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추성楸城에서 온 지명입니다.
추성이 속한 마천馬川의 지명은 성안에 있는 말달린 평전으로 인해 얻어진 지명이라고 합니다.
고서의 기록에 따르면 지리산 두류능선의 기슭에 위치한 추성楸城은 신라가 백제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이라고 전한다. 조선시대의 최대 인문지리서인 ‘신동국여지승람’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90번지에 위치한 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였다. ‘산 속에 옛 성이 있는데 하나는 추성楸城이고, 하나는 박회성朴回城이라 부른다. 의탄소義呑所와 5ㆍ6리 거리인데 우마牛馬가 드나들지 못하는 곳이나, 창고 터가 완연히 남아 있다. 세간에서 신라가 백제를 방어하던 곳이라 전한다.’
추성의 삼국시대 때의 이름은 마천성馬川城이었다. 신동국여지승람 및 고지도에 등재된 것을 보면 추성이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이후부터인 듯하며, 인근에 호두나무가 많이 자생한 것을 연유로 추성楸城으로 불리어지게 된다. 그래서 성의 외곽에 위치한 마을 이름도 추성리이며, 조선시대 때부터 이 마을의 호두는 나라의 진상품이었고 현재도 지역특산품이다.
위의 기록을 근거해 본다면 지금까지 추성을 두고 가야 구형왕의 피난지라고 전해오는 설은 잘못 전해져 오는 역사의 가설임을 알 수 있다. 고서의 기록에는 추성이 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수비성이라고 하나 실제 답사를 해보면 특정한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내성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석성의 둘레는 약 2km가 되며, 면적은 7만 여 평에 이른다. 석성의 통로이었던 동문과 북문의 위치도 뚜렷하다.
성의 내부에는 높이 10m 되는 망바위를 비롯하여 군마의 조련길을 비롯하여, 수비군의 초소 내지는 망루의 건물터로 추정되는 유적지 등이 남아 있다. 추성이 자리한 지대는 지형적인 측면에서 보면 천혜의 요새이다. 성의 서남 방향으로는 험난한 국골과 초암능선이 성의 위치를 감쪽같이 막아 주고 있으며, 그 뒤에는 창날 같은 창암산 줄기가 외산으로 둘러져 있다. 또한 성의 동북쪽으로는 벽송사능선이 가로막았고, 그 너머 엄천강 건너에 금대산과 백운산 등이 산 첩첩으로 포개져 있다. 사방의 트인 곳이라고는 오직 마천에서 운봉으로 나가는 길뿐이다.
트인 길 끝으로는 운봉고원 너머로 신라와 백제가 수차례 혈전을 치렀던 모산성이 멀리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