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칙 조주세발(趙州洗鉢) / 조주의 발우 씻기
趙州因僧問, 某甲乍入叢林, 乞師指示.
조주인승문 모갑사입총림 걸사지시
州云, 喫粥了也未.
주운 끽죽요야미
僧云, 喫粥了也.
승운 끽죽요야
州云, 洗鉢盂去. 其僧有省.
주운 세발우거 기승유성
조주(趙州)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제가 총림(선방)에 처음 왔습니다.
잘 지도해 주십시오.”
조주선사가 말하였다.
“죽을 먹었느냐, 아직 안 먹었느냐?”
스님이 대답했다.
“죽을 먹었습니다.”
조주선사가 말하였다.
“발우는 씻었겠구나.”
그 말에 그 스님은 깨쳤다.
[평창(評唱)]
無門曰, 趙州開口見膽, 露出心肝. 者僧聽事不眞, 喚鐘作甕.
무문왈, 조주개구견담 노출심간 자승청사부진 환종작옹
무문스님이 평하기를,
조주는 입을 벌려 쓸개를 보이고 심장도 보이고
간장도 훤히 드러냈다.
그런데 그 스님은
참된 것은 듣지 못하고 종을 항아리라고 잘못 생각했다.
[송(頌)]
頌曰. 只爲分明極, 翻令所得遲, 早知燈是火, 飯熟已多時.
송왈, 지위분명극 번령소득지 조지등시화 반숙이다시
너무 분명하기 때문에
오히려 바로 알아보지 못하네.
등이 곧 불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밥은 이미 다 된 것이나 마찬가지...
[사족(蛇足)]
이 공안은 간단하고 평범하나
선(禪)의 선지(禪旨)를 다 포함하고 있으며
천하의 대진리도 이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위의 공안에서 보듯이
선방에서의 아침은 죽을 먹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아마도 스님이 아침 죽을 먹고
스님을 찾아뵈었던 모양이다.
또한 자신의 발우를 자신이 씻는 것은
승가의 기본이며, 또한 일상생활이다.
이렇듯 진리라는 것,
깨달음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 일상생활 가운데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 진리를 체득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일체 모든 존재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개개인의 능력에 달려있는 것이다.
우리들 일상생활 전부가 깨달음이요,
또한 선의 입장이 아님이 없다.
그러나 그것들이 너무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다.
"죽을 먹었느냐? 먹었습니다. 그러면 발우를 씻어라" 
이 말에 스님이 깨쳤다 함은
자연법이(自然法爾) 그대로를 반영한다.
자연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이는 도(道)와 천리만리의 거리에 놓이게 된다.
피곤하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다는 말이
모두 자연 그대로를 의미한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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