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칫솔 / 최자영

작성자김아인|작성시간26.06.19|조회수19 목록 댓글 4

두 개의 칫솔 / 최자영

 

 

욕실에 들어서자 문득 칫솔꽂이에 눈이 간다. 두 개의 칫솔이 치약과 함께 덜렁 꽂혀 을씨년스런 모습을 보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허전함이 가슴을 싸~아 훑어 지나간다.

“결국은 두 개의 칫솔만 남았군.”

혼잣말이 가늘게 새어나온다. 얼룩진 25년 세월이 거울에 어른거린다.

 

대학 졸업 후 직장 관계로 가족을 떠나 5년여를 객지로 떠돌던 나는 20대 후반에 결혼을 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집살이를 많이 하신 어머니는 사윗감이 술을 좋아하지 않고 둘째 아들이라는 이유로 선뜻 결혼을 허락하셨지만 정작 내가 몸담고 살아야 하는 시댁은 대가족이었다. 칫솔꽂이에는 친정보다 더 많은 두 자리 숫자의 칫솔이 얽히고 설켜서 자기 것을 찾으려면 한참을 뒤적거려야 될 정도였다.

 

집 뒤란 정지문 밖 수돗가에는 아침이면 학교에 가는 시누이, 시동생, 출근하는 남편, 우리 아이들 둘에 시어머니, 결혼한 시누이네 식구들까지 줄 서서 기다리며 바글바글 늘 잔칫집 같았다. 그렇게 10년, 20년이 지나는 동안 하나 둘 칫솔 수가 줄었다. 각자의 둥지를 만들어 떠난 그 둥지에 다시 가족의 칫솔꽂이를 만들고, 그곳에서 칫솔의 수를 늘려가고 있다.

 

자다 깨서 울다가 지쳐 다시 잠들기도 하는 그런 생활 속에서 그저 빨리 커 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던 우리 아이들도 대학생이 되더니 어느덧 졸업반이 된 딸애는 서울의 편집학원으로, 아들은 기숙사로 떠나고 칫솔꽂이에는 두 개의 칫솔만 꽂히게 된 것이다. 80 고령의 시어머니가 계시지만 원래가 정갈하시며 까다로우셔서 칫솔을 따로 두고 쓰신다.

 

새벽 5시면 일어나 밤 12시안에는 마음놓고 앉아 있을 시간도 없는 생활의 지옥이었다. 빨리빨리 시간이 흘러가길 간절히 기원하며 산 생활, 철 따라 가족 동반 나들이를 간다거나, 휴가철에 피서를 가는 이웃을 부러워하며 보낸 인고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지옥처럼 생각되었던 그 시간들이 훌쩍 지나가 버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도 여러 식구가 어우렁더우렁 살던 그 시절이 그리워짐은 왜일까. 이제 다 커버린 아이들은 어린 시절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보채던 피서 얘기도, 외식도 원하지 않는다. 단촐해진 지금은 어쩌다 외식이라도 하자고 하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어른들께서나 오붓하게 가시란다.

 

아직은 토요일이면 아이들의 칫솔이 다시 꽂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객지로 취직해서 떠나고 나면 객지 생활들을 얼마동안 하다가 결혼해서 자신들의 둥지를 만들고 자신들의 칫솔꽂이를 다시 만들게 되겠지.

 

며칠 전에 편집학원에 등록하고 내려온 딸애가 오늘 짐을싸들고 서울 외가로 떠났다. 처음으로 딸을 객지로 보내는 마음은 허전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잔정이 없고 자상하지 못했던 나의 밋밋한 성격이 후회스럽다.

 

할머니의 눈치를 보며 뒷전에서 말없이 서성이던 친정어머니를 떠올린다. 우리 형제자매 7남매가 그리기·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아왔을 때나 학업 우수상을 탔을 때도 다른 엄마들처럼 자랑을 한다거나 드러내 놓고 칭찬을 해주실 줄 몰랐다. 늘 시름에 차서 동분서주하시던 어머니를 사춘기 때는 혹시 계모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었는데 그 어머니의 마음을 결혼을 하고 시집살이를 하면서 이해가 되었다. 나 또한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다른 엄마들처럼 직설적인 사랑표현을 하지 못했다. 어른들을 모시고 사니 늘 조심스럽고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했다. 어린이날에도 아이들을 위한 나들이 한번 못하고 피서는 꿈도 꾸지 못하고 세월을 보냈다. 머잖아 결혼을 해서 떠나갈 딸애에게 정을 듬뿍 주고 키우지 못했음이 못내 아쉽다.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딸을 태우고 떠나는 남편 차 뒤꽁무니를 바라보다 미어져 나오는 눈물 때문에 하늘에 눈을 준다. 무겁게 내려앉은 잿빛하늘 아래 싸늘한 냉기가 감돌고, 매운바람이 땅을 후려치고 지난다.

 

오소소한 한기를 느끼며 추운 가슴에는 알 수 없는 회한과 서글픔이 밀려든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 내 곁을 스쳐 지난 50여 년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서 자라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남기고 죽어 다시 태어나는 반복되는 이 길에 서서 스쳐 지나는 모든 것들을 방관자처럼 바라보고 서 있을 수밖에 없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나약함을 수용해야 함에 옷깃을 여미고 손을 비빈다.

그러나 허망함만 가슴에 채워서는 안 되리라. 기쁜 일이나 슬픈 일, 쉬운 일이나 어려운 일 등 내 앞에 주어진 일은 내 스스로 감당해 우주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삶이라 믿는다.

새해 원단 새 달력을 걸며 은총으로 충만한 한해를 또 선물 받으며 새로운 출발을 허락받아 힘차게 다시 전진을 시작할 때다.

 

봄, 여름의 꽃, 가을의 단풍만이 아름다운 것은 결코 아니다.

앙상한 가지 위에 핀 설화 또한 아름답듯이 인생의 겨울이라는 노년 또한 나름의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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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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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보라 | 작성시간 26.06.19 결혼하여 대가족과
    같이 살아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가족들이 하나 둘 떠나고 나니
    허전한 마음에 그리움만 남았군요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9 애들이 다 커서 나가고 나니까 집이 너무 고요하답니다.
  • 작성자하늘바라기 | 작성시간 26.06.19 참으로 대견하게 잘 견디셨다는 생각이 드네요..그 많은 대가족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충분한 듯..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9 그러게요. 옛날 저의 집도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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