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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곤충학자의 회상을 담은 책, 파브르 곤충기

우리나라에서 파브르의 [곤충기]는 누구나 어린 시절에 한 번씩은 읽어보는 필독서로 여겨질 만큼 유명하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우리가 접한 [곤충기]는 그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 책은 파브르가 평생에 걸쳐 수행한 곤충 관찰 기록을 토대로 1879년부터 1907년까지 무려 28년에 걸쳐서 10권으로 간행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두 종류의 완역본만 해도 쪽수가 각각 3천 쪽과 4천 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하다. 따라서 이 책을 완독한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곤충기]가 관점에 따라서는 상당히 산만한 책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곤충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종종 끼어들었기 때문에, 단순히 “곤충기”라기보다는 원제인 “곤충학적 회고록”이 더 정확한 제목이라고 하겠다. 쇠똥구리와 매미, 전갈과 나나니벌, 개미와 파리에 이르는 다양한 곤충의 이야기인 동시에 저자인 파브르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곤충기]가 의외로 어떤 정답이나 결론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특징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이 책에 감탄한 그의 독자 중에는 찰스 다윈도 있었다. 그는 심지어 파브르에게 편지를 보내서 곤충의 습성을 알아보는 실험을 제안했다. 하지만 파브르는 다윈의 학설에 오히려 반대하는 쪽이었는데, 단순히 완고하고 보수적인 성품 때문이라기보다는 나름의 원칙 때문이었다. 파브르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답습되던 곤충에 관한 갖가지 오해를 관찰과 검증을 통해 논박한 철저한 경험주의자였다. 심지어 “보는 것이 아는 것이다”라는 지론을 실천하기 위해 매미 유충을 직접 먹어보기도 했을 정도다.
파브르의 입장에서는 우선 복잡하기 그지없는 곤충의 기원을 진화로 설명하려는 다윈의 학설 자체가 무리처럼 보였다. 게다가 진화의 수수께끼를 뒷받침할 만한 중요한 증거들(가령 멘델의 유전 법칙이라든지)은 다윈과 파브르의 생전에만 해도 제시되지 않았다. 파브르는 학사 학위 취득 과정에서도 당대의 주류 이론인 자연발생론을 조목조목 반박해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진취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 따라서 진화론에 대한 반대는 파브르의 완고함 탓이 아니라 다윈의 학설이 아직 설익은 탓이었다.
"[곤충기]를 읽는 독자는 이 책에서 비록 본능에 대한 정의를 얻을 수는 없지만, 그 본능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인지는 파악하게 되며, 살아 움직이는 그림과 같은 생생한 표상을 얻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곤충기]를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같다고 말했으며, 빅토르 위고는 파브르를 ‘곤충들의 호메로스’라고 불렀다(…)이 책에는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들, 영웅적인 투쟁들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삶, 그 거친 아름다움도 담겨 있다.” - 마르틴 아우어
뒤집어 말하자면, 파브르의 저서는 지나치게 문학적이라는 이유로 과학자들에게는 경원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곤충기]가 지금까지도 고전 중의 고전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까닭은 단순히 그 과학적 가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당대에는 그보다 더 정확하고 중요한 과학 저술이 더 많았을지 몰라도, 지금껏 꾸준히 애독되는 작품은 파브르의 [곤충기]뿐이다. 다른 일반적인 과학 저술에는 없는 다른 뭔가가 파브르의 책에는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뭔가는 파브르의 인간적 매력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