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권선옥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으셨다. 어머니가 만드신 깍두기나 나박김치 맛은 특히나 일품이었다. 다른 데서 그런 맛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 비결은 특별히 비싼 식재료를 써서가 아니라 식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절실한 마음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랫말 사는 선모 형님은 그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가 친구였는데 우리 집에 자주 일을 하러 왔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여러 해가 지난 어는 날에 술에 취해 아버지 생각이 났는지 우리 집에 와서 말하기를, 다음날 우리 집에 일을 맞추었으면 ‘내일은 하루 종일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겠다’는 생각에 기뻤다고 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못 잊어 했다.
어머니는 대부분 우리 밭에서 기른 채소들을 식재료로 하여 음식을 만드셨다. 그랬음에도 식단은 다양하고 풍성했다. 부모님이 원체 부지런한 분들이어서 밭 구석구석에 이것저것 알뜰히 가꾸셨다. 돌담을 따라 길게 정구지 밭이 있었고, 병순이 누나네 집 울타리 옆에는 늘 도라지와 쪽파, 오이, 가지를 심었다. 서쪽 돌담 너머 모시밭 옆에는 토란밭, 그에 잇대어 고추밭이었다. 어머니는 가끔 우리 집 형편이 풍족하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셨다. 좀 여유가 있었으면 다양한 음식을 만들 기회를 가져 출가를 앞두고 있던 누님이 안목을 높일 수 있을 거라 하셨다.
막둥이인 나는 자주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었다. 어머니가 음식을 만드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매캐한 연기에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고, 아궁이의 열기로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기도 했다. 평소에 먹을 수 없었던 새로운 음식을 만들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그중에서도 조청을 골 때가 가장 좋았다. 할머니 제사가 섣달 초여서 그때 조청을 고아 한과와 매자과*를 만들어 설과 할아버지 제사 때까지 썼다. 남들은 조청을 더 고아서 갱엿*을 만들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엿을 만들지 않았다. 그것은 불만이었으나 조청을 골 때마다 무를 넣어 정과를 만들었다. 가래떡에 찍어 먹는 조청맛도 좋았으나 정과의 맛을 잊을 수 없다.
이렇게 여러 음식을 먹으면서 내가 그 맛을 몰랐던 것이 청포묵이다. 도토리나 상수리로 쑨 묵은 떫은 듯 톡 쏘는 맛이 좋았다. 그러나 청포묵은 그와 달리 밋밋하였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어쩌다 청포묵을 드실라치면 맛이 좋다는 말씀을 몇 번이나 거듭하셨다. 이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를 얼른 이해할 수 없었다. 우선, 그렇게 어떤 것에 대하여 연거푸 찬사를 보낸다는 것이 평소의 어머니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또 내가 먹어 보면 오히려 도토리묵 보다 맛이 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훨씬 뒤에, 내가 지긋이 나이가 들어 달거나 신 것이 썩 달갑지 않게 되어서야 그때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젊어서는 무엇이든지 강한 맛이 좋았다. 맵고 짠 것, 시고 단 것이 좋았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이런 것에 점점 입맛을 잃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맛이 싫어져서 어머니의 입맛처럼 변해 버렸다. 오래오래 먹고 먹어도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은 짜릿한 맛이 아니라 오히려 심심한 맛이다.
입맛만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옷의 색깔이나 디자인은 젊어서도 점잖은 것을 선회했으니 그렇다 치고,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한 취향이 변했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게 변한 것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졸랑거리며 앞장을 서는 사람보다 있는 티가 나지 않게 중간이나 그 뒤에 서는 사람이 좋다. 깔깔대거나 질질 짜는 사람보다 그 감정을 꿀떡 삼키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묵지근한 사람이 좋다. 무엇이고 한번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든지 이루어 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보다 아니다 싶으면 내려놓을 줄도 아는 사람이 좋다.
젊어서 한때 가깝게 지내던 이가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이라고 말하여 그 뒤로 그와 깊게 틈이 생기고 말았다. 순리를 따르지 않고 지나치게 악착스러운 것이 왠지 싫었다. 그런 사람은 싫기만 한 게 아니라 무서운 생각까지 든다. 나는 가끔 “ 주여,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라는 프란치스코의 기도문을 나에게 읊어준다.
이제 내 입맛은 음식이나 사람이나 다 같아졌다. 짜릿한 맛보다는 깊은 맛, 그 여운이 오래가는 음식과 사람이 좋다. 그러고 보니 내 주위에는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다. 참 다행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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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늘바라기 작성시간 26.06.22 new
집에서 저도 음식을 하며 밥을 챙겨 먹고 있는지라 음식을 잘 하시는 분을 보면 너무 부러워요..어제는 콩나물 사다가 무쳤는데 맛이 영 아니더라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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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2 new
ㅎㅎ 콩나물은 간만 잘 맞추면 되는데요. 저는 보기 보다 음식이 맛있단 소릴 듣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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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보라 작성시간 26.06.22 new
음식 솜씨에 따라서
입맛이 다르지요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2 new
손맛은 타고 나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