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상반기 서점가를 움직인 세 가지 키워드
소설의 시대, 미디어의 시대, 실용의 시대
2026년 상반기 서점가는 ‘소설의 귀환’으로 요약된다. 교보문고와 예스24가 발표한 상반기(1월~5월) 베스트셀러 집계에 따르면, 앤디 위어의 SF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양대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독자들의 압도적인 선택을 받았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2021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작품이지만, 올해 3월 동명의 영화가 개봉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출간된 지 5년이 지난 작품이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재조명되며 역주행에 성공했다. 출판계에서는 이를 두고 “미디어 믹스가 독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사례”라고 평가한다.
상반기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는 소설의 강세가 유난히 두드러졌다. 교보문고 종합 순위 10위권에는 8권의 소설이 포함됐고, 예스24에서도 10위권 가운데 절반인 5권이 소설이었다.
예스24 집계에서는 일본 작가 스즈키 유이의 데뷔작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가 2위를 기록했으며, 김애란의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가 3위에 올랐다. 가수 한로로의 첫 산문집 “자몽살구클럽”은 9위, 양귀자의 장편소설 “모순”은 10위에 오르며 여전히 사랑을 받았다. 특히 “모순”은 출간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젊은 독자층의 선택을 받으며 고전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상반기 출판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책의 운명을 바꾸는 미디어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는 점이다. 책의 인기를 이끄는 동력으로는 영화와 유튜브 등 미디어의 영향력이 눈에 띄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동명의 영화 덕에 1위를 차지했고,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출판사 민음사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새로운 독자층을 확보하며 판매량이 급증했다. 출판사가 직접 운영하는 콘텐츠 채널이 독서 문화를 형성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사회·정치 분야에서는 “이해찬 회고록”이 눈에 띄었다. 2022년 출간된 이 책은 올해 초 이해찬 전 총리 별세 이후 판매량이 급증했다.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관심이 독서 시장으로 이어지는 현상이 확인된 셈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증시 활황이 독서 트렌드에도 반영됐다. “진보를 위한 주식 투자”와 “박곰희 연금 부자 수업”이 각각 종합 5위와 6위에 오르며 투자·재테크 분야의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투자·재테크 분야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5% 증가했으며, 국내 주식 관련 신간 판매는 무려 277.8%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AI 관련 출판 시장의 성장도 주목할 만하다. 올해 상반기 출간된 AI 관련 도서는 1500종을 넘어 지난해보다 약 500종 증가했으며, 판매량도 23.6% 늘어났다. 생성형 AI가 산업과 일상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관련 지식과 정보를 찾는 독자들의 수요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독자들의 구매 방식은 세대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오프라인 서점 이용자 가운데 20대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들은 서점을 단순히 책을 사는 장소가 아니라 취향과 문화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다. 실제로 교보문고 오프라인 판매 1위는 종합 1위인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아니라 한로로의 “자몽살구클럽”이었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30~40대 독자들이 구매를 주도했다. 이들은 사회적 화제성이나 투자, 자기계발 등 뚜렷한 목적성을 가진 도서를 중심으로 구매하는 경향을 보였다.
2026년 상반기 서점가는 세 가지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소설이 다시 독서시장의 중심 장르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둘째, 영화와 유튜브 등 다른 문화 콘텐츠가 책의 인기를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셋째, AI와 투자처럼 현실적인 관심사를 반영한 실용 분야 도서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