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오늘날 ‘사드’의 이름은 ‘사디즘’이나 ‘사디스트’나 ‘사도마조히즘’(SM) 같은 여러 가지 파생어를 통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사디즘’이라는 신조어는 사드가 사망하고 나서 한 세대가 지나자 사전에도 등장하게 되었는데, 독일의 성의학자 크라프트에빙에 의해 “가학성 변태 성욕”이라는 의미로 대중에게 각인되었다. 하지만 ‘사디즘’으로 지칭되는 현상은 역사적 인물인 ‘사드’보다도 훨씬 더 먼저부터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드’를 마치 ‘사디즘’의 발명자로 여기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잘못이다.
나아가 사드가 갖고 있었던 쾌락의 개념은 사디즘과 일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면서 쾌락을 느낀 것이 아니라, 그런 고통(또는 고통의 위협) 때문에 상대방이 드러내는 ‘공포’를 보면서 쾌락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채찍질과 비역질에만 그치지 않고 종종 신성모독을 쾌락과 연결시킨 것도, 금기와 인습에 대한 전복과 도전이 주위 사람들에게 주는 ‘충격과 공포’ 때문이었다. 그가 남긴 여러 편의 외설 문학이 성욕보다는 오히려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드가 헛소문의 일방적인 피해자였다는 뜻은 아니다. 대중의 상상력 때문에 모함을 받긴 했지만, 평생의 행적을 돌아보면 인간 사드는 단단히 비뚤어진 사람이기도 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를 중심으로 사드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인습 타파를 이유로 그를 ‘진정한 자유인’으로 여기는 것이 대세가 되었는데, 그건 사실 본말이 전도된 평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사드의 인습 타파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쾌락 극대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드의 사상’으로 일컬을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디즘’이 아니라, 본인이 창안한 용어대로 ‘고립주의’(isolisme)일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은 서로 고립된 상태로 태어나며, 각자 서로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지. 그 누구도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그와 나 사이에는 최소한의 관계조차 존재하지 않아 (…) 남들이 느끼는 가장 극심한 고통은 단연코 우리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반면,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미미한 쾌감이 우리를 감동시키지.” 적어도 그에게 허무와 쾌락은 종이 한 장의 차이였던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홀로코스트의 진상이 밝혀지자, 일각에서는 사드의 작품이 나치의 만행에 직간접적인 영감을 주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한 가지 극단을 나치보다 한 발 앞서 사드가 증명했다고 보아야 더 정확할 것이다. 종종 광인으로 치부되고 외면당하지만, 인간이 무엇인지(또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우리는 마치 목에 걸린 가시처럼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사드가 남긴 작품의 가치는 아마 거기서 찾아야 마땅할 것이다.
참고문헌: 사드 후작, [미덕의 불운], 1988; [안방철학], 1992; [소돔 120일], 1993; [사랑의 죄악], 1993; [사드의 욕망(원제: 헨리에타 스트롤슨, 또는 절망의 효과)], 1994; [소돔 120일], 2000; [규방철학], 2005; [사랑의 범죄], 2006; 쟝-쟈끄 뽀베르, [살아 있는 사드], 1993; 조르주 바타이유, [문학과 악], 1995; 샹탈 토마, [사드, 신화와 반신화], 1996; 티모 에이락시넨, [사드의 철학가 성윤리], 1997; 모리스 르베, [사드], 1999; 장 폴 블리겔리, [사드], 2006; 존 필립스, [HOW TO READ 사드],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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