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들어온 백분, 크림, 향수, 비누 등은 이 땅의 여성들에게 이상향을 심어주는 최대의 키워드였다.
그러나 이 제품은 신여성과 상류층 여성을 중심으로 유행했을 뿐, 대부분의 여성은 화장품을 쓸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일제에 의해 집안의 놋쇠 숟가락까지 강제 공출될 정도로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한 일이었다.
화장품은 대부분 큰 북을 둥둥 울리면서 나타나는 ‘동동 구리무’ 장수나 박물장수에게 집안 어른 몰래 외상으로 사들여 장롱 깊숙이 신주단지 모시듯 모셔놓았다. 코티 딱분이나 구리무는 콧대 높은 여성들을 한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귀하디 귀한 물건이었다.
해방의 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6·25전쟁이 나자, 생필품 대부분을 미제 구호품과 밀수품에 의존했다.
화장품 또한 극심한 원료난과 기술부족으로 외제품이 범람했다. 국내 화장품 산업은 가마솥에 장작불로 물과 기름을 가열시키며 저어주는 수준의 열악한 상황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외제 모조품과 밀수품을 무너뜨린 것이 1950년대 초 태평양화학공업사의 ‘ABC포마드’였다.
광물성 포마드가 주류를 이루던 시대에 최초로 향로를 섞은 식물성 포마드를 세련된 흰 병에 담은 ABC포마드는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선수금을 맡기고 줄 서서 물건을 받아가야 할 정도. 가난과 희망이 교차하던 시절 ABC 포마드의 향기는 신사의 심벌처럼 되었다. 당시 밀수 복지로 만든 말쑥한 신사복 차림에 머리카락을 2:8 비율로 가르고 ABC 포마드 기름으로 잘 빗어 넘긴 남자의 모습은 뭇 여성들의 선망이었다.
1956년 영화 ‘자유부인’에서 포마드를 발라 올백으로 머리를 빗어 넘기고 검은 선글라스를 쓴 남자 주인공 이민의 모습은 최고 멋쟁이의 상징이었다. 전후의 어수선함과 가난, 그래도 명동거리가 밝고 향기로웠던 것은 포마드로 빗어 넘긴 남자들의 반짝거리는 머릿결이 일조를 하지 않았나 싶다.
〈태평양|사사편찬팀〉
[ 출처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화장문화사로 본 광복60년 2005. 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