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무친 四顧無親 [넉 사/돌아볼 고/없을 무/겨레 친]
☞사방을 둘러 보아도 의지할 곳이 없다.
[유]孤立無援(고립무원) : 아무도 도와 줄 이 없다.(=無援孤立) /進退維谷(진퇴유곡) :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난처한 지경에 빠지다.
[예문1] 이 내 설움 들어 봐라. 나는 일가친척 바이없고, 사고무친 이 내 몸이 이성지합, 우리 아내 얼골도 어여쁘고, 행실도 얌잔허고, 봉제사, 접빈객과, 치산 범절,가장 공경, 세상으 짝이 없어, 주야 사랑 애정헐 제, 뜻밖으 급한 난리. ‘위국땅 백성들아, 적벽으로 싸움가자.’ 천아성 부르는 소리, 족불이지 나를 끌어내니 아니 갈 수 없던구나.
군복 입고 전립 쓰고 창대 끌고 나올 적에, 우리 마누라 거동보소. 보신발로 우루루루루루루루루루 달려들어 나를 안고 엎더지면, ‘아이고, 가군. 이 지경이 웬일이요? 이팔 청춘 젊은 것을 나 혼자만 여기다 두고 전장을 가시려고?’ 우리 마누라를 달래랄 제, ‘어허, 마누라. 우지 마오. 장부 가 세상에 태어났다 전장 출신이 아니라며는 장부 절개가 아니라 허니, 우지 말라면 우지 마소.’ 달래여도 아니 듣고 화를 내도 아니 듣던구나.
잡었던 손길을 에후리쳐 내던지고 전장으 나왔으나, 일부일 전장은 불식이라. 망망창해 갓없는 곳 동서남북으로 수직을 허니, 함정으 든 범이 되고 그 물으 싸인 내가 고기로구 나. 고향을 바라보니 구름만 담담허고 이득 정신 기맥히네. 언제나 내가 고향을 가서, 그립던 아내 손길 잡고 만단 정회를 언제 풀어 볼꼬, 어어어어허어.” 봇물 터진 듯이 울음을 우는구나.
--<판소리 다섯마당>적벽가
[예문2] 예컨대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지대인 바스크 지방의 바스크어가 그런 족보 없는 언어다. 웬만하면 아무 족보에나 올려주고 싶어서 혈연 관계를 확인하려고 유전자 검사까지 해봐도 도무지 어느 핏줄인지 알 수가 없는 언어가 바로 바스크어다. 사고무친(四顧無親)의 언어이고, `외계에서 왔음직한' 언어인 셈이다. <인터넷 한겨레>
[예문3]영조의 현손 남연군 구(南延君 球)의 넷째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조선 제26대왕 고종의 아버지이다. 세간에서는 대원위대감(大院位大監)이라 불렸다.12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7세 때에는 아버지를 여읜 뒤 사고무친(四顧無親)의 낙박 왕손으로 불우한 청년기를 보내었다. 21세가 된 1841년(헌종 7) 흥선정(興宣正)이 되었고, 1843년에 흥선군(興宣君)에 봉해졌다.
1846년 수릉천장도감(綬陵遷葬都監)의 대존관(代尊官)이 된 뒤 종친부의 유사당상(有司堂上), 오위도총부의 도총관 등의 한직을 지내면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하에서 불우한 처지에 있었다.철종 때에는 안동김씨가 세도권을 잡고 왕실과 종친에 갖가지 통제와 위협을 가했으므로, 호신책으로 천하장안(千河張安)이라 불리는 시정의 무뢰한인 천희연(千喜然)· 하정일(河靖一)· 장순규(張淳奎)· 안필주(安弼周)와 어울려 파락호(破落戶)의 생활을 하였다. 또, 안동김씨 가문을 찾아 다니며 구걸도 서슴지 않으니 궁도령(宮道令)이라는 비웃음을 사기도 하였다.<인물탐구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