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과 야곱이야기
서로들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사실이지, 우리가 동생에게 그 짓을 하고 어떻게 벌을 면하겠니?
그렇게 가슴 아프게 애원하는 것을 보면서도 못 들은 체했는데! 그 때문에 우리가 이런 곤경에 빠진 거야."
그러는데 르우벤이 그들에게 한 마디 했다.
"그 애에게 못할 짓을 하지 말자고 내가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너희는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제 그의 피가 앙갚음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과 요셉 사이에 통역이 서 있었기 때문에 요셉이 자기들의 말을 듣고 있는 줄은 몰랐다.
요셉은 듣다 말고 물러가서 울었다. 다시 돌아 와서 말을 주고 받다가
요셉은 그들중 시므온을 불러 내어 그들이 보는 앞에서 묶었다. ...(창세기 42장 21~23절)
위 글을 보면 요셉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이집트총리로 세우신 놀라운 섭리를 깨달아 알고 있었고
하느님께서 형들을 통해서 이런 일을 이루셨기때문에 더이상 형에 대한 원한이나 복수심은 없었고
지난날을 뉘우치는 형들을 보고 운 이유는 하느님께서 형들을 통해서 역사하셨다는 것을 철저히 믿었기에
오히려 그들이 자신이 이렇게 되도록 이용되어졌다는 것을 느겼기에 울 수 밖에 없었고
돌아가는 형들에게 돈도 도로 넣어 줄 수 있는 배려도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다만 시므온을 인질로 잡은 것은 동생 베냐민이 혹시 형들에게 구박당하지는 않을까 염려도 되고
무엇보다 동생이랑 같이 살고 싶어서 야곱인 아버지에 대한 배려도 잊은 채 동생을 무조건 데려오라고 하죠.
그래서 야곱은 큰 고통과 두려움을 겪게 되죠. 자식은 늘 부모님에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나 봅니다.
요셉은 결국 데려 온 베냐민을 결코 데려 가지 못하게 하고 결국 유다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죠.
"만일 그 애를 아버지에게 도로 데려 가지 못한다면 소인이 평생 아버지에게 죄인이 되리라 다짐하고는
그 애를 제가 책임지고 나섰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 애 대신 소인을 남겨 두시어 어른의 종으로 삼으십시오.
그러나 그 애만은 형들과 함께 돌아 가게 해 주십시오.
그 애 없이 제가 어떻게 아버지에게 올라 갈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에게 닥칠 불행을 저는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요셉은 시종들 앞에서 복받치는 감정을 억제할 길 없어 "모두들 물러나거라." 하고 외쳤다.
이렇게 요셉은 모든 사람을 물리고나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형제들에게 알렸다.
결국 요셉은 다른 형들은 그 때 자신을 죽이려 했지만 그리고 유다도 역시 노예상인들에게 자신을 팔아 넘기기는 했지만
자신을 살려준 형 유다가, 자신보다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 형 유다가 이런 말을 하는데 어찌 외면할수 있겠습니까?
비록 원수를 맺었지만 결국 한 아버지를 둔 한 형제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아버지 또한 외면할수 없었던거지요.
결국 그것을 통해 하느님의 그 크신 더욱 더 깊이 깨닫게 되었던 거지요.
요셉은 결국 이 일로 인해 예수그리스도의 예표까지 될 수 있었고 형제를 용서하는 신앙인의 모범이 되었지요.
이처럼 예수님도 우리들에게 인격성화를 위해 이웃에게 철저히 짓밟히는 밥이 되는 시험까지 허락하시지요.
이것을 통해 우리의 인격이 성화될수 있고 당신을 향한 믿음과 사랑을 드러내게 되죠.
용서에 대한 묵상은 이것으로 끝내구요.
고센언덕에서 야곱이 느끼는 감회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선의로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
더 더욱 감사한 것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 주시고 가장 영예로운 자리에 앉혀주시고
굶주림으로 온 가족이 몰살 당할것 같았는데 자신의 가족을 이렇게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당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주신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울러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볼때 지난날에 대한 후회도 있지 않았을까요.
형의 장자권을 비겁하게 사서 가로채고 아버지를 감쪽같이 속이고 형의 분노를 사서 외삼촌밑에서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야했고 아버지를 속인 죄값으로 자신의 아들들에게 속아 요셉을 잃어 가슴앓이 해야했던
그 긴 세월들 후회와 비탄과 뉘우침의 나날들을 뒤돌아보며
하느님의 축복과 은혜가 아무리 귀하고 좋아도 그보다 더 중요시 했어야 했던 것
즉 자신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과 뜻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았을까요.
즉 다윗이 사울왕에 대한 보복을, 요셉이 이복형들에 대한 보복을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고 용서했던 것처럼
자신의 사랑스런 아들 요셉이 누명을 쓰면서 감옥생활을 하면서까지 아니
그 누명때문에죽을 수 있는 위험앞에서도 하느님뜻에 맞게 살려고 했던 것처럼
자신도 하느님의 뜻을 먼저 헤아리고 형과 사이좋게 지냈더라면 이런 고통은 겪지 않았을 텐데하는 후회말입니다.
자신이 형에게 저지른 불화는 결국 자식들에게 되물림되어 결국 그것이 자신에게 큰 고통이 되고 말았던 것이지요.
그랬다면 요셉에게 계시하신 약속을 요셉의 생애를 통해 놀랍게 이루신 것처럼
요셉이 아무리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져도 그 크신 능력으로 야곱 그 자신까지 이렇게 일으켜 세워 주신 것처럼
자신에게 주실 축복과 은혜도 더 풍성했을 텐데하구요.
요셉이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느님께서 내린 그 어떤 고통이나 처분도 온전히 믿고 받아들이고
그 고통까지도 온전히 봉헌한 것임을 알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