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배 박열아 시집저자 박열아 출판 청색종이 2026.5.29.페이지수136 | 사이즈 159*232mm판매가서적 13,500원
책소개
1960년대 한국 문단을 열었던 박열아 시인의 유고시집
박열아(朴烈我)라는 이름은 오늘의 독자들에게 낯설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 낯섦은 시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현대문학이 오랫동안 충분히 읽어내지 못했던 한 시인의 자리와도 관련되어 있다. 1938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난 그는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전표지역」이 당선되며 문단에 등장했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재학하며 문학의 길을 걸었던 그는 이후 문단 중심부에서 멀어져 고향에서 긴 세월을 보냈다.
그는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도 펴내지 않았다. 시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에 대해 누구보다 엄격했기 때문이다. 발표한 작품들조차 쉽게 만족하지 못했고, 원고를 한 권의 시집으로 묶는 일에도 끝내 신중했다. 시를 향한 그의 태도는 성실함을 넘어 염결에 가까웠다. 한 편의 시를 세상에 내놓는 일에 엄격했던 시인은 결국 자신의 이름으로 된 시집을 생전에 출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2025년 작고했다. 그리고 남겨진 작품들은 유족들의 손을 거쳐 마침내 유고시집 『사막의 배』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도착했다.
시인 문정희는 이 시집의 출간을 두고 “뒤늦게 도착한 책이 아니라, 너무 일찍 쓰였으나 우리가 늦게 읽게 된 책”이라고 평한다. 이는 단순한 헌사가 아니다. 『사막의 배』의 출간은 한 시인의 유고를 정리하는 일을 넘어, 우리 문학이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던 한 목소리를 다시 불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흩어져 있던 작품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이면서 우리는 비로소 박열아 시인의 시를 개별 작품이 아닌 하나의 세계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박열아 시인의 시를 읽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물의 밀도다. 그의 시에는 군화와 철조망, 탄피와 묘비, 갱도와 석탄 같은 사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전쟁은 철조망의 상흔으로 남고, 노동은 석탄의 무게로 드러나며, 인간의 고통은 낡은 육체와 사물의 질감 속에 스며든다. 그는 관념을 설명하기보다 사물을 통해 현실을 드러낸다. 문정희 시인의 말처럼 그의 시에는 “설명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으며, 다만 그 자리에 놓여 있는 사물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물들은 서로 부딪치며 시대의 압력과 인간 존재의 무게를 형상화한다.
등단작 「전표지역」은 이러한 시 세계의 출발점이다. “무덤으로 가는 커다란 군화 발자죽마다/ 슬프게 싱싱한 가슴들이 잠들어 있다”라는 구절에서 죽음은 추상적 비극이 아니라 땅 위에 새겨진 물질적 흔적으로 나타난다. 전쟁은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풍경과 육체 속에 각인된 상처다. 이후 「목탄」, 「부두」, 「파선」, 「젊은 수부의 편지」에 이르면 시인의 관심은 산업화의 현장과 노동 현실로 확장된다.
특히 「목탄」은 박열아 시 세계의 핵심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나도 목탄이고/ 지금 당신도 목탄이다”라는 선언에서 목탄은 인간 존재를 드러내는 상징이 된다. 이미 타버렸으나 아...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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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열아
저자 : 박열아
1938년 전북 순창 출생. 본명 영렬(榮烈).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전표지역(戰標地域)」이 당선되어 등단. 1962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신춘시’ 동인. 귀향 후 2025년 작고.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Ⅰ
11 시월(十月)
13 아침
14 여름
15 전표지역(戰標地域)
18 목탄(木炭)
22 대낮
23 원(怨)
24 해적(海賊)
25 파선(破船)
28 젊은 수부(水夫)의 편지
30 우자(愚者)의 말
36 바다
37 부두(埠頭)
38 사막(砂漠)의 배
Ⅱ
57 폐촌(廢村)에서
58 농부(農夫)의 집
60 사막(砂漠)
62 살아나는 피
63 한촌(寒村) Ⅰ
64 한촌(寒村) Ⅱ
65 수심가(愁心歌) Ⅰ
67 수심가(愁心歌) Ⅱ
68 자객(刺客)
69 황토밭에서 Ⅰ
70 황토밭에서 Ⅱ
71 겉보리
72 보리
73 입동(立冬) 무렵
74 겨울 등(燈)
76 압록에서
78 남해에서
Ⅲ
81 가을 뎃상
83 삼월
84 풀잎
85 꽃
86 달
87 새벽
88 신발
89 시월(十月)
90 가을 수채화
92 입추(立秋)
93 섬
94 나비
95 해바라기
96 바람
98 밤 눈
99 가을 강(江)
100 기다림
101 갈매기
자료
104 시인 박열아
시인을 기리며
131 다시 부르는 이름, 박열아 시인 | 문정희(시인)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속으로
오랜 수난의 일정(日程)을 거두어 돌아간 피곤한 손들이 먼 지평(地平)에 하얀 전표(戰標)로 서면
이름 없이 죽어 간 어느 병사의 무덤 앞에
하얗게 분장한 묘비는
이슬져 승화(昇華)한 가슴을 마주하여 먼 날의 눈을 들고
상처난 수목(樹木)의 등어리엔 적요한 비가 내리고 있다.
충충한 숲을 돌아가던 가슴의 긴 포복(匍匐)이 끝나는 곳에
파문(波紋)져 오는 바람의 여운….
잔광(殘光)에 씻기운 하얀 촉루(髑髏) 위에 어둠은 내리고
아물어 가는 우리들 손의 상흔 언저리에 잠들어 있는 전쟁.
어두워 가는 폐원의 뒤안길에서
목 잘린 해바라기는
기아(飢餓)의 골짜구니로 줄지어 밀리고.
끊어진 다리 아래 아직도 목쉰 노랫소리는 남아
저리도 긴 강물이 되어 흘러가고 있다.
마지막 계단을 향하여 숨 죽여 오르던 의지의 절정에서
가슴을 앓는 비둘기.
갈갈이 찢기운 기폭(旗幅)에 바랜 얼굴을 부비며
사탑(斜塔)의 그늘 밑으로 떨어져 가면
목숨의 밑바닥으로만 흘러가는 강기슭에도 이름 없는 묘비는 서고
무덤으로 가는 커다란 군화 발자죽마다
슬프게 싱싱한 가슴들이 잠들어 있다.
지금,
창(窓)을 등지고 돌아앉은 무덤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어린 병사의 푸르고 순수한 눈에
적요한 비는 내리고.
분산(分散)된 사상의 내부에서
가슴을 상한 전쟁은 마지막 방위(方位)의 선(線)을 긋고 있다.
냉각(冷却)된 기류 속을 오가는 싸늘한 시선(視線)들-.
마지막 얼키는 시선의 매듭에서 스스로의 자세를 가누는 오늘.
한 색으로 물들어 가는 우리들 손의 상흔에
음(陰) 칠월의 싱그런 포도(葡萄)는 익어 가지만
깨어진 형상을 흔들며 울려 오는 종소리. 종소리….
도색(塗色)된 분신을 떨어뜨리며 돌아간 시간의 어깨 너머
태양은
무너진 성벽 밑으로 하강하고.
밀려간 폐상(廢像)의 긴 대열(隊列) 끝에
뒤척이는 묘지.
낯서른 철조망 가에
죽어간 젊은 혼들의 마지막 음성에 젖어
다시 나뭇잎은 피어도
낭자한 파편의 무덤가에서
지금도 우리는
수피(樹皮)의 상흔 하나 무심히 보아 넘길 수 없다
아, 초연(硝煙)에 그슬린 악보(樂譜)에 상채기진 얼굴을 묻고
이름 없는 묘비에 등을 기대면
가슴은 빛나 병들지 않았으나 성낸 포복(匍匐)은 끝날 줄을 모른다.
기도와 같이
가느란 목을 빼어 느리어 비정한 음악을 흔들자.
응혈진 눈을 닦으면
녹스른 탄피에 묻혀 간 어린 날의 기억 위에
적요한 비는 내리고
우후(雨後)의 죽순처럼 무구(無垢)하게 돋아난 묘비 위에 비는 내리고
깨어진 도시의 창에도 지붕 위에도,
우리들 모두의 ...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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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시인을 기리며
다시 부르는 이름,
박열아 시인
문정희(시인)
한 시대의 문학은 언제나 그 시대가 끝내 다 받아들이지 못한 이름들을 남긴다. 빛을 향해 나아가던 언어가 어느 순간 그 바깥으로 밀려나 더 깊은 어둠 속에서 오래 숨 쉬는 일이 있다. 박열아라는 이름은 바로 그러한 경우에 속한다. 이 시집은 뒤늦게 도착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일찍 쓰였으나 우리가 늦게 읽게 된 책이다.
박열아라는 이름은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 다만 오래도록 불리지 않았을 뿐이다. 동국대학교에서 수학하던 시절, 서정주라는 같은 스승 아래에서 문학을 배우던 시간 속에, 그는 분명히 우리 곁에 있었다. 그러던 그를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은 어느 날 그의 아드님이 보내온 한 통의 편지였다. 오래 묻혀 있던 기억이 그때 문득 또렷해졌다.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전표지역」이 당선되었을 때, 박열아 시인은 여느 시인과 달리 하나의 징후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전쟁 이후의 폐허와 상처를 감상으로 풀어내지 않으면서도, 그 내부에 응결된 고통을 끝까지 응시하려는 새로운 시적 태도의 출현이었다. 당시 문단은 여전히 서정의 계보 위에 있었으나 그 틈 사이에서 보다 단단하고 거친 언어로 현실을 밀어붙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박열아 시인의 시는 바로 그 변화의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그의 시에서 먼저 다가오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장면이다. 설명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으며, 다만 그 자리에 놓여 있는 사물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서로를 밀어내고 부딪치며 하나의 압력을 형성한다. 전쟁의 잔해는 풍경이 아니라 응결된 물질로 남고, 노동의 시간은 서사가 아니라 육체의 피폐함으로 드러난다. 인간은 그 속에서 감정을 토로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처와 흔적을 몸에 지닌 채 견디는 존재로 나타난다. 이때 시는 서정을 덜어낸 자리에 남은 밀도, 곧 현실의 무게를 직접 감당하는 언어가 된다.
특히 「목탄」과 「사막의 배」에 이르면 그의 시는 하나의 상징적 물질과 집단적 경험을 결합시키며 더욱 넓은 장을 형성한다. 목탄이라는 물질은 시대의 잔해이자 내부의 불씨로 작동하고, 사막과 바다는 소진과 생존이 교차하는 현장으로 변한다. 이때 그의 시는 개인의 서정을 넘어, 시대의 균열과 집단의 상처를 떠안는 구조를 갖는다. 그것은 존재의 조건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1960년대는 한국 시가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전쟁의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산업화의 징후는 사회의 질서를 빠르게 바꾸고 있었다. 시는 더 이상 개인의 내면에 머무를 수 없었고, 보다 넓은 현실과 맞닿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여러 시적 도전 가운데 박열아 시인의 시는 특히 강한 밀도와 긴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언어는 매끄럽지 않았고, 때로는 거칠었으며, 그렇게 의도적으로 서정을 밀어냈다. 그렇게 시대의 균열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그의...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