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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수필

장승무덤 / 허춘자

작성자유진|작성시간26.06.23|조회수17 목록 댓글 0

장승무덤 

허춘자

 

 

  장승은 처음에 나무였다. 산비탈에 뿌리를 박고 수십 년을 홀로 서 있던 나무, 봄이면 땅속 깊은 데서 물을 길어 올려 잎끝까지 밀어 보내고, 가을이면 물든 색을 아낌없이 내려놓던 나무였다. 나무는 말이 없다. 바람이 달려와 흔들어도 흔들릴 뿐 소리 내어 맞서지 않고, 눈이 온몸을 짓눌러도 휘어질 뿐 꺾임을 끝내 뿌리치지 않는다. 그 긴 침묵 속에서 나무는 무언가를 쌓아 갔다. 나무는 장승이 되기 전, 나이테라는 이름의 내력을, 옹이라는 이름의 상처를, 속으로만 삭혀 굳어진 세월의 밀도를 오래 스스로 갈았다. 존재는 쓰임을 얻기 전에 먼저 깊어지는 법이다.

 

  어느 날 장승조각가 장인의 손이 나무에 닿는다. 오랜 세월 나무를 읽어 온 손, 나이테의 결을 손끝으로 헤아리고 옹이의 아픔을 손바닥 전체로 받아 낸 손이다. 손끝에는 수십 년 나무와 나눈 대화가 굳은살이 되어 박혔다. 장인은 나무가 스스로 말을 꺼낼 때까지 오래, 깊이 바라본다. 나무도 그 눈길을 느끼는지 조용히 몸을 세운다. 장승은 장인의 손이 닿는 순간 비로소 말을 시작한다. 네 안에 무엇이 있느냐고 손은 묻는다. 나무는 자신도 몰랐던 속내를 천천히 열기 시작한다. 만남이란 상대 안에 오래 잠들어 있던 것을 알아봐 주는 일이다.

 

  끌이 살 안으로 파고들고 자귀가 몸을 열면 나무는 깎인다. 나무껍질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가지의 기억이 조각조각 흩어지고, 나무이던 시절의 윤곽이 하나씩 내려앉는다. 깎인다는 것은 잃는 것이 아니다. 장승은 깎일수록 더 선명해진다. 나무 속 깊은 데서 다른 형태가 천천히 떠오른다. 사람의 이마가 열리고, 사람의 턱이 드러나고, 오래 잠들어 있던 얼굴이 마침내 세상 쪽으로 고개를 든다. 모든 창조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장인은 다만 그것을 알아보고 불러낸 사람이었을 뿐 장승은 이미 그 나무 속에 있었다. 형태를 버린다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더 깊은 본질로 건너가는 일이었다.

 

  나무는 식물이다. 뿌리로 먹고 잎으로 숨 쉬며 한 자리에 박혀 사는 존재, 움직이지 않는 것이 나무가 타고난 길이었다. 장승은 경계 위에 서서 범주를 넘어선다. 느끼고, 몸을 움직이고, 바라보는 존재의 기운이 식물의 몸 안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뿌리로만 세상을 알던 것이 눈을 뜨고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경계가 스러지는 일이다. 식물과 동물, 자연과 인간, 물질과 정신 사이의 경계가 장승 한 몸 안에서 허물어진다.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기에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존재, 장승은 범주를 넘어선 자리에 홀로 서 있다.

 

  장승의 얼굴은 무섭다. 왕방울 눈이 번뜩이고 주먹코가 당당하게 앞을 향하고, 이를 드러낸 입술은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채 이를 악물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보자마자 뒤로 물러서고 어른들도 첫눈에 움찔한다. 그러나 오래 들여다보면 그 험상궂음 속에서 다른 것이 말을 걸어온다. 험한 얼굴로 서 있다는 것은 사나운 것들을 대신 받아 서겠다는 뜻이다. 함부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날마다 막아 서겠다는 다짐이다. 세상의 모든 거칠고 어두운 것들을 향해 나 먼저 맞서겠다고 이를 악문 얼굴, 그것이 장승의 표정이다. 장승의 얼굴은 위협이 아니라 방패다.

 

  장승은 얼굴을 얻는 순간 인격이 된다. 인격이란 온화한 표정이 아니라 감당하겠다는 결의 그 자체다. 장승은 얼굴을 얻는 순간 무거운 것들을 함께 얻었다.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가 두 어깨를 눌렀고, 오가는 사람들을 살펴야 한다는 사명이 두 눈을 크게 뜨게 했고, 어떤 악도 함부로 들여서는 안 된다는 소명이 두 발을 땅에 박게 했다. 나무였을 때는 자기 한 몸이 살아남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나 인격이 된 뒤로는 자기보다 큰 것을 위해 사는 존재가 된다. 자신을 초과하는 무언가를 향해 날마다 스스로를 열어 놓는 것, 그것이 인격이 자라나는 자리다.

 

  장승은 마을 입구에 선다. 사람 사는 온기와 알 수 없는 바깥의 냉기가 맞닿는 자리, 그 경계에 장승은 두 발을 깊이 박는다. 바람은 그 사이를 쉼 없이 드나들지만 장승은 흔들리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장승을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 따뜻한 방 안에서 함께 밥을 먹거나 이불을 나눠 덮는 일이 없다. 그러나 장승 없이는 마을이 온전히 지켜지지 않는다.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을 가려내고, 반겨야 할 것과 막아야 할 것을 분별하는 그 자리를 장승은 혼자 지킨다. 외로운 자리다. 그러나 장승은 그 외로움을 등에 지고 날마다 그 자리에 다시 선다. 장승은 외로운 문지기의 숙명을 두 눈 부릅뜨고 받아들인다.

 

  마을 사람들이 손을 모으고 장승 앞에 선다. 아이의 병이 낫기를, 먼 길 떠난 남편이 돌아오기를, 가을 곡식이 넉넉하기를. 기도 소리가 새벽 공기를 타고 장승의 몸 안으로 스며든다. 장승은 그 간절함을 온몸으로 받아 어디론가 전한다. 사람의 말이 닿지 않는 곳,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는 영역으로 그 기도를 실어 나른다. 자기 소원은 없다. 나무였을 때도 제 안에 기쁨과 슬픔을 쌓아 두기만 했고, 장승이 된 뒤에도 타인의 간절함을 담아 두는 그릇으로만 산다. 장승의 몸은 비워져 있기에 가득 채울 수 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앞에 선 모든 이들을 위해, 장승은 오늘도 빈다. 장승은 자기 소원 없이 모든 이의 간절함을 받아 전한다.

 

  사람들이 손을 모으는 순간, 장승은 신이 된다.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도로 올려 세운 신이다. 수많은 기도가 쌓이고 수많은 눈물이 마르고 수많은 새벽이 장승의 몸을 씻고 지나는 동안, 나무였던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로 거듭난다. 그러나 장승은 그 신격을 자랑하지 않는다. 비바람이 색을 빼앗아 가고 이끼가 얼굴 위로 기어올라도, 장승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제 일을 한다. 위대함은 거창하지 않다. 날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두 발을 땅에 박고 서 있는 것, 그것임을 장승은 온몸으로 가르쳐 준다.

 

  장승에게도 수명이 있다. 비가 살을 두드리고 햇볕이 색을 빼앗고 서리가 몸속으로 파고들다 보면 어느 해 겨울, 장승은 쓰러지기 시작한다. 눈이 흐려지고 코가 무너지고 신격을 입었던 얼굴이 조금씩 지워지며 다시 나무로, 나무 너머의 흙으로 천천히 내려앉는다. 마을 사람들은 낡은 장승을 거두어 장승무덤에 묻는다. 장승무덤. 신을 묻는 무덤. 얼마나 장엄하고 얼마나 쓸쓸한가.

 

  그러나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장승의 몸이 흙과 섞이면 흙이 따뜻해지고, 그 따뜻한 흙 위에서 이듬해 봄 새 나무가 고개를 든다. 나무였던 것이 장승이 되고, 장승이었던 것이 흙이 되고, 흙은 다시 나무를 불러 세운다. 존재는 끝나지 않는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계속된다. 그 모든 형태는 하나의 긴 문장으로 이어졌으며, 장승무덤은 그 문장의 마침표가 아니라 다음 생을 위한 숨표였다.

 

 

ㅡ 2026 글로벌경제신문 시니어신춘문예대전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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