이란, 법장비구가 세자재왕부처님의 앞에서 보리심을 발하여 ‘청정한 불국토를 이룩하여 중생을 성취시키겠다’며 세우신 발원을 말한다. 이 사십팔원 가운데 『무삼악취원無三惡趣願』을 세우거나『불갱악취원不更惡趣願』을 말하거나『실개금색원悉皆金色願』을 말한 것은 모두 제18원을 위한 것이다. 제18원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약 내가 부처가 되었을 때, 시방중생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며 나의 나라에 왕생하고자 내지 열 번만이라도 나의 이름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할 수 없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 사십팔원 가운데 이 원이 특별히 수승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만약 저 나라에 왕생하는 중생이 없다면 『실개금색원』과『무유호추원無有好醜願』등은 무엇을 의지해 성취할 수 있겠는가? 오직 중생의 왕생이 있어야만 비로소 금색의 몸과 잘생기고 못생기고의 차별이 없음과 다섯 가지 신통을 구족함과 숙명宿命을 증오證悟함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선도화상이 『관경소』의 「현의분」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법장비구가 사십팔원을 세우면서 하나하나의 발원마다 ‘만약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나의 명호를 부르며 나의 나라에 왕생하고자 적게는 열 번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할 수 없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고 말씀하셨다. 사십팔원의 하나하나가 모두 이 뜻이다. 대체로 모든 부처님의 발원은 ‘위로는 보리(깨달음)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는’마음이다. 대승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보살의 발원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위로 보리를 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위로 보리를 구하는 본의는 중생을 쉽게 제도하기 위함이다. 요컨대 모든 부처님이 성불을 하신 뒤, 내증內證과 외용外用의 공덕과 중생을 제도하고 이익케 하는 방편은 모두 깊고 한량없으며 우열이 없으시다. 그러나 보살도를 닦으실 때 선교방편의 서원은 각각 다르다. 아미타여래께서는 인위因位에 계실 때 “오로지 나의 명호를 부르는 사람을 섭취한다”고 맹세하셨으며, 조재영겁 동안의 수행을 중생들에게 회향해주셨다.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들의 의지처와 말법시대 중생들의 출리出離에 만약 이 원이 없었다면 더 이상 무슨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아미타여래께서 스스로 “내가 세간을 초월하는 원력을 세운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삼세제불은 이러한 서원을 일으키지 않으셨고 시방보살도 이러한 발원은 없으시다. 아미타불께서 서원하며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내 만약 이 소원 이루어지면 삼천대천세계가 감동하오며, 허공에 가득한 하늘 사람들 진기하고 미묘한 꽃비 내리리라.” 이 때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미묘한 꽃비가 흩날리며, 저절로 음악이 울리며, 허공에서 찬탄해 말씀하시기를, “결정코 반드시 위없는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리라”고 했다. 그런 까닭에 이 원에 대해 의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무슨 이유인가? “성불하신지 지금까지 십겁이 지났기” 때문이니, 믿지 않으면 안 된다. 선도화상은『왕생예찬』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셨다. 저 부처님은 지금 현재 극락세계에서 부처가 되셨으니, 마땅히 본래 서원이 헛되지 않아 중생들이 칭념하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음을 알라! 『무량수경』의 하권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모든 중생들은 그 명호를 듣고 신심을 내어 기뻐하거나 혹은 한 생각만아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회향하여 극락국에 태어나기를 발원한다면 바로 왕생하여 불퇴전에 머물게 될 것이니라. 오직 오역죄를 저지른 자와 정법을 비방한 자는 제외되느니라. 이는 제18원의 성취문이다. 18원에서 비록 『내지 십념』이라 말씀하셨으나 원성취문에서는 『일념』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그 다음의 『삼배왕생문三輩往生文』은 제19원인 『임종현전원臨終現前願』의 성취문이다. 발보리심 등의 행업에 따라 세 가지 무리(三輩)로 나뉘었으나 왕생의 업에 있어서 전부 『한결같이 오로지 아미타불을 부를 것一向專念無量壽佛』을 말씀하신 것은 곧 아미타불의 본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량수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부처님의 본원력에 의하면, 그 이름만 듣고 왕생하길 원하는 자는 모두 다 저 나라에 이르러 저절로 불퇴전에 이르게 되리라. 현통율사玄通律師는 지계를 하는 사람이었다. 먼 길을 가다가 야사野寺에서 하룻 밤 묵게 되었는데, 옆방에서 어떤 분이 이 글을 외우고 있었다. 현통율사가 듣고서 한두 번 정도 따라 외우셨으나 그 뒤로 외우지 않아 잊어버렸다. 나중에 계를 범하는 바람에 죽어서 염라대왕이 있는 전각에 이르렀을 때, 염라대왕 말했다. “그대는 불법이 유포되고 있는 지역에서 태어났으니 만약에 배운 법이 있다면 속히 높은 자리에 올라 설해주길 바란다” 이 때 현통율사는 높은 자리에 올라 마음속으로 기억을 떠올려 생각해보니 모든 것은 다 잊어버리고 오직 야사에서 머물 때 들었던 게송만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래서 “저 부처님의 본원력에 의하면”의 게송을 외우셨다. 염라대왕은 듣자마자 바로 옥관玉冠을 기울이고 예배하며 말하였다. “이 게송은 서방극락세계에 계시는 아미타부처님의 공덕을 높이 드러내는 글이시다” 아미타불의 원력이 불가사의한 일은 이 글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무량수경』의「유통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저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뛸 듯이 기뻐하거나 내지는 단 한번만이라도 염念한다면 이 사람은 큰 이익을 얻고 위없는 공덕을 구족하게 됨을 마땅히 알아라. 이 말씀을 미륵보살에게 부촉하신 것은 『내지 일념』을『큰 이익이 있는 위없는 공덕』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무량수경』의 대의는 이러한 글들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2. 『관무량수경』 대의 『관경』이란, 정선定善과 산선散善을 설하셨으나 염불을 아난존자에게 부촉하시면서 ‘그대는 이 말을 잘 지녀야 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경이다. 아홉 번째 『진신관眞身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는 광명은 염불중생을 섭취하여 버리지 않으신다. 중생을 제도하는 원력이 비록 평등하여 차별이 없지만 인연 없는 중생에게 이익을 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아미타불께서는 평등한 자비의 재촉을 받아 광명이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어 일체 중생과 더불어 전부 인연을 맺기 위해 『광명무량원光明無量願』인 제12원을 세우신 것이다. 또한 명호를 원인으로 중생을 접인하시므로, 모든 중생들이 전부 다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17원에서 다음과 같이 서원하셨다. 시방세계의 한량없는 제불이 모두 나의 이름을 칭찬하지 않는다면 나는 부처가 되지 않겠다. 그다음, 제18원에서는 이렇게 서원하셨다. 내지 열 번 만이라도 내 이름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할 수 없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 마치 석가여래께서 이 땅에서 이 원을 설하신 것처럼 시방세계에 항하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제불여래가 한결같이 설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명의 인연이란, 시방세계를 남김없이 비추어 비추지 못하는 곳이 없으며, 또한 시방세계의 무량한 제불이 한결같이 명호를 칭찬하여 듣지 못하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불도를 이루어 그 이름 온 세계에 떨칠 적에 듣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맹세코 부처가 되지 않으리 라는 서원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광명의 연緣과 명호의 인因이 화합하여 섭취불사攝取不捨의 이익을 얻게 되니 의심해서는 안 된다. 그런 까닭에 『왕생예찬』의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제불이 증득하신 바는 평등하여 똑같지만 행원으로 거두어들인다면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타세존께서는 본래 깊고 크신 서원을 세우시어「광명명호(光明名號)」로써 시방중생들을 섭취하여 교화하신다. 또한, 이 원으로 영원히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수명무량원』을 세우셨으니, 제13원이 그것이다. 요컨대 『광명무량원』은 공간적으로 널리 일체중생을 섭취하기 위함이고, 『수명무량원』은 시간적으로 영원히 일체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인연이 화합하여 광명으로 섭취하는 가운데, 또 불보살의 화신이 항상 백 겹·천 겹으로 이 사람을 둘러싸고 섭취하고 보호하시니, 신심은 더욱 더 자라나고 뭇 고통은 전부 다 사라지게 된다. 또한, 임종시에는 부처님께서 몸소 내영을 해주시니 온갖 삿된 업의 계박이 장애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중생이 임종할 때, 온갖 괴로움으로 들끓고 심신이 불안하며, 나쁜 인연들이 바깥으로 이끌고 망념은 안에서 재촉하며, 경계境界·자체自體·당생當生의 세 가지 애착이 다투어 일어고 제6천의 마왕이 바로 이 때에 위세를 드러내어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갖가지 장애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임종시에 아미타불께서 틀림없이 직접 보살성중들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모습을 나투게 되니, 제19원이 그것이다. 따라서 임종할 때에 이르러 부처님께서 몸소 내영하시니, 행자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선정에 든 듯 즉시에 연화대에 올라 안양보토(극락)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익이 있는 까닭에 “염불하는 중생을 섭취하여 버리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이 『관경』에서 “삼심을 갖춘 자는 틀림없이 저 나라에 왕생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삼심』이란 첫째는 『지성심至誠心』이요, 둘째는 『심심深心』이요, 셋째는 『회향발원심回向發願心』이다. 비록 삼심을 따로 구분하였으나 그 요점은『심심』속에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선도화상은 『관경소』에서 삼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하셨다. 지至는 진眞이요, 성誠은 실實이다. 일체 중생이 신·구·의 삼업으로 닦은 이해와 실행(解行)은 반드시 진실한 마음으로 지어야지, 겉으로는 어질고 착하고 정진하는 척하면서 안으로는 허망하고 거짓된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히려는 것이다. 그 이해와 실행이란, “죄악생사범부가 아미타불의 본원에 의지하여 열 번·한 번의 염불로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해와 실행은 진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행이다. 겉으로는 본원을 믿는 척하면서 안으로 의심을 품는 것은 진실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심』이란, 깊이 믿는 마음을 말한다. 선도화상이 다음과 같이 해석하셨다. 첫째, 결정코 자신은 현재 죄악생사 범부로서 무량겁 이래 항상 침몰하고 항상 유전하여 벗어날 기연이 없음을 깊이 믿는다. 둘째, 결정코 저 아미타불께서 사십팔 대원으로 중생들을 섭수하시니, 의심과 걱정 없이 부처님의 원력을 타고 반드시 왕생할 수 있음을 깊이 믿는다. 시작부터 “죄악생사범부로서 무량겁 이래 생사로부터 벗어날 인연이 없었음을 믿는다”고 말한 것은, 이는 곧 선근이 끊이진 천제闡提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중생도 한 번·열 번의 염불로 시작 없는 옛적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생사윤회로부터 벗어나 저 극락세계라는 퇴전이 없는 정토에 왕생할 수 있으니, 마땅히 믿음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별원別願이 불가사의하다는 것은 범부의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념함에 의지하면 오역과 십악의 죄를 지은 이들도 모두 왕생할 수 있는 것은 별원의 불가사의한 힘에 의한 까닭이니 그 누가 의심할 수 있겠는가! 선도화상이 『관경소』의 「심심석深心釋」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너희 중생들은 무량겁 이래 금생에 이르기까지 신·구·의 삼업으로 일체 범부와 성인의 몸에 갖추어 지은 십악十惡·오역五逆·사중四重·방법謗法·천제闡提·파계破戒·파견破見 등의 죄를 아직 다 제거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죄들은 삼계에 매여 악도에 속할 탠데 어찌하여 일생동안 복을 닦고 염불을 한다고 해서 곧장 저 무루와 무생의 나라에 들어가 길이 불퇴전의 지위를 증득할 수 있단 말인가? 답하기를, 제불이 가르쳐주신 수행은 그 수가 티끌과 모래의 수자보다 많지만 중생들의 기연은 유정마다 한결같지 않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한다. 예컨대 밝음은 어둠을 깨트릴 수 있고 허공은 존재를 머금을 수 있으며, 대지는 만물을 싣고 기를 수 있으며, 물은 만물을 축축하게 만들 수 있고, 불은 사물을 만들고 파괴할 수 있지만 이러한 일들은 모두 상대적인 법이라 부른다. 눈에 보이는 것만도 천차만별이거늘, 하물며 불법의 불가사의한 힘에 어찌 갖가지 이익이 없겠는가! 극락세계의 물과 새와 나무숲들이 모두 미묘한 법을 지저귀는 것도 비록 불가사의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모두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해서라는 것은 믿으면서 어찌하여 유독 열여덟 번째 『내지 십념』의 원은 의심한단 말인가? 저 화엄의 삼무차별三無差別·반야의 진정허융盡淨虛融·법화의 제법실상諸法實相·열반의 실유불성悉有佛性을 그 누가 믿지 않는가! 저것도 불설이요, 이것도 불설인데, 어찌하여 저것은 믿으면서 이것은 의심한단 말인가? 석자의 명호가 비록 적기는 하나 여래의 모든 내증內證·외용外用의 공덕과 온갖 공덕이 들어있는 항하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깊고 깊은 법문들이 모두 다 그 안에 들어있으니 어느 누가 측량할 수 있겠는가? 『관경소』의 「현의분」에서 이 명호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하셨다. 아미타불은 인도의 정확한 발음인데, 여기서는 무량수각無量壽覺이라 번역한다. 무량수란 법이요, 이를 깨달은 자는 사람이다. 사람과 법이 함께 드러난 까닭에 아미타불이라 부른다. 또 사람과 법을 말하자면, 관하는 대상경계에는 곧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정보正報요, 또 하나는 의보依報이다. 그렇다면 아미타여래께서 만덕을 갖추시고 무루를 증득하신 법문을 비롯하여 관음·세지·문수·지장·용수, 내지는 저 나라의 보살·성문 등에 이르기까지 갖추신 이와 사에 대한 관행(事理觀行)· 선정과 지혜의 공력(定慧功力)·내증의 지혜·외용의 공덕이 전부 다 이 석자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극락세계에 모든 법문 중 하나라도 빠졌겠는가? 그러나 이 석자명호를 각 종파에서는 그 종파의 교리로써 해석을 하였다. 진언종에서는 아阿자가 본래 불생의 뜻으로 여기서 42자가 출생했으며, 일체법이 아자를 여의지 않았기에 공덕이 매우 깊은 명호라 부른다. 천태종에서는 공·가·중(空假中) 삼제三諦와 정·료·연(正了緣) 삼의三義와 법·보·화(法報化) 삼신三身으로써 여래의 모든 공덕이 모두 명호를 벗어나지 않는 까닭에 공덕이 막대한 명호라 말한다. 이처럼, 모든 종파에서는 각자 본종의 교리로써 아미타 석자를 해석하였다. 그러나 지금 정토종의 뜻은, 진언종에서 말하는 아자의 본래 불생의 뜻과 천태종에서 말하는 삼제일리三諦一理의 법과 삼론종에서 말하는 팔불중도八不中道의 요지와 법상종에서 말하는 오중유식五重唯識의 뜻과 같은 삼라만법森羅萬法이 모두 다 널리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극락세계에는 한 법도 빠짐이 없으나 그렇다고 반드시 이와 같이 아미타불의 본원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오직 깊은 믿음으로 명호를 칭념하면 반드시 왕생한다고 하였다. 기파耆婆와 편작扁鵲의 만병을 치유할 수 있는 약은 여러 가지 초목을 섞어서 만든 약으로, 환자가 비록 이 약이 몇 그람의 풀과 몇 냥의 나무로 만들어졌는지 몰라도 약만 복용한다면 만병이 다 낫게 된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 약을 믿지 못하고서 오직 나의 병이 위중한데 어떻게 이 약으로 치유할 수 있겠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심하여 복용하지 않는다면 기파의 의술과 편작의 비방秘方조차도 공연히 아무런 이익이 없을 것이다. 아미타불의 명호 역시 이와 같다. 만약 자신의 번뇌와 악업의 병이 매우 위중한데, 어찌하여 단지 명호를 부른다고 곧 왕생을 할 수 있겠냐고 의심하여 믿지 않는다면 아미타불의 서원과 석가세존의 말씀 역시 헛되어 아무런 효험이 없다. 오직 마땅히 우러러 믿을 것이니, 양약을 얻고도 복용하지 않아 죽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곤륜산까지 가서 옥을 가져오지 못하고, 전단 숲에 들어가 가지를 꺾어오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후회가 남을 테니 마땅히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아! 우리는 무량겁 이래 당연히 부처님의 출세出世를 만났을 것이고, 보살의 화도化道 역시 만났을 것이다. 또한 과거의 제불과 현재의 여래는 모두 숙세의 부모요, 다생多生의 친구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보리를 증득했건만 우리들은 무엇을 의지해 생사로부터 멀리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부끄럽고도 수치스러우며 슬프고도 통탄할 일이다. 본사 석가여래께서는 중생의 큰 죄의 산으로 들어가시고 삿된 견해의 숲에 은거하시며 삼업이 방일하고 육근을 방종하는 사람들을 나의 나라에서 교화하여 해탈케 하시기를 서원하셨다. 석가여래가 어떻게 중생들을 구제하시겠다는 서원을 세웠는지를 살펴보면, 아미타불께서 인위因位에 계실 때 그 이름이『무쟁념왕無諍念王』이셨으며, 발보리심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해탈케 하겠다는 서원을 세우시고 국왕의 지위를 버리고 중생을 섭취하시겠다는 발원을 하신 것이다. 석가여래의 그 때 이름은 『보해범지寶海梵志』로 무쟁념왕의 대신이었는데, 함께 발보리심하여 “나는 기필코 예토에서 부처가 되어 악업중생을 인도하겠다”는 서원을 세우셨으니, 이것이 그의 발원이다. 무량겁 이래 제불이 출현하시어 인연에 따라 중생들의 근기를 살피시며 각자 제도한 중생의 수는 대지의 티끌과 모래의 수자를 초과한다. 대승을 설하기도 하고 소승을 설하기도 하며, 실교를 펴기도 하고 권교를 펴기도 하였으니, 인연 있는 근기는 모두 그 이익을 얻었다. 지금 석가세존이 오탁악세에서 팔상성도八相成道하시고는 방일하고 삿된 견해를 가진 중생들이 윤회를 벗어날 기약이 없음을 가엾이 여기시어 우리들에게 이렇게 법문하셨다.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가면 극락세계가 있고, 아미타라는 명호를 가진 부처님이 계시는데, 이 부처님께서 ‘내지 열 번만이라도 나의 이름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할 수 없다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하셨다. 이제 이미 성불을 하셨으니, 응당 속히 염불해야 한다. 생사에서 벗어나는 길이 비록 많기는 하나 악업과 번뇌가 많은 중생이 속히 생사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이 법문만큼 뛰어난 것은 없다” 그러면서 간절히 권유하시기를, “절대 의심하지 말라! 육방에 계시는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이 수많은 부처님들이 이 말씀이 진실하다고 증명을 해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석가세존께서 이렇게 사유하셨다. “내가 만일 예토에 오래 머물게 되면 삿된 견해와 방일한 중생들이 나를 비방하는 까닭에 도리어 악도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오탁악세에 출현한 본회는 오직 중생들에게 이 일을 일러주기 위함이었는데, 이제 이미 소원성취를 하였으니, 마땅히 열반에 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아난존자에게 간절하게 다음과 같이 부촉하신 것이다. “이 법을 잘 지녀서 먼 후대까지 유통시켜 한다” 그리고는 발제하跋提河변, 사라나무 숲이 있는 곳에서 80세가 되던 봄, 2월 15일 한밤중에 머리는 북쪽으로 얼굴은 서쪽을 향해 열반에 드셨다. 그 때 해와 달은 빛을 잃었고 초목은 색깔이 변했으며, 천룡팔부와 금수조류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통곡하고 땅에 엎드려 울부짖었다. 아난과 목련을 비롯한 여러 큰 제자들은 슬픔으로 흐르는 눈물은 머금고 서로 의논하였다. “석가세존의 크신 은덕을 입은 지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 교화의 인연이 다 해 황금의 몸은 홀연히 우리의 곁을 멀리 떠나셨다. 그동안 세존께서 저희들의 질문에 답하시는 경우도 있었고, 세존께서 질문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설하시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을 누구에게 여쭈어야 하는가? 반드시 여래의 말씀을 결집하여 미래로 전해야 하고 아울러 유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에 다라나무 패엽貝葉을 펼쳐서 부처님 일생동안의 금언金言을 모두 기록하였다. 삼장법사 등이 이를 번역하여 중국에서 홍양하시고, 우리나라에도 전해오게 되었으니, 모든 종파에서 배우고 있는 부처님 일대기의 성스러운 가르침이 곧 그것이다. 그러나 아미타불의 화신이신 선도화상이 당나라 땅에 태어나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여래께서 오탁악세 출현하여, 근기 따라 방편 베풀어 중생교화하시니 많이 들어 득도함을 설하시고, 적은 이해로 삼명 증득을 설하시며, 복과 지혜 닦아 장애제거 가르치고, 좌선하여 사량함을 가르치네. 온갖 법문 모두 해탈하나 염불하여 서방세계 가는 것만 못함일세. 위로 일생에서 십념 이르기까지, 세 번 다섯 번 염불하면 내영하니 아미타불 서원 지중하여 범부중생 염불하면 곧장 왕생케 하네. 가히 석가세존께서 출현하신 본회가 오직 여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스스로 믿고 남들이 믿도록 가르침은 어려운 가운데 더욱 어려운 일이다. 대자비로 보화普化 전하오니 진정으로 부처님 은혜 갚음일세.”를 두고 말한다면 석가세존의 은혜를 갚으려거든 역시 오직 이 염불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금생을 헛되어 보낸다면 생사의 출리는 어느 때를 기약할 수 있겠는가? 응당 속히 믿음을 내어 생사의 강을 건너야 할 것이다. 『회향발원심』이란 각자가 갖춰야 할 일이다. 극락국토의 안락함을 듣고 그 누가 흠모하지 않겠는가! 선도화상의 뜻은 “극락은 보토報土이고, 아미타불은 보불報佛이시다. 그렇다면 아직 미혹을 끊지 못한 범부가 자력으로 비록 왕생할 수 없으나 아미타불의 별원의 불가사의한 힘에 의하여 죄악생사범부가 한 번·열 번의 염불로 바로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는데 있다. 하지만 비록 정토왕생을 원하면서도 왕생이 어려울 거라고 의심하는 것은 죄업이 무거움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죄업을 의지한다면 모든 중생들이 다 왕생할 수 없을 것이고, 만일 왕생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 원력을 의지해서이다. 이미 원력을 의지하고 있는 이상, 어찌하여 왕생을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단 말인가? 아미타불께서 극락정토를 건설하신 것은 원력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아미타불께서 맹세하기를, “내지 십념으로 만약 왕생할 수 없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이 원력에 의해 감득한 국토이기 때문에 이 국토는 염불하는 중생이 왕생하게 되는 정토인 것이다. 지금 이 『관경』을 의거해 말한다면, 오역과 십악을 지은 죄인들이 임종할 때가 다 되어 비로소 선지식의 권유에 따라 열 번 또는 한 번의 염불로 왕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들의 죄업이 비록 무겁더라도 오역죄를 짓지 않았고, 행업이 비록 서툴더라도 열 번의 염불은 넘었으며, 임종 전에 아미타불의 서원을 듣고 깊은 믿음을 내었으니, 이미 극락왕생한 사람과 마찬가지다. 또한, 보리심이란 각 종파마다 그 뜻이 다르지만 정토종의 뜻은 정토왕생을 원하는 마음을 보리심이라 부른다. 또한, 왕생을 원한다는 것도 내 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 나라에 태어난 후에 다시 이 예토에 와서 속히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어찌 부처님의 뜻과 계합하지 않겠는가! 3. 『아미타경』대의 『아미타경』에서 먼저 극락세계의 의보와 정보의 공덕을 설하신 것은 중생들에게 즐거움을 원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함이다. 그 뒤에 왕생의 행을 밝히면서 적은 선근으로는 왕생할 수 없고 오직 아미타불의 명호를 일일에서 칠일동안 집지하면 곧 왕생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중생들이 이 일을 믿지 못할까 걱정하시어 육방에 계시는 항하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부처님들이 다함께 삼천대천세계에 혀를 내밀면서 석가불의 말씀이 진실하다고 증명하셨다. 선도화상이 『관념법문』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셨다. 만약 이 증명에 따라 왕생할 수 없다면 육방제불이 내미신 혀는 한 번 입 밖을 나오고 난 뒤, 끝내 입으로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저절로 썩어문드러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일을 의심한다는 것은 비단 아미타불의 본원만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석가세존의 말씀조차 의심하는 것이다. 석가세존의 말씀을 의심한다는 것은 곧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니, 곧 대천세계를 두루 덮고 있던 혀가 썩어문드러졌다는 것이다. 또한, 이 일을 믿는다는 것은 비단 아미타불의 본원만 믿는 것이 아니라 석가세존의 말씀도 믿는 것이고, 석가세존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곧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도 믿는다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일체 법도 믿는 것이다. 일체 법을 믿는 것이란 곧 일체 보살을 믿는 것이니, 이는 곧 일체 삼보를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은 광대한 믿음이다. 선도화상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범부중생 의심의 집착 끊기 위해 모두 혀 내밀어 삼천대천세계 덮으시어 칠일동안 명호를 칭념함을 함께 증명하고 또한 석가의 말씀이 진실임을 나타내니 육방여래 혀 내밀어 오로지 명호 불러 정토왕생함을 증명하네. 저 곳에 이르러 연꽃 피어 미묘한 법문 듣고 나면 십지의 원행 저절로 드러나고 삼업이 한결같아 난잡하지 아니하면 백 가지 보배연꽃 때마침 나타난다네.
염불왕생의 念佛往生義 『염불왕생』이란 말은, 아미타불의 본원에서 맹세하기를, “나의 명호를 부르는 사람이 만약에 나의 나라에 왕생하지 못한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하셨으므로, 아미타불이 이미 성불을 하신 이상, 이 명호를 부르는 자는 반드시 왕생한다는 것이다. 이 서원을 깊이 믿고 내지 일념조차도 의심하지 않는다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이 왕생한다. 그러나 비록 염불수행을 하고 있어도 의심을 하는 자는 왕생할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의 의심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 몸의 죄가 무거우니 설사 염불을 하더라도 왕생할 수 없을 거라 의심하는 경우. 내가 비록 염불을 하고 있지만 세간 일에 바빠서 왕생할 수 없을 거라 의심하는 경우. 내가 비록 염불을 하고 있지만 마음이 맹리猛利하지 않아 왕생할 수 없을 거라 의심하는 경우. 이는 모두 염불의 공덕을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의심이 생겨난 것이다. 또한 바로 죄업의 장애가 무겁기 때문에 죄업의 장애를 소멸하기 위해 부지런히 염불해야 할 것인데, 죄업의 장애가 무겁다고 해서 염불해도 왕생하지 못할 거라고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병이 위중하기 때문에 반드시 약을 복용해야 하는 것인데, 만약 병이 위중하기 때문에 약을 복용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그 병이 어느 세월에 낫겠는가? 십악과 오역의 죄를 지은 사람 역시 선지식의 가르침대로 한 번·열 번의 염불로 왕생할 수 있다. 선도화상이 “한 번의 칭념으로 다겁생의 죄를 제거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죄업의 장애가 설사 무겁더라도 염불왕생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또한, 선근이 없기 때문에 염불수행을 하면 곧 위없는 공덕을 얻게 되지만 여타의 선근이 많은 자는 설사 염불을 하지 않더라도 의지할 곳이 있다. 그러나 선도화상은 “마땅히 내 몸에 선근이 적음을 믿는 까닭에 본원의 배를 타기 위해 염불해야 한다”고 권장하며 말씀하셨다. 『무량수경』에서는 “한 번 칭명을 하면 큰 이익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고, 또 “즉시에 위없는 공덕을 얻게 된다”고 설하셨는데, 하물며 염념상속念念相續이겠는가! 따라서 설사 선근이 없더라도 염불왕생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또한, 비록 염불을 하지만 그 마음이 맹리猛利하지 못한 것은 말세 범부의 관습이어서, 그 마음 가운데 아미타불의 본원에 의탁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비록 주군의 은총이 지중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일을 받들 때 역시 조금이나마 게으름을 피우는 일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게으름을 피우더라도 주군의 은혜를 아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염불조차 맹리하지 않다면, 어떤 행에 맹리할 수 있겠는가? 만약 맹리하지 못하다고 해서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면 임종 시에는 어떻게 하겠는가? 비록 맹리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닦을 마음만 있다면 곧 뜻이 있다는 징표이다. 이미 뿌리와 싹이 있는 이상, 당연히 발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마음이 없다고 해서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면 허망하게 살다가 헛되이 죽게 되어 후회가 막급할 것이다. 더욱이 선도화상께서 “산란하게 움직이는 근기를 가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니, 맹리한 마음이 없더라도 왕생을 의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세상 일이 바빠서 틈이 없는 사람은 염불수행을 하는 것이 알맞다. 무슨 이유인가? 남·여·귀·천이 행·주·좌·와를 가리지 않고, 시간과 장소 등의 여러 조건에 상관없이 수행하기가 어렵지 않으며, 심지어 임종에 이르러서도 염불만큼 편리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여타의 행은 본래부터 세상일에 바쁜 사람이 닦기 어려운 것이다. 오직 염불만이 재가와 출가를 막론하고 지혜가 있고 없고 와 상관없이 가장 편리하여 비록 세상일의 장애가 있더라도 염불하면 왕생을 못하는 이가 없다. 요컨대 오직 이 염불만이 수도심이 없는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법이다. 만약 세상일을 버리기 어려워 오로지 세상일에만 힘쓰면서 염불을 하지 않는다면, 이 몸은 의지할 곳이 없게 되고, 이 마음에는 쌓아놓은 것이 없게 된다. 얻기 어려운 사람 몸 얻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 만났는데, 무상이 시시각각 다가오니, 늙고 젊음 정해지지 않았건만 병이 와도 미리 알지 못하고, 죽음에 가까움을 그 누가 깨달으랴! 생사대사는 마땅히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비록 염불에는 응당 삼심을 갖춰야 한다는 말하지만, 이것 역시 이러한 이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삼심』이란, 첫째는 『지성심』이요, 둘째는 『심심』이요, 셋째는 『회향발원심』이다. 『지성심』이란 『진실한 마음』을 말한다. 흔쾌히 왕생을 원하며 명호를 칭념함이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서 행하는 것을 지성심이라 부른다. 만약 이러한 마음이 없이 오로지 겉모습만 드러내는 것은 허망하고 거짓되어 진실하지 않음(虛假不實)이라 말한다. 또한, 마음속으로 오로지 삼계윤회를 하지 않을 것만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오로지 극락왕생을 하고자 한다면, 이와 같이 염불하는 자는 곧 왕생할 수 있다. 따라서 겉으로 그러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도 왕생한 자가 있고, 비록 그러한 모습을 보였으나 왕생하지 못한 이도 있다. 이 마음이 다만 유위와 무상한 경계를 곰곰이 생각하여 이 몸을 싫어하며 염불하는 자는 저절로 지성심이 갖춰지게 된다. 『심심』이란 『신심(信心:믿음)』을 말한다. 내 몸이 죄악생사범부라는 사실을 믿고, 아미타불께서 본원으로써 틀림없이 중생을 접인 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아미타불께서 서원하시기를, “염불하여 왕생하지 못한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이미 성불을 하신 이상, 명호를 칭념하는 자는 반드시 왕생한다. 이와 같이 믿는다면 저절로 심심이 갖춰질 것이다. 『회향발원심』이란 닦은바 모든 선근을 극락에 회향하여 저 나라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마음이니, 다른 뜻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삼심의 이름이 비록 각각 다른 것 같아도 요지는 오직 『일향전념一向專念』에 있을 뿐이다. 한결같이 아미타불의 본원에 의지하여 부처님의 명호를 부를 뿐, 다른 일로 섞이지 않아야 한다. 무엇 때문인가? 수명의 장단과 과보의 심천深淺은 모두 숙세 업력의 과보이다. 공연히 부처와 신들에게 기도할 바에는 차라리 한결같이 아미타불께 맡기는 것만 못하나니, 두 가지 마음이 없다면 틀림없이 결정되지 않은 업을 왕생을 할 수 있는 결정된 업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기도가 무익한 이 세상으로 인해 대사(생사해탈)인 후세를 잊어버린다면, 그것은 본의가 아니다. 후세를 위한 까닭에 염불이 정정업인 이상, 이것을 제쳐놓고 다른 수행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일향전념을 권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염불만하면 곧 왕생할 수 있으니 부족함이 없다고 해서 악업을 꺼려하지 않고, 마땅히 자비를 실천해야 함에도 실천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염불을 할 수 있음에도 부지런히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일들은 부처님 가르침의 법규와 서로 어긋나는 것이다. 예컨대 부모의 자비는 착한 자식이든 못된 자식이든 똑같이 양육한다. 그러나 착한 자식에 대해 기뻐하고 못된 자식에 대해서는 탄식한다. 아미타불께서 일체중생을 가엾이 여기시어 선인과 악인을 다 같이 구제를 하시지만 선인을 보면 기뻐하시고 악인을 보면 슬퍼하신다. 마치 좋은 밭에 좋은 씨앗을 뿌려야 하는 것처럼 마땅히 선인이 되어 염불해야 할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요컨대, 마땅히 늘 염불하며 왕생에다 마음을 두어 부처님의 접인을 기다려야 한다. 병으로 눕거나 임종할 때가 되면, 이 마음은 놀라지 않고 오로지 왕생만을 바랄 뿐이다. 염불대의念佛大意 말법시대 오탁악세의 중생들이 왕생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다른 법문을 닦아서는 안 되고, 오직 선도화상의 해석에 의거하여 일향전수一向專修를 하는 염불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한결같이 믿고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는 극히 드물다. 왜냐하면 다른 법문에 마음을 두고 있거나 혹은 염불의 공덕을 귀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토왕생을 위한 진실한 발원과 전일하고도 깊이 믿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드문 것이 아니겠는가? 마땅히 이러한 이치를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설사 천태종과 법상法相종에 관련된 성인의 가르침이 담긴 모든 경론을 배우더라도 뜻이 전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불도를 닦으려면 마땅히 시대와 근기를 잘 살펴야 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다섯 번째 오백년이 되면, 지혜를 밝히고 번뇌를 끊기가 어려울뿐더러 마음의 물을 맑혀서 선정을 얻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수행자들이 염불문으로 많이 들어오고 있으니, 도작선사와 선도화상 과 같은 정토종의 조사들이 바로 그 시기의 사람이다. 하물며 요즘은 다섯 번째 오백년, 즉 투쟁이 견고한 시대여서 여타의 법문은 더욱 성취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염불법문은 말법의 말기에도 이익을 얻을 수 있거늘, 하물며 지금은 말법 만년의 초입인데 한 번 아미타불을 부르기만 하면 어찌 왕생할 수 없겠는가! 비록 우리들이 그 그릇이 못 된다 하더라도 어찌 말법시대 말기의 중생들과 같겠는가! 또한, 설사 석가세존의 재세시라도 즉신성불卽身成佛을 한 자는 용녀龍女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설사 즉신성불을 할 수 없더라도 이 성도문을 닦기에 적합한 보살·성문과 이 밖의 권자(權者:불보살의 화신)·성인聖人과 이 안의 비구·비구니 등과 지금의 경론의 배우는 학자·『법화경』의 수행자 등, 이들은 모두 최상의 근기와 최상의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처한 시대와 근기로는 설사 성도문을 배우더라도 그 사람들에게는 더욱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은 말법시대의 중생들을 아미타불께서 미리 아시고 오겁 동안의 사유를 통하여 마흔여덟 가지 서원을 세우신 것이다. 그 중의 제18원에서 “시방세계 중생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며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내지 열 번만이라도 나의 이름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하지 못한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우셨는데, 이미 성불을 하신지 10겁의 세월이 흘렀다. 이는 석가세존께서 설하신 경, 즉 『무량수경』 등의 정토삼부경이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우리와 같은 중생들은 마땅히 오로지 염불수행을 하며 왕생을 기약해야 한다. 만약 악업이 많은 중생들이 아미타불의 서원만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면 석가세존이 설하신 정토삼부경에 진실한 말씀이 어찌 한 마디도 없겠는가? 더군다나 시방제불의 증성(證誠:석가불의 말씀이 진실함을 증명함) 역시 오직 이 경에서만 보일 뿐, 다른 법문 중에 이와 같은 증성을 본 적은 없다. 그러므로 성도문의 시대가 이미 지났고 우리의 몸 역시 감당할 수가 없으니, 선정과 지혜를 닦기 보다는 차라리 현재에 이익이 있으면서도 제불이 증성하신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또한, 수행자 중에 어떤 사람은 극락은 천박하고 아미타불은 열등하다고 여기면서 밀엄화장密嚴華藏의 세계를 기대하는데, 이는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무명을 끊은 보살만 갈 수 있을 뿐, 그 외에는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일향전수一向專修를 하는 염불문에 들어와서 매일 별도로 삼만 번, 혹 오만 번·육만 번, 내지 십만 번씩 전수염불을 하는 까닭에 여태껏 수지독송의 공덕을 쌓아오던 여러 경전들을 더 이상 독송하지 못한다면 죄가 될까 두려워하는 이러한 의심을 가진 무리들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말법시대의 중생들이 성취하기 어려운 행을 닦을 바에는 어찌 먼저 아미타불의 원력을 타고 염불왕생을 성취하여 정토에서 아미타불·관음·세지를 친견하고 모든 법문을 배우면서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만 하겠는가? 또한, 말법시대의 중생들이 전수염불을 해야 한다는 것에는 수많은 해석이 있다. 그 중에 『관경소』 제3 「산선의」에서 선도화상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셨다. 나머지 모든 행들은 비록 선善이라 부르지만, 만약 염불과 비교를 한다면 전혀 비교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여러 경전 중의 도처에서 염불의 공덕을 널리 찬탄하신 것이다. 예를 들어 『무량수경』 의 48대원 가운데서는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 왕생을 하는 것을 밝히셨고, 또 『아미타경』 가운데서는 하루에서 이레 동안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 왕생하는 것을 밝히셨으며, 또 시방세계의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은 모든 부처님들께서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주셨고, 또 이 경(관무량수경)의 정선定善과 산선散善의 글 가운데서는 오직 명호를 불러 왕생함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예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널리 염불삼매를 드러냄을 마친다. 또한, 선도화상의 『왕생예찬』 중의 ‘전수와 잡수에 대한 글’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잡수雜修를 하여 왕생을 하는 자는 백 명 중에 한·두 명이 드물고, 천 명 중에 세 명·다섯 명이 드물다. 전수專修를 하는 자는 열이면 열이 왕생하고, 백이면 백이 왕생한다. 이러한 것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염불문으로 들어온 이상, 일향전심으로 다른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높은 산에 사는 사람조차 왕래할 수 없는 가파른 산을 힘이 약한 사람이 돌 모서리나 나무뿌리를 잡고 올라가려는 것은 마치 잡행을 닦아서 왕생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만약에 저 산봉우리로부터 드리워진 밧줄을 잡고 오른다면 마치 아미타불의 원력을 깊이 믿고 한결같이 염불하여 왕생하는 것과 같다. 또한, 일향전수를 하는 자에게는 세 가지 마음三心이 저절로 갖춰지게 된다. 세 가지 마음이란 첫째는 ‘지성심至誠心’이요, 둘째 ‘심심深心’이요, 셋째는 ‘회향발원심回向發願心’이다. ‘지성심’이란, 다른 부처님께 예배하지 않고 오직 아미타불께만 예배하며, 다른 수행을 하지 않고 오직 아미타불만 부르니 전일하고 또 전일하다는 것이다. ‘심심’이란, 아미타불의 본원을 깊이 믿는 것이다. 내 몸은 시작 없는 옛적부터 죄악생사범부로서 생사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으나 일심으로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본원에 기대어 한결같이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명호를 부른다면 염념念念마다 80억겁의 생사중죄를 소멸하게 되며 마지막 임종 시에는 틀림없이 아미타불의 영접을 받게 된다. ‘회향발원심’이란, 자타의 행을 모두 진실한 마음으로 회향하고 발원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마음이 갖춰지면 반드시 왕생하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이라도 빠지면 왕생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한다면 다른 행을 섞는 것이 비록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마음을 따져본다면 여전히 염불만 해서는 왕생이 결정되지 않을 거라고 여겨 조금이나마 의심이 있기 때문에 다른 법문을 덧붙이는 것이다. 또한, 이 세 가지 마음 중의 ‘지성심’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이해를 하고 있는데, 특히 본인이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확고히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미타불의 본원의 본뜻에 위배되는 것으로 신심이 부족한 것이다. 아무리 지극정성인 사람이라도 역시 죄업을 짓는 범부의 몸으로, 자신의 역량에 의지하여 왕생을 이루고자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오직 아미타불 본원의 불가사의함에 의지해야만 비로소 왕생할 수 있다.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본원은 본래 깊은 정성도 없고 착하지도 않은 사람을 위해 세우신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알고 진실로 전수염불을 할 수 있는 자는 이 세간에 드문 사람이다. 그런 까닭에 담란대사께서 비록 지혜가 고원高遠하나 역시 사론四論의 강설을 버리고 오로지 왕생의 업을 닦으신 것인데, 한결같이 오로지 끊임없이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 현재 이미 왕생을 하셨다. 도작선사 역시 강설을 버리고 염불수행을 하셨으며, 선도화상도 잡수雜修가 싫어 전수염불을 부지런히 하셨던 것이다. 또 도작선사의 권유에 따라 병주 지방 세 현(幷州三縣)에 사는 사람들 중 칠세 이상이 한결같이 염불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일본)의 말법중생들은 어찌 감히 잡수를 좋아할 수 있겠는가? 오직 마땅히 속히 아미타불의 본원과 석가세존의 말씀, 그리고 도작·선도의 주석을 배워야 할 것이다. 잡수를 해서 왕생이 결정되지 않을 바에는 어찌 전수를 하여 왕생이 결정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저 도작·선도 등은 비록 염불문 중의 대덕일지라도 따를 자가 없으시다. 법상종의 자은慈恩대사가 『서방요결』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셨다. 말법 만년에 다른 경전들은 다 사라지고 아미타불의 한 가르침만이 더욱더 중생을 이익케 한다. 또 말씀하시기를, “삼공구단(三空九斷)의 문장과 십지오수(十地五修)의 가르침을 배우기에는 살아있는 세월이 촉박하고 죽을 날이 멀지 않다. 그러니 다문多聞의 광업廣業을 그만두고 염불의 한 가지 수행에 전념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셨다. 게다가 『대성죽림사기大聖竹林寺記』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대산 죽림사의 대강당에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동서방향으로 서로 마주보고 앉아 중생들을 위해 미묘한 법문을 설하셨다. 이때 법조선사가 무릎을 꿇고 문수보살님께 여쭈었다. “말법악세末法惡世의 범부들이 어떤 법을 닦아야만 영원히 삼계를 벗어나 정토에 왕생할 수 있습니까?” 이에 문수보살이 답하셨다. “정토에 왕생하고자 한다면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수행만한 것이 없고, 단박에 보리(깨달음)를 증득하는 길은 오직 칭념을 하는 한 (염불)문에 있다. 그런 까닭에 석가세존 일생의 성스러운 가르침에 아미타불에 대한 찬탄이 많은 것이니, 하물며 미래 악세의 범부들이겠는가!” 이처럼 중요한 문구와 지혜로운 자들의 가르침을 듣고도 여전히 신심이 없고, 태어나기 어려운 인간 세상에 태어나고도 쉽게 갈 수 있는 정토에 가지 않는다면 후회한들 어찌하리오! 그러나 요즘 전수염불을 하는 행자들 가운데 자주 비방과 비난·조롱을 받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이것 역시 옛날의 권자權者들이 미리 알고 있었던 일이다. 선도화상의 『법사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존의 설법이 끝날 무렵, 은근히 미타의 명호를 부촉하시니 오탁이 증가할 때 의심과 비방이 많아지고 승속이 서로 싫어하여 들으려 하지 않는다네. 수행자를 보면 화를 내고 방편으로 파괴하여 서로 원한이 생겨나네. 이 같은 생맹生盲과 천제闡提의 무리들이 돈교를 훼손하고 길이 침륜하니 대지의 티끌 수 겁이 지나도록 삼악도의 몸 벗어날 수 없구나. 대중은 한 마음으로 정법을 파괴한 모든 죄업 참회함세. 그리고 『평등각경』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이와 같은 정토법문을 듣고 희비가 교차하여 온몸의 털이 선다면 이 사람은 과거에 이미 불도를 닦았던 사람임을 알라.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법을 듣고도 아무런 믿음과 기쁨이 없다면 이 사람은 삼악도로부터 왔음을 알라. 또한, 십선十善을 굳게 지키지 못하면서 도리천·도솔천에 태어나기를 바란다면 상응하기 극히 어렵다. 그러나 극락세계는 오역죄를 지은 사람도 염불에 의지해 왕생하거늘, 하물며 십악을 지은 사람은 더욱 장애가 없다. 또한, 비록 미륵이 이 세상에 출현하기를 기대하지만 56억 7천만년이나 되는 세월을 기다리기란 더욱 어렵다. 타방의 모든 정토에는 이러한 본원이 없고, 오직 극락정토만이 아미타불의 별도의 원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아미타불의 원력이 깊을 진데 어찌 다른 것을 구하리오! 또한, 이 생에 이미 불법과의 인연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생三生·사생四生 후의 해탈에 마음을 두는 무리들이 있는데, 이러한 발원은 굉장히 확실치가 않다. 대통여래大通如來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비록 참괴(慚愧:부끄러움)의 옷 속에 일승의 값을 매길 수 없는 옥을 품고 있음을 믿고 기뻐하고 있으며, 다음 생에 바로 잊지 않았으나 삼천 티끌 수 겁 동안 육도윤회를 하지 않았던가! 설사 삼생·사생 내에 반드시 해탈할 수 있다 하더라도 여기서 기다리는 동안 받게 될 윤회의 고통은 가장 참기 어렵다. 우리는 이번 생에 처음으로 인간계에 태어난 것이 아니며, 이미 세세생생 동안 여러 부처님의 교화와 보살들의 홍경(弘經:불경을 세상에 널리 퍼뜨림)을 만났을 터인데 오직 믿지 않음으로 인해 그 교화로부터 빠진 것이다. 삼세의 제불과 시방의 보살들을 생각해보면 모두 옛적의 친구들이었다. 석가세존도 오백 티끌 수 겁五百塵點劫전의 옛날에, 아미타불도 십겁 동안 성불하기 전에 서로 부모형제사이였던 것이다. 부처님은 앞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선지식의 권유를 믿으며, 일찍이 발심하고 수행하여 성불한지 오래지만 우리들은 신심이 얕은 까닭에 지금까지도 생사에 머물고 있다. 과거에 윤회를 할 때를 돌이켜 보면 미래에도 역시 이와 같을 것이다. 비록 이승(성문·연각)의 마음을 내어보지만 보살의 마음을 내기란 어렵다. 그렇게 때문에 여래께서 수승한 방편을 보여주시고, 타력왕생의 법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오탁악세의 중생이 비록 자력에 힘쓰며 백천 겁이 지나도록 난행고행難行苦行을 하더라도 부지런히 힘쓴 바는 오히려 타력왕생의 법만 못하다. 또한, 저 성도문을 닦는 자들은 반드시 몸과 마음이 청정하여 그 행을 닦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만약 게으르고 신심이 없다면 수행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죄를 얻게 된다. 그러나 염불문을 닦는 이라면, 걸을 때나 멈출 때나 앉을 때나 누울 때나 깨어있을 때나 잠을 잘 때나 명호를 부르는데 어려움이 없어 매우 편리하면서도 죄나 허물이 없으며, 어떠한 근기도 마다하지 않아 모두 왕생의 업이 된다. 그래서 법조대사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저 부처님 인중因中에서 세우신 크신 서원 이름 듣고 나를 부르면 모두 마중 나온다네. 빈부귀천을 가리지 아니하고 어리석음과 지혜를 가리지 않으며, 많이 듣고 청정한 계율 지키는 자 가리지 아니하고 파계하여 죄 깊은 이 가리지 않으시니 다만 마음 돌려 염불 많이 하면 깨어진 기와 조각도 금덩이로 변한다네. 또한, 미묘하고 수승한 성인의 말씀이 담긴 경론일지라도 마지막 임종 시가 되면 비록 지혜로운 자라도 그 문장들을 암송할 수 없다. 그러나 염불행자라면 설사 목숨을 마칠 때라도 명호를 칭념하기가 어렵지 않다. 또한, 제불의 서원을 논한다면 약사여래의 열두 가지 서원에는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원력이 없으시고, 천수(관세음보살)의 발원에는 비록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서원이 있다지만, 아직 부처가 되지 못하셨다. 오직 아미타불께서 발한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서원만이 성취되어 성불하신지 이미 십겁의 세월이 지났다. 아미타불의 서원을 믿는 사람은 다른 법문의 신앙으로 따라올 수 없다. 따라서 반드시 한결같이 전수염불하며 다른 마음이 없이 하루 종일 조석으로 행·주·좌·와에 게으름 없이 명호를 칭념해야 할 것이다. 전수염불을 하던 사람들이 금생에 이미 왕생한 사례는 그 수자가 매우 많다고 들었다. 그러나 잡수雜修를 한 사람들이 왕생했다는 얘기를 들어보기란 극히 어렵다.
| 삼심의 의미 三心義 『관무량수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중생이 세 가지 마음三心을 낸다면 바로 왕생할 수 있다. 세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지성심至誠心이요, 둘째는 심심深心이요, 셋째는 회향발원심回向發願心이다. 이 세 가지 마음을 갖춘 자는 반드시 왕생한다. 선도화상의 『왕생예찬』 중에서 삼심을 다 해석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세 가지 마음을 갖춘 자는 반드시 왕생하고, 한 가지 마음이라도 빠지면 왕생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마땅히 삼심을 갖춰야 한다. 첫 번째 「지성심」이란 「진실한 마음」을 말한다. 몸으로는 예배를 하고 입으로는 명호를 부르며 마음으로는 상호相好를 생각하는데 모두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예토穢土를 싫어하여 벗어나려 하고 정토를 기꺼이 구하려고 한다면, 온갖 행업을 닦을 때 모두 진실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야지 겉으로는 현명하고 착하고 정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속으로는 어리석고 악하고 나태한 마음을 품는다면, 닦은 바 행업이 설사 온종일 끊이지 않더라도 왕생할 수 없다. 반대로 겉으로는 어리석고 악하고 나태한 모습을 보이지만 속으로는 현명하고 착하고 정진하는 마음에 머무는 행자라면 비록 일시일념一時一念이라도 그 행이 헛되지 않아 반드시 왕생한다. 이것을 지성심이라 부른다. 두 번째 「심심」이란 「깊이 믿는 마음」을 말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신은 죄악과 불선不善의 몸으로 시작없는 옛적부터 육도윤회를 하며 벗어날 기약이 없음을 깊이 믿는 것이고, 둘째는, 비록 죄인의 몸이지만 부처님의 원력을 강력한 증상연으로 삼아 필히 왕생함을 깊이 믿는 것이다. 여기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사람으로부터 믿음을 일으킴就人立信」이요, 둘째는 「행으로부터 믿음을 일으킴就行立信」이다. 처음에 「사람으로부터 믿음을 일으킴」이란, 생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비록 많으나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으니 하나는 성도문聖道門이요, 하나는 정토문淨土門이다. 「성도문」이란, 이 사바세계에서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증득하는 길이요, 「정토문」이란, 이 사바세계를 싫어하고 극락세계를 좋아하여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길이다. 비록 두 문이 있으나 마땅히 성도문을 버리고 정토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많은 경론을 인용하여 ‘죄악범부는 왕생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비록 이러한 말을 듣더라도 퇴굴심을 내지 않고 더욱 신심을 내야 한다. 왜냐하면 죄업의 장애가 있는 범부들이 정토왕생을 하는 것은 석가세존의 진실한 말씀으로, 범부들의 허망한 집착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이미 부처님의 말씀을 깊이 믿고 기꺼이 정토왕생을 구하려는 것이다. 설령 제불보살들이 오셔서 ‘죄업의 장애가 있는 범부들은 정토왕생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보살은 부처님의 제자이신데 만약 진실로 보살이라면 절대 부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부처님의 말씀을 어기고 왕생할 수 없다고 한 이상, 진정한 보살이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동체대비이신데, 만약 진실로 부처님이라면 석가세존의 말씀과 어긋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아미타경』에서 ‘일일에서 칠일까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면 틀림없이 왕생한다’고 말씀하셨고, 육방에 계시는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부처님들도 이 말씀이 진실한 말씀이라고 증명을 해주셨는데, 이미 석가세존의 말씀과 어긋난 이상, 진짜 부처님이 아니라 천마天魔가 변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뜻이 있는 까닭에 그 분들의 말씀 역시 믿을 수 없거늘, 하물며 다른 설이겠는가! 그대가 고집하고 있는 대소승의 경론들이 비록 서로 다르기는 하나, 모두 예토에서 수행하여 부처님의 과위를 증득하기를 기대하는 것이어서 이는 성도문의 뜻이고, 우리가 닦고 있는 것은 비록 정행과 잡행의 차이는 있어도 다 같이 극락을 그리워하는 왕생의 행업이므로 이는 정토문의 뜻이다. 성도문은 그대와 인연 있는 행이고 정토문은 나와 인연 있는 행이므로, 이것을 가지고 저것을 비난해서도 안 되고 또 저것을 가지고 이것을 비난해서도 안 된다. 이와 같이 믿는 것을 「사람으로부터 믿음을 일으킴」이라고 말한다. 다음, 「행으로부터서 믿음을 일으킴」이란, 극락왕생의 행에 비록 차이는 있지만 두 종류를 벗어나지 않으니 하나는 「정행」이요, 하나는 「잡행」이다. 「정행」은 아미타불과 친밀한 행이고, 「잡행」은 아미타불과 소원한 행이다. 우선, 「정행」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독송정행이다. 이를테면 정토삼부경을 독송하는 것이다. 둘째는 관찰정행이다. 이를테면 극락세계의 의보와 정토를 관찰하는 것이다. 셋째는 예배정행이다. 이를테면 아미타불께만 예배하는 것이다. 넷째는 칭명정행이다. 이를테면 아미타불의 명호만을 칭념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찬탄공양정행이다. 이를테면 아미타불만을 찬탄하고 공양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를 합치면 두 가지가 되는데, 하나는 「정정업」이고, 하나는 「조업」이다. 「정정업正定業」이란, ‘일심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되, 행주좌와에 시간의 길고 짧음을 따지지 않고 염념마다 명호를 잊지 않는 것을 정정의 업이라 부르나니, 저 부처님의 원력에 순응하는 까닭이다.’ 「조업助業」이란, 앞의 다섯 가지 가운데 넷째 칭명을 제외한 예배·독송 등을 모두 조업이라 부른다. 다음, 「잡행」이란,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정조이업正助二業 외에 대승경전을 독송하고 보리심을 내고, 계율을 지키고 권장을 하는 등의 일체 행을 말한다. 이 「정잡이행正雜二行」에는 다섯 가지 득실이 있다.
첫째는 친소親疏의 대비對比이다. 이를테면 정행은 아미타불과 친밀하다는 것이고, 잡행은 아미타불과 소원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근원近遠의 대비이다. 이를테면 정행은 아미타불과 가깝다는 것이고, 잡행은 아미타불과 멀다는 것이다. 셋째는 유간과 무간有間無間의 대비이다. 이를테면 정행은 아미타불을 억념憶念하는데 틈새가 없다는 것이고, 잡행은 틈새가 있다는 것이다.
넷째는 회향과 회향하지 않음의 대비이다. 이를테면 정행은 비록 회향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왕생의 업이 되지만, 잡행은 만일 회향하지 않는다면 왕생의 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순잡純雜의 대비이다. 이를테면 정행은 순수하게 왕생을 위한 행이 되지만, 잡행은 그렇지가 않아 시방정토에 두루 통하고, 내지는 인천의 업에도 통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믿는 것을 「행으로부터 믿음을 일으킴」이라 부른다. 세 번째 「회향발원심」이란 과거생과 금생에 신구의 삼업으로 닦은 일체 선근을 모두 진실한 마음으로 극락세계에 회향하여 기꺼이 왕생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회향발원심이라 부른다. 이 세 가지 마음을 갖춘 자는 반드시 왕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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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연스님의 선택본원염불집 전문 보기 → http://cafe.daum.net/amtb/8L2t/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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