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의 두 관점 / 황선유
머뭇대긴 해도 가을이 오긴 왔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꼭 안 올 것 같던 가을이다. 어쩌다 도시의 한복판에 사는 나는 옛이야기의 배경 같은 황금빛 들판을 볼 수는 없다. 독기라도 품은 듯 거실 창을 뚫던 햇발이 제법 염치를 차리고 수굿해지면 그제야 아, 가을인가 그런다. 복잡한 심사가 제풀에 죽어 잠시 좋다.
천천히 온 가을이 적막을 데려왔다. 종일 외부와의 소통은 별 무게 없는 단 한 통의 전화뿐이었다. 평소라면 웬만한 소요 거리라도 불러들였을 법하건만 한겻이 지나고부터는 묘한 평안으로 접어들어 홀로이 선겁다. 실로 의외이다. 강요하지 않은 순전한 적막이다. 무정한 타인으로부터 도피의 적막이다. 살기 서린 말로 문드러질 염려 없는 적막이다. 온기 없이 삐뚠 시선이 주살하지 못할 적막이다. 산다는 것의 장면이 바뀔 때마다 바짝 몸짓 도스를 아무 이유 없는 이 완벽한 피난의 적막이 내 잠재태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문득 안다.
'내 마음이 적막강산이다.'
고즈음이었다. 방학이거나 하여 고향집에 내려가면 철 덜 든 나에게 엄마가 했던 말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것은 꼭 들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들었다는 표현이 외려 맞겠다. 혼잣말이라는 게 더 옳았다. 아래채 툇마루에 걸터앉아 막 뽑아온 남새의 전잎을 다듬다가 손을 멈추고…. 늦가을 감잎 우수수한 마당을 쓸다가는 먼 데를 보며…. 더하여 부엌 아궁이 속 벌건 불씨를 뒤집다가도 부지깽이를 털며…. 밤이 되면 오랜만에 막내딸과 나란히 누우니 좋다고 말하면서도 어느새 일어나 앉아서…. 새벽녘 문살 창호지 동살에 부신 눈을 떴을 때도 등을 보이고 앉은 엄마의 실루엣이 뿌옜다. 엄마는 나에게 더 자거라 손짓하면서도 입으로는 나지막하게 또 적막강산이라 했다. 엄마가 더 무슨 말을 했는지, 딸 앞이라고 쌓인 속내를 덜어냈는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그때의 철없어 무정했던 나를 못 견디겠다. 엄마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온몸을 저린다.
나는 엄마의 적막을 알지 못했다. 무색옷 속에 두껍게 껴입은 엄마의 허무를 알아볼 줄 몰랐다. 앞산은 저만큼 멀리 나앉았고 사립문은 멀찍하니 너른 집을 빙 둘러 에워싼 공허를 눈치채지 못했다. 큰집에 드나드는 사람이 좀 많았을까마는 그들까지도 엄마에게는 버거운 등짐이요 불편한 시선이었을 것이다. 슬하의 자식들이 다 떠난 집은 고대로 적막강산이었을 터. 생전 마실도 즐겨하지 않는 엄마였다. 말주변도 없는 엄마였다. “소리라도 할 줄 알면….” 그게 다였다. 언제 한번 크게 소리 내어 웃는 걸 본 적도 없다. 생의 덧없음과 더더욱 존재의 무상함을 오롯이 견뎌내며 단지 적막하다고만 했을 것이다. 홀로 그 적막을 삭히며 앓으며 마지막 날들을 살았다. 마침내 적막과 함께 적막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러고 보니 나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기억에도 없네.
내 나이가 엄마의 쉰쯤이 되었을 무렵에야 어렴풋하나마 엄마의 적막을 되짚어보았다. 그럴 때마다 가슴 한 점에서 발현하여 전신으로 황급히 방사하는 통증 때문에 하던 일을 멈추어야만 했다. 예순이 되고부터 통증은 울음으로 전이되었다. 울음은 언제나 사고처럼 돌발적이어서 곤혹스러웠다. 울음을 은폐하기에는 이를 악다무는 것 외에 더 나은 처방이 없다는 것도 터득했다. 무던히 턱관절이 아팠다.
더딘 가을을 따라온 적막은 오후 되도록까지 정히 진득했다. 그때껏 마룻바닥에 낮게 가라앉았던 적막이 점점 부풀고 날아올라 거실 공간을 메운다. 오래고 새로운 먼지가 적막에 압도되고 움츠려 미세하다. 단정한 가구 위 사진틀 안의 손녀들은 소리를 죽이며 웃는다. 그뿐인가. 한쪽 벽을 반이나 차지한 텔레비전의 클래식 채널에서 이제는 백발이 된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건반 위 손놀림조차 별안간 느려지고 음률 또한 나지막하여 송구하다. 여든의 풀별 수필가는 젊은 시절에 보았던 그때의 젊은 마르타 아르헤리치 연주회를 못내 그리워한다.
과연 올곧고 무결한 적막이다. 이런 날에는 다만 쓰고 싶다. 오랫동안 흐릿하고 막연했던 낱말들이 또렷하고 확연해진다. 주저했던 글자가 꿈틀하며 단박에 글줄을 잇는다. 컴퓨터의 화면을 채워가는 양이 조심조심 그러나 괜찮다. 적막이 가져다주는 예상 못한 문장으로 잠깐 울먹하였으나 더는 아무렇지 않다. 어정잡이 글쟁이의 비애 희열만이 뒤죽박죽 낯설다.
언제 적막의 고요를 만끽한 적이 있던가. 애써 적막을 번 적이나 있던가. 어쩌면 이런 적막을 얻기 위해 긴 시간 그렇게 열심히 뜨겁게 시끄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만은 적막에 무심 무관한 바깥세상이 조금도 궁금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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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0 에효~ 집에만 계시지 말고 밖으로 자꾸 나가보세요. 남산도 올라가 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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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하늘바라기 작성시간 26.06.21 김아인 전 자주 산에 오르고 달리기하고 있습니다. ㅎㅎ 가끔 집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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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1 하늘바라기 ㅎㅎ 네~ 알차고 보람있게 잘 지내시는 줄 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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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보라 작성시간 26.06.20 세월이 흘러 어쩔수 없이
나이 먹게 되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싶은 욕망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1 맞아요. 아프지 않고 나이 먹는 거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일 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