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아/허진경
엄마를 양말처럼 뒤집을 수 없어서
의사가 엄마 배를 갈랐다
나를 바깥으로 꺼내 든 의사가
물구나무서고 있었다
백일째 연습한 뒤집기
세계의 첫인상도 뒤집을 수 있었다면
책등을 안쪽으로 꽂아두는 장난이나 치다
사서에게 변명하는 일이 없었겠지만
내가 들키지 않은 건 종종
양말을 뒤집어 신는다는 사실
양말을 뒤집어 신으면
바깥을 향해 걸어도
안으로 파고들 수 있고
바깥에서 주워 온 적 없는
모래 알갱이를 숨길 수 있다
신발을 뒤집어 털어도 조용한 이유가
양말에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고
나는 다리부터 태어난 사람처럼 걷는다
발 아래서부터 간질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뒤집어 꽂고 나오는 길이다
—《포엠피플》 2026 여름호
허진경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학과 졸업.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재학. 2025년 웹진 《님Nim》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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