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엄마/박태칠

작성자김아인|작성시간26.06.23|조회수23 목록 댓글 4

벙어리 엄마/박태칠

 

 

 

“영어 원어민 수업에 자녀를 등록하러 오신분이 있습니다.”

 민원대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다가와서 좀 난처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였다. 이미 접수가 끝난 상황이 아니냐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그렇게 설명하였지만 좀체 물러서지 않고 계속 서있다는 것이다. 나는 민원 창구 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젊은 아주머니가 조용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나에게 다가오고 직원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번 수업은 선착순 모집이 원칙이며 신청자가 워낙 많아 정원은 벌써 초과하였으며, 추가등록자도 많아 지금은 늦었음을 정중하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분은 듣지도 못하고 말씀도 못하시는 분입니다.”

 조금 전 그녀를 안내 했던 직원이 못 미더운 눈치로 계속 이쪽을 쳐다보다가 끝내 한마디 한다. ‘아차’ 하는 당혹감이 스쳤다.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메모지에 간략히 적어 그녀 앞쪽으로 내 밀었다. 잠시 반응을 기다렸으나 그녀는 여전히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쳐다보았다. 절망감과 애원이 교차하는 눈에 물기가 서리고 있었다. 낭패감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추가등록자 명부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제일 끄트머리에 딸아이의 이름을 적어놓고는 돌아 서 가다가 다시 한번 애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곳 동사무소로 온지 반년이 지났다. 교육환경이 좋지 않다는 주민여론을 듣고 ‘어린이 영어 원어민교실’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처음 시도하는 프로그램이라 반신반의하였으나, 연일 신청이 쇄도하였다. 급기야 3일 만에 홍보현수막을 철거하였지만 막무가내로 접수를 요구하는 민원인과 뒤늦게 찾아오는 민원인을 돌려보내는 것도 일과의 큰 부분을 차지하였다. 한바탕 홍역이 끝나갈 무렵에 그녀가 찾아 온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똑같이 청각장애를 가진 남편과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가며 어렵게 살고 있었다. 다행히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은 정상이었다.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정원이 찼으니 어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쉽게 잊혀 질 줄 알았던 그녀의 일이 개강일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미동도 않고 그린 듯이 서있던 모습에서 애달프게 바라보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그녀 딸아이를 위해 이미 접수한 순서를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날은 종일 창밖을 보면서 고민을 하였다. 창밖에 나뭇잎이 계절 따라 화려하게 변하고 있었다. 세월은 어느 잎에나 똑같이 적용되고 있었다. 그것이 원칙이란 말인가. 결국에 결론을 내린다. 모두에게 똑같이 선착순접수가 원칙이 아니었던가. 원칙대로 하자. 원칙대로…….

 개강을 하루 앞두고, 결국 아무런 해법을 못 찾은 채, 퇴근을 하면서 술을 한잔 하였다. 내일은 수업참가 여부를 통지해줘야 할 텐데 무슨 말로 설명할 것인가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였다. 잠자리에 누우니 그녀의 물기어린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 친숙한 서글픔, 뭔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었다. 왠지 본 듯한 그 젖은 눈은 어릴 때 내가 본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어머니도 젊어서부터 청각장애인이었다.

 내가 열 살쯤일 때 어머니와 함께 대구에 왔다가 시골집으로 돌아 갈 때였다. 버스로 4시간이나 되는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리던 복잡한 차 안에서 남자안내원이 승객들의 표를 검사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어머니의 표를 본 순간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어디로 가느냐고 고함을 치르더니, 행선지가 맞지 않다며 우리를 강제로 차에서 내리도록 하였다. 아마 시외버스정류장에서 승차권을 구입할 때에 매표원이 어머니와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자 행선지를 대충 써 버린 것 같았다.

 중도 하차한 지점에서 집까지는 이 십리가 넘는 길이었다. 한밤중에 집에 도착할 때까지 몇 개의 짐 보따리를 이고 진 어머니는 나를 걸리며 아무 말 없이 숙명처럼 그 먼 길을 걷기만 하였다. 다리가 아프다고 투정을 부리던 나는 어머니의 젖은 눈을 보고는 더 이상 말을 못했다. 그 적막했던 밤길은 가난하고 귀가 어두운 어머니의 삶이었다. 더 이상 그 길을 눈물로 가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될 텐데. 그녀와 어머니의 물기어린 눈이 교차되면서 나는 밤잠을 설쳤다.

 키가 껑충하게 크고 선하게 생긴 미국인 강사가 들어 왔다. 나는 그 딸아이의 이름을 맨 마지막에 추가로 적어 넣은 학생명단을 건네주었다. 그는 차근하게 명단을 보더니 정원보다 한명이 늘어난 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 부모님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나는 명단의 끝을 가리키며 떠듬거리는 영어로 말했다. 그리고는 다음 말과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잠시 침묵하였다. 묵묵히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말 못하는 것은 그녀와 내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너도 벙어리야. 그런데 원칙대로 하자고? 나는 스스로를 경멸했다. 현재 이 아이는 부모의 유일한 입과 귀입니다. 이 아이가 나중에 부모를 잘 돌볼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어렵게 몇 마디를 겨우 연결하자 그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오케이를 연발하고는 수업을 위해 사무실을 나갔다.

 나는 벙어리 엄마에게 딸아이를 수업에 보내라고 문자를 보냈다. 이젠 꼭 원칙대로만은 살지 않으리라고 생각해본다. 원칙이라는 미명하에 장애인을 정상인과 동등하게 경쟁시키려 했던 나의 얄팍한 편의주의가 경멸스러웠다. 이젠 인간애적인 삶을 살고 싶다.

 가로수 잎사귀 한 잎이 바람에 휘청거리더니 가을이 땅에 툭 떨어졌다. 가만히 보니 구멍 뚫린 낙엽이다.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다. 휴대전화가 부르르 떨더니 ‘감사 합니다’란 문구가 보였다. 그녀가 내게 보인 최초의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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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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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보라 | 작성시간 26.06.23 new 어느 부모든지 자녀에 사랑은
    똑같다고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3 new 맞아요. 자식한테 더 해주지 못해서 안타깝지요.
  • 작성자하늘바라기 | 작성시간 26.06.23 new 지나친 교육으로 요즘 핫한 참교육이라는 넷플랙스가 인기 것어요..심각합니다. 맹목적인 부모의 자식사랑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33 new 저도 그 드라마 봤는데 참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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