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極의 반란 / 박순태

작성자김아인|작성시간26.06.23|조회수25 목록 댓글 4

극極의 반란 / 박순태

 

 

자석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S극과 N극이 가까워질수록 보이지 않는 힘이 방향을 잡고, 서로를 향해 미세하게 자세를 고친다. 양극과 음극은 상극이다만 그들 사이에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 성립의 전제다.

인간의 정치에 이르면 극의 움직임은 달라진다. 양 진영은 서로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려 기울지 않는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경계의 벽은 더 견고해지고 더 높아지며, 맞닿기 직전에 거센 반발로 등을 돌린다. 자연에서 다름은 균형의 축이 되지만, 정치의 세계에서 다름은 차이와 차별의 이유가 된다. 그 배제의 극은 제 역할을 잊고 반란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며칠 전 점심 식탁 앞에서였다. 가깝게 지내는 고향 선배 두 분과 자리를 함께했다. 숟가락이 그릇을 오갈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정다웠다. 그러나 정치 화제가 테이블 위로 올라오자 분위기는 삽시간에 바뀌었다. 공기가 먼저 식었다. 한 분의 말은 직선으로 뻗었고, 다른 한 분의 말에는 날이 섰다. 호흡은 가빠졌고 국은 식어갔다. 젓가락 끝에서 반찬이 몇 번이나 떨어졌다. 말은 상대를 향했건만 시선은 다른 곳으로 가 있었다. 귀는 열려 있었으나 받아들일 자리는 이미 자신들의 주장으로 꽉 차 있었다. 두 사람은 상대를 이해하지 않고 설득하려고만 했다. 각자의 확신을 확인받고 싶어 했을 뿐이다.

나는 가운데서 물을 따르고 웃음을 얹었다. 고개를 이쪽으로 기울이면 저쪽의 눈빛이 굳었고, 저쪽에 말을 보태면 이쪽의 침묵이 냉랭해졌다. 접시들은 식탁 한가운데 그대로였건만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점점 굵어졌다. 대화는 흐르지 않고 제자리에서 버텼다. 식탁 위는 화해보다 논리의 온도만 높아진 채 팽창하고 있었다.

그때 떠올랐다. 생명은 늘 다른 극을 전제로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암수는 서로를 지우지 않은 채 관계를 만들고, 낮과 밤도 상대를 뒤따라 둥글게 하루를 완성한다. 자연에서 극은 소멸의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균형을 이루며 생산을 동반한다. 그러함에도 유독 정치 앞에서 인간은 가장 원시적인 상태로 돌아간다. 깃발을 들고 큰 목소리로 손익을 계산하느라 진리마저 재단해버리려 발싸심이다.

이쯤 되면 물을 수밖에 없다. 자연에서는 극이 다를수록 하나가 되는데, 왜 인간의 정치는 극이 다를수록 갈라지는가. 어쩌면 답은 간단할 수 있다. 자연의 극은 스스로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양극과 음극은 상대를 이겨야 할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다름은 곧 서로가 실재할 수 있는 필요조건이며, 결합은 생존의 조건이자 창조다. 반면 인간의 정치는 다름을 위협으로 오해한다. 상대를 끌어안으면 내가 밑에 깔릴까, 칼에 찔릴까 두려워 수단과 방법을 다해 상대를 파멸시키려 묘수를 부린다.

정치의 상극은 자석이 아니라 깃발에 가깝다. 깃발은 붙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기 위해 세운다. 바람이 불수록 더 세차게 펄럭이며 상대의 존재를 꺾으려고 혈안이 되어 광분한다. 그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은 어느새 생각하는 개인이 아니라 흔들리는 천 조각 일부가 된다. 내 말의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기에 상대는 이해의 대상이 아닌 넘어야 할 언덕이란 명제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 두 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악수를 했다. 조금 전의 격렬함은 국물처럼 식어버렸다. 말은 갈라졌으나 관계는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인간 정치의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 우리는 때로는 갈라서되, 완전히 떠나지는 않는다. 붙지 않더라도 같은 자리에 머무는 식으로 서로를 견디어 왔다. 어쩌면 정치란, 서로를 밀어내는 극의 기술이 아니라 그 간격을 유지하는 불편한 균형인가 싶다.

자연은 극을 만나게 하고, 인간은 극을 세운다. 전자는 에너지를 만들고, 후자는 불화를 생산한다. 언젠가 정치도 자석처럼 말없이 작동하는 날이 오기나 할까. 그날이 오지 않아도 밥상 앞에서만큼은 극의 반란을 잠시 멈출 수 있기를 바란다. 붙지 못하더라도,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쯤에서 니체가 던진 말로 마음을 촉촉이 적시련다.

“사람들은 햇빛보다 달빛을 더 좋아할 때가 있다. 달이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달빛이라 부른다. 태양의 빛을 받아 부드럽게 반사한 그 빛이 강렬하지 않고 수수하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듯하면서도 앞서 나서지 않는 빛, 약존약무若存若無.

돌아오는 길,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일었다. 열쇠들이 소리를 냈던 게다. 모양도 길이도 다른 쇠붙이들이 엉켜 있었다.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귀에 오래 남았다. 다름이 사라져야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름이 제자리를 지킬 때 관계가 성립한다는 사실을.

정치란 극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극을 유지하고 견디게 하는 태도일 것이다. 뭉치지 못하더라도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 연습. 깃발을 더 높이 들기보다 잠시 내려놓는 용기. 극은 하나가 되지 않으면서 서로를 밀어내는 순간, 관계는 멈춘다. 자석은 상극끼리 거리를 잠잠히 좁혀가면서 하나로 결합한다. 반대의 극이 가까이 있어야 비로소 힘이 생긴다는 것을. 인간은 아직, 그 묵비默祕를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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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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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보라 | 작성시간 26.06.23 new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고
    입장 바꿔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3 new 그렇지요. 입장을 바꿔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을 듯요.
  • 작성자하늘바라기 | 작성시간 26.06.23 new 친구와는 두번 다시 정치 얘기하면 안됩니다..이젠 토론도 필요 없어졌어요..이해를 하려고 하지 않아요..극과 극을 치닫고 있어요..참으로 안타까워요..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35 new 맞아요. 누구든 생각의 경향이 다를 수 있어서 자칫 싸움으로 번지기 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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