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괴롭고 즐겁고/손유미

작성자김아인|작성시간26.06.10|조회수31 목록 댓글 4

외롭고 괴롭고 즐겁고/손유미

 

 

 

 

개가 묶여 땅굴을 판다 제 주인도 거뜬히 묻을 만큼 판다 그러나 개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외롭고 괴롭고 즐겁고

 

팔십 년은 살아남은 사람의 눈동자로 세상을 보고 싶었다 이 침침함이 다가 아니란 듯이 보고 싶었어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이 살아있다는 거추장스러움

 

한때 나는 갓난아기의 위장만큼 유망했다

그러나 지금은 마른 똥처럼 힘없다

 

개가 제 집에 땅굴을 파면 초상이 난다지 나의 조모는 그 말을 들은 후 수십 년 동안 생각했다 집안의 몇몇 식구가 죽어 나갈 때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그때 그 말을 지껄인 이웃의 입을 찢지 못한 순간을

 

사는 건 순식간인가 정말로?

 

오늘 나를 괴롭히는 것이 살아있다는 지루함

 

팔십하고도 몇 년을 더 살아남은 나의 조모는 이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하나 저 딱딱한 눈알맹이를 가지고

 

밟히지 않은 땅처럼 부드럽게 굴어야 했는데……

 

사는 건 외로운가 즐거운가 괴로운가 정말 그러한가

 

 

 

             —계간 포지션》 2026 봄호

 

 

 

손유미 / 1991년 인천에서 출생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4년 창작과비평》 신인시인상 당선시집 탕의 영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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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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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지니 | 작성시간 26.06.10

    나도 팔십 년 언저리에 갔을 때
    뭘 보고 뭘 보지 못 하게 될까..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0 그러게요. 삶의 희로애락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지 않을까요.
  • 작성자김보라 | 작성시간 26.06.10 누구나 한번은 가야 할 인생
    슬프고 고독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1 미리미리 건강 잘 챙기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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