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이동민

작성자김아인|작성시간26.06.18|조회수30 목록 댓글 4

봄비/이동민

 

 

 일어나니 창 밖이 희뿌연 하였다. 밤 사이 소리도 없이 비가 뿌렸지만 전혀 눈치 채지 못 하였다. 실실이 오는 봄비가 소리를 남길 리 없다. 아파트 위층에 살고부터는 봄비 오는 소리를 잊은 지 오래다. 비가 내리는 날은 소리마저 가라앉아 분위기가 차분해진다. 아파트에 살고는 눅진한 날씨와 침묵의 분위기가 마음마저 무겁게 한다.

 시골집에 살 때는 마당에 안개처럼 뿌리는 빗물이 꽃잎에도 풀잎에도 대롱대롱 메달려 있었다. 생기가 뿜어 나오는 소리를 마음의 귀로 들을 수 있었다. 자연이 지르는 탄성은 나에게 상상의 날개를 퍼덕이게 하였다. 언젠가 읽었던 시 한 구절도 생각나고, 영화의 한 장면도 떠올려 준다. 빗물은 내 마음을 감성에 젖게 하여 서정이 머물게 한다.

 젊은이는 비오는 날을 싫어하는 듯하다. 활기가 넘치는 젊은이들은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빛 아래에서 생동하는 봄기운과 함께 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도 나는 젊은 날에도 비오는 날이 싫지 않았다. 주룩주룩 소리까지 내지르는 장맛비가 오는 날이면 어둡고 적막한 시골집의 방에 누워 소설책을 읽었다. 비오는 날의 착 가라앉은 분위기와 소설 속에서 전개되는 상상의 세계는 기막히게도 잘 어울렸다. 책 읽기가 지루해지면 오수 속으로 빠져들기도 안성맞춤이었다.

 아파트에 살면서 비오는 날이라도 시골집에서 느꼈던 정취를 맛볼 수 없다.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낮의 밝음 때문에 약간은 어둑한 시골집의 사랑방에서 느꼈던 기분이 될 수 없었다. 비오는 날의 일요일이면 시간을 겨워한다. 텔레비전이라도 틀어서 나른함을 달래보려 하지만 쉬지 않고 떠드는 금속성 소리가 딱 질색이다. 영화라도 보고 있을라치면 스르르 눈꺼풀이 내려앉지만 꿈속으로는 쉽게 빠져들지 않는다.

 옷이 젖을 듯 말 듯 내리는 빗속을 걸어가는 것이 무척 멋있어 보이더라고 하였다. 조용하고, 무겁고, 약간은 쓸쓸한 기분이 된다. 가슴 짜릿한 우수에 젖어보는 그런 멋이다. 내가 사는 세상은 이미 우수의 멋을 찾기에는 너무 떼가 묻은 것 같다. 나이를 먹은 지금은 실실이 비가 내리면 공연히 마음만 행댕그레 해진다. 감성마저 매말라버려서 일까?

 아파트에 살다보니 도무지 시골집의 정취가 느껴지지 않는다. 어둑어둑한 날씨에 우중충한 구름빛이 어우러져서 기분만 칙칙하게 해줄 뿐이다. 시멘트 벽을 타고 흐르는 빗물은 꽃잎을 타고 흐르는 빗물과는 다르다. 추녀를 타고 마당에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창호지를 통해서 부드럽게 들려오면 마음을 가라앉게 하는 음악이다. 먼 산 아래에서 가물가물하던 초가가 안개 같은 봄비에 잠겨 보일 듯 말 듯한 정경은 꿈속에나 남아 있다. 거실에 앉아서 창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보면서 먼 먼 꿈의 세계로 달려가 본다.

 꿈은 피안이다. 갈 수 없는 곳이다. 초가도, 산 마루 아래 마을도, 사랑방에 배를 깔고 소설책을 보는 일도 이제는 갈 수 없는 곳이다.

 설령 지금 촌가에 가보더라도 내 앞에는 현실만이 싸늘하게 맞아 줄 것이다. 봄 비 속에 꿈꾸고 있는 그곳은 아닐 것이다. 시멘트 벽돌 담에 둘러싸인 개량주택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봄비는 나를 저 멀리 꿈속으로 데려간다. 봄비를 거쳐서 바라보는 세상은 깨끗하고 아름답다. 아름다운 음악소리만 들린다.

 병원이 조용해진지도 꽤 오래 되었다. 오늘처럼 비라도 오는 날이면 더더욱 조용해진다. 소파에 기대어 지긋이 눈을 감고 혹시나 유리창 너머로 내리는 빗소리가 들릴까 귀 기울여 본다. 온통 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소음이 되어서 요란할 뿐이다. 비는 역시 시골이라야 어울리는 것 같다. 봄비가 데려다주는 환상의 세계는 아무래도 도회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언젠가는 마당이 넓고 꽃들이 피는 시골의 집에서 봄비 소리를 한 번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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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하늘바라기 | 작성시간 26.06.18 저도 동감입니다..시골의 집에서 봄비 아니 여름 소낙비라도 들어보고 싶네요 ^^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8 저도 완전 동감입니다. 비를 유난히 좋아하는 터라... ㅎㅎ
  • 작성자김보라 | 작성시간 26.06.19 new 봄비 오는 소리에
    도시와 시골
    감각이 다른 듯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8 그러게요. 같은 비라도 어디에서 만나는 가에 따라 다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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