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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수필

아버지의 겨울물 / 조영성

작성자유진|작성시간26.06.23|조회수24 목록 댓글 0

아버지의 겨울물

조영성

 

 

  아버지는 겨울이면 산으로 향했다.

 

  삼각산 자락, 도선사로 오르는 길은 유난히 비어 있었다. 잎을 떨군 나무들은 서로의 몸을 비틀어 얽은 채 앙상하게 서 있었고, 바람은 그 사이를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얼어붙은 흙이 부서지며 짧고 건조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겨울이 아니라, 시간 자체가 깨지는 듯한 느낌을 남겼다.

 

  아버지는 그 길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홀어머니와 형제를 두고 내려온 고향, 끝내 돌아가지 못한 산하가 마음속에서 떠오를 때마다 침묵은 더 깊어졌다. 겨울의 산은 모든 것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숨길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더 큰 고통이었다.

 

  아버지는 홀어머니와 형제를 늘 고향 산하에 두고 내려와야 했던 사람이었다. 형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말로 다 담기지 않았고, 그 마음이 가장 아픈 날이면 어김없이 도선사로 향했다. 그곳은 부모 또한 젊은 시절 자주 찾았던 사찰이었다. 겨울의 도선사는 풍요로운 신록과는 정반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초록은 사라지고, 새 한 마리조차 숨을 수 없는 앙상한 가지들이 숲을 가득 메웠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나무들은 서로의 몸을 긁으며 낮게 울었고, 그 울음은 오래된 상처처럼 공간에 남았다.

 

  계곡에 닿으면 아버지는 늘 멈춰 섰다.

 

  그리고 말없이 장갑을 벗었다.

 

  얇게 언 얼음 위에 손을 올리는 순간, 먼저 들리는 것은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였다. 그것은 단순한 균열이 아니라 뼈가 부러지는 듯한 날카로운 파열이었다. 얼음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졌고, 그 틈으로 드러난 물은 소리 없이 흐르면서도 이상하게 더 차갑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그 물속에 손을 넣었다.

 

  차가움은 감각이 아니라 충격으로 먼저 다가왔다. 피부를 스치는 것이 아니라, 손등의 신경을 한 번에 끊어내는 듯했다. 순간적으로 통증이 몰려오다가 곧 사라졌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감각 자체가 삭제된 것처럼 무너졌다. 손가락 끝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멀어졌고, 몇 초 뒤에는 차갑다는 인식조차 남지 않았다.

 

  물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그 흐름은 손목을 넘어 팔 안쪽으로, 뼛속 깊은 곳을 더듬듯 파고들었다.

 

  아버지는 손을 빼지 않았다.

 

  입술은 미세하게 떨렸고, 숨은 끊어졌다 이어졌다. 그러나 얼굴은 이상하게도 고요했다. 마치 고통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지나가는 자리를 지켜보는 사람처럼.

 

  나는 그 옆에 서 있었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묻지 못했다. 다만 하나만은 분명했다. 아버지는 물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남아 있으려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흔여덟에 나를 얻었다. 늦게 얻은 막내를 두고 “설익은 농사라도 배부르게 먹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만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은 늘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었지만, 그 말은 끝내 도착하지 못한 미래였다.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지 못했다.

 

  이북5도 실향민이라는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 길게 묻어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길게 말하지 않았다. 대신 더 오래 일했고, 더 적게 말했다.

 

  열여덟의 새벽, 철도길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독서실에서 밤을 새우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아버지는 내 옆에 조용히 걸음을 맞추며 말했다.

 

  “대학까지는 걱정하지 마라.”

 

  그 말은 오래 남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떠났고, 남은 것은 말뿐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현실적인 어려움보다 먼저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무너졌다. 그때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더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눈으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쓰고, 반복해서 마음속에 남겨라. 체화되게 해라.”

 

  그 말은 계곡물처럼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주 오래된 물길처럼.

 

  만학으로 다시 시작한 공부는 생각보다 훨씬 가혹했다. 지도교수님은 이미 은퇴했고, 학과의 얼굴도 모두 바뀌어 있었다. 교실에는 나보다 훨씬 어린 학생들만 가득했다. 나는 그 안에서 늦게 들어온 사람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해는 느렸고, 기억은 쉽게 빠져나갔다. 시간은 늘 모자랐고, 나는 그 속도를 끝내 따라잡지 못했다.

 

  어느 날 밤, 더는 써 내려갈 수 없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손이 멈췄고, 머리도 멈췄다. 그때 계곡이 떠올랐다. 얼음이 깨지는 소리, 감각이 사라지던 손, 그리고 그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던 아버지의 침묵.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한 줄을 쓰는 데 오래 걸렸다. 지우고 다시 쓰는 일이 반복되었다. 새벽이 깊어질수록 몸은 무너졌지만, 멈추지 않는다는 것만은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떠올랐다.

 

  “긴긴밤을 울어 새우지 않는 자는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

 

  새벽 독서실, 전쟁 이후 한 선배가 남겼다는 그 말은 이상하게도 지금의 나를 설명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나는 처음으로 ‘버틴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으려는 방식이었다.

 

  결국 나는 10년 걸린다는 만학의 길을 4년 만에 끝냈다. 성적우수자로 총장 앞에 섰던 날, 감격은 단순한 성취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물속에서 손을 빼지 않던 시간의 연장이었다.

 

  지금도 가끔 겨울 물에 손을 담근다. 그러나 오래 버티지는 못한다. 몇 초가 지나면 본능적으로 손을 빼게 된다.

 

  손끝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조용히 묻는다.

 

  아버지는 왜 그 물속에 손을 넣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 질문 끝에는 하나의 감각만 남는다.

 

  흐르면서도 사라지지 않으려 했던 삶의 온도.

 

ㅡ 2026 글로벌경제신문 시니어신춘문예대전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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