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찔린 채 여름이 죽었다 /손준호

작성자김아인|작성시간26.06.15|조회수30 목록 댓글 2

이름에 찔린 채 여름이 죽었다 /손준호

 

 

 

 

슬픔이 부리로 쪼아대는

이름 속에 심장을 부리고 싶어

이름에 아프게 중독되는 게

사랑입니까, 서로의 뒤꿈치를 부드럽게

물어뜯는 게 가족입니까

던지면 자꾸만 물고 오는 털실 뭉치처럼 꼬리에 이름을 끌고 다니면서 사랑을 생산하는 공장주가 되고 싶었지만, 야간 근무에 돌아가는 염색 공단 컨베이어에 원단을 꽂는 현실처럼

꽉 비어 있는 새의 뼛속에 당신

이름을 박아넣는 궁극의 곤궁

날개를 접어두고 우산이라는 지붕 아래 밤잠을 설치겠습니다, 놓쳐버린 이름을 꽉 쥔 어린아이의 꿈속에 잠입한 한 줄기 희망처럼

시간의 회오리에 방부제를 타면서

죽음이 새벽의 나를 유혹했듯이

당신의 이름을 훔쳐 다니고 싶었는데

간이 여즉 불안합니다, 약을 좀 늘릴까요

같은 식상한 처방을 찢어버리고 싶습니까

우울한 그림자를 불태우고 싶습니까

사랑의 방화범을 꿈꿨지만, 별들도 죽는다는 걸 알아버린 은하수처럼 이름도 늙는다는 것을 눈치챘습니까, 머리가 허옇게 센

이름은 여전히 허락되지 않고

이름만 앉았다 간 빈 의자를

손금으로 눌러 닦아 보면서

소쩍새 울음에 달빛을 찍어 밤새 쓴 편지

끝내 부칠 용기가 어렵습니까, 추신이 거추장스럽습니까, 봉투에 이름을 봉해버리면 영원히 내 것이 되겠습니까

먹구름은 너무 많은 질문

돌의 야윈 손을 꺼내놓는 아침이면

거짓말 부풀리는 초록의 예언을 집어

강에 플러그를 꽂는 왜가리에게

물빛은 강의 혈흔입니까

강물은 세상에서 가장 긴 편지입니까

소리개가 바위에 제 부리를 부수고, 돋은 부리로 닳은 발톱을 뽑아내고 상한 깃털을 하나씩 뜯어내 버리듯이

칼이 되어 목을 겨누는 이름 하나

가슴 수틀에 슥슥 갈고 있습니까

빗방울의 빈방에 누워서 아름답게

흘러넘치고 싶은 여름이었는데

선거 벽보가 나붙는 동안

담벼락을 빠져나오지 못한

죽은 목소리처럼

온몸에 피투성이 노을 묻힌 이름 하나

병든 여름의 명치끝을 깊게 찌르고 있네

 

 

 

 

 

손준호

2021년 『시산맥』 등단

시집 『당신의 눈물도 강수량이 되겠습니까』 『빨간 티코 타잔 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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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보라 | 작성시간 26.06.16 아름다운 여름이 되고 싶었지만
    아쉬움만 남은 듯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아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6 네~ 참 좋은 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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