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 예모(刈茅)
남전(南泉)이 띠(茅)를 베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남전으로 가는 길이 어느 쪽이요?”
그러자 선사가 낫을 들어 올리면서 말하였다.
“나는 이 낫을 30전에 샀노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나는 낫을 묻지 않았습니다.
남전으로 가는 길이 어딘가를 물었습니다.”
선사가 다시 말하였다.
“나는 이 낫을 신나게 쓴다.”
지해청(智海淸)이 송했다.
왕노사의 참 기지가 바람같이 빨라서
사람들 가르친 방편 누가 같을 수 있으랴.
디 베는 낫 번쩍 들어 싱그런 날 드러내니
진흙 소가 놀라서 해동(海東)을 지나친다.
고목성(枯木成)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 하였다.
“남전이 활용한 곳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을
허공에 휘둘러도 자취가 남지 않는 것 같거늘,
그 스님은 단지 길을 물을 줄만 알았는지라.
발 밑에 진창 깊은 줄을 어지 알리요,
나 향산(香山)은 오늘 뱀을 그리고 발을 붙이는 꼴을 면치 못하리라.”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얼굴을 마주 보고 길을 물었는데
낫을 들어 넌짓넌짓 대꾸하였네.
애석하다. 금강의 눈 갖추지 못해
공연히 구름 걸린 산을 해매다 어느새 가을이 다 간다.
천동각(天童覺)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 하였다.
“‘나는 이 낫을 신나게 쓴다’고 하였고,
또 ‘30전에 샀노라’고 하였으니,
남전의 문턱에 오솔길이 트였는데,
길 가는 사람들에게 정신을 차리라 깨우쳐 준다.
정신을 차림이여,
속임수가 심하다.
납자의 눈가죽이 안산의 가림을 덮는다 했더니,
지금 알고 보니 당당하게 드러나서
온 땅덩이가 묶이어 한 덩어리가 되었다.
대중들아,
만일 이와 같더라도 조그만치도 그를 빠뜨리지 않느니라.”
백운병(白雲昺)이 염하였다.
“저 스님은 길 물을 줄만 알았고,
비추는 대로 종지를 잃는 줄은 몰랐다.
남전은 비록 길을 잘 가리켰으나
마치 노깃에 못을 박고 노를 젓는 것과 같도다.
송원(松源)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 하였다.
“남전의 문 앞에 살 길이 팔(八)자로 트였는데,
저 스님은, 뱃속은 또렷또렷 하면서도 거짓으로 벙어리 시늉을 하였다.
그 때 ‘나는 신나게 쓴다’하는 남전의 말을
듣자 얼른 한 걸음 나서면서 ‘나를 속이는군요’했더라면
속절없는 남전도 뒤로 넘어지면서 물러났을 것이니라.”
說話
“나는 이 낫을[我這鎌子]……”이라 함은
눈앞의 공안[現成公案]으로 싱그런 날[神鋒]같이
코 앞에 들이댄 것이요,
“낫을 묻지 않았습니다.[不問鎌子]……”함은
“애석하다. 금강의 눈 갖추지 못해
공연히 구름 걸린 산을 헤매다
어느새 가을이 다 간다”고 한 경지요,
“신나게 쓴다[用得怏]”고 함은
남을 위하려면 모름지기 철저해야 한다는 뜻이니,
“왕노사의 참 기지가 바람같이 빠르다”고 한 경지이다.
지해(智海)의 송에서
“진흙 소[泥牛]”란 함도
쓸모[力用]도 없다는 뜻이요,
“해동(海東)”이란 차별이 있다는 뜻이다.
고목(枯木)의 염은
대용(大用)이 눈앞에 나타날 때는 법칙을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천동(天童)의 상당에서
“나는 이[我這]……정신을 차리라 깨우쳐 준다[精彩]”한 것은
30전의 뜻을 밝혀 낸 대목이요,
“납자의 눈가죽이[衲僧眼]……”라고 함은
한결같이 정신만 차리면 안산(案山) 때문에
눈빛을 가리게 된다는 뜻이요,
“지금[而今]……않느니라[不得]”라고 함은
어디서 더듬어 찾으랴 함이다.
백운(白雲)의 염은
남전의 뜻을 알지 못하므로
말을 따라 달리고 비춤[照]을 따라
종지[宗]를 잃거니와 남전은 노깃에 못을 박고
노를 젓는 꼴을 면치 못했다는 내용이다.
송원(松源)의 상당은
만일 남전의 의도를 안다면 남전이 나를 속인 것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