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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고슴도치라고 믿었던 여우가 역사속에 남긴 뚜렷한 메아리
 영국의 정치학자 이사야 벌린은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논한 [고슴도치와 여우]에서 고대 그리스의 격언을 하나 소개한다. “여우는 잡다한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굵직한 것 하나를 안다.” 곧이어 그는 세계의 위대한 작가를 여우 유형(평생 다양한 사실을 추구함)과 고슴도치 유형(평생 단일한 원칙을 고수함)으로 나눈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 몽테뉴, 괴테, 발자크, 조이스는 여우이고 플라톤, 파스칼, 헤겔, 니체, 프루스트는 고슴도치다. 그렇다면 톨스토이는? 벌린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가설은, 톨스토이가 천성적으로는 여우지만, 그 스스로는 고슴도치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톨스토이의 생애를 관통한 모순에 관한 적절한 비유인지도 모른다. 그가 타고난 재능은 작가에게나 어울렸지 성인(聖人)에게 어울리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문학이 아니라 종교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로 인해 가족이며 세상과 불화한 것은 물론이고 결국 자기부정에 이르렀다. 종종 “톨스토이의 마지막 구도 여정”으로 미화되는 가출 역시 궁극적으로는 이런 모순이 빚어낸 파국이었다. 톨스토이는 물론 위대한 작가였다. 그러나 대중이 생각하듯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으며, 한때 소수가 떠받들었듯 예언자나 성인은 더더욱 아니었다.
톨스토이의 생애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로망 롤랑처럼 톨스토이에게서 예술과 인간 모두의 완성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슈테판 츠바이크처럼 예술가로서는 긍정하되 사상가로서는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폴 존슨처럼 인격 파탄자 톨스토이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해럴드 블룸처럼 톨스토이는 뭔가 잘못 말할 때에 오히려 더 큰 가르침을 남겨준다는 역설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톨스토이는 거인인 까닭에 목소리 역시 워낙 우렁찼고, 그로 인해 역사 속에 뚜렷한 메아리를 남겼다는 점이다.
특히 톨스토이주의의 가장 돋보이는 특색이었던 비폭력 사상의 실천은 오히려 다른 나라의 다른 인물에 의해 보다 조직적으로 전개되어 크나큰 결실을 낳았다. “한 인도인에게 흥미로운 편지를 받았다.” 1909년에 톨스토이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에서 인권 보호 활동을 벌이던 한 인도인 변호사가 보낸 편지를 처음 받았고, 이후 사망 직전까지 소식을 교환했다. 수 년 뒤에 그 인도인은 고국으로 돌아가 톨스토이의 사상에서 힌트를 얻은 비폭력 투쟁 ‘샤티아그라하(진리의 힘)’를 본격적으로 전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다. 그의 이름은 마하트마 간디였다.
참고문헌: D. S. 미르스끼, [러시아 문학사 1], 홍성사, 1985; 로망 롤랑, [톨스토이의 삶과 문학], 청암, 1993; 얀코 라브린, [톨스토이], 한길사, 1997; 이사야 벌린, [러시아 사상가들], 생각의나무, 2008; 해럴드 블룸, [세계문학의 천재들], 들녘, 2008; 빅토르 쉬클롭스키, [레프 톨스토이], 나남, 2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