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얼굴
고영민
무늬목 장롱 하나
폐기물 스티커를 붙인 채
문밖 버려져 있다
평생을 따라다니며
방 한 켠 차지했을
이처럼 큰 방에 놓이기는 처음이라는 듯
붉은 칸나꽃 옆 우두커니
가을볕을 쬐고 있다
문을 열어본다
단칸방 속의 단칸방
한때 우리가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둘 저 속으로 영영 사라지고
텅 비어 있다
포개진 이불도 비닐에 싸인 옷도
삼베 원단과 청약통장
늦도록 찾아 나섰던 아이
조마조마한 마음
까무룩한 잠도, 어둠도 없다
희미한 나프탈렌 냄새뿐
문 안쪽 작은 거울이 붙어 있다
얼굴을 가져가본다
숨은 얼굴 하나가
힐끗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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