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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

우연한 감염 / 허수경

작성자유진|작성시간26.06.18|조회수27 목록 댓글 0

우연한 감염

허수경

 

 

 

만일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모든 것을 몰랐을까 나의 출생지는 우연한 감염이었네 사랑이나 폭력을 그렇게 불러볼 수도 있다면

 

폭력에서 혹은 사랑에서 어디에서 내가 태어났는지 모르지만 지금 보고 있는 이세계는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나에게는 없는 것일까

 

태어나지 못한 태아라고 고독이 없는 것은 아냐 사랑의 태아 폭력의 태아 태어나지 못한 태아들은 어쩌면 고독의 무시무시함을 안고 태어나지 못한 별에서 긴 산책을 하는지도 몰라

 

태어난 시간 59분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0시 사이, 미쳐버릴 것 같은 망설임으로 가득 찬 60초 속에는 태어나기 직전의 태아와 사라지기 직전의 태아가 서성거리네

 

태어나게 해, 태어나게 하지 마, 폭력이든 사랑이든 이건 조바심과 실망의 모래사막에 건설된 오아시스인데 나의 망설임은 당신을 향한 사랑인지 아니면 나를 향한 폭력인지

 

우연한 감염 끝에 존재가 발생하다가 갑자기 뚝 끊겨버리는 적막의 1

 

어디론가 가버린 태아들은 태어나지 않은 오후 5시에 흘러나올 검은 비 같은 뉴스를 들으며 구약을 읽을 거야 그 귀에 흘러나올 빗물 같은 레게음악을 들으며 바빌론 점성가들에게 문자를 보낼거야

 

모든 우울한 점성의 별들을 태아 상태로 머물게 해요, 얼굴 없는 타락들로 가득 찬 계절이 오고 있어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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