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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지나가지 않은 것들만 지나간다

작성자김아인|작성시간26.06.22|조회수21 목록 댓글 0

 

아직 지나가지 않은 것들만 지나간다 문래동 앤솔로지저자 문정희 , 조해진 외 31명 출판 청색종이 2017.8.18.페이지수128 | 사이즈    128*191mm판매가서적 9,000원   

책소개

이 책은 문래동과 인연을 맺은 문인들(예술가들)의 신작을 엮었다. 문래동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소재로 해서 여러 명의 시인과 소설가, 그리고 문래동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저마다 색다른 시선의 작품을 모았다. 일제 강점기에 커다란 방직공장이 들어서고 하나둘씩 일자리를 찾아서 문래동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방직공장이 활황을 띄었고, 이후 서민들의 주택가였다가 점차 철공소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로는 IT를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변화하고, 외환위기까지 더해져서 철공소는 점차 수도권 밖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에 하나둘씩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예술가와 철공소가 공존하면서 문래동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매우 독특한 모습을 띄고 있다. 이러한 문래동을 왕래하고 스쳐 지나갔던 여러 작가들이 저마다 색다른 시선으로 문래동을 다시 바라보고 있다. 시인 문정희, 소설가 조해진 등 한국문학의 대가에서부터 주목할 만한 신인에 이르기까지 31명의 작가들이 다양한 감성으로 문래동을 작품에 담았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

문정희 시인, 수필가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학위 취득.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문정희 시집', '새떼',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찔레', 아우내의 새', '남자를 위하여', '하늘보다 먼곳에 매인 그네',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 '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오라 거짓 사랑아', '다산의 처녀' 등이 있다. 시선집 '어린 사랑에게', 시극집 '도미', 미국 뉴욕에서 영역 시집 'Wind flower', 'Woman on the terrace' 가 출판되었고 그 외에도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알바니아어 등으로 번역 소개되었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마케도니아 테토보 세계문학 포럼에서 올해의 시인상,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 스웨덴 하뤼 마르틴손 재단이 수여하는 시카다(Cikada)상 등을 수상했다. 동국대 석좌교수, 고려대 문창과 교수를 역임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

 

조해진 외 31명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서문 | 이성혁 문학평론가

우리의 문래에 들어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부 _ 시

문래 ― 문정희

골목과 굴곡, 다음은 별자리 ― 송재학

오래된 골목 ― 고진하

야래향 ― 김응교

골목의 기억 ― 정진아

문래 ― 정우영

파란 대문이 있는 풍경 ― 허연

위험한 짐승 ― 김태형



2부 _ 산문

문래동에서 성수동을 보다 ― 임정진

나의 문장이 온 곳, 문래 ― 조해진



3부 _시

문래동 마찌꼬바, 이후 ― 황규관

괭이 없는 겨울 ― 방민호

문래동 ― 정정화

달빛이 내리는 마을 ― 김혜영

대장간 ― 이재훈

밤의 거리에서 혼자 ― 김이듬

물레는 원래 문래 ― 오은



4부 _ 산문

에로티시즘 @ 문래동 ― 김선주

철꽃 피는 동네, 문래동 ― 구선아



5부 _ 시

문래골목 ― 천수호

백화등 ― 김선향

부식 ― 이병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3가 58-84 ― 서윤후

문래동 장편 ― 전영관

장마 ― 최연

남겨진 꼬리 ― 황선재



6부 _ 산문

문래, 새로운 가능성으로의 여행 ― 유지연

우리는 문래동을 아직 다 알지 못한다 ― 김순미



7부 _ 소설

블루 레몬 프린트 ― 이인아



발문 | 전소영 문학평론가

기억으로 남겨진 미래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속으로

문래(文來)는 원래 문 씨네 아들 이름
아버지 익자 점자 문익점(文益漸)께서
먼 곳에서 들여온 목화를 길러
실 뽑는 기계 물레를 만든 이가
문래라네

아시다시피 나는 문 씨 딸
또한 문학의 자손이지
외국 시인들은 나를 문(Moon)이라 부르지만
나는 미래를 향해 열린
문이 되어도 좋아

나는 이래저래 문래가 좋아

문래 골목
창조의 뮤즈들과
도발적인 예인들과
과거 현재 미래를 물레로 돌려
한 송이 꿈을 만들어도 좋아

문래 골목
새로운 물이
퐁퐁 솟아나는 발원지여도 좋아
이윽고 큰 강에 이르는 물길이어도 좋아
― 문정희,「문래」 전문

2014년 문예계간지 《문학동네》 봄호에 자전소설 「문래」를 발표한 뒤부터, 그 작품을 읽은 사람은 누구나 내 고향이 문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내 고향은 문래라고, 나의 문장[文]이 그곳에서 왔다[來]고……. 동洞의 이름에 지나지 않던 문래에 ‘문장이 오다’라는 근사한 뜻이 담겨 있다는 걸 처음 알았노라고 말해준 독자도 있었고,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문래역을 지나칠 때면 내가 생각난다는 문자를 보내온 친구도 있었다. 나로서는 용기를 내어 쓴 작품이었다. 아니, 용기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문래」를 쓰기 이전과 그 이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소설에도 썼듯, 문래를 떠나온 아홉 살 이후로 나는 아무에게도 문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온갖 존재론적 고민과 연애의 시행착오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털어놓을 수 있었어도 문래만큼은 입에 올린 적이 없다. 당연히 문래의 풍경, 문래의 시간, 문래의 내 유년도 침묵 속에 묻혔다. 아니, 침묵 속을 떠다녔다, 닻이 없는 작은 배처럼. 돌이켜보면 놀랍도록 길고 단호한 함구였다. 그렇다고 문래가 엄청난 상처로 각인되어 (무)의식적으로 회피한 건 아니었다. 문래라는 단어조차 금기시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한 날도 내 삶엔 없었다. 그 함구에 대한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그저 내 성향 탓일 것이다. 남들과 다른 점, 평범하지 않은 것, 누구라도 귀 기울이거나 눈여겨봄 직한 것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으려는 성향……. 소설가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상상하는 사람인 동시에, 세계에 길항하는 개인의 삶을 문장에 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경험에서 보편성을 추출해내는 사람이다. 나는 ‘나’라는 사람을 평균과 표준 속에 가두려는 나의 성향이 소설가로서 미덕인지 약점인지, 오랫동안 알 수 없었다.
― 조해진,「나의 문장이 온 곳, 문래」 중에서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이 책은 문래동과 인연을 맺은 문인들(예술가들)의 글을 엮은 것이다. ‘문래동’의 연혁에 대해서는 구선아 님의 글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문래동은 원래 작은 철공장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일종의 공장지대였다.(일제강점기부터 공장지대가 설립되었기 때문에 일제시대 옛 가옥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산업구조의 변화로 제조 산업이 점차 사양길로 들어서면서 적지 않은 공장들이 폐업을 해야 했다. 이 빈자리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높아진 임대료 때문에 홍대 근처를 떠나야 했던 예술가들이었다. 이들은 문래동으로 와서 빈 공장에 들어와 작업실과 갤러리를 차렸다. 그래서 문래동은 철공소와 갤러리가 혼재하는 기묘한 공간이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구선아 님의 표현을 빌리면 “땀 흘려 몸으로 일해야 하는 철강소 노동자와 창조적 노동을 하는 예술가가 함께하는 동네가 탄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래동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바로 미술가들이 이곳에 예술촌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도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철공소를 운영하는 이들이나 예술가들이 문래동이 명소가 되는 것을 썩 반기지는 않는다고 한다.(오은 시인의 글이 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집중하여 조명한다.) 더구나 젠트리피케이션이 된다면 문래동의 매력은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쇠락해가는 영세한 철공소와 가난한 예술가들의 예술촌의 융합이 이곳을 그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장소로 변화시킨 것이기 때문이다.(이병일 시인은 바로 이 묘한 융합을 문래동 벽화 골목에서 찾아내고는 “날개 안쪽에서 쇠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튕겨 나온다”고 말한다) 그래서 문래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아야 예술가와 노동자들이 이곳에 계속 거주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새로이 형성된 매력적인 장소도 계속 유지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은 새로운 예술과 함께, 임정진 작가가 문래동에서 노동 현장을 주목하고 있듯이, 오래된 노동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 같다.(명소라고 해서 이곳을 구경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예술가의 땀 흘리는 삶이 살아가는 장소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되리라.) 이곳에는 노동하면서 삶을 꾸리는 이들의 고난의 눈물(전영관 시인이 ‘문래동’에 대한 시편에 손이 뭉개진 프레스 공을 조명하고 있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이 스며들어 있다. 예술이 이 노동의 고장에 스며들면서, 문래동은 미적 근대가 낳은 예술과 삶의 분리선이 점차 지워지는 장소가 된다.(이인아 작가는 예술과 노동이 결합된 세계의 유토피아적 이미지를 소설로 풀어내고 있어서 흥미롭다.) 이곳에서 노동은 예술에 의해 조명되고 예술은 노동에 의해 새로이 뒷받침된다. ‘예술촌’으로서의 문래동이 가지는 의미는 여기에 있을 테다.
사실 문래동이 매력적인 것은, 이곳이 개발이 아직 잘 안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끈한 거리와 화려한 건물로 구성된 공간은 삶의 땀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옛 골목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는 문래동 이곳저곳을 걷고 있노라면, 사...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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