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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26년 사순 제1주일] 인류 최초의 바느질

작성자아름다운|작성시간26.06.10|조회수33 목록 댓글 0
<photo by 느티신부님>

마태오 4,1-11


+찬미 예수님
오늘은 전라방 교우들이 아침 일찍 저 먼 곳에서 오셨습니다.
일부 공지가 나갔지만오늘은 영상 찍어주시는 분이 입원 중이라
가톨릭 스튜디오에서 오시어 도와주고 계십니다.
우리 신자들도 가톨릭 스튜디오에서 보시면 되는데들어온 김에 그냥 나가지 말고,
구독’ ‘좋아요’ ‘알림’ 해주면 얼마나 도움이 많이 되겠습니까?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악마가 광야로 데려와서 세 가지 시험을 하죠.
첫 번째가 뭡니까?
돌로 빵이 돼보게 해라.
예수님 맘만 먹으면 돌멩이로 빵 만드실 수 있어요없어요?
있어요그러기에 그것이 참 견디기 어려운 유혹입니다.
여러분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돌멩이 가지고 빵 못 만들잖아요.
그 말은 마귀가 유혹할 때 언감생심 꿈꾸지 못할 것으로 유혹 안 해요.
너 눈 한 번만 질끈 감아그러면 네 거 되는 거야.’
그래서 이 빵의 유혹은 되게 원초적인 유혹이죠.
예수님은 더 힘들었을까?
왜냐면 40일 동안 굶었어얼마나 배가 고팠겠어요?
빵 아니라 잡채도 만들 수 있고 별거 다 만들 수 있을 텐데.
초능력자한테 할 수 있는 걸 해 보라고 하니까 이거 미치는 거지.
그래서 항상 명심하셔야 할 것은 마귀는 내가 꿈도 못 꿀 것으로 유혹 하지 않는다.

오늘 복음은 제 강론에 많이 나와 있고 해서1독서의 내용으로 강론할게요.
물론 이것도 유튜브에 구약묵상강의 42강이 나와 있죠.
오늘 제1독서하신 자매오늘 읽은 게 창세기 어디 어디 읽었어요?
(대답)2장 7절에서 9, 3장 1절에서 7절이요.
두 장이 섞여 있다는 거 알고 읽었어요?
오늘은 2장의 일부와 3장의 일부아주 중요한 것만 붙여 좋은 거예요.
왜 사순 첫째 주일 첫 번째 독서에 창세기 2장과 3장을 짜깁기해 놓고 전 세계 신자들을 모두 읽게 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간단해요.
지금 우리 들었던 것이것을 모르면 죄에 대하여 몰라요.
죄가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몰라요.
그리고 구원에 대하여 논할 수가 없어요.
인간 세계에 죄가 들어오게 된 경위와그 죄가 들어와 그 결과
인간에게 어떤 고민이 생겼는가에 대한 경위가 오늘 제1독서에 명확하게 나와 있죠.
그래서 사순 첫 주 첫 번째 성서 말씀에 창세기 2장과 3장을 합쳐 놓은 거예요.

야훼 하느님께서 아름다운 동산을 만들어 놓으시고
거기에 딱 두 가지 손대서는 안 될 나무 두 가지를 심어 놨죠.
선악과와 생명나무.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교우가 생명나무에 대해선 몰라요.
그 이야기는 뭐냐성서를 안 읽었다는 거죠.
그냥 선악과 금단의 열매 그것만 주워들은 거지.
오늘 나왔죠선악과와 생명나무.
그 두 나무는 따 먹으면 안 된다라고 금지했죠.

내가 그저께부터 이 강론 준비를 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금할 때 금()을 한문으로 쓰면 맨 위에 나무가 두 개가 있어요.
그리고 그 밑에 가르칠 시().
나무 두 개를 가르치는 게 금지할 금()지예요.
그러면 나무 두 개가 이게 뭐야바로 선악과와 생명나무 아닌가.
우연인지 모르지만한문과 맞아 들어가는 게 소름이 끼쳤어요.
그런 게 꽤 많아요거룩할 성()자는 뭐예요?
귀이()입구()자에 왕()자예요.
귀와 입을 다스리면 왕이 되는데또 그 왕()자는 무엇으로 연결돼요?
맨 위 1획이 하늘이고 맨 아래 3획이 땅인데 중간에 십자가로 연결이 돼요.
귀와 입을 다스리면서 하늘과 땅 사이를
내 십자가로 연결하고 사는 게 거룩한 성인이에요.
박수 한 번 쳐 봐요이렇게 재미나게 한문 풀이하는 사람이 있어요?


오늘 독서에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생명나무 길까지 끊겨요.
독서에는 나오진 않으나 집에 가서 읽어 보세요.
선악과를 따먹고 나니까 하느님이 열이 팍 받쳤어.
생명나무까지 건드리겠구나 싶어서 거기에 불칼을 만들어 불이 돌게 만들죠.
그래서 생명나무까지 가는 길까지 끊겨 버린 거예요.

그러면 하와는 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그 말씀을 어겼을까요?
뱀의 유혹 때문에.
뱀의 유혹은 너무나 교묘하고 빈틈이 없어요.
이 뱀이랑 머리싸움은 100번 해 봐야 백패야.
뱀을 이기는 것은 거룩함뿐이죠.
믿거나 말거나 뱀은 천치 바보가 IQ가 350이래요.
그런데 우리는 130만 넘어도 천재 소리 듣잖아요.
IQ 130은 이거는 그냥 마귀 세계에서 마귀도 아냐.
뱀은 그만큼 교묘하고 빈틈 없이 유혹해요.

뭐라고 유혹합니까?
너희들 그거 먹으면 절대 죽지 않을 거야.
그거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과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될 뿐이다.’
여기에서 뱀에 기가 막힌 지능이 나와요.
먹으라는 말은 한마디도 안 해요.
요거 먹으면 요렇게 결과가 이루어질 것이라고만 얘기하지.
뱀도 나중에 빠져나갈 자기 구실을 다 갖고 있는 거예요.
나 먹으란 얘기 안 했어요이거 먹으면 이렇게 밝아진다고만 했어요.
내가 뭐 뭐 틀린 말 했어요?’
이렇게 뱀의 유혹은 교묘하고 빈틈이 없는 거예요.
우리 주변에는 유혹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살면서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1독서에 나오는 이 인간 타락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 이해 못할 질문을 던지게 돼요.
첫 번째 하느님은 어찌하여 먹어서는 안 되는 나무를 그곳에 두셨는가?
두 번째 그럼 이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는 도대체 누가 먹는 것인가?

두 번째 답부터 먼저 알려 드릴게요.
내 생각에 선악과는 하느님 전용 과실일 것 같아요.
그러니까 손대지 말아라내가 먹으려고 따로 키우는 거라고 하신 것 같아요.
성경 어디에도 선악과를 먹는 주체에 대해서 나온 적이 없어요.
그냥 내 생각이에요.

그럼 첫 번째 질문이 뭐라 그랬죠?
어찌해서 먹어서 안 되는 나무를 그곳에 두었을까?
왜 그래서 사람 애간장을 태우게 했을까?
먹음직한 나무를 동산 한 가운데 심어 놓고 이것만큼은 먹지 말라는 말씀,
이거 너무 심한 것 아니야?
그렇게 위험한 나무를 무엇 때문에 아담과 하와의
눈으로 보이는 동산 한 가운데에 세워놨느냐 이거예요.
차라리 인간을 만들 때 100% 순종하는 마음을 주셨다면 아담과 하와가 먹었을까요?
안 먹었겠죠. 100% 순종하는 마음만이면.
그렇지만 하느님은 자유 의지를 가진 자로서의 인간을 만드셨죠.
개돼지처럼 끌려다니는 자유 의지가 없는 그런 가축을 만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모상을 닮은 자유 의지를 가진 자로서의 인간을 만드셨어요.
만일 인간을 하등의 자유가 없는 본능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면
확실히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거고하느님 쪽에서도 훨씬 편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자유 의지를 줬거든.
자유 의지가 없는 쪽이 좋았으리라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없잖아자유 의지가 없었으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하는 분 없어요.
큰 축복이것이 바로 자유 의지잖아요.
그런데도 인간은 불평해요.
왜 금단의 열매를 거기에 만들어 놨어왜 우리들을 이 꼴로 몰아갔어?’

상점에서 도둑질한 여자가 뭐라고 궤변을 늘어놓느냐.
할 수 없잖아요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것이 산더미처럼 있은 데 어떻게 해요.’
상점의 물건은 아무리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돈을 내고 정당하게 사야지요.
지금 상황과 같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난 다음에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면 선악과를 따먹은 두 사람이 얼마나 현명해졌을까요?
뱀이 먹으면 분명히 하느님처럼 현명해진다 그랬죠.
얼마나 현명해졌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제일 처음 깨달은 것이 뭐냐?
벌거벗고 있는 거를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창피하니까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서 허리 밑을 가렸잖아.
처음에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생각했죠.
아 이때 바로 인류 최초의 바느질이 이루어졌구나
그런데 그것은 나 혼자 생각한 우스개였고 더 깊이 생각해 보니까
무화과 잎으로 가린 것은 허리 부근이지 가슴과 배는 그대로 드러난 상태예요.
성화를 봐도 위를 가린 것은 없어요아래만 가렸어요.
왜 아래만 가렸을까젖꼭지도 가리고 배꼽도 가리고 이곳저곳 가렸어야지.
일본의 유명한 성서학자 마사오는 그런 얘기를 했어요.
성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하느님처럼 현명해지고 싶어 먹었는데 먹는 순간 성이 부끄러워진 거예요.
또 쿠로사키라고 하는 구약학자는난 오히려 이 사람 말에 더 동의해요.
자유 의지로 지배하지 못할 최초의 부분이 바로 성적인 부분이다.
제가 가끔 성욕은 괴물과 같다라고 그랬어요.
성욕과는 절대 싸워서 이길 수가 없어.
그래서 내가 그 얘기 하잖아요.
이집트로 팔려 간 요셉을 보디발의 아내가 자꾸 유혹하잖아요.
처음에 싫습니다하고 의사를 밝혀도 계속 유혹해요.
그래서 두 번째 방법은 뭐냐? ‘거리를 두어요.’
촛불에 가까이하면 할수록 손이 탈 확률이 커지죠.
나를 유혹하는 자에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죠.
요셉은 집사였기에 하루에도 몇 번을 보고해야 하는데아랫사람을 들여보냈죠.
그래도 그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마지막 침대로 끌고 들어가죠.
요셉은 겉옷을 확 벗어버리고 도망쳤어요.
나중에 주인이 돌아오니 저놈이 나를 겁탈하려 했다 해서 감옥에 끌려가죠.
그래서 성적 유혹의 세 번째는 멀리 도망치는 거예요’.
여러분들 주님의 기도 가운데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나오죠.
그것은 유혹이 저 앞에 있을 때 하는 기도죠.
이미 유혹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을 때는 그 기도할 시간 없어.
그냥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야 해요.

제가 늘 강조하죠.
우리가 이 괴물 같은 성적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첫 번째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해요. ‘싫습니다.’
네 마디 단어는 작지만큰 힘이 있습니다.
두 번째 그것으로 안 되면 멀어져야 합니다.
세 번째는 유혹하는 것으로부터 도망쳐야 합니다.
하지만이 세 가지를 완벽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네 번째가 없으면 안 돼.
네 번째는 뭐냐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해요.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그 사람의 욕망을 가라앉혀 줘요.
지금 내 입에 달다고 유혹에 빠지면 나중에 하느님 얼굴 어떻게 보나.
그 거룩한 두려움은 폭풍같이 일어났던 성욕을 가라앉혀 줘요.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제일 먼저 자기의 치부를 가린 것은
자유의지로 제일 통제하기 어려웠던 것이 성이 아니었는가 하는 학자들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선악과를 먹고 난 다음 아담과 하와는 연약하기 짝이 없고,
흉한 자기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죠.
신세계가 열릴 줄 알았거든.
그런데 아이고 부끄러워창피한 것만 계속 나타나.’
하느님과 같아지기는 고사하고 창조주 하느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비참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 난 다음 행복을 느낀 것이 아니라 비참함을 느꼈어요.

여러분들 잘 들으세요.
인간이 선악을 안다는 것은 뭐냐?
선을 알아도 선을 행할 수가 없고 악을 알아도 악을 버리지 못하는 거예요.
원래는 선악을 안다고 하는 것은 선을 알면 선을 행해야 하는 것이고
악이 무언지 알면 악을 철저하게 물리쳐야 하는 것이 선악을 안다라는 것의 정의죠.
아담과 하와는또 그 후의 우리 인간들은 반대로 살아요.
뭐가 선인지 악인지 우리 알죠?
그러면 선은 취해야 하고 악은 멀리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선은 멀리하고 악을 취하고 있는 비참한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아요.
우리들의 이 수치스러운 모습은 비록 옷을 겹겹이 껴입어도
하느님 앞에서는 절대 가릴 수가 없는 거지요.

이렇게 자신의 비참함을 깨달았어요.
이거 먹으면 신세계가 열리고 하느님과 똑같아지는 줄 알았더니,
창피하고 부끄럽고 이거 어떡하지이걸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이제는 옛날로 돌아갈 수도 없었어요.
그때 하느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어요.
그 소리를 듣고 제일 먼저나무 뒤로 숨었다.
만일에 선악과를 먹고 하느님과 같은 마음이 되었다면 숨을 필요가 없는 거였죠.
그런데 숨었어요.
자기들이 숨어 봐야 하느님이 그 몰라?
요만한 나무 뒤에 숨어봐야 배도 튀어나온 거 엉덩이 튀어나온 것도 다 보이는데.

하느님이 뭐라 하세요?
아담아너 어디에 있느냐?’
Where are you? 그랬어요.
어디 숨었는지장소를 몰라서 묻는 게 아니죠.
도대체 어떤 상태가 됐길 날 보고 피하느냐?
너 어저께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여기 산보하면 쫓아왔잖아.
우리 같이 걸었잖아.
그런데 왜 하루 사이에 이렇게 숨는 거야?

아담이 뭐라 그래요?
내가 벗어서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이게 바로 인류 최초의 거짓말이에요.
벗어서 부끄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들이 숨은 건 뭐예요?
금단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에 그래요.
금단의 열매를 먹었다는 얘기는 안 해요.
아담이 인류 최초 거짓말을 해요아담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해야 했습니다.
우리들이 금단의 열매를 먹었기에 숨었습니다.
하느님같이 되고 싶은 엉뚱한 생각으로 먹었습니다.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나갔어야지요.
하지만 성서 어디를 보아도 둘이 사죄하는 말은 없어요.
끝까지 핑계를 댑니다.
둘은 선과 악을 분별하게 되었고 사죄해야 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선을 행할 힘이 없었던 것이에요.
우리도 선과 악을 알아요.
그렇지만 선을 행할 힘이 없어서 악에 그냥 굴복할 때가 많아요.
아담과 하와 이야기에는 어디를 찾아봐도 사죄용서 청한다는 단어가 안 나옵니다.

서로 책임 전가와 핑계로 급해요.
먼저 아담에게 왜 그거 따 먹었느냐 묻죠.
그랬더니 아담이 하느님이 짝지어 준 저 여편네가,
난 정말 먹기 싫었는데정말 안 먹으려 했는데,
입에 쏙 넣어주는데 어떻게 안 먹습니까?’
짝지어 준 하느님까지 원망하죠.
왜 저런 갈비뼈를 하나 빼서 쓸데없는 여자를 만들었냐,
나 혼자서도 잘살고 있었는데갈비도 아파 죽겠다는 둥 하면서
하느님과 하와에게 핑계를 돌리죠.
또 하와한테 물으니뭐라 그래요?
하와는 뱀에게 속았다고 해요.
어디를 봐도 잘못했습니다용서해 주세요라는 이 길지도 않은 두 말을 못 해요.

하느님이 이미 다 알고 계셨죠.
하느님이 듣고 싶었던 얘기는 딱 두 줄이었죠.
잘못했습니다용서해 주십시오.’
우리도 살면서 맨날 후회하는데도 이렇게 쉬운 말을 못 하고 살 때 많죠.
자존심 때문에 못 하고잘못한 게 없는 거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그때 두 사람이 엎드려서 하느님 앞에 사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분명 하느님은 용서해 주셨을 거예요아멘.
그러나 두 사람은 회개치 않았기 때문에 용서 안 하신 겁니다.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거룩함과 죄악은 물과 기름처럼 합칠 수가 없어요.
저는 2장과 3장을 읽어 보면서 내린 결론은 이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용서를 청하지 않은 그것이 인간이 지은 죄의 깊은 뿌리이다.’

우리 살면서 죄지을 수 있어요불안전하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 첫 조상 아담과 하와가 용서 안 청했잖아.
하느님 앞에서 그 짓거리를 계속해서 하며 살아요.
관계성이 다 깨져 버리는 거예요.
신앙은 관계성이에요.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또 이웃과 나와의 관계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
이 셋 중에 어느 거 하나라도 깨지면 두 개는 다 같이 깨져 버려요.
아멘.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불편한 관계 속에서 내가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
말도 안 돼하느님 못 사랑해요.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이웃과 나와의 관계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
이것은 늘 우리들이 점검해야 할 거예요.

이 관계성이 깨지게 하는 못과 같이 뾰족한 존재가 뭐냐?
회개치 못하는 마음입니다아멘.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지 못하는 거예요.

2000년도 초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라는
전 세계 사람들을 회개시킨 영화가 있었어요.
사순시기 동안 한 번 보면서 그때를 한번 상기시켜 보세요.
그때 예수님으로 나왔던 짐 카비젤이라는 배우가 가톨릭 신자지만,
그 영화를 찍어 찍으면서 벼락도 맞아 심장 수술도 하고 어깨도 탈구됐었대요.
그런데 그대로 다 찍은 거야.
십자가 지고 넘어질 때 누가 받쳐 주기로 돼 있는데 그걸 제대로 못 받쳐서
머리가 통째로 돌에 찢어지고 폐에 물이 차는 폐렴도 걸리고.
정말 예수님이 겟세마니에서 당했던 그 고통을 그대로 겪은 거예요.
그리고 채찍질 당할 때 등에 대었던 보호 나무판이 부서지면서
그 쇠가 박혀 등이 35cm가 찢어졌대요.
그래도 멜 깁슨은 그대로 촬영시켰대.
그리고 본인 자신도 치료하고 싶지 않다.
사람들이 자기를 통해서 예수님을 보기를 원했대요.
그 후에 그 사람은 전 세계로 간증하러 다녀요.
유튜브에도 찾아보면 그 사람 간증하는 내용이 나와요.
그분도 제가 여러분에게 하듯이 간증하러 가면 여러분은 선택받아 오신 겁니다.’
그 양반은 그때 그 영화 이후 영화 촬영은 안 해요.


그때 잘못했습니다용서해 주십시오.’ 했으면 분명히 용서해 주셨을 텐데.
우리는 일상에서 사죄하는 일이 지극히 드뭅니다.
하느님에 대해서도 물론이고 인간들에게도 용서 비는 일이 지극히 드뭅니다.
자신의 과오를 깨닫지 못해서가 아니라 깨달아도 용서를 구할 힘이 없는 겁니다.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사과할 힘이 없는 겁니다.
그 힘은 성령께서 주시죠아멘.
그래서 우리는 내 양심을 따를 힘이 없다면 성령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주님성령님 도와주십시오.’


오늘 강론을 요약하면 네 가지입니다.
첫 번째 하느님처럼 현명해지고 싶다는 오만이게 바로 우상숭배.
내가 늘 하느님보다 윗자리에 있는 건 다 우상숭배다라고 하죠.
때로는 그것이 자식일 수도 있고아픈 내 몸뚱아리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내 취미 생활일 수도 있죠.
하루 종일 자식 걱정만 했지,
하느님 생각은 단 1분도 한 적이 없이 살 때가 얼마나 많아요.
묵주 기도할 때도 뇌사 상태손가락은 자동으로 돌고 머릿속은 온 동네를 돌아다녀.
하느님같이 현명해지고 싶다는 이 오만이 얼마나 큰 죄라는 것을
오늘 독서에서는 알려줍니다.
두 번째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불순종의 죄 교훈이에요.
세 번째는 하느님에게 용서 청하지 않았다는 영적 무지.
저는 하느님께 용서 청하지 않는 것을 영적 무지라고 표현해요.
무지하기 때문에 용서를 청하지 않는 거예요.
짐 카비젤이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 중에 낙태한 분도 있을 겁니다.
간음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살인자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 낙태하고 난 다음에 위로받으려고 친구한테 얘기하러 갑니다.
하느님이 여러분 친구보다 못하고하느님의 자비가 친구의 자비보다 못하다는 얘기입니까?’
그 양반은 그리스도하느님이 그 안에 오신 모습이 된 거예요.
마지막 네 번째는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책임 전과의 죄입니다.


이렇게 아담과 하와가 지은 네 가지 죄,
첫 번째 오만의 죄,
두 번째 불순종의 죄,
세 번째 영적 무지의 죄,
마지막 네 번째 책임 전과의 죄.
이 네 가지의 유전자가 불행하게도 그 후손인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죠.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이 했던 그 짓거리를 우리도 그대로 하고 살아요.
동산에서 너 어디냐 했을 때 어디 있는지 몰라서 그가 얘기한 거 아니죠.
너 창녀 집에 갔다 온 거 내가 다 알아네 상태가 어떻길래 왜 날 보고 피하니?’
우리는 그냥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어잘못했습니다용서해 주십시오.
하느님의 자비는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받는 그런 자비랑 비교가 안 되죠.
늘 확신해 차야 해요.
하느님은 우리를 지옥에 보내시는 분이 아니에요.
지옥은 우리가 선택하는 거예요.
어떻게든지 그분은 우리를 천국으로 보내려고 하셔요.
한 사람도 지옥에 가길 원치 않으세요.
우리의 선택 때문에 그래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아멘.
그리고 우리 모두 나중에 천국에서 다시 만나야 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멘.


사순 제1창세기로 사순절 문을 열었습니다.
오늘 들은 그다음 얘기를 더 듣고 싶으시면 유튜브에 구약묵상을 찾아 들으십시오.
아마 여러분들 사순절 지내면서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2026년 사순 제1주일(2/22)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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