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왜 숲속의 이슬을 떨었을까/이순원
아들아. 이제야 너에게 하는 얘기지만, 어릴 때 나는 학교 다니기 참 싫었단다. 그러니까 꼭 너만 했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구나. 사람들은 아빠가 지금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까 저 사람은 어릴 때 참 착실하게 공부를 했겠구나,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단다.
중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정말 학교 다니기가 싫었단다. 학교엔 전화가 있어도 집에는 전화가 없던 시절이니까 내가 학교를 빼먹어도 집안 식구들은 아무도 그걸 몰랐단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우선 학교가 너무 멀었단다. 20리를 걸어다녀야 했으니까. 큰 산 아래의 오지 마을이라 아직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버스도 다니지 않던 시절의 일이란다. 그러나 그거야 핑계고 무엇보다 학교에 가도 재미가 없었단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어머니로서도 한숨이 나왔을 것이다. “애미가 신작로까지 데려다 줄 테니까 얼른 교복 갈아입어.”
몇 번 옥신각신하다가 나는 마지못해 교복을 갈아입었다. 그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어머니가 먼저 마당에 나와 내가 나오길 기다리고 섰기 때문이다. 가방을 들고 나오자 어머니가 지겟작대기를 들고 서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그걸로 말 안 듣는 나를 때리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지겟작대기는 왜 들고 있는데?” “너 데려다 주는 데 필요해서 그러니 걱정 말고, 가방 이리 줘라.” 하루 일곱 시간씩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도시락까지 넣어 가방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가방을 내밀었다.
어머니의 한 손엔 내 가방을 들고 또 한 손엔 지겟작대기를 들고 나보다 앞서 마당을 나섰다. 신작로 산길에 이르자 어머니가 다시 내게 가방을 내주었다. “자, 여기서부터는 네가 가방을 들어라.” 나는 어머니가, 내가 학교에 가기 싫어하니 중간에 학교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샐까 봐 신작로까지 데려다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서부터는 이슬받이였다. 어머니는 내게 가방을 넘겨준 다음 두 발과 지겟작대기를 이용해 내가 가야 할 산길의 이슬을 떨어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몸뻬 자락이 흥건히 젖었다. 어머니의 옷도, 그 뒤를 따라간 내 옷도 흠뻑 젖었다. 어머니는 고무신을 신고 나는 검정색 운동화를 신었다.
“자, 이걸 이제 신어라.”
거기서 어머니는 품속에 넣어 온 새 양말과 새 신발을 내게 갈아 신겼다.
“앞으로는 매일 떨어 주마. 그러니 이 길로 곧장 학교로 가. 중간에 다른 데로 새지 말고.” 그 자리에서 울지는 않았지만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떤 날 가끔 어머니는 그렇게 내 등굣길의 이슬을 떨어 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학교를 결석하지 않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 어머니가 이슬을 떨어 주신 길을 걸어 지금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돌아보면 꼭 그때가 아니더라도 어머니는 내가 지나온 길 고비 고비마다 이슬떨이를 해 주셨다. 아들은 어른이 된 뒤에야 그때 어머니가 떨어 주시던 이슬떨이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아들아. 나는 그 강을 이제 ‘이슬강’이라고 이름 지으려 한다. 오직 내 마음 안에만 있는 강이란다. 아빠한테는 그 길이 이제까지 아빠가 걸어온 길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도 안타까우며 마음 아픈 길이 되었단다.
이다음 어른이 되었을 때, 아빠처럼 너에게도 그런 아름다운 길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길은 그 자체로 인생이란다. 그리고 그것을 걷는 것이 곧 우리의 삶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