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했던 모든 것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을 때, 저는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매너리즘이 사라질 무렵, 어느새 저의 차례가 다가와 있었습니다.
선임들이 모두 떠나고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후임들만 가득할 때, 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매너리즘보다 더 큰 공허함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저는 군 생활을 하면서 전역일을 제대로 상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니, 전역은커녕 군 생활 내내 제가 상상했던 것들은 온통 걱정뿐이었습니다.
동기들은 이제 다 끝났다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묻고, 후임들은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고 간부들은 어차피 집에 갈 사람이라며 저를 점점 편하게 대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이 군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피할 수 없는 전역일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고, 한때는 벼랑 끝에 몰린 것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군인이 아닌 저의 모습을 하나둘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들떠 있었습니다. 들뜬 마음도 잠시, 통제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제가 과연 저의 삶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지, 전역했다는 생각에 무기력하게 집에만 있지는 않을 것인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지레 겁먹어 있었습니다. 항상 그랬듯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앞서나가 사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저를 부정적으로, 무기력하게 바꾸었습니다.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늘어나고 평소에 없던 고민과 걱정까지 생겼습니다. 말출 때 수연이라는 화두 다음으로 무라는 화두를 현곡께서 주셨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저는 무라는 화두를 받고 제 군 생활이 의미 있는 일이었을까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또 항상 그랬듯이 감이 잡히지 않자 기본으로 돌아가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삼무를 돌아보고 저의 삼계를 돌아보고 신병 때처럼 잠도 안 오는 김에 송풍기로 재설을 하며 밤을 새운 적도 있습니다. 잡일이던 작전이던 허투루 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더 이상 할 수 없으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 또한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저는 또다시 존재하지도, 다가오지도 않은 일들로 인해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었음을 말입니다. 과거도 미래도 실재하지 않으며,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는 것을요.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행동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의미는 제가 현재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저로부터 비롯되었고, 제 마음으로 인해 행복하기도,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세상은 각자 보기 나름이니까요. 기다리던 전역날에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도, 아쉬운 기분도 아무런, 느낌도 없었습니다. 상상하던 느낌이 아니라 아쉽고 서운하지만 이제야 준비가 된 느낌이 듭니다. 1년6개월 지나고 보니 참 빨리 갔지만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많이 울고 웃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만큼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마무리 할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군 생활 동안 저를 응원해 주시고, 따뜻한 마음을 표현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격려 덕분에 흔들리던 시간들을 지나 무사히, 몸조심히 전역했습니다. 그동안 소식이 뜸했던 분들, 보고 싶었던 분들 편하게 연락 주시면 기쁘게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09.03~2026.03.02
병장 윤민혁->그냥 윤민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