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속 비상 / 이은정
마주한 풍경이 깊은 울림을 준다. 단지 너무 아름답거나 세련되어서 생기는 감정은 아니다. 역사적 웅장함과 낯선 경이로움에서 비롯된다. 눈앞에 펼쳐진 이미지와는 달리, 전혀 다른 깊이를 내포하고 있다. 반전의 미는 뜻밖이라서 선겁다.
직관은 이성보다 재빠르다. 굴곡진 시간을 거쳐온 장소나 건물에 다가서면, 공간을 감싸는 울림이 온몸을 감싼다. 무언지 모를 감동에 이끌려서 잠시 그 기운을 감지하며 벅차오르는 감정에 자신을 내맡긴다. 판단이나 배경이 없이 그저 응시한다.
동유럽을 여행했던 12월이었다. 저녁 무렵, 독일의 드레스덴에 도착했다. 바로크 양식의 걸작이라 불리는 츠빙거 궁전이 있는 포스트 광장에 들어서자, 짙푸른 박명의 빛이 가로등의 불빛과 어우러져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18세기 중반, 드레스덴의 풍요로운 예술과 문화가 깃든 츠빙거 궁전은 어렴풋한 실루엣만으로도 웅장함을 드러내고 서 있었다. 마침 과거의 그림자처럼 까만 무리의 새들이 궁전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교차편집처럼 시간은 거꾸러 흐르며 과거의 폐허로 이끌었고, 낯선 시대의 공간이 눈앞에 연상되었다.
애상미로 다가선 그곳은 제2차 세계 대전의 폭격으로 잔해만 뒹굴고 있는 황량한 도시였다. 곳곳의 건물은 시커멓게 얼룩지고, 총탄과 폭격의 흔적으로 구멍이 뚫여 있었다. 1945년 2월 13일, 연합군 폭격기 1,000여 대가 약 4,000톤의 폭탄을 투하해 도시의 90%가 손실되었고, 2만 5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드레스덴은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난, 복원된 도시였다.
복원된 건물들은 그슬린 벽돌로 폭격의 흔적을 아로새기며, 경건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과거의 폐허와는 대조적으로 크리스마스 마켓 풍경은 오색찬란하게 물들어 한층 풍요로웠다. 앙증맞은 크리스마스 장식과 조명으로 꾸며진 간이 트럭들이 사람들을 이리저리 이끌며, 연말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숱한 세월을 거쳐 쓰라린 폐허가 조화로운 일상으로 회복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그곳을 쓰다듬고 다독였을까? 정성 어린 노력으로 문화유산도 복원하고 도시도 재정비한 끝에, 지금의 고풍스러운 도시로 탈바꿈되었지만, 아픔과 고통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대재난이나 폐허 속에서 복원되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무참한 전쟁이 발발했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전쟁, 지진, 토네이도, 화재, 폭우 등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살고 있는 터전을 잃어버리는 대참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울부짖으며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매스컴을 통해 접할 때면, 그들이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시간이 흘러 그들의 삶을 재조명해 보면, 마치 기적처럼 다시 일어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무너진 도시가 복원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평화와 화해의 손길이 다. 드레스덴 재건 과정에서도, 과거 전쟁에 참여했던 연합군들이 책임 의식을 갖고 복구에 동참했다. 드레스덴 폭격 당시 영국 공군 조종사의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재산을 기부했고, 재건된 프라우웬 교회 지붕 위 황금 십자가는 그가 직접 제작했다. 잃어버린 유산을 복원하는 일은 드레스덴 시민들의 생생한 증언과 현장 사진, 그리고 과거 적대 관계에 있었던 이들의 손길이 더해져 비로소 가능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시련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사일이 쏟아진 학교의 지하실에서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책을 읽는다. 붕괴된 세계 속에서도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예술의 세계에 몰입하여 현실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다. 생사의 경계가 아슬아슬한 아수라장에서도 아이들은 타고난 호기심으로 또 다른 세계로 빠져든다.
비참한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는 힘은 아이들의 굳건한 상상과 비상에서 비롯된다. 예술의 힘으로 척박한 현실을 견뎌내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게 된다.
미국의 작가이자 비평가인 레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란 책에서, 대재난 속에 피어나는 공동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재난은 그 자체로는 끔찍하지만, 때로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뒷문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우리가 소망하는 일을 하며, 형제, 자매를 보살피는 사람이 되는 천국 말이다.“
그녀는 이 문장을 통해 고통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하며, 재난이나 시련 속에서 인간은 최악의 행동을 억제하고 최선을 선택함으로써 감정과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난은 비록 혼란을 초래하지만, 때로는 이전보다 더 큰 결속력과 숨어 있던 잠재력을 이끌어내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경이롭다.
폐허가 된 삶은 다양한 양상을 내포한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대참사, 경제적 파산으로 하루아침에 모든 자산을 잃는 일,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으로 겪는 상실감 역시 폐허의 삶이다. 윤리 의식의 부재로 인권이 유린되는 삶, 그리고 다양한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 또한 마찬가지다.
활활 타오르는 핏빛 화염 속에서 불사조는 시커멓게 그을린 재로 소진된 후, 더 높이 비상하는 존재로 부활한다. 선홍빛 불꽃이 온몸을 휘감아 고통에 몸부림치는 날갯짓은 마치 천형의 고통을 감내하는 듯하다. 그들은 각자가 처한 나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에 타는 듯한 화열의 고통을 감내하며 수없이 떨어지는 과정을 반복하고, 처절한 신음을 토해낸다. 절벽에 부딪히며 낙하를 거듭하는 동안 생채기가 나고 진물이 흐르지만, 상처는 점차 아물어 간다. 마침내 암흑 속에서 한 줄기 광명의 빛을 발견하면, 그제야 끄나풀을 움켜쥐듯 그것을 붙잡고 다시 비상을 시작한다.
상처는 도약을 위한 근원이 된다. 결국 폐허 속에서의 비상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타인과의 연대는 생존을 위한 삶의 필수 요소이다. 힘찬 도약의 순간, 누군가의 원조와 인도가 더해질 때, 폐허 속에서도 비상의 신호가 울리며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다. 고통의 시간은 각고의 자기 노력과 타자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혁신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