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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문센은 또 50여 마리의 개를 썰매개로 이용하면서 이들이 지치고 기운이 빠지면 가차없이 죽여 남은 개들의 사료나 탐험대의 식량으로 쓰는 냉혹함을 보이기도 하였다. 아문센이 남극점으로 출발할 때 데리고 간 개는 50여 마리였지만 돌아왔을 때는 11마리만이 남아 있었다.
아문센은 독선적이고 독재적이며, 냉혹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극한의 추위와 생사를 가르는 모험 속에서 이런 독선과 독재, 냉혹함으로 동료들의 목숨을 지키고 마침내 남극점에 도달하는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북서항로 최초의 개척자

아문센은 오슬로 근교 보르게(Borge)에서 네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선원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존 프랭클린이 쓴 북서항로 탐험기를 읽고 극지탐험가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노르웨이의 탐험가 프리티오프 난센이 그린란드 횡단 이후 국민 영웅으로 각광받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추위에 단련된 몸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창문을 닫지 않고 잤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꿈과는 달리 그의 어머니는 그가 의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아문센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크리스차니아(지금의 오슬로)의 의과대학에 진학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곧 학교를 그만두었다. 나이 21세에 뱃사람이 된 아문센은 스물다섯 살 때 1등 항해사 자격을 따고 벨기에 탐험대(벨자카호)의 남극 관측 탐험에 따라 나섰다. 이때 벨기에 탐험단은 뜻하지 않은 유빙에 갇혀 남극해에서 13개월을 보내게 되었다. 동료들은 거의 괴혈병에 걸리고 쇠약해졌지만 아문센은 그 동안의 체력단련으로 건강을 잃지 않았다. 앓아 누운 선장을 대신해 아문센은 배를 지휘해 무사히 유럽으로 돌아왔다. 이때의 남극해의 경험이 훗날 아문센의 남극점 도달에 보탬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20 세기 초반,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미국의 북쪽을 돌아 항해하는 "북서 항로"는 유럽과 아시아간의 최단 항로가 될 수 있다고 여겨져 많은 탐험가들이 이 항로개척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추위와 빙산으로 항로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북서항로의 개척은 16 세기부터 유럽 탐험가들에 의해 꾸준히 시도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19세기에 들어서도 영국 존 프랭클린이 이끄는 영국 해군 함대가 캐나다 북방에서 전멸하는 등 많은 희생자를 냈다. 어렸을 때 프랭클린의 책을 읽은 아문센은 북서 항로 개척의 도전자 중 한 명이 되었다.
1903년 아문센은 난센의 도움으로 겨우 자금을 모아 승무원 6명과 함께 47 톤 청어잡이 엔진배 이외아호(Gjøa)를 타고 노르웨이를 떠나 그린란드를 향해갔다. 그는 배핀만을 가로질러 랭커스터 해협을 거쳐가는 항로를 선택했고 이후에는 킹 윌리엄스 섬과 부시아 반도 사이의 레이 해협으로 향해갔는데 이 곳은 수심이 1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이외아호 정도의 작은 목선만이 통과가 가능한 뱃길이었다.
그는 킹 윌리엄스 섬에서 2회에 걸쳐 겨울을 나면서 에스키모(이누이트)들로부터 개썰매 사용법, 이글루를 짓는 법, 생고기를 먹는 법,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법 등을 배웠다. 이것은 훗날 남극점 탐험에 큰 도움이 되었다.
겨울을 나면서 아문센은 빅토리아 섬 부근의 지도를 만들기도 하고 자석상의 북극의 위치(북자극)을 발견하고 스키로 그 지점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1905년 겨울을 보내고 킹 월리엄스 섬을 떠난 아문센의 이외아호는 빅토리아 섬 남쪽을 항해하여 8월 17일 캐나다 북쪽 제도를 빠져 나왔다. 이로서 그는 북서 항로를 뚫은 최초의 탐험가가 되었다.
항로는 뚫었지만 또다시 알래스카의 유빙에 갇힌 아문센은 800km를 걸어 북서항로의 횡단을 보고하는 전보를 치고 다시 배로 돌아왔다. 이 전보는 막 스웨덴에서 독립한 노르웨이 국민들에게 큰 힘을 주는 기쁜 소식이었다. 유빙에 갇혀 있던 아문센은 다음해 얼음을 탈출하여 베링 해협을 통과했다.
아문센과 스콧의 남극 경쟁
 1909년 피어리가 북극점 발견을 발표 한 후, 목표를 남극점으로 계획을 바꾼 아문센은 사실 스콧에 비해 준비된 탐험가였다. 아문센은 풍부한 항해 경험과 추운 지방의 오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법을 몸으로 익힌 사람이었지만, 스콧은 산뜻한 해군 장교로 출발해 갖추어진 곳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는 지식인 스타일의 탐험가였다. 아문센이 경쟁과 생존을 위해 남극점 도달을 목표로 했다면 스콧은 주변의 지지와 낭만적인 관점에서 남극점으로 가려고 했다. 그래서 아문센과 스콧의 남극점 탐험은 그 준비과정부터가 달랐다.
1911년 아문센의 탐험대와 스콧의 탐험대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남극으로 향했다. 하지만 두 탐험대는 출발점부터가 달랐다 아문센은 다소 험하고 미지의 길이지만 남극점에서 100km 가까운 고래만에 베이스캠프를 쳤다. 스콧은 에레베스에 둥지를 틀었다. 스콧이 택한 길은 이전 탐험가의 조사가 있었던 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