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상자가 있는 방/권이화
유리창을 흔드는 눈보라 속을 걸어간다
나무로부터 떨어져 나온 흰 꽃잎들의 물음표가 바다 위를 난다
고래의 시간을 닫은 지 오래된 해변에 검은 달이 뜬다
걸어서 갈 수 없는 먼 곳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꽃이 필 때까지 하얗게 치통을 앓다가 꽃잎 따라 바다의 페이지로 빙빙 돌다가
나무에 대해 주문을 걸던 목소리가 눈보라 속으로 사라진다
없는 고래를 찾아 검은 상자 속으로 걸어가는 밤
불이 켜지면 더 캄캄해지는 바다 위로 비가 내린다
―계간 《시와 사람》 2026 봄호
권이화 / 경북 안동 출생. 2014년 계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어둠을 밀면서 오래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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