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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강연: 황자명 소개와 원불교 신앙 전환, 정토의 삶과 마음공부 - 4단 황자명 정토

작성자지장|작성시간26.06.21|조회수0 목록 댓글 0


반갑습니다. 사단 황자명이라고 합니다. 제가 부산교단에 와서 앞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것이 처음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가 강연 주제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을 하다가 제가 부산교당에 온 이후로 제 소개를 제대로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저를 모르시는 분들께 저를 다시 소개한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원불교를 만나서' 라는 주제로 강연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오늘 강연을 통해서 제가 누구이고 어떻게 원불교를 만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원불교를 만나서 제 삶이 변화했는지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제 소개를 먼저 하겠습니다. 저는 1989 년생이고요. 한국 나이로는 38 살입니다. 제 이름은 법명과 속명 모두 자비로울 자 자에 밝을 명자 자명이구요. 열반하신 민산 이중정 종상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이름에서 유추를 하셨겠지만 저는 흔히들 말하는 모태신앙으로서 원불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의 고향은 창원이지만 청년회부터 마산교당을 다니고 계셨던 어머니 덕에 저도 태어나면서부터 교당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심이 기쁘셨던 어머니 덕에 저는 자의든 타의든 원불교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강력한 의지로 어린이집도 교도님이 하시는 어린이집, 그리고 유치원도 집에서 30 분 떨어진 원광유치원을 다닐 정도였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교당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고 계셨던 부모님은 법회가 끝난 후에도 계속 교당에 남아서 회의나 모임에 참여를 하셨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인 저는 끝날 때까지 부모님을 기다렸어야 했는데요. 하지만 법회가 끝난 뒤에 친구들이 모두 가버린 교당은 저에게는 너무나 심심하고 지루한 곳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면서 점점 '왜 내가 교당에 가야 되지?'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주말에는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빠져서 교당은 점점 뒷전이 되어갔습니다.
이곳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로도 크게 바뀌지 않아서 주말에는 학원 가야 된다는 핑계로 더더욱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교당이라는 존재는 사축 2 제 때 정도로만 가는 곳, 그리고 어릴 때부터 저를 봐오신 어른들께 '많이 컸네' 라는 소리를 듣는 장소가 되어갔습니다. 그런 저에게도 첫 시련이 다가오는데요, 바로 대입 수능에 실패한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큰 시련 없이 자라온 저에게는 수능 실패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수능을 망치고 큰 충격을 받아서 모든 것에 원망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원망심과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저는 결국 분당에 있는 기숙학원에서 재수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기숙학원이었기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있는 건 오직 한 달에 한 번뿐이었고. 저는 그 좁은 학원 건물에서 답답함 속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문제지를 보는 일 밖에는 없었고 종교책과 문제지 이외에는 반입 금지던 곳에서 교전은 저에게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유일한 읽을거리였습니다.
그렇게 교전과 함께한 1년의 재수 생활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감사생활이었는데요.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맞듯이 집 떠난 세상은 힘들기도 하였지만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 생각들과 함께 교전을 읽으니 교당에 한 번 제대로 나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재수 후에 꿈에 그리던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된 저는 주변의 추천으로 서울교구 안암교당 청년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1 학년이었던 제가 교당에 온 첫날 마침 교당에서는 단회날이었고 단회 때 단원분들은 법문에 대해 심도있는 대화를 서로 주고 받았었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원불교가 모태신앙이라는 이유로 원불교를 조금 알고 있다고 생각한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면서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착각이라는 생각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저보다 원불교를 늦게 만났지만 누구보다도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신 다른 청년에 비하면 저는 단지 교도증만 가지고 있고 일원상 서원문증 메우는 유령교도였습니다.
그리고 저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교당과 함께 하였지만 교당은 항상 저에게 주기만 하는 존재였고 교당에 가서는 교모님들과 어른들께 예쁨만 받는 알맹이 없는 교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심이 없이 몸이 커진 대학생이 되어 있었고 스스로 교당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본 적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1 년을 보내고 저는 대학교 2 학년 때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됩니다.
당시 청년회 담당 교무님께서는 일본에 가서도 교당에 나가라며 연락처를 알려주셨었고. 그렇게 저는 일본 오사카 교당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다녔던 학교와 오사카 교장의 거리는 전철로 약 2 시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었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저는 거의 매주 법회를 보러 갔고 교무님과 교도님들이 차려주시는 공양과 다과까지 즐기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반년의 짧은 교환학생 시절이었지만 이 시기는 제 신앙심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교환학생을 끝내고 다시 안암교당으로 돌아온 저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원불교법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후 청년회에서 단장 중앙 등 여러 일을 맡게 되었고 직장도 원불교 기관에서 첫 직장을 잡게 됩니다. 교당에 열심히 다닌 덕에 일을 할 때도 공심으로 하였고 그러다 보니 원불교로 맺은 인연 덕분에 일본에서 일을 하는 기회가 오게 됩니다. 여기서 다시 교환학생 때 다녔던 오사카 교당에 가게 되는데요.
일본에 가서는 교당에 살았었습니다. 교당에 살던 저는 교당 일을 내 일처럼 하다보니 저에게는 신앙심이 큰 무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내 일 옆에서 교무님의 삶을 눈으로 보고 배우면서 오사카에서 있었던 시간을 저에게 공부인으로서 진급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혼자 나가서 산 이후에도 주말이 되면 남들보다 먼저 교당에 오고 남들보다 늦게 집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이 법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마음이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단단한 원불교인이 되어가던 저는 부산 원음방송에 근무하는 임원아 교무님을 소개로 만나게 되었고 마침 여러 일들이 겹치게 되어서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교무님과 결혼을 하고 부산에 터전을 잡게 되어서 이곳 부산 교단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정토가 되기 전에는 절대 정토는 하지 않을 거라고 단언을 했었는데요. 오사카에 오시는 교무님이나 교도님들이 잘생긴 교무님을 소개해 준다고 해도 교무라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모두 거절했습니다.
내가 내심 출가하기를 바랬던 어머니는 도저히 출가할 기미도 보이지 않자 정토라도 되라며 저를 꼬셨지만, 저는 콧방귀도 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교무 대신 집의 가장이 되는 것은 힘들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태신앙으로 만난 인연은 무시하지 못하는 것인지 교무님을 만나 정토라는 삶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정토가 되는 삶을 택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고민을 결혼 전에 수없이 하고 지금도 정토로서의 삶에 대해 알아가는 연장선상에 있지만 정토가 되어 가장 좋은 점은 매일 경계에 부딪혀서 뭐가 나 있는 저를 일원상의 마음으로 만들어주는 스승이자 배우자가 집에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서서히 원불교인으로 성장해온 제가 신앙을 하고 바뀐 점과 그리고 저의 감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생겼다는 점인데요. 저는 사실 지금보다 더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외면하거나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교당을 다니면서 제 주변 인연들에 대해 감사하고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해심을 배울 수도 있었고 나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무심코 지나쳐왔던 것들에서도 내가 도움을 받고 있고 모든 것이 사은의 은혜 속에서 돌고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교당에서 마음공부를 한 후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예전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관심있게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마찰이 생길 때도 저 사람은 왜 저럴까? 가 아닌, 그 사람의 입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와 같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바뀌면서 조금은 너그러워졌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과는 달리 마음에 힘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멘탈이 강해졌다고나 할까요? 저는 원불교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사은님의 은혜 속에서라면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예전과는 달리 불안감과 걱정이 많이 줄었습니다. 신앙심이 있기에 머릿속을 지배하던 불안감의 공부를 통해 자신감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요. 그리고 원불교와 사은님이라는 든든한 빽이 있기에 힘든 경계를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또한 끊임없이 분별하고 마음을 바라보고 한발 떨어져서 왜 그럴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조금 재밌다고 느끼는 걸 보면, 어렵게만 느껴졌던 성리에 대한 재미를 찾아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화나거나 불안할 때 난 교당 다니니까 화내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지 라고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 역시도 일어날 수 있다는 마음인 것을 알고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제 성품 자리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제가 강연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바뀐 점에 대해서 말씀은 드렸지만 제 자신에 대한 욕심이 많은 탓인지 아직 나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원고를 적었습니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청년회에 다니던 내 모습보다 오히려 강급한 것은 아닐까 과연 지금의 모습이 공부인의 삶이 맞나 하는 생각에 적을 것이 없다는 생각만 계속 들었습니다.
육아와 일과 삶에 허덕이는 제 모습이 마음공부하는 사람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다시 서원을 찾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쉽게 경계에 흔들리는 제 모습을 보면서 나를 다시 잡아줄 튼튼한 서원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교당에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지, 그리고 또 무엇이 나를 교당에 나오게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찾아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변화하는 제 모습 중에서도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원불교는 저를 무사히 키워주고 올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한 울타리라는 점입니다. 이 울타리에서 만난 많은 교무님들과 교당에서 만난 많은 분들 덕분에 제가 공부하고 진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의 바람이 있다면 저희 동훈이와 재은이가 제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 아빠의 신앙생활을 보고 교당을 편안하게 느끼고 그리고 이 법이 본인의 삶에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둘 다 전무출신이 되어서 원불교의 법으로 세상을 밝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도 아이들의 본보기로서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정진 그리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가끔 비록 돌아가거나 힘이 들더라도 원불교 신앙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저도 행복한 공부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럼 이상으로 저의 강연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06-21 강연: 황자명 소개와 원불교 신앙 전환, 정토의 삶과 마음공부
날짜 및 시간: 2026년 6월 21일 10:47:10
장소: [장소 삽입]: 부산교당
강사: 황자명
요약
사단 황자명 강사가 부산교당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강연이다. 강연자는 모태신앙으로 원불교를 만났으나 청소년기에는 신앙과 멀어졌다가, 재수 시절 교전을 읽으며 감사생활을 깨닫고 다시 신앙심을 키우게 된 과정을 공유한다. 이후 서울 안암교당 청년회 활동, 일본 오사카 교당에서의 교환학생 및 근무 경험을 통해 신앙이 깊어지고 삶의 든든한 무기가 되었음을 설명한다. 결혼 후 정토로서의 삶을 살며 겪은 변화와 마음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원불교 신앙을 통해 사람에 대한 이해심과 마음의 힘을 얻게 되었으며, 현재는 다시 서원을 찾으며 꾸준히 정진하고자 다짐한다. 마지막으로 자녀들도 원불교의 법을 통해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강연을 마친다.
지식 포인트
1. 강연자 소개 및 원불교와의 첫 인연
강연자 ‘황자명’ 소개
  이름은 법명과 속명 모두 ‘자비로울 자(慈)’, ‘밝을 명(明)’을 쓰는 황자명이다.
열반한 민산 이중정 종상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1989년생으로, 한국 나이 38세이다.
모태신앙으로서의 원불교
  고향은 창원이지만, 청년회 시절부터 마산교당을 다니셨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태어나면서부터 교당에 다니게 되었다.
어머니의 강한 의지로 교도가 운영하는 어린이집과 집에서 30분 거리의 원광유치원을 다녔다.
신앙과의 거리감 발생
  어린 시절 법회 후에도 회의로 교당에 남아있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고 심심하게 느껴졌다.
중학생이 되면서 ‘왜 교당에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고, 주말에 친구들과 노는 것에 빠져 교당을 멀리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는 학원을 핑계로 교당에 더욱 가지 않게 되었고, 교당은 사축이제 때나 가는 장소가 되었다.
2. 신앙의 전환점과 성장 과정
재수 시절의 신앙적 전환
  첫 시련이었던 대입 수능 실패 후 원망심과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분당의 기숙학원에서 재수를 결심했으며, 한 달에 한 번만 외출이 가능했다.
반입이 허용된 교전을 읽으며 마음을 식혔고, 1년간의 재수 생활은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가장 큰 가르침은 ‘감사생활’로, 집을 떠나 생활하며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깊이 깨달았다.
대학 시절과 청년회 활동
  재수 후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며 주변의 추천으로 서울교구 안암교당 청년회에 나가게 되었다.
청년회 단회에서 법문을 두고 심도 있게 대화하는 단원들을 보며, 자신이 원불교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교도증만 가진 ‘유령교도’였던 자신을 돌아보고, 교당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본 적이 없음을 느꼈다.
일본 교환학생과 신앙심의 심화
  대학교 2학년 때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갔고, 당시 청년회 담당 교무님의 권유로 오사카 교당에 나가게 되었다.
학교에서 전철로 2시간 거리였지만 거의 매주 법회에 참석했다.
이 시기가 신앙심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전환점이 되었다.
사회생활과 신앙의 실천
  안암교당으로 돌아온 후 원불교 법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청년회에서 단장, 중앙 등 여러 소임을 맡았다.
첫 직장도 원불교 기관에서 시작했으며, 공심으로 일했다.
원불교 인연 덕분에 일본에서 일할 기회를 얻어 다시 오사카 교당에 가게 되었고, 아예 교당에 살면서 교당 일을 내 일처럼 했다.
교무님의 삶을 가까이서 보고 배우며 공부인으로서 진급하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3. 정토로서의 삶과 신앙의 변화
정토가 되기까지의 과정
  부산 원음방송에 근무하는 임원아 교무님을 소개로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부산에 터전을 잡게 되었다.
이전에는 교무의 배우자가 되는 것이 힘들 것이라 생각해 정토가 되지 않겠다고 단언했었다.
결혼 전 정토의 삶에 대해 수없이 고민했지만, 결국 교무님을 만나 정토의 삶을 택하게 되었다.
신앙을 통해 얻은 변화
  첫째, 사람에 대한 이해심  : 예전에는 이기적이었으나, 교당을 다니며 주변 인연에 감사하고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와 세상이 둘이 아니며 모든 것이 사은의 은혜임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둘째, 강해진 멘탈(마음의 힘): 사은님의 은혜 속에서 잘 될 것이라는 신앙심 덕분에 불안과 걱정이 줄었다. 불안이 공부를 통해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힘든 경계를 헤쳐 나갈 힘을 얻었다.
셋째, 마음을 바라보는 자세: 끊임없이 분별하고 마음을 관(觀)하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여유가 생겼다. 화나거나 불안할 때 그 마음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성품 자리를 찾으려 노력하게 되었다.
현재의 다짐과 바람
  강연을 준비하며 육아와 일상에 치여 공부인의 삶과 멀어졌다는 생각에 다시 서원을 찾고 있다.
흔들리는 자신을 잡아 줄 튼튼한 서원이 필요하며, 신앙생활의 목적을 다시 찾아가는 중이다.
원불교는 자신을 키워 준 울타리이며, 그 안에서 만난 인연들 덕분에 진급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자녀들(동훈, 재은)도 이 법이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전무출신이 되어 세상을 밝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를 위해 본보기로서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고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질문
[질문/궁금증 삽입]
다음 일정 및 준비
신앙의 목적 재점검과 서원 수립을 위한 개인 정진 계획 수립(예: 주간 법문 독송, 감은편 일기, 월 1회 교무 상담)
오사카·안암 교당 인연 점검 및 부산교당 정토로서의 역할 정리(가정·교당 균형 계획 포함)
자녀 신앙교육 방향 논의(배우자와 공동 계획 수립, 가정 법회 도입 검토) 😊
과제
 1. 신앙생활의 목적이 무엇인지 스스로 되돌아보고, 자신을 잡아 줄 수 있는 서원을 다시 찾아보기.
 2. 일상 속에서 경계에 부딪힐 때, 그 마음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성품 자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실천하기.
 3. 자녀 또는 다음 세대에게 신앙의 좋은 본보기가 되기 위해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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