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중국에는 북쪽의 황하강과 남쪽의 양쯔강이 있다. 이중에서도 황토고원과 화북평야가 있는 황하강 중류에서 중국의 문명이 주로 발달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쌀을 재배하였던 중국에서의 물은 농사와 직결된 생명 그 자체이었다. 중국에는 큰 강이 두개 있는데, 북쪽에는 황하강(黃河江)이, 남쪽에는 양쯔강(揚子江)이 있다.
강물 하(河)자는 원래 황화강(黃河江)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이었다. 나중에 황하강 상류에서 실어 나오는 황토 흙으로 인해 물의 색깔이 항상 누른 색이라, 누른 황(黃)자를 붙여 황하(黃河)라고 불렀다. 아무리 바라고 기다려도 실현될 가능성이 없음을 이르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은 황하(黃河)가 항상 흐려 백년이 지나도 맑지 않는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성(省) 이름에 하(河)자가 들어가는 하북성(河北省)은 황하강 중류 북쪽에, 하남성(河南省)은 황하강 남쪽에 위치해 있다.
반면에, 큰 내 강(江)자는 양쯔강(揚子江)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이었다. "강남(江南) 갔던 제비"라고 이야기할 때 강남(江南)이란 양쯔강 남쪽을 일컫는다. 양쯔강은 길이가 약6300Km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강인데,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양쯔강을 장강(長江)이라고 부른다. 성(省) 이름에 강(江)자가 들어가는 강소성(江蘇省), 강서성(江西省), 절강성(浙江省) 등이 모두 양자강 하류에 위치해 있다.
양쯔강은 길이 뿐만 아니라, 폭도 매우 넓어 하류에서는 강폭이 80~90Km나 된다. 황하강과는 달리 물의 흐름이 매우 완만하여 호수(湖水)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양쯔강 중류에는 제주도 면적의 2배가 넘는 파양호(鄱陽湖)와 그보다 조금 작은 동정호(洞庭湖) 같은 거대한 호수(湖水)들이 있다. 이런 이유로, 양쯔강 중류 북쪽에는 호북성(湖北省), 남쪽에는 호남성(湖南省)이 있다,
그러나 이 두개의 강 중에서도 고대 중국의 문명은 주로 황하강 중류에서 발달되었다.
황하강 하류에는 산동성(山東省)이 있고, 상류 방향으로 400Km정도 올라가면 하남성(河南省)이 나오고, 다시 상류로 500Km정도 올라가면 섬서성(陝西省)이 나온다.
하남성을 중심으로 화북평야(華北平野)가 발달 되어 있고, 섬서성을 중심으로 황토고원(黃土高原)이 발달되어 있다. 하남성과 섬서성을 중심으로 중국문명이 탄생한 이후, 수천 년 동안 20여 개 왕조가 도읍지를 정하면서 중국의 정치, 문화, 경제의 근간이 되었다. 중국 역사나 무협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중원(中原)이 바로 하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화북평야를 일컫는다. 이 지역에는 현재도 중국 인구의 1/3이 살고 있다.
하남성(河南省)의 성도(省都)는 정주(鄭州)이다. 이곳은 신석기시대의 앙소(仰韶) 문화(BC5000~3000년)와 용산(龍山) 문화(BC2500-1900년), 청동기 시대의 이리두 문화(BC1900~BC1600) 유적이 발견되었다. 또한 북쪽으로 100 여km 떨어진 곳에 은(殷)의 수도인 안양(安陽)이 위치하고 있다. 안양(安陽)은 갑골문자와 수많은 청동기 유적이 발견된 은허(殷墟)로 유명한 곳이다.
정주에서 상류 쪽으로 100Km정도를 올라 가면 낙양(洛陽)이 있다. BC 771년에 동주(東周)가 처음으로 도읍을 정한 후, 후한(後漢), 위(魏), 서진(西晉) 등 모두 9왕조의 도읍이 이곳에 위치하였다. 낙양의 북쪽에는 북망산이 있는데, 이곳에는 역대 왕조의 황제나 귀족의 분묘가 2만5천개나 된다고 한다.
낙양에서 다시 상류로 350Km를 올라가면 섬서성(陝西省)의 성도(省都)인 서안(西安)이 나온다. 이곳에서 신석기 시대의 반파촌(半坡村) 유적지가 발견되었고, BC1050년 주(周)나라는 은(殷)나라를 멸망시키고 이곳에 도읍을 정했다. 그 뒤 섬서(陝西) 지역을 기반으로 천하를 통일한 진(秦)나라의 진시황제는 이곳에 아방궁을 짓고, 사후에는 대규모의 병마총으로 유명한 지하묘지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후 이곳은 전한(前漢), 수(隋), 당(唐)의 도읍이 되었다. 특히 당나라 때에는 이곳을 "오랫동안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로 장안(長安)이라 이름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