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부처(木佛)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습니다.
눈보라가 며칠째 몰아쳤고, 절간은 냉골이 되어 입김이 허옇게 서릴 정도였습니다.
땔감마저 다 떨어져 스님들은 오들오들 떨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단하 스님"은 말없이 법당으로 들어가더니, 제단 위에 모셔진 나무 불상(木佛) 하나를 덥석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도끼로 쩍쩍 쪼개 아궁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아이고, 이제야 좀 따뜻하구나."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길에 손을 녹이고 있을 때, 이 광경을 본 "원주 스님"이 기겁하며 뛰어왔습니다.
"이 미친 중아!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게냐!
감히 거룩한 부처님을 태워?"
원주 스님은 얼굴이 시뻘개져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옥에 떨어져도 시원찮을 패륜을 저질렀다는 듯한 분노였습니다.
그런데 단하 스님은 태연하게 막대기 하나를 들고 재 속을 뒤적거리며 말했습니다.
"아, 부처님을 화장(다비)해드리면 사리(舍利)가 나온다기에, 사리를 찾는 중이오."
원주 스님은 어이가 없어서 소리쳤습니다.
"이 무식한 놈아! 나무토막에서 무슨 놈의 사리가 나온단 말이냐!"
그러자 단하 스님은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요? 사리도 나오지 않는 나무토막이라면, 뭐 하러 그토록 공경하며 모셔둡니까?
그렇다면 남은 두 분도 가져다가 마저 땝시다. 방이 아직 덜 따뜻하오.”
원주 스님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등록"에 나오는 이 '단하소불(丹霞燒佛)' 이야기는 형상에 대한 집착을 깨부수는 대표적인 공안입니다.
불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기 위한 상징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상징 자체를 신성시하며 집착합니다.
"나무에서 사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원주 스님의 말은 스스로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나무인 줄 알면서도, 그 나무에 절을 하고 있었던 자신의 모순을 들킨 셈이니까요.
단하 스님은 말없이 묻고 있습니다.
‘저 나무 조각을 지키느라 살아 있는 사람이 얼어 죽게 생겼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부처의 뜻인가, 아니면 나무 조각을 모시는 것이 부처의 뜻인가?'
형상에 갇혀 부처의 본질을 잊은 종교는 껍데기일 뿐임을 화끈한 불길로 내보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각자의 '나무 부처'가 있습니다.
행복보다 더 집착하는 돈이나 체면, 명예 같은 껍데기 같은 것들입니다.
진짜 소중한 것은 저 바깥의 형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 숨 쉬는 당신의 마음과 생명입니다.
- 옮긴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