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의 언어/조 희

작성자김아인|작성시간26.06.05|조회수31 목록 댓글 2

자정의 언어/조 희

 

 

 

 

그 소리는 귓바퀴에서 태어났다.

들판의 그림자처럼

곧게 서기도 하고구불거리기도 했다.

울음이 말이 되기까지

너는 오래 참아야 했을 것이다.

대부분 먼지처럼 가볍게 흩날렸지만

기억의 서랍 속쓰다 만 만년필처럼

누워 있기도 했다

내가 죽고 우리가 사라져도

자정에 태어난 너는 죽지 않는다.

다만 조금씩 변할 뿐.

종이 위에 허물을 여러 번 벗어놓고,

백과사전의 낱말처럼 읽히기도 한다.

소리를 뒤집으면 귀뚜라미가 되었다.

돌담 밑에서 네가 울면

별빛 같은 시간이 쏟아졌다.

시침은 아홉 시간을 지나가고

세 시간은 되돌아왔다.

그 울음에 등불이 켜지면,

정전이었던 귀 한쪽이 다시 빛났다.

너는 날개를 비비고

정강이의 톱니를 갈며 울었다.

그때 내 몸을 스쳐 지나가던 초경이

웅크린 나를 흔들었다.

소리의 지붕이 높아질수록

붉은 단풍이 찾아왔고,

풀밭에 쏟아지는 것은 노래가 아니었다.

너는 너를 벗고 있었다.

귓바퀴를 더듬어본다.

누군가 앉았다 간 자국이 남아 있다.

나는 그것을

언어의 발자국이라 부른다.

 

 

                ―《아토포스》 2025 겨울호

 

 

 

조희 충남 부여 출생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수료. 2022년 내일을여는작가》 신인상으로 등단.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보라 | 작성시간 26.06.05 귀뚜라미가 앉았던 흔적 인 듯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6 언어의 발자국소리 들어보고 싶네요. ㅎㅎ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