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와 반 고흐 / 조경숙
모든 생명의 소망, 삶의 염원은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함이리라. 예외된 이들이 있으니 절망한 자들은 대담해진다고 니체가 말했던가. 어둠의 뒤안길에서 나는 고독하게 생을 접어야 했던 이들의 남겨진 후광을 바라본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세탁기와 벽 사이에 끼어 있는 까만 비닐봉지가 아무리 애를 써도 나오질 않는다. 힘을 주어 당기니 봉투는 찢어지고 내용물은 세탁기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랜턴으로 비춰본다. 몸통은 안 보이고 뾰족한 갈퀴 같은 뿔 일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혹시나 벌레면 어쩌나 싶어 손을 넣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한다. 세탁기를 흔들어 자극을 주어도 요지부동, 녀석은 꼼짝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세탁기를 밀어내고 확인해 본다.
사연 있는 모습이다. 아기 주먹만 한 녀석은 할머니 뱃가죽 같은 주름투성이로 쇠잔해 보인다. 세 녀석 중, 둘은 서로 안고 있고 하나는 대치하듯 뿔을 뻗치고 있다. 예쁘게 봐주면 어린 왕자의 별 닮았고 나쁘게 표현하면 드라마 스윗트홈의 새끼 괴물 같다. 그들은 몇 개월 전 악성 건망증에 혀를 내두르며 찾던 감자이건만 나는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도회에서 자라고 도시에서 늙어가는 여자의 무지 탓일까. 처음 보는 모양새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 곳에 몰려 응집되어 있는 싹이 집게벌레 발처럼 동물화되어가고 있어서다.
환경 조건이 제로인, 아니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살천스러운 싹을 뽑아낸 감자라니, 무서운 생명력이 아니겠는가. 검정비닐 봉투 안, 벽과 세탁기에 끼어 빛도 물도 없는 적막에서 자신의 몸뚱이를 씨앗으로 여기고 외로움을 양분 삼아 새 생명을 꿈꾼 게 아닌가. 변변치 않은 검은 갈색의 몰골이다. 못생긴 돌멩이가 저만할까. 신체를 내주어야만 후세를 허락하는 자연의 섭리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홀로 치러야 할 생이 얼마나 원망스럽고 존재가 사무쳤으면 소원하는 모양이 뿔이었을까. 전에는 싹이 트려는 낌새만 보이면 독이라고 도려내고 찬을 만들어 먹었다. 진작 찾아서 감자의 본분인 음식 재료로 사용해 주었으면 녀석의 생이 이토록 각지지는 않았으려나. 미물보다 더 보잘것없는데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무력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남편을 잃고 한동안 집에서 누구와도 인연을 끊고 지내던 때의 내 모습이 이러했었지. 스스로 안녕을 외면하며 사막의 낙타처럼 뜨거운 모래를 깊숙이 밟으며 처연해하던 나날들. 눈물과 독기로 점쳐진 생애에 한숨이 나온다.
불같은 열정으로 살다 간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을 보았을 때 느꼈던 모습이 이러지 싶다. 칼 진 턱, 눈매는 날카롭고 눈동자는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으로 흔들리듯 불안하다. 고흐의 생활은 내 집에서 뿔을 만들어내야 했던 감자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동생 테오 말고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외톨이였다. 하나뿐인 친구이고자 했던 고갱, 얼마나 같이 살고 싶었으면 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려 방을 장식해 주었을까. 애써 매달렸건만 두 달도 안 되어 친구는 떠난다. 참기 힘든 애증으로 자기 귀를 자르는 공포스러운 몸부림, 광기에 싸여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굴절된 삶을 도반 삼아 물감을 휘둘렀으리라.
37년의 길지 않은 생애 중 죽기 두세 달의 짧은 기간에 200여 점을 그려낸 몰입은 막다른 삶의 서막이었지 싶다. 그의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만 팔려 의지는 무너졌을 터다. 텅 빈 캔버스마저 외로움으로 느꼈을 그였기에 한가득 마음을 다하여 채우고자 하였겠지. 론강의 밤하늘 별들을 보며 소용돌이치는 붓 터치는 열광하는 감성을 불러오고 불후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에」가 나온다. 후세 사람은 그의 그림 대부분에 매료되어 세기의 작가로 받드는데 그는 이 정도만으로 위안이 되려는지.
고흐의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어려운 삶을 이겨내려 힘겨운 노동 후에 감자 몇 알로 저녁 식사하는 정경이다. 좁은 식탁에 둘러앉아 감자를 집는 손은 가늘고 거칠다. 습해 보이는 어두운 환경, 밝지 않은 등잔 밑에서 차를 따르고 감자를 건네는 눈은 다행히도 다정하다. 비참한 생활에 억눌리지 말라고, 감자의 싹처럼 희망을 놓지 말라고 말하는 듯싶다. 너의 고단함을 공감하고 이해한다고 고흐는 자신의 처지를 편을 들고자 척박한 환경일지라도 그런 표정을 그린 것은 아닐까.
생은 소급할 수 없으니 더욱 애달프고 짜릿하다. 실패와 실수로 사방에 갇힌 듯한 삶도 있어야 살아가는 제맛을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세탁기 밑에서 꺼낸 뿔 달린 감자를 그릇에 옮긴다. 녀석의 후사를 위하여 유튜브를 검색해야겠다. 살아보건대 평탄만이 능사가 아니다. 자신의 서러움을 재료 삼아 작품을 만들며 살아가는 이가 예술가라고 했던가. 나 또한 굴곡진 삶으로 글이 매서워지는 듯싶다. 돌고 도는 세상, 살다 보면 축복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난이 거름이 되어 보상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기적 같은 반전이 있기에 우리는 삶에 매혹되는 것이 아닐는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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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0 아, 그래서 노래를 찾아 올려주셨군요. ㅎㅎ 거듭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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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0 감자 먹는 사람들도 아주 유명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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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하늘바라기 작성시간 26.06.10 김아인 제가 올린 음악에도 이 그림이 나오더라고요..^^ 옛날 한때 고리끼의 감자라는 책도 읽었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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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보라 작성시간 26.06.10 슬픈 사연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