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방앗간에 얽힌 사연.
6월의 상순이 되자 여름이 물밀 듯 밀려오고 있다. 후덥지근한 날씨가 연일 계속된다. 훅 하고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지만 강렬한 햇볕은 무더위를 향해 무한 질주하는 듯한 느낌이다.
새벽출근을 했다. 근무하는 사무실 옆에 물레방아가 있다. 물론 지난여름, 자투리땅에 조경을 하면서 작지만 예쁜 물레방아를 설치한 것이다.
삭막한 도시의 한가운데, 푸른 녹음이 우거지고 물레방아가 돌아가자 새가 찾아왔다. 물레방아 간에서 열심히 물을 마신다. 물을 마시다 말고 푸드득 날개를 치며 목욕도 한다.
새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물레방아 옆으로 모여든다. 통유리 윈도우 너머로 벌어지는 아득한 상황이 상념의 나래를 펴게 만들었다.
물레방앗간에서 보통 한 마을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고색창연하게 엮어진다.
이효석님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생원이 메밀꽃 향기에 취해서 우연히도 물레방앗간에 들어갔다가 성씨집 처녀와 기연을 맺는다. 밝은 대낮이라면 언강생심 꿈도 꾸어보지 못할 만큼 박박 얽은 장돌뱅이 허 생원이 물레방앗간이 아니면 어디서 그런 양갓집 규수와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었을까.
나도향의 ‘물레방아’에서 정월 대보름 하평마을은 마을의 지주인 신치규의 집 마당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윷놀이로 잔치 분위기였고 보리쌀 한가마가 걸린 윷놀이는 옥분의 남편 이방원의 승리로 끝난다.
타지방으로 부터 하평리에 정착한 옥분과 방원 부부는 재산이 없어 신치규의 소작으로 생활해가는 처지이기 때문에 농사보다는 장사를 해볼 궁리를 한다.
방원은 신치규의 도움으로 장사를 떠나며 평소부터 옥분을 탐욕스런 눈길로 바라보던 신치규는 방원이 떠난 후 점점 노골적인 모습으로 변한다.
마을에서 가장 부자요, 세력 있는 신치규는 자기 집 막실에 사는 이방원의 아내에게 눈독을 들인다.
오십 줄에 들어선 그는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아낙을 물레방앗간 옆으로 불러내어 갖은 말로 꾄다.
그에게로 와서 아들 하나만 낳아 주면 막실 신세를 면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이 다 그녀의 것이 될 것이라고 하자, 가난에 지친 데다 윤리 의식이 박약한 그녀는 신치규와 더불어 물레방앗간 안으로 들어간다.
신치규는 이방원을 자기 집에서 내쫓으려고 한다. 두 사람이 물레방앗간에서 같이 나오는 것을 목격한 이방원은 사태를 짐작하고 부부싸움을 벌이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아내를 감싸는 신치규를 구타한다. 이방원은 상해죄로 구속되어 석 달간 복역하게 되고, 신치규는 여자를 차지하게 된 것을 만족해한다.
출감한 이방원은 분김에 그들을 살해할 생각이었으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아내의 본심을 물어 본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떠난 아내는 같이 도망치자는 이방원의 간청을 거절한다. 이방원은 끝내 아내를 죽이고 자살한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이 원수다. 가장으로서의 제 구실을 못하면 가차없이 쫒겨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여름, 시원한 대청마루에서 벌렁 누워 읽어볼만한 물레방아에 얽힌 사연들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그나마 한줄기 시원함을 안겨준다.
올 여름엔, 나도 책한 권 들고 시원한 계곡의 원두막 찾아가서 물레방아에 얽힌 사연에 푹 빠져보아야 하겠다.
2012. 6. 10. 雲海 김종억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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