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란托卵 / 오금자

작성자김아인|작성시간26.06.05|조회수24 목록 댓글 4

탁란托卵 / 오금자

 

 

뻐꾹〜뻐꾹〜!

먼 산에서 뻐꾸기 우는 소리가 애절하게 들려온다. 뻐꾸기 울음소리는 여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초여름 새벽의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숲에서는 생명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숲에서는 모든 것이 다시 태어난다. 밤새 정적에 싸여 있다가 아침이 오면 숲속의 생명은 일제히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준비한다. 숲은 분주히 생동하는 공간이다.

오랜 기다림에서 벗어나 곧 돋아날 새순들의 수런대는 소리에 가슴은 두근거린다. 숲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생동한다. 나무 한 그루와 새 한 마리도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룬다. 나무와 꽃들은 서로 암수를 연결해 주고 새들은 서로 먹이를 전해주며 생명을 잇는다. 그들은 비록 하찮은 존재이지만 서로에 기대여 새로이 열릴 세상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이 삶에 지쳐 나약하거나 주저앉아서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할 때도 숲의 생명들은 우리를 환대해 준다.

숲에서는 다시 뻐꾸기 소리가 들려온다.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언제나 절박하고 처절하다. 겉으로 듣기에는 평화롭고 아름답지만, 그 속에는 치열한 삶의 몸부림이 담겨 있다. 뻐꾸기는 여름 철새라서 초여름에 날아와 삼 개월여 동안 머물다가 팔월 초순이 되면 다시 남쪽 지방으로 떠나간다. 짧은 기간에 알을 낳고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기를만한 시간이 모자라니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맡길 수밖에 없다. 이것을 탁란이라 부른다.

뻐꾸기에게 탁란은 눈물겨운 생존 번식의 수단이다. 자신의 사랑하는 새끼를 붉은머리오목눈이들이 살고 있는 둥지에 맡겨 놓고, 새끼가 부화하고 자라는 것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어미는 슬픈 울음을 울 수밖에 없다. 뻐꾸기에게나 인간에게나 먹고 살며 생존해야 하는 시간은 길고도 고달프다. 생을 위해 피비린내 진동하는 탁란의 숲, 뻐꾸기의 울음은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는 몸짓이며 절규였다. 뻐꾹〜뻐꾹〜!

사람들은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지저귄다거나 노래한다고 하지만,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은 없다. 뻐꾸기는 그저 처절하게 ‘운다.’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면 한이 맺힌 듯 구슬프게 느껴진다. 울어도 울어도 속죄될 수 없다는 듯이 어미 뻐꾸기는 이산 저산 날아다니면서 짙은 핏빛 울음을 푸른 숲에 쏟아낸다.

언젠가 할머니는 두 어린 뻐꾸기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어디에서 온 뻐꾸기를 바라볼 뿐이었다. 집으로 온 뻐꾸기들은 눈치도 없이 닥치는 대로 먹을 것을 먹어 치우고 마음대로 뛰어다니며 둥지를 독차지하였다. 할머니는 뻐꾸기를 끌어안고는 문풍지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 주셨다. 무슨 걱정이 그리 많았는지 길고 긴 한숨이 밤새 그치질 않았다.

할머니의 한숨 소리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았다. 들릴 듯 말 듯 아버지 이름을 원망하듯 애타게 불러대기도 했다. 할머니 심정을 그때는 알 리 없었다. 새 가족이 어떻게 해서 우리 집에 오게 된 것인지, 왜 힘든 살림살이 속에서도 그들이 우리와 함께 생활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뻐꾸기 아이들에게 밥을 주며 계속해서 한숨만 푹푹 쉬곤 했다. 마침내 우리 형제들은 다짐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형제들아, 우리 집과 형제를 지키자! 남의 집에 들어와 살고 있는 염치 없는 뻐꾸기를 몰아내자!

뻐꾸기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을 뿐이었다. 욕망과 다툼 속에서 오직 살아남으려는 인간들처럼 뻐꾸기들의 몸짓은 처절하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대책 없는 싸늘한 죽음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는 전장의 병사와 같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픈 삶이라 해도 잠시 긴장의 움직임을 멈추면 둥지에서 밀려나 떨어져 죽고 만다. 제 집을 지키려는 오목눈이도, 남의 집에 들어온 뻐꾸기도 인간같이 처절한 생존의 다툼을 하면서 살아남아야 했다.

할머니가 데리고 온 뻐꾸기들과 우리 형제는 끊임없는 생존의 투쟁을 하면서도 피붙이와 살붙이 가릴 것 없이 하나가 되어 한여름 호박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마침내 뻐꾸기 형제들이 둥지를 떠나던 날,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어 울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그들을 키우고 먹이고 입힌 할머니의 갸륵한 마음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갑자기 자신이 낳은 자식마저 굶기고 폭행하여 결국 목숨까지 잃게 하는 동물만도 못한 비정한 부모들이 떠 올랐다.

한여름 밤, 숲속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는 사랑의 복음처럼 귓전으로 울려왔다. 숲속을 감싸도는 나직한 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니, 숲의 모든 생명이 하나가 된 듯 고요하다. 달빛 쏟아지는 적막의 나뭇가지 위에서는 지상의 모든 무게를 벗어던진 새들이 뒤척이며 잠들고 있다. 나무와 풀들은 서로 기대어 이 세상의 무겁고 막막한 슬픔을 미망으로 견뎌내고 있었다.

저들의 언어를 해독할 순 없지만 한 많은 세월을 함께 살아온 나무와 뻐꾸기와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체온이 눈물겹다. 그들은 밀려오는 바람에 흔들리며 끝없는 파문을 먹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도 없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없다. 저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서로 비비고 버티며 살아온 것이 아닌가.

이제야 알 것 같다. 숲에서는 뻐꾸기와 붉은머리오목눈이 그리고 숲과 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모나지 않고 둥글게! 서로서로 따뜻이 손잡고! 더하기만 하려는 세상에서 나눔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너와 내가 서로 가슴을 껴안고며 살아갈 때 비로소 이 세상은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뻐꾸기여, 붉은머리오목눈이여, 너희의 다툼과 몸짓은 이제 충분히 평화로워 세속의 것이 아니구나.

탁란을 마친 새끼 뻐꾸기가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 어디선가 어미 뻐꾸기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뻐꾹〜! 뻐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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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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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하늘바라기 | 작성시간 26.06.05 떠나고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얘기가 없어 아쉽네요..그런데 오목눈이랑 같이 자라는게 아니고 밀어내고 혼자 사니 오목눈이가 더 불쌍하죠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5 그러게요. 요즘 단산지에도 뻐꾸기 울음이 자주 들린답니다.
  • 작성자김보라 | 작성시간 26.06.05 들으면 들을수록 애절하고 슬픈 노래 인 듯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6 네~ 편안한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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