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일을 하며,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마주하는 사람은 바로 여공쌤이다.
한 사람을 온전한 형태의 개인으로 바라보는 것.
어떠한 형에 얽매이는 것이 아닌, 그 뒤에 가려진 순수한 형체의 존재를 바라보는 것.
그렇다면 과연 내가 살림 교실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마주한 여공은 과연 어떠한 이야기였을까.
나는 처음 여공을 보았을 때, 여공이 굉장히 불같은 성격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살림 일을 하면서도 나는 여공을 대할 때 굉장히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부분에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그때마다 여공의 한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물론 속으로는 이 또한 여공이 나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라 생각했으나,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죄송합니다 였다.
하지만 여공은 그때마다 이게 뭐가 죄송할 일이냐며 다음부터 제대로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고, 그를 통하여 나는 점점 여공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쩌면 여공 입장에서도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해서 듣는 것이 마치 자신이 혼을 내는 것만 같아 거북할 수 있겠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여공의 타이르는 듯한 말을 들을 때 나는 그 말투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즉, 그 형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여공이 나에게 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조금씩 선명히 들리기 시작했고, 그 말씀을 해 주시는 여공의 마음에 대하여 떠올리는 일도 조금씩 늘어났다.
어느날은 저녁 배움의 나눔 시간에 내가 살림 일을 하며 일에 집중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여공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하는 듣기에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을 들어도 최대한 들으려 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정하는 잘 듣고 있는 것 같다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이 못내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서서히 여공이라는 이름의 한 스승을 보다 더 뚜렸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공이라는 자리를 굳굳이 고수하며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시던 스승님.
가르침을 듣고나니 여공이 보였고, 여공이 보이니 가르침이 더 뚜렸하게 들려왔다.
"오류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 오류에 빠질 수 있음을 의지처로 삼는다."
무엇이든 첫 걸음은 마음내기라는 것.
거창할 것 없이, 나는 오늘 이거 하나 배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