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굴사를 오르며/강연희
산은 그대로 앉아 있다. 멀리서 보이는 종(鐘) 모양의 산방산은 단아하다. 세속의 소리를 응집한 채 침묵하고 있다. 가까이 마주한 모습은 온통 절벽으로 이루어진 야트막한 산이다. 외벽은 길고 짧은 둥근 돌기둥으로 에워싸여 있다. 자연의 시간이 빚은 예술품이 큰 울림을 안겨다 준다.
산방산은 저 혼자 도드라진 자태로 처연하다. 다른 오름이나 산으로 연결되지 않고 홀로 서 있다. 무엇이든 함께 어울려 있지 않은 것은 외로워 보인다. 한라산 백록담에 있던 봉우리가 뽑혀 던져져 만들어졌다는 전설처럼 애련하다. 산방산은 본래 있었던 곳을 그리워하며 수굿하게 서 있다. 단단한 고독이 산을 휘감는다.
하늘을 향해 자존감을 드러낸 돌기둥마다 볕바라기의 초록 식물들이 시새우며 터를 잡았다. 다가올 싱싱한 초록의 계절을 부추긴다. 바위의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을 부둥켜안고 태생을 원망하지 않는 나무들을 보며 강인한 생명력을 읽게 된다. 자연의 신비이다. 산방산은 봄빛이 따사로운 날에 내 가슴으로 안겨 온다.
산 중턱에서 바라본 남쪽 바다는 호수처럼 고요하게 보인다. 산의 외로움과 슬픔의 눈물이 흘러내려 바다를 이루었다.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에도 봄빛이 내려앉는다. 반짝이는 햇살에 윤슬이 눈부시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쪽빛 하늘이 수평선의 경계를 허문다. 멀리 보이는 형제섬의 형체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섬 속의 섬이라 처량하게만 느껴진다.
산허리쯤에 ‘산방굴’이라는 해식동굴이 남쪽 바다를 향해 들어앉았다. 이 굴에 불상을 안치하였기 때문에 산방굴사(山房窟寺)라 불린다. 은은히 퍼지는 목탁 소리에 맞춰 들려오는 ‘관세음보살’의 독경 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미혹한 중생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여 고통 속에 헤매는 중생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시켜주는 자비의 음성에 마음이 경건해진다.
연좌대에 앉은 부처님을 우러러본다. 향을 사르고 마음을 모아 촛불을 밝히고 합장하며 삼 배를 올렸다. 코끝을 자극하는 향 내음이 세포의 움직임을 곧추세운다. 석굴에 모셔진 부처님을 친견하니 저절로 신심(信心)이 솟구쳐 오른다. 알게 모르게 몸으로 입으로 생각과 마음으로 짓는 업(業)을 멸(滅)하기 위해 자신을 바로 알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가족의 무사 안녕과 생명이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잘 살아가기를 비손했다.
석굴 내부 천장 암벽에서 끊임없이 물방울이 떨어진다. 이 물방울은 산방산을 지키는 여신 ‘산방덕’이 인간 세상으로 나와서 고승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과 죄악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실망하여 다시 산방산으로 들어간 뒤 바위가 되었고, 이 바위에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산방덕의 눈물’이라고 한다.
바위는 영원불멸의 천성을 지닌다. 세상에 돌처럼 침묵하며 변하지 않는 게 있을까. 옛사람들은 돌이 생명을 지니고 돌 속에 생령(生靈)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직도 바위에서 산방덕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인가. 산방덕이 바위가 된 것은 산방산을 지키고 고승에 대한 변하지 않는 사랑의 표상이다. 여신이기에 지닌 모성 본능이다. 가없는 산방덕의 천성을 품고 싶다. 산방산의 암벽을 볼 때마다 산방덕의 애달픈 얼굴이 숨어 있는 듯하여 처량하기만 하다.
사람은 오욕칠정(五慾七情)으로 생성되는 기쁨과 슬픔이 혼재된 삶을 살아간다. 어떤 욕망이나 감정도 영속되지 않는다. 굵직한 인생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밀려갈 때마다 기쁨과 슬픔의 감정이 뒤섞인다. 이런 감정은 생의 길에서 겪은 일이나 자신의 인식 과정에 따라 강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어찌할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도 겪게 된다.
어떤 감정이라도 복받치면 눈물이 흐른다. 삶에서 눈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여태껏 삶의 무늬를 이루는 고비마다 수많은 눈물을 흘렸다.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가 되는 기쁨의 눈물과 세상을 저버릴 것 같은 슬픔의 눈물도 많이 흘렸다.
눈물은 마음이 녹아내려 생성된다. 눈물은 짠맛이 나는 만큼 깊은 마음의 정화 작용의 산물이다.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스며드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내재된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다. 마음을 치유하는 길이다. 치유하는 일은 자신을 올바르게 들여다보는 일이다. 자신과의 싸움이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업을 녹여내는 일이다. 누구도 같이 갈 수 없고 아무것도 지니고 갈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하지만 생전에 자신이 지은 업은 짊어지고 간다. 선업(善業)이든 불선업(不善業)이든 숨이 멎는 순간까지 남은 업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이 죽어서도 지니고 간다는 말이다. 생전에 공덕을 쌓은 만큼 업장은 소멸된다고 한다. 현재를 잘 살아야 하는 이유인가 보다.
옛 어른들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 살아가는데 거름이 된다고 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자신에 대한 회한과 성찰의 시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눈물을 흘릴수록 하심(下心)이 발현된다. 하심이란 자신을 낮추고 마음을 비워내어 상대방을 수용하려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 너른 품과 헤아리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보듬는 일이다. 이타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타자와 원만한 관계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산방굴사를 내려오는 길에 “데엥댕 데에엥댕” 범종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온다. 산방산 입구에 있는 사찰의 종루에서 허공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다. 종은 자신의 영혼을 태우며 법음(法音)으로 산사를 울린다. 산 전체가 불법이 머무는 자리인 듯싶다. 온갖 만물이 숙연해지는 시간이다. 여운을 안은 종소리는 어리석은 중생들은 물론 산속의 나무와 새, 멀리 보이는 바닷속의 물고기와 해조류도 깨우치라고 울려 퍼진다.
잔잔히 부서지는 종소리에 내 마음의 불성(佛性)을 찾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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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늘바라기 작성시간 26.06.11 산방산..제주도 여행 하다보면 보이는 산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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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1 추사관 바로 건너편이지요. 우리는 산방사 아니 제주 곳곳을 거의 다 다닌 것 같아요. ㅎㅎ 하도 많이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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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보라 작성시간 26.06.11 절에 들어서면 마음이 숙연해지고
많은 생각들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2 맞아요. 사찰에 들어서면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