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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물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극지 탐험가 - 로알 아문센

작성자겨울의 꿈|작성시간11.11.02|조회수837 목록 댓글 0

 

승리는 모든 것을 제대로 갖춘 자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그걸 성공이라고 부릅니다. 필요한 절차를 등한시한 자에게는 시간이 지난 후에 반드시 실패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불행이라고 부릅니다.

-아문센

 

 

인류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하다

1911년 12월 14일 오후 3시. 아문센과 그의 동료대원들은 남극점에 도달했다. 조국 노르웨이를 떠나온 지는 1년 반. 남극대륙에 도착한지 11개월 만이었고, 남극점을 향해 떠나온 지 두 달 만이었다. 아문센과 그 동료들은 남극점에 조국 노르웨이의 깃발을 꽂고 남극점에 세운 캠프의 이름을 ‘폴하임(Polheim: 극점의 고향) 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로서 아문센은 인류최초로 남극점에 도착한 사람이 되었다.

 

아문센의 남극점 도달에는 여러 가지 숨은 이야기들이 많다. 아문센이 원래 도달하고자 했던 목표점은 남극점이 아니었다. 그는 오랫동안 북극점에 최초로 가는 탐험가가 되기 위해 준비했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1909년 미국의 피어리가 북극점에 먼저 도착(1996년에 발견된 피어리의 일지에 의하면 피어리가 도착한 곳이 북극점이 아니라 북극점에서부터 40km 떨어진 곳이라고 밝혀졌다)했다고 발표되자 아문센은 생각을 바꾸었다. 첫 번째가 아니면 그 어떤 스포트라이트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 아문센은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고 혼자서 남극으로 갈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가기 시작했다.



 

같이 탐험을 준비하는 동료들에게도 비밀에 부쳤다. 그에게 탐험 자금을 대는 노르웨이 국왕 호콘 5세도 아문센의 남극점 계획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스승격이었고 탐험배 프람호를 물려준 난센도 아문센의 남극행은 몰랐다. 아문센은 노르웨이를 떠나 마데이라에 도착해서야 그를 따르던 탐험대원들에게 남극점으로 갈 것이라고 발표하였고, 자금후원자들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거리라고 판단하고 전보를 통해 남극점 탐험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그는 떠들썩하게 남극점 탐험 계획을 밝히고,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탐험길에 오른 영국의 탐험가 로버트 스콧에게 남극으로 떠나면서 자신도 남극점 탐험을 하게 되었다는 도전장을 전보로 보냈다. 여러모로 매우 비밀스럽고 급습에 가까운 남극점 탐험이었다. 마치 전쟁에서 야밤에 급습을 하는 게릴라 전법처럼 그는 남극점 탐험을 시작했다.

 

1등, 최초라는 타이틀에 목말랐던 아문센은 남극 탐험 중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스콧보다 빨리 남극점에 도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채 날씨가 풀리지 않은 9월 8일 서둘러 남극점을 향해 출발했던 아문센의 탐험대는 결국 날씨 때문에 4일 만에 후퇴하여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아문센은 동료를 버려두고 혼자서 먼저 가장 빠른 썰매개가 끄는 썰매를 타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는 이기성을 보이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아문센 탐험단의 대원이었던 노련한 탐험가 요한센은 이른 출발을 반대했고, 또 후퇴가 결정되었을 때는 먼저 가버린 대장 아문센 대신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미숙한 동료를 이끌고 돌아옴으로써 아문센과 격렬하게 대립했다. 이 대립에서 아문센은 요한센을 탐험대에서 격리했고 후일, 남극점 도달 후에도 그 영광을 요한센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그가 철저히 고립되도록 했다. 요한센은 결국 남극에서 돌아 온 후, 아문센과 그 동료들이 갖가지 훈장을 받으며 승승장구할 때 극도의 배신감과 절망감 속에서 자살하고 만다.

 

남극점에 노르웨이 깃발을 꽂은 아문센과 대원들 <출처:www.wikipedia.org>

 

 

아문센은 또 50여 마리의 개를 썰매개로 이용하면서 이들이 지치고 기운이 빠지면 가차없이 죽여 남은 개들의 사료나 탐험대의 식량으로 쓰는 냉혹함을 보이기도 하였다. 아문센이 남극점으로 출발할 때 데리고 간 개는 50여 마리였지만 돌아왔을 때는 11마리만이 남아 있었다.

 

아문센은 독선적이고 독재적이며, 냉혹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극한의 추위와 생사를 가르는 모험 속에서 이런 독선과 독재, 냉혹함으로 동료들의 목숨을 지키고 마침내 남극점에 도달하는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북서항로 최초의 개척자

아문센은 오슬로 근교 보르게(Borge)에서 네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선원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존 프랭클린이 쓴 북서항로 탐험기를 읽고 극지탐험가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노르웨이의 탐험가 프리티오프 난센이 그린란드 횡단 이후 국민 영웅으로 각광받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추위에 단련된 몸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창문을 닫지 않고 잤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꿈과는 달리 그의 어머니는 그가 의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아문센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크리스차니아(지금의 오슬로)의 의과대학에 진학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곧 학교를 그만두었다. 나이 21세에 뱃사람이 된 아문센은 스물다섯 살 때 1등 항해사 자격을 따고 벨기에 탐험대(벨자카호)의 남극 관측 탐험에 따라 나섰다. 이때 벨기에 탐험단은 뜻하지 않은 유빙에 갇혀 남극해에서 13개월을 보내게 되었다. 동료들은 거의 괴혈병에 걸리고 쇠약해졌지만 아문센은 그 동안의 체력단련으로 건강을 잃지 않았다. 앓아 누운 선장을 대신해 아문센은 배를 지휘해 무사히 유럽으로 돌아왔다. 이때의 남극해의 경험이 훗날 아문센의 남극점 도달에 보탬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20 세기 초반,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미국의 북쪽을 돌아 항해하는 "북서 항로"는 유럽과 아시아간의 최단 항로가 될 수 있다고 여겨져 많은 탐험가들이 이 항로개척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추위와 빙산으로 항로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북서항로의 개척은 16 세기부터 유럽 탐험가들에 의해 꾸준히 시도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19세기에 들어서도 영국 존 프랭클린이 이끄는 영국 해군 함대가 캐나다 북방에서 전멸하는 등 많은 희생자를 냈다. 어렸을 때 프랭클린의 책을 읽은 아문센은 북서 항로 개척의 도전자 중 한 명이 되었다.

 

1903년 아문센은 난센의 도움으로 겨우 자금을 모아 승무원 6명과 함께 47 톤 청어잡이 엔진배 이외아호(Gjøa)를 타고 노르웨이를 떠나 그린란드를 향해갔다. 그는 배핀만을 가로질러 랭커스터 해협을 거쳐가는 항로를 선택했고 이후에는 킹 윌리엄스 섬과 부시아 반도 사이의 레이 해협으로 향해갔는데 이 곳은 수심이 1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이외아호 정도의 작은 목선만이 통과가 가능한 뱃길이었다.

 

그는 킹 윌리엄스 섬에서 2회에 걸쳐 겨울을 나면서 에스키모(이누이트)들로부터 개썰매 사용법, 이글루를 짓는 법, 생고기를 먹는 법,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법 등을 배웠다. 이것은 훗날 남극점 탐험에 큰 도움이 되었다.

 

겨울을 나면서 아문센은 빅토리아 섬 부근의 지도를 만들기도 하고 자석상의 북극의 위치(북자극)을 발견하고 스키로 그 지점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1905년 겨울을 보내고 킹 월리엄스 섬을 떠난 아문센의 이외아호는 빅토리아 섬 남쪽을 항해하여 8월 17일 캐나다 북쪽 제도를 빠져 나왔다. 이로서 그는 북서 항로를 뚫은 최초의 탐험가가 되었다.

 

항로는 뚫었지만 또다시 알래스카의 유빙에 갇힌 아문센은 800km를 걸어 북서항로의 횡단을 보고하는 전보를 치고 다시 배로 돌아왔다. 이 전보는 막 스웨덴에서 독립한 노르웨이 국민들에게 큰 힘을 주는 기쁜 소식이었다. 유빙에 갇혀 있던 아문센은 다음해 얼음을 탈출하여 베링 해협을 통과했다.

 

 

아문센과 스콧의 남극 경쟁


1909년 피어리가 북극점 발견을 발표 한 후, 목표를 남극점으로 계획을 바꾼 아문센은 사실 스콧에 비해 준비된 탐험가였다. 아문센은 풍부한 항해 경험과 추운 지방의 오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법을 몸으로 익힌 사람이었지만, 스콧은 산뜻한 해군 장교로 출발해 갖추어진 곳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는 지식인 스타일의 탐험가였다. 아문센이 경쟁과 생존을 위해 남극점 도달을 목표로 했다면 스콧은 주변의 지지와 낭만적인 관점에서 남극점으로 가려고 했다. 그래서 아문센과 스콧의 남극점 탐험은 그 준비과정부터가 달랐다.

 

1911년 아문센의 탐험대와 스콧의 탐험대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남극으로 향했다. 하지만 두 탐험대는 출발점부터가 달랐다 아문센은 다소 험하고 미지의 길이지만 남극점에서 100km 가까운 고래만에 베이스캠프를 쳤다. 스콧은 에레베스에 둥지를 틀었다. 스콧이 택한 길은 이전 탐험가의 조사가 있었던 길이었다.

 

아문센이 타고 있던 배 프람호(전경)와 스콧이 타고 있던 테라노바호(후방)가 만났던 모습(1911년).

털옷을 입는 남극의 아문센. 그는 에스키모인들을 따라 짐승 털가죽으로 된 옷을 입고 썰매개로 허스키를 사용했다.

 

 

남극에서 아문센은 유럽탐험대의 기존 방식을 버리고 자신이 탐험을 하면서 살펴본 에스키모의 생존법을 선택했다. 에스키모야 말로 추위를 가장 잘 이기는 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방한복으로 짐승 털가죽으로 된 가볍고 따뜻한 에스키모 인들의 옷을 선택했다. 이와 함께 아문센은 썰매를 끄는 수단으로서 에스키모인들의 개인 '허스키'를 사용하였다. 허스키는 추운 지방에서 자란 개들이라 남극의 추위에도 끄떡 없었다. 아문센은 허스키가 끄는 썰매를 타고 마치 에스키모인들처럼 지치고 약해진 개들을 차례로 식량으로 이용했다. 잔인하긴 하지만 덕분에 식량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고 그만큼 행군 속도가 빨랐다.

 

한편 스콧 탐험대는 아문센과 달리 기존의 탐험 스타일을 그대로 따랐으며 문명인 유럽의 기술을 이용하려 했다. 스콧의 탐험대는 모직으로 된 유럽식 방한복을 착용하였다. 그 옷은 추위에는 강했지만 습기에는 너무나 취약했다. 추운 날씨에 젖은 옷은 더한 오한을 불러 왔다. 스콧 탐험대는 이동하는 것도 아문센과 다른 방법을 택했다. 스콧은 만주산 조랑말을 남극으로 데려와 썰매를 끌게 했다. 아무리 만주의 추위를 견딘 말들이라고 하더라도 남극의 혹한은 견디기 어려웠다, 조랑말은 얼마 안가 모두 얼어 죽었다. 신사적인 스콧의 탐험대는 죽은 조랑말을 식량으로 사용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들이 가져온 엔진 달린 기계식 이동 장치도 연료가 얼어붙어 쓸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식량을 실은 엄청난 무게의 썰매를 직접 끌고 다녔다. 당연히 행군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

 

아문센은 행군을 하면서 돌아올 길을 생각해 지나간 길에 착실히 베이스캠프를 마련하고 식량을 비축해두고 어디서나 잘 보이게 깃발을 꽂아 주었다. 차례로 식량을 떨어뜨려 놓고 왔기 때문에 행군 속도는 나날이 빨라졌다. 아문센은 결국 스콧보다 35일 먼저 남극점에 도착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도 오로지 돌아오는 것만을 목표로 하여 베이스캠프를 차례로 거치면서 안전하게 대원모두를 살려서 96일만에 귀환할 수 있었다.

 

반면 스콧의 탐험대는 초인적인 힘을 다해 남극점에 도착했지만, 이미 아문센이 도착한 사실을 알고 실의에 빠졌다. 돌아오는 길도 문제였다. 오는 길에 베이스캠프의 표식을 제대로 만들어 놓지 못한데다, 학술적 연구 가치가 있는 것들을 모두 썰매에 싣고 이동했다. 날씨는 급작스럽게 나빠졌고 베이스캠프를 찾지 못한 스콧의 대원들은 무거운 썰매를 끌고 혹한과 눈보라 속을 헤맸다. 그리고 결국 그들 모두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스콧 일행은 1912년 11월 눈 속에 파묻힌 텐트 속에서 일기장과 함께 싸늘한 시신이 되어 발견되었다.

 

아문센 보다 한 달 뒤에 남극점에 도착한 스콧(뒷줄 맨 오른쪽)과 그의 대원들. 안타깝게도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북극점 통과와 돌연한 최후

남극 탐험으로 노르웨이의 국민적 영웅이 되었지만 아문센은 만족하지 못했다. 자신이 처음 목표했던 북극점도 가서 남극점과 북극점을 모두 가 본 유일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것이다. 1918년 아문센은 모드호를 타고 다시금 탐험길에 올랐다. 그러나 모드호는 북극으로 가는 동안 긴 시간 표류했고 결국 아문센은 북극점에 도착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3년간의 항해 동안 북동항로를 발견해 북서항로와 북동항로의 개척자가 되었다.

 

배가 아닌 방법으로라도 북극점에 가고 싶었던 아문센은 5년 후인 1925년 미국의 L.엘즈워스와 함께 비행정(飛行艇)에 의한 북극비행을 시도하였으나 또 실패했다. 북극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아문센은 이듬해 다시 엘즈워스, 이탈리아의 U.노빌레와 함께 비행선 노르게호(號)로 스피츠베르겐으로부터 알래스카의 테러까지의 북극점 상공 통과 횡단비행에 성공하였다. 1996년 피어리가 도달한 곳이 북극점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아문센은 북극점을 통과한 최초의 사람 중 하나가 되어 결국 남극점과 북극점 두 곳을 가본 인류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1928년 아문센은 함께 북극점을 통과한 이탈리아의 노빌레의 북극 탐험대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노빌레 일행을 구출하기 위해 비행정으로 포롬세 기지를 출발 북극을 향했다. 노빌레 일행은 아문센이 아니라 2차 구조대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그러나 아문센이 탄 비행정은 돌아오지 못했다. 얼마 후 그가 타고 떠났던 비행기의 파편이 발견되면서 아문센은 북극에서 조난사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탐험가다운 최후였다. 아직 비행기 동체와 아문센의 유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저서로는 [남극점](1912), [북극해 최초 횡단](1927, 엘즈워스와 공저) 등이 있다.

 

 

 

김정미/시나리오 작가, 역사 저술가
글쓴이 김정미씨는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관심이 많다. 역사 속 인물들의 면면에서 영화적 캐릭터를 발견하고 시나리오를 옮기는 작업을 하는 한편 역사관련 글쓰기도 병행하고 있다. [역사를 이끈 아름다운 여인들], [천추태후-잔혹하고 은밀한 왕실 불륜사], [어린이 역사 인물사전] 등의 책을 썼다.

 

 

 

출처:네이버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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